<단독> 벼락 때문에? 사라진 군 기록부 미스터리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24 11:31:34
  • 호수 13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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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 맞아 서류 다 없어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모두 군대를 간다. 군사력 증진을 위한 의도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로 포장된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 군대에서 훈련 중 생긴 부상을 군대가 외면하고 있다. 그것이 평생 남아 한 사람의 삶을 괴롭혀도 방법은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나와 있다. 대한민국 병역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은 국방의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항상 귀마개
불면·불안증

대한민국 만 18세 이상 남성 국민 중 심신과 건강 수준을 충족한 국민은 현역 대상이 된다. 이들은 1년6개월 간 대한민국 육군에 현역병으로 입대해 군인으로 복무해야 한다.

국방의 의무는 공법상 의무 중 하나다. 공법이란 개인과 국가 간 또는 국가기관 간의 공적인 생활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세금, 선거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군 입대를 위해서는 과별로 전신을 검사한다. 성인 남성 기준으로 ▲145㎝ 이하의 왜소증 ▲간 이식 ▲중풍 ▲중증 심장판막증 ▲폐인급 정신질환 등의 중증 질환이나 중증장애 등이 있으면 면제 사유가 된다.


현역병으로 입대하면 ‘육군훈련소’에 가게 된다. 이곳에서 신병은 신병교육인 정신전력 교육과 제식훈련 등을 받게 된다. 군인이 되는 첫 시작이다.  

육군훈련소 홈페이지에서 육군훈련소 훈련소장은 “훈련병들이 오직 교육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인권과 복지 여건을 증진시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국가는 군인의 인권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군대에서 훈련 중 당한 부상으로 힘든 사람이 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국가가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09년 3월24일에 강원도 A 사단에 입대해 2011년 1월25일에 병장으로 제대한 이재준(33)씨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이씨는 군대에서 생긴 이명 때문에 전신불안장애를 겪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명은 군대 사격훈련으로 발생했다. 이씨는 특급중대로 사격을 위주로 훈련했는데, 주특기가 ‘81㎜ 박격포’였다. 간단하게 소총 총성과 비교하면 일반 소총 총성은 약 150㏈로 뱃고동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것 같은 큰 소리다. 81㎜ 박격포는 포격 위력과 총성도 크지만, 빠른 탄환 속도로 총성이 더 크게 느껴진다.

당연히 사격 훈련에서 귀마개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명이 생긴다. 그러나 이씨가 근무하던 시기에 A 사단은 훈련병에게 귀마개를 지급하지 않았다. 귀마개 지급이 100% 안 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지급되지 않았다. 

애당초 훈련 중 의사소통을 계속해야 해서 개인 귀마개가 있어도 낄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환경으로 당시 함께 군 복무하던 동료는 모두 이명 증상을 겪었다. 


박격포 주특기 훈련 반복…평생 이명으로 고생
국가유공자 신청 위해 진단서 요청했더니 “없다”

다만 개인 차는 있었다. 이씨의 경우는 훈련이 끝나면 바로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적막한 밤에는 삐 소리가 고음으로 들렸고, 가끔은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이명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사격 훈련을 한 뒤 대화를 할 때는 이명 소리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때도 있었다. 이들 중에서 이명을 장기간 겪은 사람은 이씨와 이씨의 후임 정도다.

사격 훈련이 계속되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명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이명으로 인한 수면장애도 발생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소음으로 이명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잠을 잘 때는 달랐다. 평소 6~7시간 잤던 수면 시간은 평균 1시간에서 1시간30분으로 줄었다.

이씨는 이명을 해결하기 위해 2009년 9월경 국군 B 병원에 방문했다. 함께 갔던 동료들도 주로 이명 증상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다. 이씨는 B 병원 군의관에게 증상을 말했다. 군의관은 튜닝 포크(U자형 발굽)로 이씨의 양쪽 귀 뒤에서 두드리며 간단한 청력 테스트를 했다.

군의관은 “이명은 낫는 병”이라는 말과 일주일 치 약을 줬다. 

이씨의 실수가 있다면 군의관의 말을 믿은 것일까. 군대를 제대한 후에도 이씨는 병원을 가지 않았다. 증상이 심해질 때면, 이씨는 군의관이 말했듯 약국에서 약을 사 먹는 정도로 대처했다.

2년6개월이 지날 때 쯤, 이씨는 직장 관련 행사를 참석했다. 강사가 입장하면서 70명가량 관객의 큰 박수갈채가 나왔다. 그때 강하게 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상생활에서 큰 소음에 노출되면 무조건 이명 소리가 들렸고 통증까지 동반됐다.

이씨는 병원에 방문했다. 정확한 병명은 ‘이명 및 돌발성 난청’으로 나을 수 없는 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2013년 7월1일이었다.

부실한 관리 
낙뢰 탓으로?

이씨의 일상은 귀마개와 함께였다. 외국에서 사무직으로 일할 때도 항상 귀마개를 하고 지냈다. 불면, 불안증은 계속됐다. 한국에 귀국해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병원을 내원해야 했다. 정신과에서 정신불안장애 진단도 추가로 받았다. 일상이 무너졌다.

이명으로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 이씨는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기 위해 군인이었을 당시 내원했던 국군 B 병원과 A 사단에 ‘이명 진단서’와 ‘개인생활기록부’를 요청했다. 하지만 A 사단은 이 자료가 모두 없다는 답을 줬다.


우선 국군 B 병원은 이씨의 이명 진단서 자체가 없다고 대답했다. 반면 ▲손가락 염좌 ▲감기 ▲요통 ▲비골 골절에 관한 진단서는 있었다. 

B 병원은 “의무 기록이 없는 것은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거나, 진료를 하지 않았을 경우다. 현재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예비 전산 구축은 현재 주 서버와 각 부대에서 수시로 저장해 기록을 유지하나, 그 당시 주 서버와 예비로 저장하고 있는 컴퓨터 모두 피해를 봐 자료가 없는 상태다. 당시 함께 근무한 간부의 자료 또한 컴퓨터 피해로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이씨는 이 일에 대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농구하다가 다쳐서 병원을 갔을 때는 군의관이 내가 하는 말을 컴퓨터에 기록했다. 그런데 이명으로 치료를 받을 때는 컴퓨터로 기록하지 않아 당시에도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기록이 없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군대 개인 생활기록부의 법적 보관 기간은 5년이다. 이씨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군대에 문의를 했을 때는 4년이 지난 시점인 2015년이다. 

국민신문고는 “전자화한 개인생활기록부는 2014년 9월5일 오전에 발생한 낙뢰로 본체 하드디스크가 손상돼 연대 및 대대에 정비를 의뢰했다. 하지만 하드디스크가 복원되지 않아 컴퓨터를 교체해 자료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수기로 작성한 개인 생활기록부는 해당 부대에서 분실했으며, 그 분실 사유에 대해 A 사단 감찰부는 ‘알 수 없음’이라고 답변을 받았다”고 회신을 보내왔다.

과실 인정
“방법 없어”


기상청의 ‘2014 낙뢰 연보’에는 낙뢰 정보가 있다. 2014년 낙뢰 연보에 따르면 A 사단의 강원도 ○○군은 2014년 9월에 낙뢰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낙뢰는 5월, 6월, 7월에 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씨에게 남은 자료는 10대 시절 청력에 문제가 없었다는 학생기록부와 군 제대 후 병원에서 받은 의료기록뿐이다. A 사단은 이씨에 관한 어떤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국가유공자 신청에서 떨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군대에서 이씨의 자료를 누락시켰기 때문이다.

자료가 누락되기만 한 게 아니다. 다르게 기록된 자료도 있었다. 바로 군대 사격 일자다. 이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2009년 8월13일부터 12월까지 사격(81㎜ 박격포 및 개인화기)을 다수 실시했다. 그런데 사격 내역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이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신문고는 “민원인이 근무한 부대의 사격훈련 기록 확인을 위해 부대일지, 전자기록을 확인한 결과 2009년 8월부터 12월까지 사격훈련에 대한 기록은 없다. 또한 육군 규정에 따라 탄약 보급 및 소모 거래 문서, 불출증 등은 5년간 유지, 의거 탄약고 출입일지는 3년간 보관 후 폐기해 민원인이 요구한 자료는 현재 부대 내 부존재한다”고 답했다.

결국 이씨가 군대에서 받을 수 있었던 자료는 ‘중대장 확인서’ 뿐이다. 이 자료는 특급중대에서 사격을 많이 했다는 확인서다. 하지만 이 기록조차도 국민신문고 답변과 어긋난다.

이씨가 군 복무 시기에 작성했던 일기에는 사격 일자가 기록돼있다. 이를 제출해 당시 사격한 사격 발수·훈련 기록·불교 군종병으로 활동한 병사 상담 내용을 제출한 것도 증거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명이 심했던 이씨의 후임은 이씨를 위해 사실확인서를 써줬다. 그러나 이 역시 심사 내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사단 “낙뢰로 자료 소실됐다”
‘낙뢰 연보’엔 낙뢰 기록 0건”

사실확인서에는 “본인 역시 이씨와 마찬가지로 군 복무 시 이명으로 고통받았고, 제대 후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으나 등급 미달 판정을 받았다. 본인은 군 복무 시 이명과 관련해 병원에 여러 차례 내원했는데, 당시 이씨 역시 함께 내원한 사실이 있다. 이씨가 이명으로 고통받았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만, 당시 이명으로 병원을 간 것이라는 정확한 기억은 없다”고 명기됐다.

이어 “당시 우리 중대는 연대에서 ‘특급전사’ 대회를 나가는 중대로 타 부대보다 사격 훈련이 훨씬 많았다. 또 박격포 중대로 그 소음 또한 어마어마 해서 큰 소음에 자주 노출돼 이명 증상을 보였던 전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돼있다.

이씨 후임의 증언은 있었지만 ‘이명으로 병원을 간 것이라는 정확한 기억은 없다’는 말로, 증언은 효력이 없었다. 이후 이씨는 국가유공자 심사를 한 번 더 실시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행정소송에는 “이 사건은 군 상이와 군 직무수행 등과의 상당 인과관계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로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군 병원 진료기록지상 이 사건과 관련해 진단 및 진료받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객관적인 수상 경위 및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제출된 소속 중대장의 확인서, 해당 부대의 훈련 일지 및 실탄 소모 출입일지 기록 등을 통해 이씨가 군 복무 중 사격훈련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씨가 주장하는 수상 당시의 진료기록 및 구체적인 진단명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의무기록지 등의 작성 및 보관에 관한 책임이 군 병원에 있어 이 사건 처분이 위법·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그러나 군 병원 또는 행정청에서 그 등록 요건과 관련된 자료를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덧붙였다.

즉 이씨 후임의 증언이 있었지만 ‘이명으로 병원을 간 것이라는 정확한 기억은 없다’는 말로, 증언은 효력이 없었다. 사라진 이명 진단서와 A 사단의 개인 생활기록지 소실은 ‘의도적인 것’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논할 수조차 없다.

현재 이씨에게 남은 건 이명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씨는 귀마개 없이 사격 훈련을 해서 이명이 생겼다고 말하지만, A 사단은 모든 자료가 없다고 답할 뿐이다. <일요시사>는 A 사단과 B 병원에 연락해 사라진 자료에 대해 문의했다. B 병원은 “개인 정보라 답할 수 없다”고 답했다. 

A 사단에는 ▲개인 생활기록부가 낙뢰로 소실됐다는데, 해당 날짜에는 기상청 낙뢰 정보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 ▲수기 자료는 어떤 사유로 분실됐는지 ▲정보 분실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A 사단의 잘못으로 서류가 유실됐다. 이에 대한 어떤 대책이 있는지 ▲개인 자료 분실 관련 책임 소재는 어떻게 되는지에 관해 질문했다.

A 사단 관계자는 “자료는 낙뢰를 맞아서 사라졌다. 세부적인 원인은 제한된 상황이다. 너무 오래됐고, 웬만한 건 기한이 지나서 상세 원인이 제한됐다”며 “최대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확인했다. 책임 소재는 당시 문제 제기가 됐더라면 확인해서 조사했을 텐데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군병원·부대
서로 나몰라라

이씨는 “A 사단 감찰부로부터 같은 중대 다른 소대 인원에서도 의료기록이 없어져 중대장 확인서를 받아 간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런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라며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군의관이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명이 낫는다면 제일 좋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냥 군대에서 인정하고 보상을 해줬으면 좋겠다.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내팽개쳐진 것이다. 지금 군 생활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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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