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①그들은 왜 어떻게 묻혔나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23 17:00:17
  • 호수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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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맡겼는데 그냥 버려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34건의 서류가 남았다. ‘순직’ 처리를 기다리는 사망한 군인들의 기록이다. 사연 없는 죽음은 없다지만, 군에서 죽은 군인의 명예회복은 어찌 이리도 힘들까? 국방부는 이들의 죽음을 ‘개인의 일탈’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군 내부 문제’로 보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방부는 군의 특수한 사항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활동은 4달 뒤인 9월13일 종료된다. 진상규명위는 2007년 출범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말 활동을 종료한 뒤, 2018년 9월14일 새롭게 구성돼 활동을 시작했다. 9년 만이다.

군에서
죽으면…

진상규명위의 설립 이유는 1948년 국군이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군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으로, 5년간 접수된 1787건 중 1695건을 종결(지난달 26일 기준)했고 나머지는 처리 중이다.

진상규명위에 접수된 사건은 조사 후, 국방부가 사망 원인과 ‘직무 연관성’이 있는지를 따져 판단한다. 여기서 맹점은 한국은 징병제 국가로 군 복무는 행정법상 일반적 권력관계가 아닌 특별권력관계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7명의 진상규명위 위원은 사건을 검토해 순직 요소가 있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하면 국방부에 순직 심사를 요청한다. 

순직 심사 요청을 받은 국방부는 국방부 소속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순직 심사기관)를 통해 순직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는 위원장을 포함한 심사위원 9명을 회의 시마다 바꿔서 지정한다. 심사위원과 심사 내용은 모두 비공개다.


군인의 사망 이유가 ‘순직’으로 결정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군인사법 제54조의2(전사자등의 구분)에는 ‘군인이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게 되면 전사자·순직자·일반사망자·전상자·공상자 및 비전공상자로 구분한다’고 적시돼있다. 

여기서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질병 포함)이 해당된다. 단, 고의 또는 중과실로 사망하거나 위법 행위가 원인이 된 사망자는 일반 사망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중과실’이라는 것 자체가 애매해 순직을 결정짓는 기준이 모호한 실정이다.

진상규명위가 국방부에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사망 원인을 ‘순직’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기각‧보류된 건은 34건(지난달 초 기준, 재심사 진행 중)이다. 

순직 기각·보류 34건 전수 분석
가장 많은 원인은 ‘극단적 선택’

<일요시사>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과 진상규명위가 제공한 34건의 진상규명위 결정문·국방부 결정서(보류건을 제외한 22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군이 군인의 사망을 은폐·조작했거나 분명한 직무 연관성이 있는데도 순직 기각으로 결정 난 케이스를 발견했다.

34건은 기각 22개, 보류 12개로 나뉘며, 보류는 1차 기각으로 국방부에 재심사 요청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기각·보류된 34건 망인의 전체 군별 소속은 육군이 30명, 공군 1명, 해병 1명으로, 서류상 기록이 없는 경우도 2건이 존재했다. 계급은 일병이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상병 7명, 부사관 6명, 병장·위관 각각 4명, 이병 2명이었다. 간부 계급은 하사가 4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위‧중사 각각 2명, 중위 1명, 대위(진) 1명이었다.


사망 원인은 17건이 극단적 선택, 15건이 사고, 병사 1건, 폭행 1건이었다. 극단적 선택은 총기 사망 9건, 음독 4건, 목맴 2건, 기타 2건으로 분류됐다. 

보류는 재심사 기회가 있어 기각 사유를 알 수 없다. 보류를 제외한 기각 사유 22건은 음주 10건, 무장탈영 및 탈영 3건, 총기 수칙 위반 2건, 업무 스트레스 인정 불가 2건, 위법 행위 2건, 개인 과실 사고 2건, 전역 후 사망 1건이었다. 가장 크게 눈여겨볼 점은 기각 사유로 국방부는 음주 후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사고를 당한 경우 순직 심사에 결정적 장애요소로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경우 대부분 군이 관리 소홀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고, 음주의 경우는 대부분 휴가나 퇴근 중 발생했으며 영내 음주는 선임이 권유 아래 이뤄졌다. 

다양한
사망 원인

앞서 2017년 2월22일, 국방부는 “입대 전에 앓고 있던 정신질환이 군 복무 중 부대적 원인으로 악화돼 자해 사망한 경우에도 순직 처리할 수 있다. 직무 연관성만 인정되면 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말 ‘직무 연관성’만 있으면 되는 것일까? 1960년대 사망한 망인은 장교로 근무 중 중대원의 탈영사고 및 휴가 미귀가, 안전사고와 인사이동 등 지휘 통솔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후 소속대 근처 영외서 원인미상의 총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해당 매화장 보고서에는 ‘상기명 장교는 소속대 전입 후 현지 탈영사고 및 휴가 미귀, 안전사고와 인사이동으로 지휘 통솔에 대한 염증감과 부대 근무 의욕을 다소 상실함에 극단적 선택을 함’이라고 기록돼있다. 망인의 동료 역시 “당시 중대원이 나이가 많아 고참이나 지휘관 말을 듣지 않아 아주 골치 아팠을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명확하게 직무 연관성으로 사망한 경우지만, 중앙전공사상위원회의 결정은 달랐다. “망인은 12년 이상 복무한 장교로 중대원의 휴가 미귀 등의 사고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공무와 인과관계가 없어 순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사망 당시 헌병대가 작성한 매화장 보고서도,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도 모두 순직 심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장교는 순직 심사를 사병보다 까다롭게 한다. 그렇다면 사병은 어떨까? 1971년 사망한 망인은 해안 경계 근무 후 복귀하던 중 상병을 적으로 오인해 총을 발사해, 상병이 현장서 사망했다. 망인은 50분 후 복부에 총을 발사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망인과 상병의 원한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고, 망인은 상병을 괴한으로 오인 착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이에 대해 “죄책감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 가능성이 있지만, 당시 망인이 ‘조정간 자동으로 총기를 격발’했다. 조준사격이 의심되고, 고의적인 측면도 추론 가능하다”고 밝혔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기각 중 극단적 선택 11건의 기각 사유를 100% ‘개인적 실책’으로 봤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아닌 평소 근무태도 역시 기각 사유 중 하나였다. 


공무 중
사망해도…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음주운전으로 정직 3개월과 형사처벌 처분받음 ▲평소 간부와 몰래 술을 마시는 등 근무태도가 불량했음 ▲선임에게 폭언과 협박을 받은 적 있지만 본인도 후임병을 폭행 및 가혹행위한 바 있음 ▲무장탈영 후 투항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공무와 인과관계 없음 ▲선임의 협박이 있었지만 위법 행위를 함 ▲장난으로 총기를 사람에게 겨눈 것은 경계 수칙 위반 등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진상규명위의 입장은 정반대로 11건을 모두 직무 연관성이 있는 죽음으로 봤다.

진상규명위는 ▲총기가 ‘잠금’이 아니라 ‘반자동’에 놓여진 것은 군이 총기 관리를 소홀한 것 ▲업무수행 과정 중 발생한 스트레스는 직무 연관성으로 직결됨 ▲오인 사격에 의한 극단적 선택은 죄책감 때문 ▲평소 징계대상자였던 망인에게 총기함 관리 등 위험한 임무를 부여한 군의 관리 소홀 ▲복무 중 행정보급관으로 당한 폭언과 협박이 극단적 선택의 주된 원인 ▲군 복무 중 소속부대의 부적절한 대응과 과실로 망인이 부대를 이탈 ▲최전방 경계근무 지역에 소재한 소속대의 열악한 근무환경 부적응 등이라며 부대 측에 책임을 돌렸다.

사고로 사망한 기각 11건(보류 4건 제외)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훈련 종료 후 음주 ▲영내서 개인적 음주행위는 중과실 해당 ▲휴가 전일 음주행위는 사적 행동 판단 ▲휴가 후 부대 복귀 중이었지만 음주한 뒤 발생한 열차사고는 개인 과실 ▲선임이 요구했지만 불법인 사냥 및 음주 ▲새벽시간의 낚시는 개인 과실 ▲군인이 만취해 귀대하는 것 자체를 불용인 ▲헌병대 관계자에게 폭행당한 뒤 탈영했지만, 헌병대 체포 하루 뒤 사망으로 인과관계 없음 등을 이유로 기각했다.


군과는 상관없는 개인적 일탈로 인한 죽음이라는 해석이다. 진상규명위 입장은 전부 정반대였다.

진상규명위 순직 요청 사유는 ▲당시 훈련이 없을 때 동기와 술 마시러 가는 일이 잦았고 음주 장소도 훈련장 인근 ▲음주는 중과실이 될 수 없음 ▲부대 안전조치 미흡과 병력관리 소홀로 사고 발생 ▲음주였지만 휴가 후 순리적 경로와 방법으로 근무지 복귀 중에 일어난 교통사고였기 때문에 순직 처리가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휴가·근무 중 사고 났는데도…
모호한 직무 연관성·중과실 기준

또 ▲복무 중 직무수행을 위해 목적지로 가던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 ▲공식적인 회식은 직무 연관성이 있고 ▲연못에 빠진 사고는 부대의 안전조치 미흡과 병력관리 소홀로 발생했다는 취지도 있었다.

보류의 경우 진상규명위의 의견만 있었는데, 극단적 선택 6명 중 4명은 군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었고, 나머지 2명은 관심병사였다. 

가혹행위 종류로는 ▲상습적인 구타 및 폭언 ▲부대 전입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서 내무생활이 미흡해 벌어진 가혹행위 ▲영창서 구금된 동안 인간으로 참기 어려운 폭행과 선임병의 업무 질책이었다.

진상규명위는 “군에서 겪은 가혹행위로 인해 군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겪었다. 결국 통제력을 잃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직무 연관성이 있어 순직 재심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관심병사였던 두 경우는 ‘군대 내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진상규명위는 “관심병사였는데 군에서 심적 부담감을 많이 줬다. 제대로 된 근무수칙에 대한 감독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류건 중 사고사에 대해서 진상규명위는 “밀집된 군 생활로 인한 전염성 질환이기 때문” “업무상 과실치사에 관한 것” “순리적 경로와 방법으로 부대에 복귀 중 발생한 교통(열차)사고”라며 순직 심사를 요청했다.

34건 중에는 군에서 망인의 사망 원인을 은폐하려 시도한 경우가 3건 있었고, 모두 망인의 사인이 잘못 기록돼있었다. 이는 유가족이 진상규명위에 망인의 사건 조작‧은폐 수사를 요청해 드러났다.

망인은 신병교육 후 탈영했고 1974년 수경사 헌병대에 체포됐다. 헌병대서 전신경련으로 쓰러진 뒤 응급수술을 받고 사망했다. 망인의 사망진단서에는 ‘외인사’라고 기재돼있지만, 국군수도통합병원장이 육군본부 부관감에게 보낸 전사망보고서에는 ‘병사’로 기록돼있었다.

당시 병상일지에는 “36세 수감자 환자는 점심 배식 대기 중 갑자기 쓰러졌다. 경막하혈종 급성 좌”라고 적혀 있다. 해당 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의과대학 교수는 “‘뇌경막하출혈’은 거의 두부에 직간접적인 충격에 의해 발생된다. 쓰러지기 일정 시간 전 두부 충격을 가한 물리력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망인은 지병이 전혀 없었고 탈영병으로 체포됐을 때도 건강했다. 또 진상규명위는 ▲망인이 졸도했거나 경막하 출혈이 발생했다는 기록과 진술이 없는 점 ▲사망 당시 망인의 얼굴과 몸 다수에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던 점 ▲사망 당시 군 관계자가 망인의 사망 원인을 간질에 의한 사망이라고 말한 점 등을 은폐 정황으로 봤다.

진상규명위는 “당시 망인의 담당 군의관이 ‘진료차트 및 사망진단서에 외인사로 진단했으나 누군가가 주도해 병사로 처리됐고, 서류도 위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고, 관련 담당자 역시 ‘이 서류는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두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군은 문책을 면탈할 목적으로 사고 경위의 사실관계를 조작·은폐했고 허위로 사고 경위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주먹구구
심사 기준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망인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군에서 은폐·조작한 상황보다 ‘개인적 중과실’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 순직이 인정되는 것일까? 2021년 2월에는 머리를 감는 도중 사망했던 군인이 순직으로 인정된 바 있고, 휴가 나갔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도 순직이 인정됐다. 한 순직 관련 전문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비공개고,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모른다. 심사위원이 누가 들어가는지에 따라 순직이 인정될 수도 있고,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류된 건에 대한 심사는 계속 진행 중이며 34건 중 보류 4건은 순직으로 인정됐다(지난 15일 기준).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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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