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⑦<르포> 순직 재심사 동행 취재

보류서 인정까지 10년 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취재 기간이 반년을 넘어가면서, 기각·보류된 ‘34건’ 중 일부가 재심사 절차를 밟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일요시사>는 한 유가족의 협조를 구해 재심사 당일의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아들을 위해 10년을 기다린 아버지의 사연. 그 세월 곳곳에는 유가족들의 고통과 순직제도의 모순이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지난 3월10일, 정재수씨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시간은 넉넉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쫓긴 탓이다. 옷장에서 오래돼보이는 밤색 정장을 꺼내 들었다. 잘 다려진 옷 아래로 아들 고 정동진 상병의 사진이 보였다. 사진 앞에 위패와 조화, 향과 성냥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죽은 사람 사진을 밖에다 빼놓으면 안 된다고 해서…. 옷장 열어볼 때마다 한 번씩 보는 거죠.” 

옷장 속
아들 사진

정씨는 멋쩍은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정 상병의 사진이 놓인 옷장은 정씨의 침대 머리맡에 붙어있었다. 침대 발치 서랍장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약봉지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몇 해 전부터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처방받은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나날의 반복.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불면증이 사라질 리도 만무했다. 

‘살아 돌아올 수 없다면 어떻게 이것 하나만이라도….’ 지난 10여년간 정씨의 유일한 소원은 정 상병의 순직 인정이었다. 통 이루지 못했던 소원은 어느샌가 마음의 병으로 변했다.


이날은 정 상병의 순직 재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2012년 여름 사망한 정 상병의 순직 인정을 위해, 그동안 정씨는 보훈청·법원·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등을 가리지 않고 찾아갔다. 진상규명위의 순직 인정 권고를 받았음에도,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정 상병 사례를 한 차례 ‘보류’로 판정했다. 

정씨는 이번에 직접 국방부를 찾아 심사위원들을 설득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심사 과정서 유족의 방문 진술은 선택사항이다. 저번엔 두방망이질 치는 마음에 서류만 보내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던 그였다. 정씨는 그때 부족했던 ‘한끝’이 자신의 호소는 아니었을지,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고 했다.

“정말 착한 아들이었어요. 저한테도 잘하고, 동생이랑도 잘 놀아주고….” 

정씨는 잠시 앨범을 펼쳤다. 정 상병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도 여럿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어엿한 성인이 된 모습까지. 시종일관 웃고 있던 ‘착한 아들’의 사진 일대기는 20대 초반에서 영영 멈춰버렸다. 

정오를 겨우 넘긴 시각, 정씨는 문밖을 나섰다. 국방부와 약속한 시간은 오후 세 시. 정씨 집이 있는 경기 남양주서 국방부가 위치한 서울 용산구까지는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했다. 그래도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

봄으로 접어든 날씨.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그를 반기는 듯했지만,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사실 오늘도 별로 예감이 좋진 않아요. 그래도 이번엔 직접 가니까 잘 이야기해봐야죠.” 


어느덧 고속도로에 오른 차 안에서, 정씨와 대화를 나눴다. 정 상병과 그의 사연도 더욱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순직 재심사 당일 자택서 국방부까지 동행
헌병대 사실 왜곡 그대로 인용…재심사 요구

정 상병은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중이던 2012년 7월24일, 집에서 고열·마비 증세를 보였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 부검 결과 정 상병이 평소 복용하던 경구용 항우울제를 스스로 다량 복용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군 헌병대는 죽음의 원인을 모두 정 상병에게 떠넘겼다. 정 상병이 입대 전부터 우울증과 대인기피 증세를 보였고, 이 때문에 복무 부적응을 겪었다는 것. 거기에 부모·이복형제와의 갈등 등 개인사가 겹친 게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군은 정 상병의 가족관계부터 학교 생활기록부까지 이잡듯 뒤졌다. 정 상병 삶에 남았던 각각의 특이점들은 군에 의해 연결되고, 재구성됐다. 

정씨는 군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정씨 설명에 따르면 정 상병은 입대 전까지 정신질환 관련 약을 복용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신병교육대서부터 복무 부적응을 겪으며 정신질환이 발병했고, 자대 배치 이후 읍대장 및 선임병의 질책으로 상태가 악화됐다. 

군이 문제시했던 가족관계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정 상병과 부모, 이복형제 사이에 갈등은 없었다.

정씨는 “(정 상병이) 큰형과 나이 차가 많이 났는데, 서로 정말 돈독했다. 형이 (정 상병을)많이 아꼈다”며 “둘은 그냥 우애 좋은 형제였을 뿐인데, 이복형제면 무조건 서로 미워한다고 생각하나? 이복형제가 있으면 불우한 거냐”고 반문했다.

정 상병은 군에서 작성한 설문지 속 ‘우리 가족은?’이라는 질문 옆에 “가난하지만 화목하다”고 적었다.

진상규명위는 2021년 10월 나온 결정문을 통해 정씨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판단했다. 결정문에는 정 상병이 입대 직후부터 보인 복무 부적응 증상이나 읍대장·선임병이 가한 질책 내용 등이 자세히 기술돼있다. 기록에 따르면 정 상병은 약 복용 전날에도 읍대장에게 심한 질책을 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진상규명위는 결정문에 “군 입대일 이전 건강보험요양급여 등에서 정신과 진료 이력을 확인할 수 없다”며 “망인은 신교대 입소 후 대인기피증 증세를 호소했고, 생활관서 잠을 잘 수 없어 교관연구실서 취침했다. 군 입대로 상당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었고 대인관계에 급격한 어려움이 발생한 것”이라고 적었다.

소속 부대
관리 소홀


이어 “망인은 입대 이후 정신질환이 발현됐고, 자대 전입 후 대인기피증을 겪으며 업무 처리를 하지 못해 받은 스트레스와 질책으로 자해를 시도하는 등 정신질환이 악화돼 자해 사망에 이르렀다”면서 “망인의 자해 사망은 읍대장 및 선임병의 질책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진상규명위는 소속 부대의 관리 소홀도 문제 삼았다. 정 상병은 자대 배치 이후 꾸준히 군 복무에 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의가사 전역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위 조사에 따르면 소속 부대는 정 상병의 상황을 알면서도 국군수도병원 진료 예약 이외에 별다른 관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진상규명위는 결정문서 “소속대의 대처와 관리는 안이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정씨는 “전역 요청이 제때 받아들여졌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우울증 약이라도 한 번에 70봉지씩 주는 게 아니라, 부대서 하루하루 먹을 양만 끊어서 줬어도 괜찮았을 수 있다”며 “사건의 진상을 알아갈수록, 소속 부대가 관리를 너무 못해줬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고 토로했다.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진상규명위의 결정문을 보고도 보류 판정을 내렸다. 그 근거로는 이미 반박된 군 헌병대의 주장을 들었다. 이번이야말로 정 상병 순직이 인정될 기회라 여겼던 정씨는 좌절했다. 이미 모든 입증자료를 넘겨서 신청한 심사였다.


명예 회복
동분서주

재심사 때 보강자료랍시고 제출한 서류는 기존 주장을 방증할 친한 동기의 진술서 몇 장뿐이었다. 정씨의 ‘별로 좋지 않은 예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도 잘 안되면…차라리 저도 그냥 죽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참을 차창 밖만 바라보던 정씨는 이 말과 함께 오열하기 시작했다. 정 상병의 비극적 결말은 곧 정씨의 또 다른 비극의 전말이었다. 그는 정 상병이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과 이혼했다. 

“그게 모든 이유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그게 정말 큰 이유였던 건 사실입니다.”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그는 직장에 다니는 대신 정 상병의 명예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생전의 정 상병처럼, 정씨의 약 봉투도 점차 두꺼워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정 상병의 죽음에 대한 군의 입장은 10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았다.

재심이 있던 날로부터 약 3주 전, 정씨는 전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 상병의)엄마잖아요. 어쩌면 저보다도 더 간절히 순직이 되길 바랐을 거예요. 이 사람이 아들 죽고서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근데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사고로….” 

그는 이 소식을 담은 진정서를 국방부에 보냈다. 그에겐 정 상병의 순직 인정이 간절한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정씨는 국방부 종합민원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시종일관 굳어있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국방부 옆, 대통령실을 겨냥한 시위대의 구호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쿵쿵 울렸다. 경호원들은 카메라를 보고 다가와 “어떻게 왔냐”고 캐물었다. 심란한 마음을 달랠 길 없이, 정씨는 민원실 문을 열었다.

10년 넘도록…가정도 일상도 사라졌다 
뒤늦은 순직 인정…허탈한 한숨과 의문

아직 약속 시간은 30분 넘게 남아있었다. 시끄러운 바깥과 반대로, 민원실 내부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가끔 울리는 전화기 소리만 조그맣게 들렸다. 접수를 마친 정씨는 연신 물을 들이켰다. 얼마 뒤 국방부 관계자들이 들어와 정씨를 찾았다.

관계자들은 정씨를 차에 태워 청사 내부로 들어갔다. 

‘끝나면 연락 달라’는 문자 한 통을 정씨에게 보냈다. 그가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1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다 끝났다’는 정씨의 답신을 받았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끝난 탓에, 외려 당혹스러웠다. 

“앞에서 대기하다가 7분, 10분 정도 심사한 거 같아요. 위원장이 이것저것 물어보긴 하더라고요. 주변 위원들은 (제게)뭘 묻진 않았는데, 제 말을 수긍하는 것 같긴 했습니다.”

국방부는 정씨를 돌려보내기 전 “1~2주 뒤에 심사 결과를 통지해주겠다”고 안내했다. 이미 기다림에 익숙한 정씨의 표정은 초연해 보였다. 그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정씨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날로부터 약 3주 뒤였다. 정 상병은 사망 11주기를 불과 석 달 앞두고 결국 순직을 인정받았다. 정씨 손에 쥐어진 건 결정문 한 묶음과 ‘순직 인증서’ 복사본 몇 장뿐. 마냥 기쁘게 들리진 않는 목소리에 어색한 정적이 잠시 흘렀다. 정씨는 “왠지 모르게 허탈하다”고 입을 뗐다.

“조금만 더 빨리 잘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죠. 애 엄마가 이걸 봤으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근 10년을 노력했습니다. 그사이에 가정도 완전히 파괴되고. 좋다기보다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재심 과정서 ‘판’을 극적으로 뒤집은 증거란 없었다. 정씨조차도 왜 순직이 저번에는 ‘보류’됐고, 이번에는 ‘인정’됐는지 몰랐다. 어쩌면 1년 전에, 또 어쩌면 10년 전에 났어야 할 결정이 뒤늦게 바로잡아진 건 아닐지 의문이 들었다.

그랬다면 한순간에 아들을 잃은 황망함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괜한 죄스러움에 얼룩진 세월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왈칵 밀려드는 머릿속에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맙다”는 정씨의 말이 메아리쳤다. 

이제야
일상으로

정씨는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일자리도 다시 구했다. 지난 17일, 퇴근했다는 그와 간만에 안부를 나눴다. 이날 <일요시사>는 정씨에게 오는 9월 진상규명위 활동이 종료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정씨는 유가족 입장에서 진상규명위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제가 제일 감사드리는 곳은 진상규명위다. 거기서 조사를 잘 해줘서 제 아들이 그나마 순직을 인정받은 거죠. 엄청 도움이 된 단체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위원회가 없어지지 않는 게 (유가족들에게)좋을 것 같습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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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