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탐사기획> 나라가 버린 34용사의 죽음 ⑪‘망인의 입’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5.23 16:45:17
  • 호수 14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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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팔아먹었나요? 끝까지 책임져야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외국은 망인이 나라를 팔아먹지 않는 이상, 군에서 끝까지 책임집니다. 순직도 쉽고요. 한국은 순직에 왜 이렇게 예민한지…” <일요시사>는 지난 3월14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서 송기춘 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 국방부 순직 제도의 문제점과 앞으로 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유가족과 만나는 시간이 가장 많고, 그 시간에 대부분 맞춥니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관계자가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의 일정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실제로 그랬다. 송 위원장이 군에서 사망한 망인의 유가족을 만나는 일정은 빡빡했다. 그에게 있어서 유가족을 만나는 것은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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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이유는 단순했다. 유가족들이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로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인터뷰 일정조차 잡는 게 힘들었지만,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서 그 이유에 대해 십분 이해가 가능했다. 

송 위원장을 찾아오는 유가족은 대부분 국방부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자식이 군대서 죽었지만 ‘순직’으로 결정되지 않았고, 그 이후의 상황도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그들의 죽음은 ‘일반 사망’이나 ‘병사’ 등이다.

유가족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때로는 화도 낸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는 점이다. 송 위원장의 첫인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는 국방부가 먼저 유가족을 이렇게 대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군대서 사고가 날 수 있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죠. 그런데 자식이 군대서 죽으면 유족들은 자식이 사망했던 그 시기에 시간이 멈추게 됩니다. 그 뒤 세월은 흐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1970년대에 자식이 군대서 사망했습니다. 현재 그 분이 90대인데, 50년간 세월이 멈춰버린 것입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유가족과 망인의 죽음을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송 위원장은 2021년 6월10일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전주고와 서울대 법학과서 공부했으며 서울대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해 오랜 기간 법학 전문가로 활동했다. 이런 송 위원장이 군 사망사고에 남다른 철학을 가진 이유가 있다.

송 위원장이 군 입대 당시엔 공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서울대 법학 박사 정도면 군대를 면제받거나 장교로 입대했다. 그러나 송 위원장은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군대 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몸으로 직접 부딪쳤다. 아무래도 동기보다 나이가 많은 채로 입대했으니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

군은 기본적인 위계질서로 움직이는 조직인 만큼 그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모멸감마저 줘선 안 되는데, 군대 내에서는 이런 기본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 전문용어로 ‘따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에서 상사가 얼차려 행위를 시키는 것인데,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당했죠. 학자가 된 다음에는 군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시작한 부분이 가장 커요. 군대 관련 연구만 20년 넘게 했습니다.”

자식이 군에서 죽으면 ‘멈추는’ 유가족의 삶
9월이면 활동 종료…‘순직’ 문제과 개선은?

진상귀명위원장으로서 현재 순직 제도의 문제점도 짚었다.


우선 주목한 것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법 29조 제2항이다. 이 법은 ‘진상규명위는 진정 조사한 결과에 따라 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심사와 다르게 결정한 경우에는 국방부 장관에게 해당 진정에 대해 재심사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이 경우 국방부 장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송 위원장은 해당 내용 중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을 따라야 한다’ 부분을 지목했다. 이 조항이 있기 때문에 진상규명위는 치열하게 순직 심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가지 사안으로 한 시간 넘게 토론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지점서 발생한다. 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가 있지만, 국방부가 다시 심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건 법률 위반입니다. 국방부도 나름의 심사기준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요. 그 기준을 갖고 순직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우리 진상규명위는 군에서 독립된 독자적 기구로 조사합니다. 그러면 원칙적으로 진상규명위가 조사한 부분은 따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를 국방부가 재심사하는 방식은 적법 절차(개인의 권리보호를 위해 정해진 일련의 법적 절차)를 위반한 것이에요.”

이 같은 문제는 유가족이 국방부의 결정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가족 입장에선 국방부는 가해자다. 군이 사고가 날만한 상황을 방치했거나, 군이 직접 사고를 발생시킨 결과로 자녀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서 유가족은 현실적으로 망인의 순직 여부를 국방부가 결정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상규명위서 충분히 조사해 순직 재심사를 요청한 사안마저 ‘기각’되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양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게 기본이고, 그 누구도 ‘자신’의 재판관이 되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군은 순직 여부를 결정할 때 진상규명위 의견을 우선 배제했어요. 결국 국방부는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로 스스로 판단합니다.”

허술한 조사
허점 투성이

실제 유가족은 순직 여부를 떠나, 군 수사 결과를 불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 특성상 유가족은 사망사고의 자료나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다. 군에 자료를 요청하기 전에는 망인의 유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니 유가족은 국방부의 순직 판단에 대해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판단하는 것이냐’고 분개한다. 하지만 송 위원장은 이런 관점이야말로 ‘시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국방부와 관점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입장이 다르니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관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 계속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떤 시야 차이가 있는 걸까? 우선 국방부는 순직 여부를 결정할 때 망인의 위법행위를 조사하지만, 군 문화는 반영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으로 복무 기간 중 폭력을 행사했거나, 휴가 중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음주를 한 뒤 사고가 난 경우다. 


“순직은 명예성을 띠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순직 처리를 받으려면 요건에 부합해야 합니다. 특히 폭력은 군의 역학관계로 이해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어떤 군인이 평소에 폭력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면 맞아 죽을 때까지 참아야 순직이 되는 겁니까? 결국 본인이 방어하려고, 군기를 잡아서 폭력을 피하려고 폭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폭력성이라는 것이 ‘명예로운 죽음’을 판단하는 과정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폭행 등으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국방부의 병력 관리 소홀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국방부는 되려 이런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가장 많은 것이 염세 비관, 가정불화, 복무 부적응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헌병대가 수사를 하기 때문인데, 헌병대는 수사를 담당하는 기구입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범죄 혐의로 사건을 접근하죠. 그러니 가장 부담이 없는 게 이 세 가지입니다. 의무복무병은 ‘문제 없다’는 병무청 검사로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니 사고가 발생하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이는 <일요시사>가 군 순직 취재 과정서 여실히 드러났다. 다수의 유가족들은 순직 심사가 비공개인 것 자체를 비난했으며 수사 과정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심사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무조건
개인 탓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심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 자체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조심스러운 면인데, 물론 공개하면 심사위원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수는 있습니다. 반대로 각 위원에게 청탁이나 압력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순 없죠. 이렇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는 비공개 방식이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심사 결과에 불신을 갖는 점에 대해선 동의했다. 

“유가족들 사이에선 중앙전공사상 심사위원이 누가 선임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의원이 선임되더라도 결론이 같아야 합니다. 그게 기관의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으니 비판을 수용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국방부 순직 심사 방식이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라는 점도 짚었지만, 이 역시 재고할 부분이 존재한다. 순직 심사에서 유가족이 직접 진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좋은 취지긴 하나, ‘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서술해야 하는 비극에 처해진다. 

“현재 순직 심사는 아주 딱딱한 분위기서 진행됩니다. 좀 더 편한 분위기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그런 모양새를 갖춰 진술을 해야 유가족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가족이 ‘국가와 힘든 싸움을 했는데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국방부의 태도를 느껴야 해요. 그래야 유가족이 국방부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마음도 없어질 테니까요.”

최근 진행 중인 업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956년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1년에 3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국방부의 해당 년도 사망 자료엔 2986명이 기록돼있었는데, 이 자료는 정확하지 않았다. 진상규명위에 따로 접수된 사건을 종합해본 결과 3000명 이상이었다.

“군은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로 스스로를 판단”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이 중 3분의1은 일반 사망이나 변사로 처리돼있었다. 이들은 유행성출혈열(3급 감염병), 폐결핵, 결핵, 늑막염으로 사망했다. 이 경우가 진상규명위의 직권 조사로 순직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유공자나 순직이 인정되려면 유가족이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과거 사망사건은 대부분 유가족이 사망해 신청이 불가하다.

“국가유공자나 순직자, 그리고 유가족을 찾는 것은 국방부의 주요 사업입니다. 그런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유가족이 국가유공자나 순직 신청을 해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거나, 망인의 명예를 찾거나, 군에서 순직했다는 자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국방부는 ‘적극적 행정을 했다’지만 홍보만 하는 수준이죠. 방송에 광고 문구를 띄워서 연락달라고 하거나, 아는 사람 있으면 연락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걸 갖고 1년 실적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데, 아직도 순직이 돼야 할 사람이 많이 방치돼있지만 그 사실을 인지 못하죠. 진상규명위가 시작한 조사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을 때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진상규명위가 조사를 시작할 때 군이 협조적이지도 않다. 송 위원장은 이 부분을 어려움으로 느낀다기보단, 군이라는 특성에서 오는 문제가 있다고 해석했다.

진상규명위는 조사에 강제성을 갖고 있다. 사건 조사 시 동행명령까지 할 수 있는데, 실상 이런 기능은 사용하기 어렵다. 자발적 협조를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현역에 있는 분들은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중요한 증언이 꼭 필요한데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술을 거짓말로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군대도 결국 사람이 만든 조직이다. 어떤 일정한 목적을 갖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른 조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강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송 위원장은 ‘인권’이 보장돼야 강한 부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을 기초에
두고 행동해야”

“이제는 군이 인권을 기초에 두고 행동해야 합니다. 현재 군대 복무 기간이 18개월인데, 군대에 가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여깁니다. 이제는 민주주의사회를 배울 수 있는 군대로 변해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군은 임무 성격상 사람이 죽을 수 있죠. 그래도 그 죽음이 억울하면 안 되는 겁니다.”

“그 억울함 이면엔 ‘직무 연관성’을 따집니다. 진상규명위는 그 억울함이 해결되도록 노력하지만, 9월이면 진상규명위 활동이 종료인데, 국방부나 국민권익위원회가 일임하면 유가족이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되니 마음이 안 좋습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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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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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