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떨어지는 박정훈-류삼영 평행이론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0.10 15:53:51
  • 호수 14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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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보고 저리 봐도 닮은 꼴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국가·민생의 보안을 책임지는 군대와 경찰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시작은 경찰부터였다. 류삼영 전 총경이 겪었던 일이고, 이제 사건의 흐름은 군인인 박정훈 전 대령이 이어받았다. 두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다르지만 ‘흐름’은 똑같다. 게다가 류 전 총경과 박 전 대령이 조직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까지도 동일하다.

류삼영 전 총경이 입을 열었다. 박정훈 전 대령에 관해서다. 류 전 총경은 지난 8월13일 자신의 SNS서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을 두고 박 전 대령을 옹호했다. 류 전 총경은 “정의를 위해, 피해 장병을 위해, 해병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행동하는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고 운을 띄웠다.

2022년
2023년

류 전 총경은 지난해 경찰 내부서 겪었던 일과, 박 전 대령이 현재 겪고 있는 일이 너무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류 전 총경은 “사건의 진행이 경찰국 개설 반대를 논의한 경찰서장 회의와 너무 닮아 깜짝 놀랐다. 경찰서장 회의 진행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한 권력집단의 관여라고 단정 짓진 않았다. 그는 “물론 같은 곳이 관여했다고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 이길 수 없는 권력의 힘이 정의를 눌러버려 바른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 너무 흡사하다”고 강조했다.

류 전 총경은 ▲경찰청장이 경찰서장 회의를 잘 마친 후 식사라도 하면서 내용을 전달하라고 하는 등 경찰서장 회의를 사실상 용인해놓고, 그렇게 진행된 경찰서장 회의를 회의 도중 갑자기 중단하라며 지시 사항 불이행이라고 징계한 것 ▲국방부 장관이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결재 후 수고했다고 격려한 후에 경찰에 이첩했다는 이유로 집단항명으로 수사한 것을 비슷한 점으로 들었다.


류 전 총경과 박 전 대령이 겪은 사건은 얼마나 흡사한 것일까? 우선 군인과 경찰은 일반 공무원과 다르게 기본적인 안보관이 중요하다. 군인의 임수 상대는 적군이고, 경찰은 국민이다. 다만, 박 전 대령의 병과는 해병 군사경찰로, 군대 내 치안을 담당하며, 군 내 사건의 수사 등이 주요 업무다.

우선 류 전 총경이 겪은 사건은 지난해 7월26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안이 국무회의에 통과하면서 발생했다. 정부는 경찰국 신설의 목적에 대해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 및 국가경찰위원회 등에 대한 법률상 사무를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발해 전국 경찰서장 회의(총경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주요 보직서 배제되는 등 문책성 인사도 이뤄졌다. 

경찰청은 지난해 7월23일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난 뒤 류 전 총경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했다. 경찰청은 “모임 자체를 촉구하고 해산을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모임을 강행한 점을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복무규정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한 후 참석자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조치해나갈 것”이라고 참석자들에 대한 징계도 시사했다.

“사건 진행 데자뷰 보는 듯”
두 사례 모두 ‘윗선’ 개입 의혹

황정인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장은 경찰수사연수원 교무과 교구계장으로 임명됐다. 서울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윤석열정부서 주요한 수사 부서 중 하나다. 이지은 중앙경찰학교 운영지원과장은 전남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활실 팀장으로 임명됐다. 부산서도 총경 회의에 참석했던 4명 중 3명이 시도청 112 상황 팀장으로 발령 났다.

대기발령 조치가 된 것에 대해 류 전 총경은 “행안부 장관이 인사권을 가지면 안 되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류 전 총경이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에 반발하자,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것이다. 박 전 대령도 상황은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 7월19일 오전 9시10분 여름 폭우로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의 내성천 보문교 일대서 실종자 수색 중 해병대 소속 채수근 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사망한 채 발견됐다.

당시 상황은 물살이 강한 곳에서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고 수색을 시켰다. 현직 소방관인 채 일병 아버지는 중대장에게 “물살이 셌는데 구명조끼는 왜 안 입혔냐.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싸냐. 이거 살인 아닌가”하고 분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곧바로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 고 채수근 상병에게는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방향
시나리오

해병대 수사단은 유가족을 대상으로 1차 중간조사 결과를 설명했고, 박 전 대령은 포항과 예천을 오가며 수사를 지휘했다. 수사 결과를 지난 7월28일 유가족에게 설명하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령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조사 결과를 대면 보고했다. 결과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박상현 7여단장 등 7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북경찰청에 이관한다는 것이었다. 수사단은 지휘관 각각의 주의의무 소홀로 채 상병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또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군사법원법이 개정돼 군에서 일어난 사망사고 중 범죄가 의심되는 경우 민간 경찰이 수사하고 민간 법원서 재판하기로 돼있는 만큼 경찰에 이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 8월2일,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인계한 서류를 모두 회수했다. 이종섭 장관은 이 서류가 ‘항명 증거자료’라고 했다.

즉, 이 장관이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지만 해병대 수사단이 불복했다는 주장이다. 이 일로 박 전 대령은 류 전 총경이 보복성 대기발령으로 인사 조치를 당한 것처럼, 해병대 수사자료를 경찰에 이첩하자 박 전 대령이 항명했다고 말한 것이다.

특히 이 장관이 ‘지시사항을 불이행했다’고 말한 것과 류 전 총경이 주도한 회의에 참여한 50명에 대해 ‘지시 불이행’을 근거로 감찰에 착수한 것은, 사건이 흡사한 형태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건이 진행된 이후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해 7월25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전국경찰서장 회의를 두고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7명의 경찰 간부 출신 의원 중 이만희·윤재옥·김석기·이철규·김용판·서범수 의원은 이상민 장관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서로 다른 
내부 분위기

이들은 “신설되는 경찰국은 경찰의 지휘나 통제를 위한 조직이 아니다. 문재인정권의 청와대가 비공식적으로 직접 경찰을 지휘 통제하고 음습한 밀실서 총경급 이상 인사를 행해왔던 비정상적인 지휘체계를,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과 언론, 그리고 국회가 감시할 수 있는 투명한 행정으로 정상화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내부 분위기는 달랐다. 류 전 총경의 징계에 일선 경찰들은 즉각 반발했다. 울산경찰청 6개 경찰직협, 충남 경찰직협을 포함해 경기남부경찰청 33개소 공무원직장협의회 회장단은 성명서를 내고 “경찰국 신설에 관해 의견을 수렴하고자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추진한 류 총경에 대한 중징계 요구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경찰국 설치가 정당한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세미나 형식의 회의를 개최한 것인데 징계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전국경찰직협 소속 경찰들은 경찰청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며 류 전 총경의 중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시위에 참여한 박숭각 경기남부청 경찰직장협의회연합회 대표는 “공무원의 기본권은 특수한 환경을 고려해 상황에 맞게 자주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게 경제사회이사회와 시민정치위원회,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사항”이라며 “류 전 총경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여부로 징계 절차가 진행된다는 건 기본권 보장을 지나치게 협소하고 경직되게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박 전 대령도 비난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은 “박 전 대령이 군인인지 정치인인지 헷갈린다. 그래도 해병대 수사단장이면 상당히 주요 보직을 맡았던 사람인데, 본인이 처리한 결과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니까 갑자기 군인 신분으로서 언론에 나가 인터뷰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국민들에게 호소함으로써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이건 전형적으로 정치인들이 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모임 해산하라 했는데 강행한 점”
“경찰 이첩 지시 보류했는데 불복”

같은 당 신원식 의원은 “박 전 대령이 ‘외압’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부정적이고 일방적인 표현이다. 그의 여러 가지 수사 내용이 정상적이지 않아 이종섭 장관이 정상적인 수사 지휘로서 다시 조사하라고, 재검토하라고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를 거부한 채 군복을 입고 1인 시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유감스럽다. 삼류 정치인 하듯 정치쇼부터 시작한다는 건 군대 선배로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난했다.

류 전 총경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박 전 대령 역시 군 내부서 힘을 실어줬다. 지난달 1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강제 구인된 박 전 대령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해병대 사관 동기‧선후배들은 “30년 가까이 해병대에 몸담은 참군인에게 항명죄를 붙이더니, 강제구인까지 하는 것이 참담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자리엔 변호사, 해병대 사관 동기생 등이 동행했다. 

해병대 사관 81기 동기인 장현우씨는 “잘 싸우라고 응원하고 보내줬는데, 못 들어가게 하더라.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출입증을 받아서 영내로 들어오란 얘기를 하더니 결국 영장을 발부해 끌고 갔다”고 어이없어했다.

또 다른 동기는 “박 전 대령은 수사단장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한 것 아니냐? 정작 구속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죄 없는 군인이 끌려들어 간 상황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제2, 제3의 채 상병이 나오지 않도록. 제2, 제3의 박정훈이 나올 수 있도록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박 전 대령의 선배라고 밝힌 해병대 A씨는 “30년 가까이 해병대서 몸담은 사람을 저렇게밖에 대우를 못 해주나. 박 전 대령이 항명죄, 모욕죄로 강제 구인까지 된 상황이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마지막
공통점

류 전 총경과 박 전 대령의 공통점은 또 있다. 여러 가지 의견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내린 선택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령은 지난 8월18일 “본인의 억울함과 국방부의 수사 외압을 알리고 우리 해병대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공영방송에 출연했다”고 밝혔다. 류 전 총경은 경찰청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국민이 (경찰에)관심이 없으면 경찰은 망가진다. 경찰이 망가지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런 경찰을 격려하고, 감시해달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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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