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독박 씌울 민주당 꽃놀이패

양손에 쥐고 있는 9개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특검 정국의 포문을 열었다. 용산을 둘러싼 방패막은 얇기만 하다. 민주당은 각종 특검법과 함께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22대 국회 개원까지 한 달이 남았지만 벌써 압박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2대 총선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의석수를 포함해 175석을 지켜냈다. 범야권을 합하면 192석까지 늘어난다. 여당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한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다 포함해도 108석에 그쳤다.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여소야대 국면이 유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응답하라”

이번 총선은 정권 심판론의 압승이었다.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외침이 무색하게 국민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 정부·여당이 각종 특검에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이 끝난 이후 민주당은 여러 논평을 통해 “이번 총선이 국민 심판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국민의 심판은 이제야 시작됐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그야말로 ‘특검 열차’에 올라탄 듯 질주에 나섰다.


민주당이 첫 번째로 내민 카드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인 이른바 ‘채 상병 특검’이다.

지난해 7월 해병대 채모 상병이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도중 순직했는데, 이를 수사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사건 축소를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걸 골자로 한다. 해당 특검법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지난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민주당은 5월29일 21대 국회가 문을 닫기 전 빠르게 법안을 처리하겠단 방침이다.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이 분주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날 민주당 소속 21대 의원과 22대 당선인 약 50명이 채 상병 특검법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당 소속 116명 의원들도 서명서를 제출하면서 머릿수로 정부를 압박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민께서는 이번 총선으로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을 매섭게 심판하셨다”며 “그 심판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채 상병 사망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 장병의 억울한 죽음과 수사외압 의혹, 거기에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장관의 주호주대사 임명과 도피성 출국, 이후 25일 만에 사퇴까지, 국민께서는 대한민국의 상식이 무너지는 장면을 똑똑히 목도하셨다”며 국민의힘을 향해 “여야 합의로 특검법을 통과시키자”고 소리 높였다.

벼랑 끝 윤, 보이지 않는 탈출구
22대 국회 문턱서 치열한 기싸움


민주당 주장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독소조항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수사기관의 수사를 먼저 지켜봐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검은 전제 조건과 최소한의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윤 원내대표는 “특검법을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22대 국회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민주당이 특검을 발의한다면 소수당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날 민주당은 이태원참사 특별법도 재점화했다. 채 상병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 이를 매듭짓겠다는 것이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윤 대통령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던 만큼 두 안건은 21대 국회의 마지막 쟁점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의힘이 총선서 참패한 만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지난 2년 동안 9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던 윤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 여부가 ‘총선 민심 수요 여부’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검을 받아들인다면 정부·여당에 화살이, 반대한다면 민심이 들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채 상병 특검법·이태원참사 특별법 외에도 민주당은 전세 사기 특별법 등 각종 법안을 쏟아내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지난 18일에는 야당이 제2양곡관리법 개정안과 세월호 참사 지원특별법 등 5개의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하면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 클럽 뇌물 의혹 특검법을 담은 이른바 ‘쌍특검’은 민주당이 벼르던 법안인 만큼 재상정 여부가 주목된다. 쌍특검은 지난해 야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된 법안이다.

당시 국민의힘에서는 민주당의 행동을 두고 “총선을 겨냥한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절반이 넘는 국민이 쌍특검을 원했는데 윤 대통령의 손짓 하나로 법안이 폐기됐다”며 “민심을 거스른다는 것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 내부서 쌍특검을 22대 국회에 다시 올리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겠다고 한다”며 “추가로 드러난 김 여사의 의혹을 몽땅 집어넣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상치 않은
여당 반란표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민주당이 21대 국회를 거쳐 22대 국회까지 쥘 수 있는 법안은 9개에 달한다.

총선 참패로 민심을 확인한 국민의힘이 지난 국회처럼 쉽게 반대표를 던지지 못할 것이란 게 범야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몇몇 의원들이 채 상병 특검에 찬성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 성남분당갑서 당선된 국민의힘 안철수 당선인은 한 라디오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며 “본회의 표결 시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조경태 부산 사하을 당선인도 “우리 당이 민주당보다 먼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국민의힘 김경율 전 비상대책위원을 비롯한 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선인과 한지아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당선인도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의 결과가 정권 심판인 만큼 쏟아지는 특검법을 정부·여당이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몇몇 특검은 수사 진행에 따라 칼날이 용산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채상병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무죄가 나올 경우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같이 주장하며 “박정훈이라는 제복 군인의 명예를 그냥 대통령 권력으로 짓밟은 것”이라며 “젊은 세대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에 대해서도 “현재 수사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당연히 특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에 “민심을 경청하겠다”며 낮은 자세를 취했지만 특검법 수용 여부를 비롯한 야당과의 관계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여당이 총선서 참패했음에도 민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역풍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특검 정국을 예고한 민주당은 다른 한쪽서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는 중임제 개헌 논의를 띄우면서 용산을 압박하고 있다.

개헌 카드
만지작∼

총선 직후 개헌 논의를 띄운 건 범보수로 꼽히는 개혁신당이다. 개혁신당 천하람 비례대표 당선인은 개헌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개혁신당은 총선 공약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를 포함하는 헌법 개정을 발표한 바 있다.

민주당의 쇄빙선을 자처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검찰 독재 조기종식’을 강조하고 있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국회에 입성한 만큼 선명성을 유지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범보수인 개혁신당과 비례정당인 조국당과 달리 민주당은 탄핵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제1야당으로서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현 정권의 조기종식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는 우려에서다. 범야권을 등에 업은 민주당이 22대 국회 중반에 접어들 때 즈음 개헌을 주장할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총선 이전부터 개헌을 요구한 이들도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을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이다.

민 당선인은 지난달 31일 공약으로 ‘광주·전남 에너지 메가시티 추진’과 더불어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중앙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 당선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윤 대통령의 임기가 2027년 5월까지인데 이를 1년 단축해 2026년 지방선거와 조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민 당선인에 따르면 중임제는 2007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으로 제안했지만 무산됐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자동 폐기됐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 만큼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대표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정치의 실현과 국정의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며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다만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개헌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도 “윤 대통령이 임기를 단축하는 일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총선서 해남·진도·완도에 당선된 박 당선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윤 대통령이 5년 임기를 4년으로 단축하고 중임제 개헌을 한다는 의미서 ‘내 임기 1년을 포기하겠다’는 건 본인이 결정할 문제지만 국민에겐 ‘헌정 중단’으로 들릴 소지가 있다”며 “헌정 중단이라는 불행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탄핵 대신 개헌 띄운다?
법사위 뜨거운 쟁탈전

민주당 안팎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대통령 임기 단축과 관련해서는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개헌에 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권력구조 개편과 임기 단축 등의 합의를 마친 순차적인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인 100석 이상을 지켜낸 만큼 개헌이 논의 수준에 그칠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개헌과 대통령 탄핵은 재적 의원 과반수 발의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통과된다. 국회를 통과해도 국민투표 절차가 필요한 만큼 야권의 의석수만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회의 고삐를 꽉 쥐고 있는 민주당이 특검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다른 한쪽서 개헌으로 압박하는 것만으로도 용산의 힘을 뺄 수 있다. 이른바 ‘심리적 탄핵’에 처하게 된 정부가 스스로 레임덕을 자초할 것이란 주장이 앞다퉈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9일 앞둔 지난 1일 의료개혁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했지만 여론을 뒤집는 데 실패했다.

지난 16일에는 국무회의서 총선 패배에 대해 “더 낮은 자세로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지만 막상 국민에 대한사과를 비공개로 진행하면서 오히려 상황은 악화됐다. 여기에 대통령실 인사 과정에 혼선이 빚어지면서 그야말로 용산이 고립되는 상황에 처했다.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의 인적 쇄신 과정을 두고 “‘레임덕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구나’ 저는 그게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 자리를 사수하겠다며 벌써 포석을 깔고 있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잇따라 특검을 발의할 예정인 만큼 법사위원장의 자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엎치락
뒤치락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22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과 관련해 “법사위와 운영위는 이번에는 꼭 민주당이 갖는 게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21대 국회서 여당이 법적 절차나 입법 과정을 지연시키는 등 방해 공작을 펼쳐 국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는 “민주당이 앞에서는 점잖은 척 협치 운운하더니, 뒤로는 힘자랑하느냐”며 “여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발상이자, 입법 폭주를 위한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무소불위의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술 더 뜨는 조국혁신당

총선의 열기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데드덕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조국당 조국 대표는 지난 15일 SNS를 통해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놓고 대통령실과 검찰 내부서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수수 사건 등을 들여다보고 있는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질설이 제기되자 이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대표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한 번에 겨냥해 “데드덕이 될 운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뻔뻔한 방패 역할을 하고, 정적에 대해서는 더 무자비한 칼을 휘두를 사람을 찾고 있다”며 “국정운영 능력이 ‘0’에 가까운 윤 대통령의 관심은 이제 온통 자신과 배우자의 신변 안전뿐”이라고 지적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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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