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부리나케 떠난 이종섭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8 12:19:10
  • 호수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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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두려워 ‘줄행랑’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로 떠났다. ‘호주대사’란 명함을 들고서다. 이 전 장관의 줄행랑으로 한국과 호주가 발칵 뒤집혔다. 호주 언론은 두 나라의 관계가 바뀔 거란 전망까지 내놨다. 지난해 있었던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부터 시작해서 논란이 끝나지 않지만,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여전히 그를 감싸는 형국이다.

지난 10일 오후 국제 인천공항.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수사를 받아온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내정자 신분이었던 이 대사는 이날 오후 7시51분 호주 브리즈번행 대한항공 KE407편을 타고 출국했다.

아무도 모르게 
브리즈번으로

프리미엄 체크인 구역엔 이 대사의 출국 저지를 위해 모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과 취재진이 대기 중이었으나 이 대사의 출국 모습이 포착되진 않았다. 앞서 이 대사의 출국에 관해 공수처는 출국금지 해제와 관련해 추가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2일 <뉴스1>에 따르면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서 “이 대사 측에서 출국금지 이의신청을 제기한 후 법무부서 공수처 의견을 요청해 원칙적 입장을 전했으며 처음부터 이 대사가 출국하도록 방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1월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조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로 이 대사를 수사한 후 출국금지하자, 이 대사가 임명 이튿 날인 지난 5일 출국금지를 풀어 달라며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지난 8일, 출국금지심의위원회를 열어 그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한 것이다.

법무부는 별다른 조사 없이 출국금지가 여러 차례 연장돼온 점, 최근 출석 조사가 이뤄졌고 본인이 수사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핵심 피의자를 출국시킴으로써 수사 차질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주호주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이 대사의 인사말을 올리고 공식 부임을 알렸다. 이 대사는 인사말에서 “우리 대사관은 양국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포함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고, 국방·방산 협력 동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호주는 한국전쟁 당시 1만7000여명을 파병한 혈맹이자 자유, 민주주의, 법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인도-태평양 역내의 핵심 우방국이다. 우리 대사관은 공급망 안정과 핵심광물을 포함한 자원·에너지 등 경제안보 제고를 위해 호주와의 공조를 강화하고, 호주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호주 현지 교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현지 교민들 중 진보 성향 교민단체인 시드니촛불행동 등 교민 약 20명은 지난 13일 오후 호주 캔버라 주호주대한민국대사관 앞에 모여,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의 핵심인 이 대사가 호주대사로 부임한 데 대해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장관서 피의자로…그리고 대사 임명
각종 논란 뒤로 하고 도망치듯 출국

집회에 참석한 해병대 황모 예비역 중사는 “주요 핵심 피의자 신분인 이 대사가 개구멍으로 도망가듯 호주로 부임한 것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지 개탄스럽다. 해병의 명예, 국군 장병의 명예는 누가 지켜 주는 것인지 윤석열정부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석한 한 교민은 “보편적인 양심과 상식이 있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호주에 전 국방부 장관을 이런 식으로 보내는 건 아닌 거 같다. 호주 교민들의 자존심 문제로 상당한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호주서 가장 신뢰 받는 공영언론 <ABC>는 이 대사의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호주 국방부 담당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한국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에도 호주 입국’이다. 이 매체는 “한국의 공수처는 해병대의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이 대사가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며 “군인 사망 사건과 관련한 부패 수사에 연루된 전직 국방부 장관이 논란이 되는 대사 임명을 지속하기 위해 호주에 도착했다”고 일련의 과정을 소개했다. 


한국의 야당이 이 문제에 관해 어떻게 반발했는지도 자세히 다뤘다. <ABC>는 “한국 법무부는 이 대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해,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날 수 있도록 했다”면서 해당 논란이 ‘한-호주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매체는 “이런 일련의 이야기가 호주와 한국의 외교관계에 어려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지만, (호주의)외교통상부는 이 대사의 호주 도착을 환영했다”며 “호주는 한국과의 중요한 관계를 높이 평가하며, 이 대사 지명자와 함께 일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호주 외교통상부 대변인의 코멘트도 함께 전했다.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대통령실은 초지일관 “이 대사의 임명 철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반복 답변을 내고 있다. YTN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 대사가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러 호주에 갔고, 당장 내일이라도 공수처가 부르면 귀국해 조사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 달 공관장 회의 때 귀국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출국금지
수사 기밀?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를 공수처와 더불어민주당,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결탁한 ‘정치공작’으로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9월, 공수처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됐다. 석 달 뒤인 12월, 그는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호주와 안보 협력, 방산 수출에 역할을 한 공로로 호주 대사로 내정돼 주재국 동의를 받아 ‘아그레망(타국서 파견한 외교사절의 장을 주재국이 승인하는 것)’ 등 임명 절차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점, 이 대사를 한 번도 소환 요청하지 않은 공수처가 출국금지 조치를 했고, 이후 한 달씩, 두 차례 더 연장했다. 출국금지한 피고발인을 소환 시도도 안 하고 계속 조치를 연장하는 건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다.

또 출국금지는 수사기밀이라 정부 당국자도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인데, 총선을 앞둔 야당은 정부가 이 대사를 호주로 도주시킨 것으로 여론몰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 당국자도 알지 못한 출국금지 사실을 친야 성향의 일부 언론이 확인해 먼저 보도한 것도 세 축이 결탁했다는 걸 보여 주는 방증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는 이 대사를 총선 이후에 임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2월 말 기존 대사가 정년퇴직한 상황서 안보협력이 중요한 대사직을 장기간 비워둘 수 없고, 또 호주 정부의 아그레망이 나온 대사를 바로 임명하지 않고 부임을 늦추는 건 중대한 외교적 결례라고 반박했다.

여권에서는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나아가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제기됐다. 당시 이 장관과 대통령실의 통화 시간 같은,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을 야당과 특정 언론에 흘렸다는 주장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YTN에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주장하면서 늘 내세웠던 논리가 아니었냐며, 이것이 바로 공언 유착”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이 대사 임명 논란에 대해 “민주당은 선거에 악용하려고 도피했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도주라는 게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도피 프레임으로 자꾸 이야기하는데, 이 대사는 언제든 출석 요구를 하면 출석해서 조사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사본 들고…
사실상 도주

그는 “해외공관장이 수사기관 조사를 안 받고 버티거나 도피한 사례가 없지 않느냐”며 “근무지만 해외지, 공직자가 도주·도피가 되는 상황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대사 수사를 진행해온 공수처에 대해선 “조사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출국금지하고, 조사도 안 하고 출국금지 연장을 해왔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당내 일각서 ‘이 대사의 임명 철회’ 요구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두고선 “개인적 의견이지, 공론화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4일 이 대사 임명 경위를 살펴보기 위한 전체회의 소집을 국민의힘이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입장문을 통해 “오늘 긴급 외통위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했지만, 국민의힘이 선거운동을 이유로 거부해 회의가 열리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병대원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중대 범죄 피의자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임명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고 외교적 망신이자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우방국인 호주와 외교 문제로 비화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국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이 대사 관련 특검을 수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 대사 또한 사퇴하고 즉시 귀국해 수사에 협조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민주당은 출국금지돼있는 이 대사가 호주로 출국한 과정 전반을 밝히는 목적의 특별검사 도입 법안을 당론 발의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외통위 회의 소집 요구에 대해 총선용 정치 공세라고 비판했다.

외통위 여당 간사인 태영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해서든 정치 공세의 장을 만들어 악용하겠다는 마음으로 상임위 개최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외교적 망신 초래
한-호 관계 걸림돌

태 의원은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기에 공천이 있고 개별 의원들은 지역 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상임위 개최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은 기본 상식”이라며 “민주당은 자당 의원들이 경선 패배로 허탈한 심정을 못 이겨 상임위 참석이 불가능해지자 슬그머니 단독 상임위 개최를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수처 수사가 더뎌서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인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자칫 민주당의 ‘신종 인사 훼방 수법’이 양산될 우려도 없지 않다. 법에 따라 차분히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강조했다.

이 대사는 윤석열정부 1호 국방부 장관이었으며 육군사관학교(육사) 40기 출신이다. 당시 문재인정부 들어 비(菲)육사 출신 장성들이 주요 보직에 두루 기용되면서 일각서 일었던 ‘육사 홀대론’과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육사 40기 출신인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었던 시기에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 영웅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의 철거·이전을 추진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대사는 지난해 8월25일 “독립운동은 존중받아야 해서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라고 해 독립기념관으로 흉상을 옮길 계획임을 밝혔다.

이 대사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의 흉상)이 있어야 되느냐에서 시작됐다”고 말해 일제 독립 전 소련공산당 활동을 한 홍범도 장군을 겨냥했다. 관련 단체들은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반발했다. 

이 대사는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흉상 있는 자리에)한·미 동맹 공원을 만들어 백선엽·맥아더 장군 동산을 세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데, 독립운동가를 대체할 수 있냐”는 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질문에 “그분들도 독립운동에 대한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장소가 독립기념관이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에 그런 분들도 모시고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사는 “이분 중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도 있다.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단체는 격분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해 8월27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철거 추진에 대해 “반역사적 결정”이라며 당시 이 장관에게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부 장관 자리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분노했다.

이 회장은 이날 공개서한을 통해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왜 위인들의 흉상이 당신들에게 귀찮은 존재로 남아서 부담을 주어야만 하느냐”고 비판했다.

총선 악재 
전전긍긍

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서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그동안 육사가 추진해 온 흉상 철거 계획의 추진 경과를 보고받고, 이에 대한 전면 백지화를 촉구했다.

이날 송 의원은 “현재 육사 내에 흉상의 형태로 모셔진 독립 영웅들 모두는 지난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던 투사이자 오늘날 우리 국군의 뿌리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우리의 독립영웅가 폄훼에 앞장서는 육군사관학교는 지금 당장 역사 앞에 죄를 짓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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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