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는 해병대 육박전

장관 뒤에 누구? 윗선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방부가 점입가경이다.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이 아닌 제 식구 감싸기에 몰두하는 분위기다. 사건 관련자 중 장병을 제외한 고위 간부는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역시나 해명 없이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그를 수사하던 수사단장은 국방부의 심기를 거스른 듯 보직 해임되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 이달 초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밝힌 입장이다. 사퇴하겠다는 뜻으로 읽혔지만 그렇지 않았다. 말만 번지르르했던 셈이다. 상황은 역으로 뒤집혔다. 임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주장하던 수사단장이 수사 대상이 됐다. 국방부는 ‘항명’이라는 이유를 댔다.

현장 간부
요청 무시

‘채 상병 사건’은 지난달 20일 호우 실종자 수색 과정서 채수근 상병이 순직한 일을 말한다. 포병7대대 소속이던 그는 당시 경북 예천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됐다가 물살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 채 상병과 부대원들은 수색 첫날, 현장 간부 판단에 따라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수색에 임했다. 그러나 임사단장의 지시로 이튿날인 지난달 19일부터 물속으로 들어갔다.

또 효율적 수색이라는 핑계로 바둑판식 대형을 고집했다. 장병들은 서로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잘못된 지시로 인해 총 8명이 물에 휩쓸렸고 채 상병을 제외한 나머지는 스스로 나오거나 구조됐다.

반면 포병7대대장은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허리 아래쪽까지만 입수하고 과도하게 수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임 사단장의 비상식적 지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룩무늬 스카프(버프)를 착용해서 웃는 얼굴 표정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지시했다. 해병대가 눈에 띌 수 있도록 적색 티를 입으라고도 했다. 사건 전날인 지난달 18일 오후 9시54분에는 중대장이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복장 지침으로 위에는 우의를 입은 채 장화를 신은 차림으로 수색할 것을 전파했다.

이에 간부 1명이 “안전 재난 수칙에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물이 장화에 들어가면 보행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중대장은 “1사단 회의 분위기 전체가 그런 거였다. 건의하겠다” “물가에 가게 될 경우 전투화로 변경 요청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임 사단장은 물속에서 탐침봉만 들고 작업 중인 해병대원들의 사진 보도를 보고 “적극적인 홍보가 아주 좋다”고 했다. 장병들의 안전보단 성과가 우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단장이 다녀간 직후 포병11대대장은 포병대대장 회의를 주관하면서 ‘우리는 내일 허리까지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해당 회의에 참석했던 포병7대대장은 직후 휘하에 있는 중대장들을 소집해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장병들을 물속으로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한 간부가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 군화를 신겨야 한다”고 건의하자 포병7대대장은 “지금 분위기 모르냐. 정신 차려라. 지금 복장 통일을 하라고 (위에서)난리”라고 말했다.

요청은 묵살됐다. 다음날 오전 5시32분, 중대장은 복장은 장화에 우의를 지참하라고 최종 통보했다. 중대장의 건의에도 윗선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현재까지 임 사단장은 징계도 받지 않은 채 멀쩡하다. 대대장과 중대장 모두가 보직 해임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뒤집고 축소? 채 상병 사건 두고 이전투구 양상
이종섭 장관, 임성근 사단장 대놓고 감싸기, 왜?

국회 국방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실에 따르면 수사단은 임 사단장을 포함해 지휘부와 현장 지휘관 등 8명 모두 과실치사 혐의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수사단은 채 상병이 장화를 신지만 않았어도 혼자 물장구를 쳐 물속에서 빠져나왔을 가능성이 컸다고 결론 내렸다. 수사단은 또 임 사단장이 “작전의 주요 임무가 실종자 수색이라는 것을 공지하지 않아 장비를 준비하지 못하게 했고, 무리하게 수색을 요구하며 안전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없이 복장 통일과 철저한 브리핑만 지시했다”고 결론냈다.

수사단은 지난달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책임자 범위와 각각의 혐의 사실이 담긴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보고하고 결재까지 받았다. 이 자리에는 이 장관을 비롯해 대변인, 군사보좌관, 허태근 정책실장, 해병대 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현장에 법무관리관은 배석하지 않았다.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사령부 관계자에게 “보고서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제출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대령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다시 ‘내일 진행할 언론 브리핑 자료를 안보실에 제출하라’고 지시했고, 박 대령은 이날 오후 6시42분 해병대 공보실을 통해 이 자료를 안보실에 넘겼다.

해병대는 다음날 해당 내용을 국방부 기자단에 브리핑할 계획이었다. 상황은 반전됐다. 이 장관이 해병대 측에 수사 결과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국외 출장을 떠나면서 브리핑도 취소됐다. 이후 지난 1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수사 결과 자료에서 모든 혐의 사실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법무관리관실의 검토를 거쳐 구체적인 혐의 내용을 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그런데 검토 당시 법무관리관실은 수사 기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단이 법무관리관실에 수사 기록을 보낸 건 장관의 지시가 있고 나서인 지난달 31일 저녁이었다.

과실치사
결론 엎어

지난 1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과 대여섯 차례 통화했다. 박 대령의 변호인인 김경호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서 “원래 경찰에 자료를 넘기기로 한 건 2일 오전 9시30분이었고, 김 사령관한테 ‘이첩을 멈추라’는 지시를 받은 건 이날 오전 10시51분으로, 이미 경찰에 자료를 넘긴 뒤였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의 지시 이후 박 대령에게 전달되기까지 ‘시차’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또, 장관에게 보고한 다음날 박 대령이 유 법무관리관으로부터 “과실 있는 사람만 조사 보고서에 담으라”는 취지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 법무관리관에게 ‘과실 있는 사람이라는 게, (총책임자인 사단장이 아니라 채 상병이 소속된)대대장을 말하는 것이냐’라고 묻자, 유 법무관리관이 ‘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명시된 임 사단장 등의 혐의를 삭제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령이 “유가족에게도 설명했고 이미 장관에게도 보고된 내용인데 어떻게 빼냐”고 하자, 유 법무관리관은 “장관에게 먼저 보고를 했었냐”고 되물은 뒤 곧바로 전화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이 이미 보고를 받았다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모르고 수사 기록을 검토한 셈이다.

그 후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김 사령관에게 연락해 “그렇다면 장관이 복귀하면 다시 정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국방부는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신 차관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채 상병 사망사고와 관련한 문자를 보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특정인을 언급한 바 없다”며 정정보도 요청과 함께 법적 절차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보 좋다”
성과 집착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했다는 논란이 커지지만 제대로 된 해명이 아닌 해병대 수사 담당자와 언론에 법적 대응을 통해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군 장성 출신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잇단 비상식적 대응으로 논란을 키우는 꼴”이라며 “국방부가 정해져 있는 시행령과 원칙을 입맛대로 해석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까지 왔다.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했다.

수사단은 윗선의 지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병 1사단장 등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으로 지난 2일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국방부는 수사단의 판단에 태클을 걸고 경찰로부터 이첩 서류를 회수했다.

지난해 7월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면서 군인 사망 사건을 비롯해 성범죄, 입대 전 범죄 등 3대 사항에 대해서는 민간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수사 절차 훈령에 따라 민간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는 인지 경위, 범죄 사실과 함께 범죄 혐의도 적어야 한다. 이 과정서 국방부는 이첩 보고서 양식에 인지 경위, 범죄 사실과 함께 죄명 즉, 범죄 혐의도 적지 않았다. 군사경찰직무법 시행령은 수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군사경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가 혐의 삭제와 이첩 연기를 지시한 건 시행령의 위반을 넘어 수사방해라는 지적이다.

상황이 진실공방으로 치닫자 국방부는 지난 9일, 해병대 수사단이 더 이상 업무를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채 상병 사망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했다. 전날 해병대사령부 보직해임심의위원회 의결을 통해 수사단장직서 해임된 박 대령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방부 간부가 ‘사단장 혐의 빼라’ 압력 행사”
언론 브리핑 자료 대통령실 산하 안보실 이첩?

박 대령은 “수사 결과 (해병대 제1사단)사단장 등 혐의자 8명의 업무상 과실을 확인했다”면서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을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 보고했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국방부 장관 보고 이후 경찰에 사건 이첩 시까지 저는 그 누구로부터도 장관의 이첩 대기명령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면서 “다만 국방부 법무관리관 개인 의견과 차관의 문자만 전달받았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이날도 입장문을 통해 “중대한 군기 위반행위로 수사단장이 보직해임된 해병대 수사단이 사망사건과 이첩 업무 처리를 계속하기에는 제한사항이 있다”면서 “이를 고려해 국방부 장관은 채 상병 사망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하고 법령에 따라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계획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용원 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 검찰단은 경찰서 회수해 보관하고 있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자료 일체를 남김없이 곧바로 경찰로 다시 이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방부 검찰단이 즉시 경찰에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자료를 보내지 않는다든가, 수사자료 중 일부를 취사선택해 경찰에 보내면 사건의 축소·은폐에 관한 국민적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보호관은 “해병대 수사단장 등에 대한 해병대의 보직해임 절차 진행과 집단항명죄, 직권남용죄 및 비밀누설죄 등에 대한 수사는 즉각 보류돼야 한다”며 “수사의 결론이 확정되지 않은 시점서 군사법경찰 관계자의 보직을 해임하거나 직권남용죄 등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것은 독립성을 크게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가 무리하면서까지 극단적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을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도대체
누가 항명?

국방부 출신 한 전문가는 “일주일 사이에 공식 입장이 뒤바뀌고 사실관계도 옅어졌다”며 “모든 사안에 대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문건이 국가안보실에도 보고가 됐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사실이라면 상식적으로 왜 안보실이 문건을 가져가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러 주장은 있는 것 같은데 그 주장이 정확하지 않은 면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며 “관련 내용은 국방부서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서 계속 설명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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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