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특검’ 뚫을 묘수와 변수

범야권 뭉치면 답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상설특검법’을 쏘아 올리자 국민의힘이 꿈틀했다. 예상하지 못한 지점은 아니었지만 막상 코앞에 닥치니 막아낼 묘수가 없다. 범야권은 한발 물러선 채 여론의 흐름을 살피고 있다. 상설특검법이 새로운 변수가 될지 이목이 쏠린다.

채 상병 특검법을 놓고 여야가 연일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이 본회의서 특검법을 단독 의결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무한 굴레에 빠진 형국이다. 심지어 채 상병 순직 1주기를 앞두고도 거부권을 집어 들자 야당은 크게 반발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서 ‘상설특검법’이라는 새로운 의제가 툭 튀어나왔다.

최후 카드
만지작∼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 등 야당이 국회 본회의서 특검법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지 사흘 만이다. 앞서 대통령 측은 특검법에 대한 거부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왔던 만큼 거부권은 예상된 결과였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날 대통령실은 공지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의 국무회의서 의결된 ‘순직 해병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제(8일) 발표된 경찰 수사 결과로 실체적 진실과 책임 소재가 밝혀진 상황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순직 해병 특검법은 철회돼야 한다”며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해병의 안타까운 순직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악용하는 일도 더는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전에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서 정부 입장을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두 번째로 제시한 채 상병 특검법은 기존 특검법보다 독소 조항이 많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해당 특검법은 ▲기한 내 미 임명 시 임명 간주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공소 취소 권한 행사를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이 내용이 형사법 체계의 근간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과 기간 등이 확대된 점도 지적했다.

“위헌에 위헌을 더한 특검법은 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한 국무총리의 설명에도 두 번째 거부권이 불러온 후폭풍은 거셌다. 특히 채 상병 순직 1주기를 약 열흘 앞두고 있던 터라 민심이 더욱 크게 요동쳤다는 평도 나온다.

다시 국회로 돌아온 특검법은 재표결을 앞두고 있다. 그 시점을 놓고 여야가 눈치싸움에 돌입한 가운데 민주당 해병대원사망사건진상규명TF 단장인 박주민 의원이 ‘상설특검법’을 언급하면서 특검법을 둘러싼 변화의 기류가 포착됐다.

박 의원은 지난 12일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앞으로도)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텐데(박 의원께서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하셨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상설특검법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순직 1주기 앞두고 날아든 ‘거부권’
들끓는 야당 “상설특검법만이 방법”

박 의원은 “넓게 공유된 사안은 아니다”라면서도 “상설특검법은 현재 있는 법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특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에 있어 독립적 특검을 만들기 어렵다고 하지만 복합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붙이면 쓸 만한 특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거부권으로 인해 채 상병 특검법이 제자리만 맴도는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상설특검법을 꺼내 들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같은 라디오에 출연해 “상설특검법을 통해 이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며 “반드시 추진해서(채 상병 특검법과) 투트랙으로 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의 같은 당 박지원 의원도 한 라디오를 통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야당은 방법이 없다. 상설특검으로 가야 한다”며 “국회 몫 추천 위원은 제1당인 민주당이(모두)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상설특검법이 화두에 오른 이유는 헌법으로 명시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무력화하는 특수성 때문이다. 상설특검법은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으로 2014년 도입됐다. 이는 법무부 장관이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거나 국회가 요청할 경우 가동된다.

즉, 민주당이 현재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만큼 야당의 뜻대로 특검을 도입할 수 있다.

실제 상설특검법은 앞서 박근혜정부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 가동되기도 했다. 당시 앞장서서 상설특검법을 주장한 사람도 박 의원이었다.

상설특검법은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협호사협회 회장과 국회 추천 4명을 포함한 7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과반 의결로 특검 후보자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게 돼있다. 대통령은 그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해야 한다.

거부권 뚫을
강력한 창

쟁점은 국회 추천 몫인 4명이다. 국회 추천은 국회 제1·2 교섭단체가 맡는다. 즉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2명씩을 추천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특검 논의를 본격적으로 착수할 경우 국회 추천 4명 중 야당 몫을 늘리는 국회 규칙안 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이 개정안을 밀어붙인다면 사실상 국민의힘에서는 손을 쓸 방법이 없다.

국회 규칙은 본회의 의결로 제·개정할 수 있으며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와 법사위 위원장 모두 민주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거부권을 비껴갈 수 있는 상설특검법이 장점만 지닌 건 아니다. 박 의원은 짧은 활동 기간과 축소된 파견 검사 수를 단점으로 꼽았다.


우선 일반 특검법으로 특검을 꾸리면 활동 기간은 120일로 약 넉 달이 주어지지만 상설특검법은 이보다 열흘이 줄어든 110일간만 활동할 수 있다. 게다가 개별적인 특검법으로는 파견 검사를 20명까지 확보할 수 있지만 상설특검법은 고작 5명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박 의원은 “민주당이 발의하고 통과시키려고 했던 특검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이 방법(상설특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를 투트랙으로 갈지, 혹은 선후관계를 정할지에 대해 판단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특히 특검 추천 위원 4명을 모두 야당 몫으로 추천하는 개정안에 대해 헌법을 무시하고 법치를 파괴하는 삼권분립 부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과거 독일을 패망의 길로 몰고 간 나치식 일당 독재와 같다”며 “(민주당은)매일 이런 식으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꼼수 연구에만 혈안이 된 집단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같은 당 배준영 원내 수석부대표는 추천 위원 개정안을 놓고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4건 재판의 재판장을 검찰서 추천하면 받으시겠느냐? 한일 축구전을 하는데, 일본서만 추천한 주심을 인정하겠느냐”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지금 특검법이 정부에 의해 재의 요구가 되고 결국 부결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야당만 특검을 추천할 수 있다는 불공정한 위헌적 조항 때문”이라고 말했다.


눈치만 살살
물밑 탐색전

상설특검법을 놓고 야권서도 여러 갈래의 해석이 나왔다. 채 상병 특검법 통과에는 이견이 없으나 재표결을 앞둔 만큼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에서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상설특검법은)국회 규칙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에서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하고,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지 않는 지연수를 쓸 우려가 있다”며 “민주당 주도로 국회 규칙을 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선 “혁신당은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 부결 시 윤 대통령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윤석열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다”며 “(상설특검법에 대해)당 차원서 논의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다른 라디오 인터뷰서 “상설특검법 제도를 설계한 사람도 지금처럼 범야권이 190석에 달하는 상황서 특검이 활용되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실제로 가동되면 검찰청이 여러 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상설특검법에 대한 부분도 실제 가동되기 전 우리가 제도적으로 한 번 정비를 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미래도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새로운미래 전병헌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필요하다는 압도적인 국민의 여론이 있는데(윤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무력화시키니 상설특검법이 거론되는 상황”이라며 “이는 변형된 형태의 반격이다. 국민이 보기에 민주당이나 정부여당이나 둘 다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짚었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우선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하는 건 변함이 없고, 만일 그러지 못했을 때(상설특검법을) 또 다른 출구 전략으로 고민해볼 수 있다”며 “상설특검법은 수사 기간이나 규모에 한계가 있지만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방법으로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아직은…’ 한발 물러선 범야
재표결서 나올 이탈표 분수령

상설특검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권 관계자는 “상설특검법 말고는 돌파구가 없다. 현재 상황이 고착돼 한 발자국도 못 나아가는 느낌”이라며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이번 재표결서 200석 찬성표가 나오는 게 가장 깔끔한데 현재 상황으로서는 알 수 없다. 무기명 투표인 만큼 국민의힘 의원들이 소신껏 표를 던지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야권 의원실 관계자 역시 “(박주민 의원이)라디오서 스치듯 언급했는데도 국민의힘에서는 난리가 났다. 상설특검법이 정곡을 찔렀다는 뜻”이라며 “아직은 상황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의원들이 각자 나서서 찬반 의견을 주장하긴 어렵다. 민주당서도 아직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만큼 의원실서도 민심을 확인하고 올라탈지 말지 고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누구보다도 신중하게 여론 추이를 살피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취재진들을 만나 상설특검법에 대해 “지금 (채 상병)특검법 재의결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지금 검토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박 의원실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상설특검법은 원래 있던 법인 만큼 아이디어 차원서 이야기했을 뿐 당장 추진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박 의원은 세월호 특검법을 주도했던 만큼 상설특검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인터뷰 중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채 상병 특검법)재표결을 앞두고 있다. 이를 통과시키는 게 1순위고 ‘정 안 되면 이런 방법을 써서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 같다”고 밝혔다.

결국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표결 결과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92석을 확보한 야당은 8표 이상의 국민의힘 이탈표를 노리고 있다.

당초 민주당은 채 상병 순직 1주기인 지난 19일 이전에 본회의를 열고 재표결을 추진할 방침이었지만 각종 청문회 등으로 국회가 어수선해 25일로 미루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는 오는 23일 치러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직후다. 선거 과정서 발생한 파열음이 채 가시기 전 투표를 붙여 이탈표를 포함한 200석을 확보하겠단 방침이다. 다만 재표결 시기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실제 재표결 시기는 이보다 더 미뤄질 가능성이 제시된다.

아직은
열린 결말

윤 대통령은 채 상병 순직 1주기를 앞두고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야권에서는 민주당이 새로운 특검을 꺼내들 명분을 충족시켰다 해석이 나온다. 여권은 의회 폭주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이번 재표결서 부결로 막을 내린다면 민심의 풍향계가 어느 쪽을 향할지 알 수 없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곳곳에서는 “아직은 판단하긴 이르다”면서도 가능성을 꽉 닫아놓진 않았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각종 청문회와 정부여당의 대응이 ‘상설특검법 트리거’가 될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다른 변수' 아군인가 적군인가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 후보가 채 상병 특검법 정면 돌파를 예고했다.

한 후보가 주장하는 방식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특검법 대신 공정한 결정을 담보할 수 있는 제3자가 특검을 선정하는 걸 골자로 한다.

민주당은 채 상병 특검법 재추진을 앞두고 한 후보가 주장한 제3자 특검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상황에 따라 상설특검법과 제3자 특검법을 놓고 저울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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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