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필리핀 현지 취재 ‘마약왕’ 군림한 악질 3인방 추적

사람 죽이고 감옥서 VIP 대접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내 마약은 대부분 동남아서 유통된다. 최악의 마약 생산지대를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접경지역으로 한정됐던 영역은 캄보디아와 필리핀, 베트남 등지로까지 넓혀졌다. 1년에 발견되는 마약의 양만 최소 2t에 육박한다. 옥중 거래가 상당해 규제조차 쉽지 않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말부터 필리핀 현지 마약 사건과 범죄인 인도조약 문제, 유명 한국인 범죄자들의 최근 상황을 들여다봤다.

필리핀에는 여러 교도소가 있다. 그중 추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와 뉴빌리비드(NBP)가 악명 높다. 이곳에는 한 번쯤 들어봤을만한 유명인도 있다. 보이스피싱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직 경찰 ‘김미영(가명) 팀장’ 박모씨와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다. 이들은 한국에 송환되지 않으려 잇단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로 튄
그들 근황은?

마약왕 전세계로 알려진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박왕열은 이 기간에 마약왕 전세계로 거듭났다.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 킹덤’ 이모씨에게 수억원대의 마약을 공급하고, 이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 유명인에게까지 이어졌다. 박왕열은 필리핀 대법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해 8월 박왕열이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외곽인 문틴루파에 위치한 NBP 교도소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하고 인터뷰를 시도한 바 있다. 최근 다시 접촉을 시도했으나 직접 대면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복수의 재소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끝에 그가 여전히 마약을 유통하면서 VIP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박왕열이 외부로 마약을 유통하는 과정에는 조력자가 여럿 있었다.


그의 옥중 마약 유통 의혹은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4월12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씨 등 3명을 국내 중간판매책에게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유통책 중 한 명은 지난해 12월 NBP에서 박왕열을 만나 국내로 밀반입해 보관 중인 마약류를 판매키로 공모하고, 지난 1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특정한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엑스터시 100정, 필로폰 10g을 국내 중간판매책들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공급했다.

박왕열은 이들과 교도소 접견, 휴대폰 영상통화 등을 통해 범행을 공모했다. 이들은 현재 창원지법서 구속 상태로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전세계’ 박왕열 뉴빌리비드 수감 중 마약 거래
내부 조력자 10여명 “교도관도 관리 포기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을 암묵적으로 돕고 있는 조력자들은 교도관을 포함해 약 10명이다. 소규모로 움직이는 이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 필로폰과 코카인을 한국을 포함해 타국으로 밀수출한다.

NBP 한 재소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컨테이너가 있다. 그 컨테이너에 적게는 수십kg 많게는 수백kg의 필로폰과 코카인이 들어 있다. 박왕열은 주로 필로폰을 유통하지만 가리지 않고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왕열의 조력자들에 관해서는 한국 경찰도 수사 중이다. A씨 등 3명을 제외하더라도 아직 잡히지 않은 국내 공급·유통책이 있다는 설명이다. NBP 내 조력자들에 관해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 한국 경찰은 필리핀서 수사권이 없을뿐더러 현지 경찰이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한 현지 경찰 관계자는 “박왕열이 감옥 내에서 마약을 여전히 유통 중인 건 사실로 드러났다. 어디서 그런 마약들을 구하는지 미스터리”라며 “NBP 내부에 있는 타 검은 조직과 연결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박왕열을 송환시키지 않는 이상 국내 마약 유통 고리를 끊어도 계속 자라날 것”이라고 토로했다.

박왕열은 NBP 수감 초기까지만 해도 거물급이 아니었다. 조직폭력배 출신이 아니었으나 두 차례 탈옥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뛰어난 언변으로 마피아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진다. NBP는 수감자의 절반가량이 살인 및 신체적 상해 관련 범죄로 수감돼있다. 특히 연쇄살인범과 마약계 거물 등도 포함돼있다. 이들 대부분이 20년형 이상을 선고받은 재범 범죄자들이다.

어느새
거물급

2021년 11월 기준 수용된 인원은 약 3만명이다. 이상적 수용 인원이 7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과밀화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약 20명이 수감돼있다. 그러나 300명도 되지 않는 필리핀 법무부 산하 수정국 간수들이 낮 동안 출입문을 통제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처에 나서지 않는다.

NBP는 일반적인 감옥과는 다르게 재소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고립된 범죄자 마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독특한 구조로 NBP는 교도관들이 ‘컨트롤’하기 어려운 교도소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재소자들은 오히려 교도관들이 아닌 거대 조직들이 NBP를 관리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언급한 조직은 중국 흑사회, 필리핀 마피아 등이다. 흑사회는 말 그대로 중국 내에 존재하는 뒷세계를 총칭하는 말로서 특정 범죄조직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흑사회에는 폭력조직뿐만이 아니라 도둑, 매춘, 강도 등의 범죄도 포함된다. 중국에서는 단순하게 조폭이란 의미로 쓰인다.

삼합회는 중국과 홍콩, 마카오, 대만 인근서 활동하는 흑사회 부류의 특정 조직이고, 조폭이란 의미는 전체적으로 흑사회라고 불린다.

보이스피싱 ‘김미영 팀장’ 박모씨
비쿠탄 수용소서 수상한 동향 포착

필리핀 마피아는 타 마피아와는 달리 독특한 문화가 있다. 정치 가문 단위로 파벌이 갈리듯 범죄조직임과 동시에 각 가문의 사병부대이기도 하다. 바할라 나 갱(Bahala Na Gang)과 아카얏 바하이(Akyat Bahay)가 필리핀 내에서도 정치권과의 관계가 깊은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서 제대로 된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필리핀 마피아는 마약 유통뿐만 아니라 청부살인도 겸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직 필리핀 마피아였던 한 인물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필리핀 정치인들이 마피아를 사병화하거나 고용해 살해한 인물들은 사업가, 언론인 등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왕열이 위 세력들과 친분을 쌓았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NBP 내에서 마약 유통을 통해 많은 돈을 벌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한 재소자는 “박왕열의 앞니가 은으로 바뀌었다. 수백 수천만원을 벌지 못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NBP의 여러 가건물에서는 마약과 흉기는 물론 TV, 전기 프라이팬, 아이스크림 제조기 등 가전제품과 현금 뭉치, 자위 도구, 건설장비 등이 발견된다. 재소자들은 밀반입한 물품 사용을 숨기려 불법 구조물들을 지었고 영향력 있는 재소자들이 교도소 직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상선이 마피아?
흑사회 언급도

이 때문에 2019년에는 NBP 직원 353명이 직위 해제됐다. 최근에도 NBP 교도관들이 대거 직위가 해제되면서 여성 교도관 수십명이 채용됐다. 부족함 없이 살던 박왕열은 최근 새로운 건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코리안 데스크와 한국 법무부 관계자들이 NBP 측에 항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옥중 마약 유통을 막을 현실적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박왕열만큼 유명한 인물은 또 있다. 보이스피싱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미영 팀장’ 박씨다. 그는 현재 박왕열이 탈옥했던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수감돼있다. 박씨는 전직 경찰로 사이버 수사 담당자로도 근무했다. 그러나 수뢰 혐의로 2008년에 해임됐다.

백수가 된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하는 괴물이 됐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정보를 넘겨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당시 위치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처럼 국내에 송환되지 않으려는 인물은 또 있다.

아내 살해·유기 후 도주 강주천
탈옥해 마약 유통하다 다시 체포

지난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아직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강씨는 지난달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다시 체포됐다.

체포 당시 1kg의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 역시 박씨처럼 일부러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더 머무르기 위해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필리핀법상 외국인이 마약을 거래하면, 종신형에 처해져 국내법상 처벌이 어렵다.

강씨가 마약범으로 종신형을 받게 되면 박왕열이 있는 NBP로 가게 된다. 그가 NBP에 가게 된다면 제2의 박왕열이 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재소자들은 NBP서 마약을 유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한 재소자는 “하루에 1끼의 식사가 제공된다. 살아있는 생쥐를 슬라이스로 잘게 썰어서 던져준다”며 “이걸 먹지 않으면 굶어 죽어야 한다.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NBP서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내부 조직들의 말을 듣고 마약을 유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재소자는 “박왕열이 마약 유통을 꽤 잘하다 보니 돈도 그만큼 많이 번 것이다. 실제 박왕열 주변인들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부유해졌다”고 설명했다.

NBP 내에 있는 국제 범죄조직들은 한국 마약 시장을 고수익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정원은 일본 야쿠자와 중국 범죄조직이 한국 마약 밀반입·유통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 놓은
한국 경찰

2021년 국내서 적발한 마약류는 1295kg으로, 2020년 321kg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154kg의 마약을 적발했던 2017년과 비교하면 8배 이상 폭증했다. 통상 필로폰의 1회 투약량은 0.03g이다. 쉽게 말해 430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이 국내서 유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박왕열이 판매했던 필로폰은 당시 시가로 1g에 60만원 가까이 됐다. 한 달에 유통한 마약이 최소 30kg이라고 가정한다면 약 200억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것이다. 수수료를 뗀 마약 판매 수익률이 절반이라고 해도 박왕열의 손에 들어가는 자금은 한 달에 최소 50억원이 넘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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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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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