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결국 만세 부른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

무조건 항복…도망치듯 가업 놨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남양유업 오너 경영이 ‘불가리스’ 역풍으로 57년 만에 막을 내렸다. 새 주인은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이하 한앤코)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은 지난 4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했다. “살을 깎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남양을 만들 직원들을 믿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소비자 신뢰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남양유업은 홍원식 전 회장(51.68%) 부인인 이운경씨, 손자 홍승의씨 등 오너 일가 지분 53.08%를 한앤코에 양도했다고 지난달 27일 공시했다. 이들 3명이 보유한 보통주 총 37만8938주를 매각했다. 매각가는 3107억2916만원이다. 홍 전 회장 동생인 홍명식씨 지분 3208주(0.45%)만 남게 됐다. 

3100억에…
헐값 매각

남양유업은 “대금 지급 시점에 최대주주가 변경될 예정”이라며 “변경 후 최대주주는 한앤코 19호 유한회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 전 남양유업 회장은 지난달 28일 한앤코에 지분 매각을 발표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홍 전 회장은 이날 오후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오늘부터 남양유업 경영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남양유업 가족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며 “최근 일련의 사태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남양유업 가족분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에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고 운을 뗐다.  


홍 전 회장은 “사태 해결을 위한 책임감으로 회장직에서 내려왔으며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했다. 비상대책위원회의 지배구조 개선 요청에 대해 이사회 구성을 투명하게 교체하겠다는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안팎의 따가운 시선은 피할 수 없었다”고 그동안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기업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남양유업 직원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업는 현실이 최대주주로서의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안타까웠다”며 “한편으로는 제 노력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오로지 내부 임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회사의 가치를 올려 예전처럼 사랑받는 국민기업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며 “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고심끝에 저의 마지막 자존심인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불가리스 역풍’ 57년 만에 막 내린 오너 경영 
“경영정상화 한계” 일가 지분 사모펀드 매각

그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남양유업 가족분들과 함께한 지난 45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언젠가는 남양유업 가족분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라며 “앞으로 남양유업과 가족분들의 건강과 건승을 위해 조용히 응원하고 기원하도록 하겠다. 감사하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1964년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이 세운 남양유업은 1967년 국내 처음으로 조제분유인 ‘남양분유’ 출시를 계기로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우량아 선발대회’ 등 마케팅에 힘입어 ‘국민 분유’란 타이틀까지 달 정도였다.

이후 1991년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 출시에 이어 맛있는우유GT, 이오, 임페리얼, 아인슈타인, 드빈치 치즈 등 매년 스테디셀러 제품을 내놓으며 한때 국내 식품업체들이 꿈꿨던 매출 1조원 시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홍 전 회장은 1974년 기획실 부장으로 입사, 1977년 남양유업 이사에 오르며 경영에 참여했으며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부사장을 지냈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으며 2003년 회장에 올라 최근까지 남양유업을 이끌었다.

남양유업과 홍 전 회장은 악화된 여론을 되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매각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양유업은 2013년 본사 직원이 대리점 직원에게 폭언하며 물량 밀어내기를 했다가 적발돼 과징금 제재를 받았다. 당시 영업사원 욕설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불매운동이 확산됐다.

연이은 구설수
경영포기 선언

이후 남양유업은 국내 유업계 1위 자리를 내줬다. 불매운동 직전인 2012년 매출은 1조3650억원이었지만, 8년 만인 지난해 9489억원으로 30.5% 감소했다.

특히 2019년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인 황하나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돼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황씨는 2019년 7월 마약 투약 혐의로 수원지법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또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지난 1월 구속됐다.

지난해엔 홍보대행사까지 써서 경쟁사 매일유업 등을 향해 ‘우유에서 쇠맛이 난다’ ‘우유 생산 목장 반경 4㎞에 원전(원자력발전소)이 있다’는 등 비방 댓글을 달아 문제가 됐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사태로 1964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달 13일 발효유 ‘불가리스’ 코로나19 예방 효과 연구결과를 발표해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세종공장은 운영 정지 위기에 처했다. 

홍 전 회장은 지난달 4일 불가리스 파문으로 회장직에서 자진해서 내려왔다. 당시 그는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어 “최근 사태 수습을 하느라 (사퇴)결심을 하는데 까지 늦어진 점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살을 깎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나날을 만들어갈 우리 직원들을 다시 한 번 믿어주고 성원해주길 바란다”고 눈물의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과에도 돌아선 소비자 마음을 되찾지 못했다. 남양유업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구축해 지배구조 개선에 노력했다. 홍 전 회장 어머니인 지송죽 여사와 첫째 아들인 홍진석 전 이사는 등기이사에서 사임했지만 ‘오너 리스크’ 여파는 계속됐다.

파킹딜 가능성?
사실상 희박


이번 지분 매각으로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 일가는 지난 1964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남양유업 경영에서 사실상 물러나게 됐다.

다만 홍 전 회장의 동생 홍명식씨가 보유한 0.45%의 지분은 양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 

홍명식씨가 보유한 지분이 많지 않지만 오너 일가 중 유일하게 주주로서 권리를 유지했다. 이 같은 구조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홍 전 회장은 이사회 구성원으로, 동생 명식씨는 주주 자격으로 남양유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

업계는 홍 전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지 얼마 되지 않아 속전속결로 매각이 추진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동안의 잇단 악재와 논란 속에 굳건히 지켰던 지배력을 일순간 포기하는 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거래를 두고 ‘파킹딜’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 전 회장으로는 불가피하게 지분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지만 향후 재인수를 염두해뒀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거래 구조에 비춰봤을 때 이 같은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번 매각과 관련해 거래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홍원식 전 회장 일가가 지분을 매각한 이후 되사거나 할 수 있는 조건이 전혀 담기지 않은 클린세일(Clean-sale) 거래로 알고 있다”며 “만약 우선매수권 등의 조건이 담겨 있다면 주주 간 계약 공시에 관련 내용이 일부 언급됐어야 했지만 이 부분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갑질, 황하나…잇단 악재로 추락
구조조정 움직임에 직원들 불안

실제 한앤코가 한국타이어와 함께 2014년 미국 비스테온그룹으로부터 인수한 한온시스템 인수·합병(M&A)은 ‘한국타이어 측이 한온시스템의 매각을 추진할 경우 한앤코 측의 보유 지분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이 공시 내용에 언급돼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온시스템 매각이 결정됐지만 한국타이어는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도 “남양유업 딜은 여론 악화와 불매운동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업 펀더멘털이 극도로 훼손된 상황에서 벌어진 오너의 경영 포기와 구주 캐시아웃(Cash-Out)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고 설명했다.

홍 전 회장의 남양유업 이사회 존속 여부는 이 같은 논란을 불식할 수 있는 재료로 여겨진다. 홍 전 회장이 지분 매각 이후에도 이사회에 남을 경우 한앤코 측과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릴 수 있다.

한편 경영권 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남양유업 직원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매각으로 오너 중심의 제왕적 지배구조에서 벗어나게 된 점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사모펀드 특성상 고강도 경영 쇄신에 대한 가능성도 커지는 만큼 직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이날 남양유업은 기획마케팅·영업본부, 전산보안팀을 총괄하는 수석본부장 직제를 신설했다. 미래전략·경영지원본부는 대표이사 직속 체제로 유지했다.

신임 수석본부장은 김승언 전 기획마케팅본부장이 맡는다. 김 수석본부장은 생산전략본부장 겸 건강한사람들 대표를 역임했으며 기획본부장, 기획마케팅본부장을 거쳤다. 조직개편과 함께 상무보로 승진했다.

이는 지난 2월 정기인사 이후 3개월 만의 조직개편으로, 기존 대표이사가 관리하던 주력 부서를 분리해 독립성을 보장하고, 조직 문화를 쇄신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김 수석본부장이 남양에서 오래 근무한 ‘남양맨’인 만큼 한앤코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직원들 긴장
한앤코 견제?

조직개편까지 이뤄진 현재, 남양유업 사내에서는 조만간 구조조정이 실시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또 매각 주체인 한앤코와 남양유업 오너 일가 모두 고용 승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직원들의 불안감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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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