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약 투약’ 모델 엄상미가 말하지 못한 그날의 고백

“텔레그램 마약왕 ‘바티칸’ 한 명 더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강남 바닥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하나·바티칸 마약 사건’의 핵심 인물이 최근 출소했다. <맥심> 모델 출신인 엄상미씨다. 엄씨는 2021년 2월 <일요시사>와 처음 만났다. 당시 마약 투약 의혹을 부인하면서 기자를 속였다. 지난 4일, 그는 과거의 일을 후회한다며 강남의 한 카페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보자의 극단적 선택과 바티칸 킹덤 이모씨, 조선족 의혹 등 3년 전 사건의 내막에 대해 들어봤다.

엄상미씨는 ‘황하나·바티칸 킹덤 마약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마약 투약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달 출소했다. 사건은 3년 전인 2020년 12월 발생했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의 남편인 오모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처음 부인하다…
억울한 감옥살이?

엄씨는 이들과 같이 마약을 투약한 또 다른 <맥심> 모델 박모씨와 수도권 마약 공급 총책 바티칸 킹덤 이모씨(이하 바티칸), 현재는 중태에 빠진 남모씨와 친분을 이어왔다. 엄씨가 처음부터 마약의 늪에 빠진 건 아니었다. 지인인 남씨를 통해 바티칸을 알게 되면서 마약 투약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바티칸과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투약하는 횟수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엄씨는 “남씨는 나에게 바티칸이 자신의 사업 투자자이면서 돈이 상당히 많은 형님이라고 소개했다. 남씨와 바티칸이 먼저 권유한 적도 있고 호기심에 내가 먼저 마약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엄씨는 2020년 10월2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R 호텔에서 박씨와 남씨, 바티칸과 같이 있었다. 바티칸은 이날 필로폰을 투약했고, 엄씨는 케타민을, 남씨는 허브(대마의 일종)를 흡입했다.

같은 달 27일 이들은 S 호텔에 있었다. 엄씨는 바티칸에게 “케타민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날은 바티칸이 경찰에 체포된 날이기도 하다. 바티칸은 이날 케타민 1g을 14만원, MDMA 1정을 5만원에 구매했다. 대금은 추후 마약류를 판매한 후 지급하기로 하고, 동업자로부터 마약류가 보관된 장소(일명 ‘좌표’)를 텔레그램으로 전송받았다.

바티칸은 이날 오전 3시28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상호불상의 세탁소 1층에서 A씨가 숨겨둔 케타민 970g 및 MDMA 970정을 수거했다. 총 1억8430만원 상당하는 마약류를 매수한 것이다. 또 그는 같은 날 새벽 5시경 필로폰 불상량을 투약하기도 했다.

해당 장소에는 필로폰 0.2㎖이 들어 있는 1회용 주사기, 필로폰 5.02g이 들어있는 유리병, 케타민 0.3g이 들어 있는 비닐팩, 향정신성의약품인 합성대마(JWH-018 및 그 유사체) 1㎖이 들어 있는 카트리지 등이 있었다.

케타민은 환각 증상을 유발하는 해리성 마취제다. 정맥 또는 근육으로 투여되는 진통 효과가 있는 전신마취제의 일종으로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내서 케타민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나목 및 다목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있다.

따라서 케타민을 개인이 불법적으로 투약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남씨는 2020년 12월 중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중태에 빠졌다가 2021년 2월 깨어났으나 현재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달 엄씨는 기자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한 카페서 만났다. 엄씨는 당시 “마약 투약 혐의를 인정하느냐” “같이 투약한 인물이 여럿이고 어느 장소에서 투약한 이후 경찰 조사를 받았던 사실도 확인했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마약을 투약한 적도, 본 적도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엄씨의 마약 투약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양경승 부장판사)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엄씨에게 원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8월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약물중독 재활교육 프로그램 이수와 30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케타민 투약 혐의로 징역 8월 출소
“범죄 감추기 급급…반성하며 살 것”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거지서 발견된 케타민 및 투약 도구와 케타민 가루들이 묻어 있는 비닐봉지들을 보면 피고인이 상습적으로 케타민을 투약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음에도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이 법정에서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며 “범행 후의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엄씨를 법정 구속했다. 엄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씨는 “범죄를 감추기에 급급했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부끄럽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반성할 것”이라면서도 “일부 혐의는 인정할 수 없다. 정말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엄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같이 검찰에 송치됐던 박씨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박씨는 마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음에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검찰이 마약범의 진술에만 의존해 국내 형사법에 도입되지 않은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적용했다는 게 엄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마약 수사 과정에서 ‘축소 기소’나 ‘불기소’라는 조건을 걸고 마약범에게서 타 마약범을 불도록 하기도 한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플리바게닝은 검찰의 오랜 관행이다. 마약범을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허위 진술이 내재돼있을 가능성이 있어 간혹 마약범에게 억울한 혐의가 추가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과거 기자와의 연락에서 마약 혐의를 부인한 것과는 다르게 엄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엄씨와는 달리 박씨는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권하고 요구
끊지 못한 악연

‘황하나·바티칸 킹덤 마약 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일이 많았다. 바티칸이 남씨를 살해하려 한 일과 황씨 남편인 오모씨와 핵심 제보자의 극단적 선택 등이다. 바티칸이 남씨를 협박한 이유는 마약 때문이라고 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바티칸의 한 편지에도 해당 내용이 나와 있다. 바티칸은 A씨에게 “텔레그램에서 마약은 필로폰 1g에 76만원에 팔린다. 마약을 팔면서 현금 1억원과 사놓은 케타민 2kg 엑스터시 2000정을 남씨가 전부 훔쳐 갔다”고 했다.

엄씨는 “경기도에 위치한 한 주차장에서 바티칸이 화를 내면서 남씨를 죽여버리겠다고 한 적이 있다”며 “실제로 칼을 들고 찌르려 하자 지인이 말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위기감을 느낀 남씨는 당시 황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

남씨의 요청을 받아들인 황씨는 지인 B씨를 통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연변 말투를 쓰던 인물로 정체가 드러난 적 없는 신원미상의 인물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조선족 의혹’을 제기했지만 제대로 사실관계가 확인된 바 없다.

지난해에는 핵심 제보자 유모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씨의 친구이자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노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유씨는 과거 기자에게 “나도 올바르게 살진 않았지만 내 친구들이라도 돕고 싶다”며 “황하나 사건 해결 좀 해달라. 내 친구들 꼭 좀 살려달라”고 청했었다.

“내가 죽으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고 숨진 채 발견된 오씨에 이은 두 번째 죽음이었다.

오씨를 떠나보낸 유씨는 술에 빠져 살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서둘러 언론에 제보했어야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우울증으로 인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유씨의 극단적 선택 이후 사건을 취재하던 일부 기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려야 했다.


시간이 지나 유씨의 실수와 잘못도 드러나게 됐다. 그 또한 마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투약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씨의 집에 가본 지인은 “그 친구 집에 가면 가끔 테이블에 흰색 가루가 있었다”며 “마약 투약을 하지 말라고 말려도 몰래 투약하니 알 수가 없었다”며 “유씨가 소유하던 마약이 남씨가 바티칸으로부터 훔친 마약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마약을 통해 돈을 벌려 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바티칸에
“죽인다” 협박

경찰은 2021년 1월 텔레그램으로 마약류 판매 광고를 올려 전국적으로 마약류를 판매한 바티칸을 구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바티칸을 포함해 유통·판매 관계자 28명이 검거됐고 일부는 구속됐다.

이들은 2020년 4월12일부터 12월10일까지 필로폰 640g, 엑스터시 6364정, 케타민 3560g, LSD 39장, 합성 대마 280㎖, 대마 90g 등 49억원 상당의 마약류를 유통했다. 바티칸은 ‘텔레그램 마약왕’으로 불린 박왕열의 국내 총책이었다.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박왕열은 2016년 필리핀서 3명의 한국인을 살해했던 범죄자이기도 하다. 범죄 직후 필리핀 현지 경찰에 체포됐지만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했고, 2019년 말 자취를 감췄었다. 1년 뒤인 2020년 10월28일 필리핀 경찰에 검거돼 지난해 5월 필리핀 대법원에서 ‘다량 살인’ 혐의로 단기 57년4개월, 장기 60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필리핀 현지를 취재했던 <일요시사>는 박왕열이 마닐라 문틴루파에 있는 뉴빌리비드 교도소(NBP)에 수감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수감되기 직전까지 국내로 밀반입하거나 유통한 마약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매달 최대 100억원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복수의 NBP 관계자와 교민은 그가 옥중 마약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박왕열에 대한 국내 송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사정기관 관계자는 “형기를 다 마치지 않으면 보내줄 수 없다는 필리핀 당국의 입장이 확고해 국내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내다봤다.

바티칸과 박왕열이 알고 지낸 세월은 길지 않다. 엄씨도 “바티칸이 마약을 유통하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체육계 일을 준비하던 바티칸은 인터넷에 ‘스테로이드’를 검색하고 한 텔레그램 방에 접속해 박왕열을 알게 됐다”고 했다.

황하나 남편·핵심 제보자 극단 선택 이유는 ‘마약’
검사서 양성 모델 박씨 기소유예 ‘플리바게닝’ 논란

엄씨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한 바티칸은 박왕열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려 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마약 유통업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에 있는 ‘지게꾼’이나 인맥을 통해 널 간단하게 담그면 된다”는 박왕열의 협박을 이기지 못했다.

엄씨는 “박왕열이 실제 살인 전과가 있고 한국 유통책이 많은 만큼 주변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엄씨는 “텔레그램 닉네임인 ‘바티칸’을 쓰던 사람은 2명이다. 언론에 여러 번 언급된 인물 외 다른 사람도 지금은 감옥에 있다”고 주장했다.

황씨와 바티칸의 관계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바티칸을 사석에서 단 한 차례도 접촉한 바 없다. 경찰 관계자도 “사건을 수사하면서 둘이 마약 유통을 논의하거나 특정인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눈 정황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로가 누군지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마약 유통 ‘공동체’가 되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황씨가 바티칸을 통해 마약을 공급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황씨를 잘 아는 인사들은 그가 지금은 사라진 강남 클럽 버닝썬·아레나 출신 인물들에게 마약을 공급받아왔다고 전했다. 앞서 버닝썬·아레나 출신 인물 대부분은 마약 투약 및 탈세로 구속 기소됐다.

출소한 일부 인사는 과거처럼 강남권에서 클럽과 라운지 바를 운영하고 있다. 클럽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내부는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엄씨도 “클럽을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강남에는 지금도 많이 간다. 지인들을 통해 여전히 클럽과 라운지 바에서 마약 투약과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약파티

엄씨는 이달 초까지 바티칸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바티칸은 ‘옥중편지’를 통해 엄씨에게 “황하나 그 주변인, 감옥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리하라. 내 마지막 부탁”이라며 “잘됐으면 좋겠고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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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시태를 수사하는 검찰과 공수처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내란죄 적용 여부를 두고 법리 검토에 나섰으나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직권남용 미수도 문제다.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하다. 비상식적 지시와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는 전·현직 장관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이전부터 사건이 꼬이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공소장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의 그릇된 판단이 적나라하게 적시돼있다. 윤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다면 내란 동조 또는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지시를 듣기만 했다면 다르다. ‘미수’에 그치기에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언 거부 모르쇠로 <일요시사>가 입수한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이 전 장관에게 특정 언론사와 여론조사 업체 봉쇄 및 단전·단수를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이 내용은 빼놓고 진술했다. 단전·단수 지시 의혹에 대한 국회 질의에도 증언을 거부한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서 집무실로 들어온 이 전 장관에게 ‘24시경(자정에)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 단수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주는 등 계엄 선포 이후 조치사항을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포고령이 발령된 직후인 3일 밤 11시34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해 경찰의 조치 상황 등을 확인한 다음 3분 뒤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자정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JTBC·MBC, 여론조사 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인데 경찰청서 단전·단수 협조 요청이 오면 조치해줘라”라고 지시했다. 허 청장은 소방청 차장에게 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공소장 내용은 경찰이 확보한 이 전 장관의 진술과 대조적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본부장) 조사에서 조 청장과 허 청장에게 연이어 전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따로 지시를 내린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려 조 청장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은 조 청장이)다른 누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며 “아무 응답이 없어 조금 기분이 나빠서 대화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제가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했다. 또 “이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사건 사고 들어온 것이 있느냐? 때가 때인 만큼 국민 안전을 각별히 챙겨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사전에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상계엄에 관한 준비나 필요한 조치를 지시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취지의 경찰 질문에도 “전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이상민에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범죄 시도했는데 실패 미수범 처벌 불가?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만류에도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 국무위원의 상황 인식과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며 계엄을 강행했다. 이후 조 장관에게 ‘재외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켜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서를 건넸다. 윤 대통령 곁을 거의 내내 지켰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첫 증인으로 출석해 “최 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조태열 장관에게 건넨 문건 외에도 한덕수 총리와 이 전 장관 등에게도 쪽지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무위원 대다수는 윤 대통령이 최 대행과 조 장관에게 쪽지를 주는 걸 보지 못했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와 연결된 직권남용 혐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애를 먹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공소제기 요구’ 의견으로 검찰에 이첩한 후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수사 역시 직권남용 혐의를 고리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공수처는 내란죄에 대한 직접수사 권한이 없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는가 여부를 검토해도 수사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죄는 범죄를 시도해 성공한 기수범 외 범죄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미수범에 대해서는 별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갈리는 의견들 실제 단전·단수 의혹의 경우 이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지난달 13일 국회서 이 전 장관으로부터 “특정 몇 가지 언론사에 대해 경찰청 쪽에서 (단전·단수)요청이 있으면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사건을 다시 경찰에 이첩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계엄 선포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을 포함해 경찰이 이 전 장관 사건을 넘겨받아 조사하기로 공수처와 협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수본 관계자는 “공수처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이 전 장관에 대한 소환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수본은 지금까지 계엄 사태와 관련해 이 전 장관을 포함해 총 53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중 당정 관계자는 28명, 군 20명, 경찰 5명 등이다. 지금까지 8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1명을 공수처 및 군 검찰에 이첩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별동대 성격인 사조직 ‘수사2단’ 의혹을 받는 방정환 2기갑여단장과 구삼회 국방부 혁신기획관도 지난달 22일 검찰에 송치했다. 공수처는 경찰에 한 총리와 이 전 장관의 사건을 이첩한 데 이어 검찰에도 이 전 장관 사건을 이첩했다. 한 총리 사건을 재이첩하는 이유에 대해선 “중복 수사 방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한 총리 조사를 한 차례 진행하고 계속 수사 중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가 사건을 다시 넘긴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체포·구속에 전념한다며 속도를 내지 못하던 이 전 장관 사건도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허석권 소방청장 등 소방청 간부들을 조사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이 전 장관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지적에도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 수사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 사건을 건네받으면서 논란만 키웠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이후엔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후 사건을 검찰에 돌려보냈다. 진행은 했는데…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자 경찰과 협의도 없이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첩 요청해서 받은 사건을 다시 돌려보내며 두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지체됐다는 비판에 대해 “이 전 장관의 단전·단수 의혹이 국회서 불거지자마자 관련자 진술을 받았고 자료도 검토했기 때문에 지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두 수사기관에 각각 사건을 반환하는 이유에 대해선 “경찰은 사건을 이첩할 때 3가지 혐의를 적시한 반면, 검찰은 군형법상 반란 혐의를 포함해 8가지 혐의를 이첩했다”며 “검찰이 보는 혐의점이 많고 현재 군 검사들이 함께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반란 혐의를 수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를 유지하며 경찰 간부 등 남은 수사 대상에 대한 수사에 총력을 모으기로 했다. 경찰이 공수처에 이첩한 피의자 총 15명 중 경찰 간부는 조 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김준영 경기남부경찰청장(치안정감),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총경) 등이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은 이미 구속 기소된 상태인 만큼, 김 청장과 목 전 대장만 남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경찰 간부는 저희가 직접 기소할 수도 있어서 최선을 다해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에 대한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국무위원들과 군·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내란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형법상 내란죄는 ‘우두머리’ ‘중요임무종사’ ‘부화수행’ 3단계로 구분해 처벌할 수 있다. 공수처, 사건 검경 재이첩 “시간만 날려” 중요임무종사·부화수행 혐의 적용 관건 나머지 수사는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에 대한 처리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계엄을 위헌·위법이라고 인식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거나 가담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우선 검찰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소집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1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놨다. 검찰은 한 총리, 최 대행(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 장관 등이 계엄에 반대했다고 보고 있다. 국무회의 자체도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계엄을 통보했을 뿐 실질적 논의도 없었던 데다 회의록도 없을 만큼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계엄에 대한 후속 조치나 사전 준비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 부화수행이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최근 정성우 전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을 비롯한 군 중간급 간부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정 전 처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를 지시하자 군법무관 회의를 거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항변했다. 방첩사 병력을 출동시키긴 했지만 고무탄총·가스총만 가진 사실상 비무장 상태로, ‘선관위 청사 내부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지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치인 체포조’ 지원 의혹에 연루된 경찰 간부들도 피의자로 입건해 지난달 31일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방첩사의 요청을 받고 체포조 지원을 지시하거나 묵인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고위직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중간직은 부화수행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국회 주변 계엄령 위반자 체포인 줄 알았지 특정 정치인 체포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머리 아픈 남은 수사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부화수행 혐의를 어떤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지가 고비가 될듯하다. 계엄 관련 위헌·위법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로 받을 수 있는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일부 참작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란죄가 중대범죄인 만큼 부화수행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공무원·군인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파면되고 연금이 절반으로 깎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