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마약 연계 범죄 대해부

진짜 나쁜 놈들이 뭉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당국의 강력한 대처도 있지만 새로운 형태의 신종 범죄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주로 마약과 보이스피싱이 결합된 형태다. 전문성을 갖춘 보이스피싱범들이 마약에까지 손대다 보니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검찰 안팎서도 새로운 수사나 법리 적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검찰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게 된 건 2018년부터다. 주로 조직폭력 사범에만 적용해왔다. 그러나 범죄 형태가 진화하면서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사건도 늘었다. 문제는 적용 전 수사 과정서 물적 증거를 포착하는 경우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형태의 범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검찰이 마약 수사에 애를 먹고 있는 이유다.

진화하는
범죄자들

검찰은 최근 들어 보이스피싱 범죄서 범죄단체조직죄 등을 적용해 엄정 대응하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 합동수사단(단장 김호삼)은 사기 혐의로 기소됐던 보이스피싱 조직원 2명에게 범죄단체가입·활동 등의 혐의를 추가 적용해, 지난 4월 각 2년, 1년6개월의 징역형과 범죄수익 1억3630만원에 대한 몰수 판결을 받아냈다.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을 위반한 불공정거래 사범 기소 건수도 최근 3년간 늘었다. 검찰은 최근 불공정거래 관련 사건서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제129조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총장의 고발요청이 있으면 공정위가 고발하도록 한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해 7대 제강사의 철근 담합 사건을 수사하며 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검찰은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고위 임원 13명에 대해 고발요청을 해 직접수사를 윗선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6월 담합 혐의로 기소된 7대 제강사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 22명에게 1심서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마약 사건에서는 최근 5년간 3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는 비율이 늘었다. 단순 투약이 아닌 ‘공급 사범’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1심에서 3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은 마약사범은 2018년 234명서 지난해 533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1심 선고를 받은 전체 마약사범 대비 이들 비율은 5.9%서 11.5%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3년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은 마약사범 비율은 같은 기간 46.6%서 37.2%로 줄었다.

마약 범죄에 관해 엄벌 기조가 확산되면서 과거보다 특별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이 적용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던지기’ 등의 수법으로 마약을 운반하던 이들에게도 특가법이 적용돼 중형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범이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도 포착됐다. 경기 광명경찰서는 최근 금융기관 직원 사칭, 자녀 납치 등 보이스피싱을 통해 1억여원을 챙긴 혐의(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2차 수거책 강모(42·중국 국적) 등 3명을 구속하고 1차 수거책 김모(33)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뽕’ 손대는 전세 사기·보이스피싱범
‘탈북 마약왕’ 해외서 금융범죄 저질러

경찰은 또 필로폰을 투약한 강씨 등 2명에 대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혐의를 추가하고 필로폰 22g 등을 압수했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A씨로부터 기존대출금 상환명목으로 현금 530만원을 가로채는 등 3명으로부터 1억1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2차 수거책 등의 은신처서 현금 1억1000만원과 계수기, 필로폰 22g, 마약 흡입기구, 가발 등 증거물을 40여점을 압수했다. 경찰조사에서 이들은 1차 수거책에게 전달받은 피해금을 상선에게 전달하는 대가로 일부 현금과 함께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뒤에 찾아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을 통해 마약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메신저피싱(문자 금융사기)으로 40억원이 넘는 돈을 챙긴 일당이 검찰에 송치됐다. 수사 과정서 압수한 가방에서는 필로폰이 발견됐는데 이들은 해외서 마약을 들여와 국내에 유통까지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메신저피싱으로 피해자 93명으로부터 무려 43억원을 빼앗은 혐의(컴퓨터 등 이용사기)로 20대 B씨 등 일당 67명을 검거해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메신저를 통해 가족이나 지인 사칭 등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

피해자가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설치되게 했고, 휴대전화에 연결된 계좌의 예금 잔액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돈을 가로챘다.

보이스피싱서 자주 쓰이는 번호 조작 중계기도 사용됐다. 외국서 걸려 온 전화번호의 앞자리를 ‘070’에서 ‘010’ 번호로 바꿔주는 장치다. 피해자들은 적게는 수백만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메신저피싱을 수사하던 과정서 경찰이 압수한 B씨의 가방에서는 필로폰도 발견됐다.

뛰는 피싱
기는 수사

마약 혐의를 추가로 수사한 결과 B씨는 해외서 필로폰을 들여와 국내에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를 비롯한 유통책 6명과 투약범 등 4명도 추가로 검거됐다. B씨 등이 유통한 필로폰은 650g 정도다.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1명인 ‘탈북민 마약왕’ 최정옥(36·여·구속)씨도 검거되기 전 해외서 대규모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동남아 마약밀수 조직의 총책으로 알려진 최씨는 캄보디아서 붙잡혀 지난해 4월 국내로 송환됐다.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최씨가 같은 탈북민과 조선족 등이 가담한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을 동원해 우리 국민을 상대로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아직은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의 정도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당국에 따르면 최씨가 보이스피싱으로 한 달 만에 5억원 정도의 범죄수익을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범죄 활동 규모에 따라선 피해금액이 10억원대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수의 마약 전과 이력을 가진 최씨는 2018년부터 활동무대를 국내서 중국, 러시아, 동남아로 옮겼다. 그는 태국, 라오스, 미얀마가 맞닿아 있는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 ‘골든트라이앵글’ 현지인들과 손잡고 마약을 생산, 한국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는 2021년 7월 마약 소지 및 밀입국 혐의로 태국 수사망에 걸려 파타야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한 달 뒤 500만바트(약 1억8000만원)를 보석금으로 내고 풀려났다. 국내는 물론 태국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최씨는 이후 캄보디아로 도주한 끝에 국정원, 인터폴, 현지 경찰의 공조 끝에 체포됐다.

수백억 편취
괴물이 되다


그는 보이스피싱으로 번 돈을 태국으로 갖고 오는 데 한국 내 차명계좌를 사용했다. 당국에 꼬리가 잡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최씨의 차명거래에는 태국 한인교포 여러 명의 계좌가 활용됐다. 이 때문에 다수 한인교포 한국 계좌의 거래는 현재 정지된 상태다.

최씨는 범죄수익 5억원 중 2억원가량만 태국 현지 브로커에게 알선료 명목으로 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말 <일요시사> 취재 당시 ‘보이스피싱계 아버지’라 불리는 사이버수사대 출신 박모씨도 자신이 수감된 비쿠탄 수용소서 마약에 손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그는 수뢰 혐의로 2008년에 해임돼 필리핀을 거점으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하는 괴물이 됐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정보를 넘겨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당시 위치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의 수사 내용만 봐도 보이스피싱범들의 지능적 범죄 행태는 진화를 거듭한다. 합수단은 검찰·경찰·국세청·관세청·금감원·방통위·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 소속된 56명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 출범 1년 만에 보이스피싱 피의자 284명을 입건하고, 국내외 총책 14명을 포함해 총 90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대처 “한계 있다”
합수단 ‘원팀’ 드물어…특별수사도 역부족

단장을 맡은 김호삼 부부장검사는 앞서 언급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조직원을 일망타진하면서 형량(법정형: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을 높이고 범죄수익 환수를 극대화했다.

검찰은 2015년부터 보이스피싱 일당 처벌에 이 죄목을 활용하기 시작했지만 이 같은 수사가 일반적으로 정착되진 않았다. 다수의 구성원과 공동의 범죄 목적 외에도 최소한의 통솔체계와 조직의 계속성 등의 입증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성립 요건 때문이다.

특히 범죄자 대부분의 거점이 중국 등 해외에 있는 등 점조직 형태로 움직여 법률적 검토가 까다로운 편이다.

범죄단체조직죄 활용도 합수단이 범죄수익 환수 성과를 높인 배경이 됐다. 범죄단체조직원으로 입증되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조직 자금도 환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수단은 1년 간 대포통장 계좌 73개를 확보해 피해자가 누군지 모르는 돈 12억원을 몰수 보전했다.

김 단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2~3년간 집중 수사로 총책 엄벌 사례와 해외 공조의 노하우, 대국민 홍보 및 예방 활동이 누적돼 간다면 보이스피싱 피해범죄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9084건 피해액은 20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2401건과 3068억원에 비해 각각 33.2%p, 26.7%p 줄었다. 김 단장은 “개별 조직의 노력만으로는 총책을 잡기 힘들고 피해가 여전히 극심한 만큼 합수단은 당분간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도 “합수단 같은 케이스의 ‘원팀’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범죄의 진화와 지능적·전문성까지 갖춘 이들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잡는 데 답이 없다”며 “새로운 방향의 수사 방안이나 법리 적용이 필요할 때다. 현재 설치된 마약범죄특별수사팀으로는 역부족”이라고 강조했다.

박지현 법무법인 동광 변호사도 “보이스피싱 조직은 점조직으로 활동하기에 범단(조직 및 활동)을 적용하고 있고 엄벌주의는 예방효과를 생각한다면 여전히 유효한 방안이다. 다만,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상급자들에 대해 형량을 강화해 알리고, 수사에 협조한 공범에 대해 그 공적을 인정해주는 유인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벌주의
지속하나

박 변호사는 “마약 투약 사범들은 단약의 어려움이 커서 재범률이 높다. 마약사범들의 중독 치료 및 재사회화를 위한 대책으로 최근 법무부는 마약류 중독 수형자들의 재활치료를 강화하고 가석방 심사에도 반영하기로 결정했는데 실 처벌보다는 치료가 더 중요하다”며 “보이스피싱범들은 전달책을 도구처럼 이용한다. 취업을 빙자해 전달업무를 하게 되는데 마약을 제공하면서 마약사범들을 유인하는 것도 결국엔 처벌을 아주 강하게 하는 것 외에는 선제적으로 막을 방법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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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위기설’ 보수 합종연횡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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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일각에서 “장동혁 체제를 무너트린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동혁 대표는 ‘중도 확장’을 언급하면서도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친한계는 개혁신당과 갈등하면서도 친윤계와 일시적 휴전을 하고 있다. 장동혁·친윤·친한·개혁신당은 얽히고설킨 합종연횡을 시작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각각 지난 5일과 9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을 비판했다. 이후 국민의힘에선 장 대표가 물러난 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출범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장 다음은 신 비대위?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언더 찐윤 그룹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에 대해 ‘이 사람으로 되겠느냐’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면서 “장 대표가 물러나면 누구에게 비대위원장을 시키면 좋겠느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주장했다. 장 소장은 “그들이 국민의힘 신동욱 최고위원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려 한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신 최고위원에게 비대위원장직을 맡기려는 이유로 경북 상주·언론사 앵커 출신이란 점이 거론된다. 장 소장은 “급소에 침을 넣을 수 있는 핵심은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핵심인 이유는 “언더 찐윤의 구심점이자, 장동혁 체제를 만든 5인방 중 1명”이란 것이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 일원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지난 12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에게 제시할 노선 변경 시한은 연말”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은 장 대표가 판단을 잘했다고 보긴 힘들다”며 “국민이 원하면 국민의 뜻을 따라야지, 국민을 이기려고 정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부가 연말까지 노선 변경에 대한 전향적 의견을 밝히지 않으면, 상당한 혼선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상당한 혼선’은 장 대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과 함께 흔들림 없이 강경 보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 15일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을 당 국민소통위원장에 임명했다. 국민의힘 장예찬 전 청년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에 임명됐다. 김 최고위원은 그로부터 4일 전인 지난 11일 TV조선 유튜브 채널 ‘엄튜브’에 출연해 “지난해 12월3일 계엄군의 총구를 잡은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행동은 사실상 즉각 사살해도 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시 같은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게 집계되는 여론조사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장 대표를 엄호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율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단 결과가 나온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 등이 발표한 여론조사를 제시했다. 이어 “한국갤럽 여론조사 외엔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른단 여론조사 결과가 대부분”이라며 “장 대표의 투쟁에 모두 단결했으면 더 올라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개 제시된 장동혁의 시간은 ‘연말’ ‘통일교 특검’ 매개로 손잡은 장·이 장 부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청년 참모 1호로 알려졌던 친윤계 일원으로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가족이 연루됐다”는 논란이 발생한 당원 게시판 의혹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부산 수영구 공천을 받았다가 “과거에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은 장 부원장 공천을 취소했고, 이후 장 부원장은 친한(친 한동훈)계와 대립하고 있다. 장 부원장은 같은 날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김 의원은 지도부를 흔들기 위한 게 아니라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라며 “연말까지 고름 같은 당내 문제를 해결하면, 새해부터는 대여 투쟁·민생에 집중해서 중도·외연 확장을 할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고름 같은 당내 문제’는 당원 게시판 의혹을 말한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은 지난 9일 당원 게시판 의혹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한 전 대표와 가족 명의로 게시된 글들의 실제 작성자를 확인하고 있다”며 “한 전 대표 가족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3명은 서울 강남병 소속이고, 휴대전화 끝자리가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중 1명은 재외국민 당원으로 확인됐고, 거의 같은 시기에 탈당했다”면서 한 전 대표 가족 실명도 공개했다. 지난 16일엔 친한계 일원으로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윤리위원회에 요청했다. 당무감사위는 지난달 26일부터 김 전 최고위원을 조사했다. 윤리위가 당무감사위의 의견대로 징계를 확정하면, 김 전 최고위원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정당 활동이 멈춰 총선 공천에서도 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최고위원은 같은 날 “터무니없는 결정”이라며 “윤리위가 당원권 정지를 결정하면 가처분을 신청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이 밝힌 김 전 최고위원 징계 사유는 “우리 당 운영을 파시스트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북한 노동당에 비유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당원을 망상에 빠진 정신질환자에 비유하는 등 모욕적 표현을 했고, 사이비 교주의 영향을 받아 입당했다는 특정 종교 비난·종교 차별 발언을 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영혼을 팔았다”는 등 장 대표를 비판한 것도 징계 사유로 제시됐다. 고름 같은 당내 문제 한편 장 대표는 통일교 특검법을 매개로 개혁신당에 연대를 제안했다. 장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중 “통일교 특검법 통과를 위해 개혁신당과 뜻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무자비·포악한 이재명 정권을 막기 위해선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곧바로 “16일부터 특검법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화답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와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만나 큰 틀에서 ‘통일교 특검 추진’에 합의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장 대표는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와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 같다”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라는 등 장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가 용꿈을 꾼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강조하면서 “국민의힘 대표를 하면, 대권주자로서 약 20% 정도의 지지를 얻으니, 다른 주자가 사라지면 내가 유일한 대권후보란 착각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통일교 유착 의혹이 제기된 후 두 사람은 제한적으로라도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관계자들은 민주당 일부 정치인들에게도 후원금을 제공했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은 “교단의 지시를 어긴 관계자 개인의 일탈이었다”면서 기소하지 않았다. 보수 야권으로선 특검의 공정성 문제를 대대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의원 상당수가 특검의 수사 대상이었던 국민의힘으로선 “되돌려줄 기회가 온 것 아니냐”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2018년부터 3년 동안 현금·명품 시계 등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수사 대상이 된 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아울러 장 대표가 친한계 정리 작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친한계와 개혁신당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단 사실도 주목받고 있다. 친한계와 개혁신당은 쿠팡 새벽 배송 논란 관련 토론회 개최를 놓고 크게 갈등했다. 국민의힘 김은혜·우재준 의원은 지난 15일 ‘새벽 배송 금지, 누구의 새벽을 위한 선택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개혁신당은 사흘 뒤인 지난 18일, 김성열 수석 최고위원이 주관하는 ‘새벽 배송 금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친윤·친한 여전한 갈등 김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김·우 의원이 토론회 개최를 예고했다가 취소해서, 개혁신당이 마음 다친 관계자들을 모시고 토론회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혁신당 주최 토론회가 개최될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 다시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눈치 보다가 남의 것을 빼앗아서 하는 토론회에 무슨 진정성이 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토론회에도 ‘원조’ 표기를 하고, 상표권도 등록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우 의원은 곧바로 반박했다. 그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새벽 배송 논쟁은 국민의힘이 먼저 제기했고, 우리 토론회는 원래부터 15일 개최가 예정돼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토론회 개최 직전 발생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사회적 관심이 분산될 가능성을 우려해 일정 연기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론 흐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우 의원이 15일 개최를 중요시 여긴 이유 중 하나는 지난 16일 진행된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라고 한다. 구도를 정리하면, 장 대표는 당내 친윤계·친한계와 갈등하면서 개혁신당과 제한적 연대를 추진해 중도 확장·대여 공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으려고 한다. 개혁신당은 장 대표와의 제한적 연대를 통해 오랜 갈등 관계인 친한계와의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친한계는 장 대표·개혁신당과 갈등하면서 마찬가지로 오랜 갈등 관계인 친윤계와 중도 확장·지방선거 승리라는 대의 앞에서 일시적으로 휴전한 것 같은 구도를 만들었다. 이를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다. 장 대표는 지난 17일 경기 고양에서 연탄 배달 봉사활동 이후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선 방향·보수 가치 재정립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에 수반돼 많은 의원이 말씀하시는 당명 개정도 필요하다면 함께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명 개정’은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친윤계와의 갈등을 진화하기 위한 승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선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김민수·장예찬 내세워 한동훈 축출 작전? 개혁신당과 쿠팡 갈등…친윤과 일시 휴전? 개혁신당은 국민의힘 내 이준석계와 구 친윤계의 갈등 끝에 이준석계가 국민의힘을 이탈한 후 창당됐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 출마한 후 각계에서 언급했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끝까지 뿌리친 후 완주했다. 이는 구 친윤계와의 화학적 결합은 창당 배경·당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진행된 흐름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통일교 게이트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자, 천 원내대표가 특검 추진 합의를 위해 구 친윤계의 일원이었던 송 원내대표와 손을 맞잡는 그림을 연출했다. 제한적 빅텐트가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도가 ‘화학적 결합’으로 해석된다면, 지난해 2월 이낙연 전 총리와 함께 빅텐트를 치려다가 당원의 강한 항의를 들은 후 무산됐던 것과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이 대표는 지난 1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는 황 전 대표처럼 굉장히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장 대표가 주장한 ‘우리가 황교안’이란 구호대로라면, 황 전 대표의 좋은 점·나쁜 점·정치적 진로 및 결과까지 다 답습할 것”이라는 등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가 지난 2022년 당원권 정지 6개월을 받은 후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은 개혁신당 구성원·지지자들에게 분명하게 각인돼있다. 이들은 국민의힘을 틈을 비집고 들어간 후 언젠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친한계는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가 현실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징계가 막힘없이 흐르는 현 상황대로라면,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하는 방법이 막힐 위험이 있다. 이렇게 되면 친한계는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 개혁신당과의 갈등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유권자를 상대로 “한 전 대표와 이 전 대표 중 누가 보수의 젊은 적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한다. 이 전 대표를 제치고 ‘보수의 젊은 적자’라는 명분을 얻어야 장 대표·구 친윤계와의 당내 다툼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에 비상이 걸릴 수도 있는 여론조사 수치가 발표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는 지난 12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시장 선거 양자구도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만약 최근 주목받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양자구도를 이루면, 45.2%의 지지를 얻어 38.1%의 지지를 얻은 오 시장을 이길 수도 있단 결과가 확인됐다. 비상 걸린 지방선거 이는 민주당이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고 행정 경험이 풍부한 새로운 후보를 내세우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장 대표 ▲구 친윤계 ▲친한계 ▲개혁신당 등 보수 4자 합종연횡 구도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설킬 가능성도 함께 내포한다. 장 대표에게 사실상 주어진 시한은 연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 제1심 선고가 진행될 예정인 내년 2월까지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는 등 매듭 짓지 않으면, 지도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2월 위기설’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은 과연 어떤 연말·연초를 맞이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