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마약 연계 범죄 대해부

진짜 나쁜 놈들이 뭉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당국의 강력한 대처도 있지만 새로운 형태의 신종 범죄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주로 마약과 보이스피싱이 결합된 형태다. 전문성을 갖춘 보이스피싱범들이 마약에까지 손대다 보니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검찰 안팎서도 새로운 수사나 법리 적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검찰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게 된 건 2018년부터다. 주로 조직폭력 사범에만 적용해왔다. 그러나 범죄 형태가 진화하면서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사건도 늘었다. 문제는 적용 전 수사 과정서 물적 증거를 포착하는 경우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형태의 범죄가 하나로 합쳐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검찰이 마약 수사에 애를 먹고 있는 이유다.

진화하는
범죄자들

검찰은 최근 들어 보이스피싱 범죄서 범죄단체조직죄 등을 적용해 엄정 대응하고 있다.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 합동수사단(단장 김호삼)은 사기 혐의로 기소됐던 보이스피싱 조직원 2명에게 범죄단체가입·활동 등의 혐의를 추가 적용해, 지난 4월 각 2년, 1년6개월의 징역형과 범죄수익 1억3630만원에 대한 몰수 판결을 받아냈다.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을 위반한 불공정거래 사범 기소 건수도 최근 3년간 늘었다. 검찰은 최근 불공정거래 관련 사건서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제129조는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총장의 고발요청이 있으면 공정위가 고발하도록 한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해 7대 제강사의 철근 담합 사건을 수사하며 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검찰은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고위 임원 13명에 대해 고발요청을 해 직접수사를 윗선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6월 담합 혐의로 기소된 7대 제강사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 22명에게 1심서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마약 사건에서는 최근 5년간 3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는 비율이 늘었다. 단순 투약이 아닌 ‘공급 사범’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1심에서 3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은 마약사범은 2018년 234명서 지난해 533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1심 선고를 받은 전체 마약사범 대비 이들 비율은 5.9%서 11.5%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3년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은 마약사범 비율은 같은 기간 46.6%서 37.2%로 줄었다.

마약 범죄에 관해 엄벌 기조가 확산되면서 과거보다 특별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이 적용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던지기’ 등의 수법으로 마약을 운반하던 이들에게도 특가법이 적용돼 중형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범이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도 포착됐다. 경기 광명경찰서는 최근 금융기관 직원 사칭, 자녀 납치 등 보이스피싱을 통해 1억여원을 챙긴 혐의(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2차 수거책 강모(42·중국 국적) 등 3명을 구속하고 1차 수거책 김모(33)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뽕’ 손대는 전세 사기·보이스피싱범
‘탈북 마약왕’ 해외서 금융범죄 저질러

경찰은 또 필로폰을 투약한 강씨 등 2명에 대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혐의를 추가하고 필로폰 22g 등을 압수했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A씨로부터 기존대출금 상환명목으로 현금 530만원을 가로채는 등 3명으로부터 1억10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2차 수거책 등의 은신처서 현금 1억1000만원과 계수기, 필로폰 22g, 마약 흡입기구, 가발 등 증거물을 40여점을 압수했다. 경찰조사에서 이들은 1차 수거책에게 전달받은 피해금을 상선에게 전달하는 대가로 일부 현금과 함께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뒤에 찾아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을 통해 마약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메신저피싱(문자 금융사기)으로 40억원이 넘는 돈을 챙긴 일당이 검찰에 송치됐다. 수사 과정서 압수한 가방에서는 필로폰이 발견됐는데 이들은 해외서 마약을 들여와 국내에 유통까지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메신저피싱으로 피해자 93명으로부터 무려 43억원을 빼앗은 혐의(컴퓨터 등 이용사기)로 20대 B씨 등 일당 67명을 검거해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메신저를 통해 가족이나 지인 사칭 등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

피해자가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설치되게 했고, 휴대전화에 연결된 계좌의 예금 잔액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돈을 가로챘다.

보이스피싱서 자주 쓰이는 번호 조작 중계기도 사용됐다. 외국서 걸려 온 전화번호의 앞자리를 ‘070’에서 ‘010’ 번호로 바꿔주는 장치다. 피해자들은 적게는 수백만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메신저피싱을 수사하던 과정서 경찰이 압수한 B씨의 가방에서는 필로폰도 발견됐다.

뛰는 피싱
기는 수사

마약 혐의를 추가로 수사한 결과 B씨는 해외서 필로폰을 들여와 국내에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를 비롯한 유통책 6명과 투약범 등 4명도 추가로 검거됐다. B씨 등이 유통한 필로폰은 650g 정도다.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1명인 ‘탈북민 마약왕’ 최정옥(36·여·구속)씨도 검거되기 전 해외서 대규모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동남아 마약밀수 조직의 총책으로 알려진 최씨는 캄보디아서 붙잡혀 지난해 4월 국내로 송환됐다.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최씨가 같은 탈북민과 조선족 등이 가담한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을 동원해 우리 국민을 상대로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아직은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의 정도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당국에 따르면 최씨가 보이스피싱으로 한 달 만에 5억원 정도의 범죄수익을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범죄 활동 규모에 따라선 피해금액이 10억원대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수의 마약 전과 이력을 가진 최씨는 2018년부터 활동무대를 국내서 중국, 러시아, 동남아로 옮겼다. 그는 태국, 라오스, 미얀마가 맞닿아 있는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 ‘골든트라이앵글’ 현지인들과 손잡고 마약을 생산, 한국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는 2021년 7월 마약 소지 및 밀입국 혐의로 태국 수사망에 걸려 파타야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한 달 뒤 500만바트(약 1억8000만원)를 보석금으로 내고 풀려났다. 국내는 물론 태국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최씨는 이후 캄보디아로 도주한 끝에 국정원, 인터폴, 현지 경찰의 공조 끝에 체포됐다.

수백억 편취
괴물이 되다


그는 보이스피싱으로 번 돈을 태국으로 갖고 오는 데 한국 내 차명계좌를 사용했다. 당국에 꼬리가 잡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최씨의 차명거래에는 태국 한인교포 여러 명의 계좌가 활용됐다. 이 때문에 다수 한인교포 한국 계좌의 거래는 현재 정지된 상태다.

최씨는 범죄수익 5억원 중 2억원가량만 태국 현지 브로커에게 알선료 명목으로 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말 <일요시사> 취재 당시 ‘보이스피싱계 아버지’라 불리는 사이버수사대 출신 박모씨도 자신이 수감된 비쿠탄 수용소서 마약에 손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바 있다. 그는 수뢰 혐의로 2008년에 해임돼 필리핀을 거점으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하는 괴물이 됐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정보를 넘겨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당시 위치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의 수사 내용만 봐도 보이스피싱범들의 지능적 범죄 행태는 진화를 거듭한다. 합수단은 검찰·경찰·국세청·관세청·금감원·방통위·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 소속된 56명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 출범 1년 만에 보이스피싱 피의자 284명을 입건하고, 국내외 총책 14명을 포함해 총 90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대처 “한계 있다”
합수단 ‘원팀’ 드물어…특별수사도 역부족

단장을 맡은 김호삼 부부장검사는 앞서 언급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조직원을 일망타진하면서 형량(법정형: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의 징역)을 높이고 범죄수익 환수를 극대화했다.

검찰은 2015년부터 보이스피싱 일당 처벌에 이 죄목을 활용하기 시작했지만 이 같은 수사가 일반적으로 정착되진 않았다. 다수의 구성원과 공동의 범죄 목적 외에도 최소한의 통솔체계와 조직의 계속성 등의 입증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성립 요건 때문이다.

특히 범죄자 대부분의 거점이 중국 등 해외에 있는 등 점조직 형태로 움직여 법률적 검토가 까다로운 편이다.

범죄단체조직죄 활용도 합수단이 범죄수익 환수 성과를 높인 배경이 됐다. 범죄단체조직원으로 입증되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조직 자금도 환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수단은 1년 간 대포통장 계좌 73개를 확보해 피해자가 누군지 모르는 돈 12억원을 몰수 보전했다.

김 단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2~3년간 집중 수사로 총책 엄벌 사례와 해외 공조의 노하우, 대국민 홍보 및 예방 활동이 누적돼 간다면 보이스피싱 피해범죄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9084건 피해액은 205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만2401건과 3068억원에 비해 각각 33.2%p, 26.7%p 줄었다. 김 단장은 “개별 조직의 노력만으로는 총책을 잡기 힘들고 피해가 여전히 극심한 만큼 합수단은 당분간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도 “합수단 같은 케이스의 ‘원팀’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범죄의 진화와 지능적·전문성까지 갖춘 이들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잡는 데 답이 없다”며 “새로운 방향의 수사 방안이나 법리 적용이 필요할 때다. 현재 설치된 마약범죄특별수사팀으로는 역부족”이라고 강조했다.

박지현 법무법인 동광 변호사도 “보이스피싱 조직은 점조직으로 활동하기에 범단(조직 및 활동)을 적용하고 있고 엄벌주의는 예방효과를 생각한다면 여전히 유효한 방안이다. 다만,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상급자들에 대해 형량을 강화해 알리고, 수사에 협조한 공범에 대해 그 공적을 인정해주는 유인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벌주의
지속하나

박 변호사는 “마약 투약 사범들은 단약의 어려움이 커서 재범률이 높다. 마약사범들의 중독 치료 및 재사회화를 위한 대책으로 최근 법무부는 마약류 중독 수형자들의 재활치료를 강화하고 가석방 심사에도 반영하기로 결정했는데 실 처벌보다는 치료가 더 중요하다”며 “보이스피싱범들은 전달책을 도구처럼 이용한다. 취업을 빙자해 전달업무를 하게 되는데 마약을 제공하면서 마약사범들을 유인하는 것도 결국엔 처벌을 아주 강하게 하는 것 외에는 선제적으로 막을 방법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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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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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