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회원 2만명 ‘K’ 마약 채팅방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9.09 10:38:37
  • 호수 1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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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조직력 ‘코리안 카르텔’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회원 수 2만여명을 보유한 텔레그램 마약 유통 채팅방이 활개치고 있다. 마약 구매, 운반책 모집 등에 이용된 이곳은 국내 마약 산업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지난 5월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한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의 제보자 A씨는 “필리핀 범죄자들이 한국으로 마약을 수출하는 데 이용하는 곳”이라며 ‘K’ 마약 채팅방을 소개했다. 

K방은 마약 판매를 위한 광고 행위를 넘어 ‘마약 카르텔’의 조직력을 자랑했다. 지난 8월 익명의 K방 운영자는 한 20대 남성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신상정보, 부모의 연락처를 공개했다. 마약 운반 중 도주하는 등의 불이익을 안긴 조직원을 찾아내 보복하기 위한 공개수배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엔 ‘K방을 사칭하면 이렇게 된다’는 글과 함께 안면이 심하게 다친 남성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독이 된
보안성

보안성을 강조하는 텔레그램은 각국 수사기관을 비롯한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대다. 지난 2013년 8월 출시된 이후 검·경이 성착취물 유포, 마약·자금 세탁 등의 범죄 수사 과정서 여러 차례 협조를 요청하고, 국제공조를 활용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N번방 사건’ 수사 때도 경찰은 신원 확인 등을 위해 텔레그램에 지속적인 수사 협조를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어떤 추적에도 뚫리지 않는 보안성과 암호화를 앞세운 텔레그램이 온라인 마약 산업의 확대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22년 12월 설립된 K방은 텔레그램 마약 유통 채팅방 중 구독자가 1~3만명으로 가장 많다. 하루에도 4000명 이상이 들여다보는 이곳은 필로폰, 대마초, 케타민, 엑스터시 등 사실상 모든 종류의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 상세한 가격 표기는 물론, 투약 후기까지 올라온다.

단순 판매 광고를 넘어 마약 운반책을 뜻하는 이른바 ‘지게꾼’도 모집하는데, “평생 가족처럼 일할 지게꾼 모집. 월 1000만원 이상 수익을 보장한다”고 유혹한다. 직업이 불분명한 청소년이라면 쉽게 관심 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지게꾼은 마약 판매자가 지정한 장소에 마약을 운반하고 구매자가 수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K방 운영진은 잠복 경찰이 지원할 가능성을 대비해 지게꾼 지원자에게 신분증 사진과 부모형제의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요구한다. 지게꾼이 마약을 운반하는 과정서 직접 투약하거나, 훔치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K방에서 지게꾼으로 일하다가 달아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남성 B씨가 공개 수배된 사례도 있다. 지난달 초 K방에는 B씨의 실명과 이름, 부모의 연락처와 함께 “인천에 사는 OOO, 천안으로 도주”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치외법권 텔레그램 악용 지능범죄 
배신자 색출···지명수배 내리기도

취재진이 “마약 채팅방에 B씨의 신분증 사진과 연락처, 부모의 연락처까지 올라왔다. 불상사를 당할 수 있지 않겠냐”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영문도 모른 채 B씨에게 연락해 신변을 보호해줄 수는 없다”고 답했다.

K방에서 지게꾼으로 일하다 경찰에 붙잡힌 사례도 있다. 필리핀 현지 구치소서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탈옥한 송씨의 필로폰 판매도 K방에서 이뤄졌다. 지난 2022년 1월25일 송씨가 K방을 통해 고용한 운반책 김모씨는 당시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하다가 붙잡혔다.


이날 오전 8시경 수원중부경찰서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0대 남성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한 남성이 모텔서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아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모텔서 필로폰이 포장된 비닐백 30개를 발견하고 이를 압수 조치했다.

또 김씨를 상대로 진행한 마약 간이 검사서 양성반응을 확인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투약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텔레그램으로 필로폰 거래를 지시한 ‘orjinal8282’가 송씨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orjinal8282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가 김씨에게 “수원으로 가서 모텔을 잡고 기다려라”며 “사탕(엑스터시) 50, 어름(필로폰) 50 좀 있다가 드랍해서 갖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송씨와 비쿠탄 교도소서 함께 지냈던 제보자 A씨는 “orjinal8282는 송씨의 아이디”라며 “김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던 채팅방 구독자들은 송씨가 김씨의 고용주(상선)이었다고 적었다”며 텔레그램 채팅방 사진을 건넸다.

김씨가 체포됐다는 점, 송씨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는 사실, 김씨의 사진과 신원은 채팅방에 모두 공개됐다. 이를 통해 송씨가 김씨의 상선이었다는 사실은 마약 업계에 퍼졌다. A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어떤 연예인이 누구한테 마약을 구매했는지도 금방 소문이 난다”고 말했다.

범죄자
놀이터

결과적으로 K 채팅방은 마약의 모든 유통구조를 총괄하는 셈이다. 2년 가까이 수사망을 피해 건재함을 유지하기 때문인지 K방을 모방한 채팅방도 생겨나고 있다. 다수의 마약 유통 채팅방들은 서로 ‘진짜 K방’이라며 광고했다.

그러다 지난달 24일 K방엔 ‘K 사칭범 사기꾼 검거 완료. 이상한 헛소리하면 죽여버린다’는 글과 함께 안면에 심각한 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남성의 옆에는 신원 불상의 K방 관계자가 피해 남성의 얼굴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다음 날 게시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피해 남성을 폭행한 이유를 묻자 아무런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지난달 19일 필리핀서 국내로 50억원 상당의 마약을 밀반입해 판매하다 붙잡힌 총책 등 54명도 K방을 포함한 텔레그램 채널을 악용했다.

대전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 범죄단체 조직,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을 받는 총책 C씨 등 조직 간부 9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일당 45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C씨는 지난 2020년부터 필리핀서 암호와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판매 채널을 만들고 8kg에 달하는 마약을 국내로 밀반입해 약 50억원 상당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필로폰은 무려 6㎏ 상당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로폰 1회 투약량이 0.03g인 점을 고려하면 C씨가 판매한 필로폰은 2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특히 조직원들은 지난 2022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범행에 가담한 중간 판매책과 유통책 등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자금관리, 광고팀, 상담팀, 마약 던지기 운반책 등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고 국내에 있는 판매 조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하선 기본 수칙’을 정해 놓기도 했다. 이 수칙 중에는 상선 유무 및 관계 등을 일절 언급하지 않도록 하거나 SNS 광고를 꾸준히 하지 않을 경우, 추방하고 일정 매출이 나올 수 있도록 기준치를 정해 독려하기도 했다.

학생도
손쉽게

경찰은 텔레그램을 이용한 마약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를 벌이던 중 지난 2022년 1월 마약 거래에 이용된 자금 흐름 분석 등을 통해 C씨를 특정했다. 필리핀서 은밀하게 숨어 있던 C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은 올해 초 경찰청서 마약공조수사계를 신설하고 필리핀 내 소재 단서를 종합, 필리핀 당국과 긴밀히 공조했다.

필리핀 당국에 집중 추적을 의뢰했으며 지난 6월 ‘인터폴 국외도피사범 검거 작전회의’ 참여를 계기로 한국과 필리핀 양국 사이 실무 회담을 진행했다. 검거 계획 수립 후 노력한 끝에 필리핀 법 집행기관과 코리안 데스크가 C씨를 검거했으며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을 통해 검거 2주 후인 지난달 2일 C씨를 송환했다.

경찰은 범죄수익금 약 20억원에 관한 기소 전 추징을 실시했고 공범 D씨를 추적 중이며 추가적인 범행에 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오는 11월까지 4개월 동안 마약류 범죄를 집중 단속하고 있으며 인터넷 마약류 및 조직적 유통 사범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며 “마약류 범죄는 투약자 개인 몸과 정신을 황폐하게 할 뿐 아니라 2차 범죄로 사회 안전까지 위협하는 중대 범죄에 해당해 목격 시 적극적으로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최근 검·경은 마약과 성범죄 등의 온상인 텔레그램을 본격적으로 수사에 돌입했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정부는 텔레그램 창업자 겸 CEO인 파벨 두로프를 온라인 성범죄, 마약 유통 등 각종 범죄를 방조 및 공모한 혐의로 예비 기소한 바 있다.

보안성을 앞세워 수사에 비협조적인 텔레그램에 수사 기관들도 강력히 대응하기 시작한 것. 

지난 2일 한국 경찰도 텔레그램 법인에 관해 딥페이크 성범죄 방조 혐의를 적용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일명 ‘마약 동아리 사건’을 수사한 검찰도 마약 범죄와 관련된 텔레그램 단체채팅방 회원들을 겨냥한 수사 확대에 나섰다.

유통·광고·모집 한 방에 
필리핀 한인 범죄의 메카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대검찰청과 공조해 카이스트 출신의 마약 동아리 회장 염모씨가 이용한 채팅방 운영자를 추적 중이다. 운영자뿐 아니라 다수의 회원도 수사망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검찰은 인공지능(AI)이 탑재된 내부 시스템을 통해 이런 채팅방을 다수 파악했다. 이 가운데 최대 규모이자 이번 마약 동아리 사건에 등장한 채팅방을 겨누고 있다. 수도권 13곳 대학 출신 14명이 적발된 것을 계기로 수사 확대를 통해 전국적으로 퍼진 마약사범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과정서 검찰은 마약 수사 대비 방법을 알려주는 텔레그램 채널에 대학생 등 약 9000명이 가입한 것을 확인했다.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에 대해 대검찰청 인터넷 마약 범죄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통해 대검과 공조해 추적 수사 중이다. 

피의자들은 텔레그램 채널에 가입해 ‘휴대전화 저장 자료 영구 삭제 등 포렌식 대비, 모발 탈·염색, 사설기관 모발검사, 피의자 신문조사 모의 답변’ 등 채널서 파악한 대비 방법을 범죄에 활용했다. 검찰은 피의자들의 범죄집단 조직 및 활동 혐의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마약 범죄를 적발하는 등 시스템의 효과도 봤다. 앞서 마약상들의 거래 수법이 고도로 지능화되고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을 맞아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올해 초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AI를 탑재하며 시스템 강화에 나섰다.

이를 통해 텔레그램 채널을 파악했고, ‘마약 동아리 사건’ 속 피고인들의 가입 채널과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동아리 마약 사건의 관계자 14명 외의 추가 기소 가능성도 제기됐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은 동아리를 만든 염씨 등을 포함한 6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긴 상황이다. 단순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대학생 8명은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이처럼 과거 연락 수단에 그쳤던 텔레그램은 수년 전부터 마약 판매업자들의 광고 플랫폼이자 밀수부터 구매까지 거래의 모든 과정이 이뤄지는 마약 유통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당황하는
수사 당국

검찰 관계자는 “마약 수사의 목표는 유통망 차단인데, 마약 유통책이나 딜러들은 텔레그램 네트워크 뒤에 숨어 있어 공급 라인을 차단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수백개의 마약 채팅방서 마약 광고를 하거나 구인·구직도 이뤄지지만, 수사 과정서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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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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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