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 날뛰는’ 마약 드라마 현실판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0.23 11:59:43
  • 호수 14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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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하는 콘텐츠 안방 점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모순성, 부조리함을 느끼게 하는 역설적인 유머를 블랙코미디라고 한다. 마약 범죄자를 맨주먹으로 해결하려는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은 밝고 쾌활하지만, 동시에 씁쓸하다. 해마다 증가하는 마약 범죄 검거율과 안방을 점령한 마약 관련 드라마는 뼈아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이 지난 7일 첫 방송 이후 시청률 10%에 육박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괴력을 타고난 3대 모녀가 강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신종 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명서 알 수 있듯 2017년 방영된 <힘쎈여자 도봉순>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다. 

단골 소재

배우 이유미는 도봉순(박보영)의 6촌으로 부모를 찾으러 몽골서 날아온 괴력 소녀 강남순역을 맡았다. 국제 미아 강남순은 비행기 착륙 직전 문제가 발생하자 괴력을 이용해 사고를 막는 만화 같은 캐릭터다.

코믹 활극을 넘어 작품이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이목을 끈다. 포스터에 새겨진 문구에는 ‘나약한 놈들’의 ‘약’자에 강조 표시를 넣어 ‘(마)약’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마약류 오남용 캠페인을 벌이며 내세운 ‘나(마)약하지 않아’와 같은 맥락이다. 

초능력을 가진 강남순의 엄마 황금주(김정은)가 “더 이상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 아니야”라는 대사도 작품이 전하는 의도를 알 수 있다. 드라마 속 류시오(변우석)는 온라인 유통업체 대표이자 마약을 제조, 유통하는 악당이다. 이에 맞서는 경찰 강희식(옹성우)과 강남순을 포함한 3대 모녀의 공조 구도가 이야기 핵심이다. 

한국 콘텐츠서 마약은 아직까진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개봉한 지 20년도 넘은 영화 <친구> 속 주인공 준석(유오성)이 사시나무 떨듯 필로폰 중독자 연기를 보였을 땐 “마약 중독자는 진짜 저래?”라며 생소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당시만 해도 ‘마약 사업에 손댄 조직폭력배’가 간혹 등장하는 설화 수준에 어설픈 액션이 첨가된 조폭 영화 전성기였다.

그러다 2000년 초반부터 마약은 핵심 소재가 됐다. 2006년 개봉한 영화 <사생결단>은 마약 범죄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한국영화로 꼽힌다. 작품 속 필로폰 판매상인 이상도(류승범)는 마약계 거물 장철(이도경)을 쫓는 형사 도경장(황정민)과 상부상조하는 이른바 ‘뽕쟁이’의 전형이다.

이후 2010년 <아저씨>, 2012년 <범죄와의 전쟁>, 2018년 <독전> <마약왕>을 비롯해 지난 5월 <범죄도시3>까지 마약 소재 영화는 줄줄이 나와 흥행했다. <힘쎈여자 강남순> 등 안방극장도 마약 소재에 중독됐다.

22년 전 생소했던 유오성
흥행보증 수표 뽕 영화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시작으로 지난 9월27일 <최악의 악>, 지난 6일 <발레리나>, 7일 <힘쎈 여자 강남순>이 연달아 방영됐다. 한 달 새 선보인 국내 마약 관련 드라마만 3개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해마다 증가하는 마약 범죄 검거율처럼 마약 콘텐츠도 발맞춰 늘어났다.

검찰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국내 필로폰 제조기술자는 외국으로 도주했다. 이에 따라 한동안 국내 필로폰 밀조사례는 거의 적발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검찰이 조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9년에 필로폰 제조사범이 2건 5명, 2000년에 2건 5명, 2001년 1건 4명이 적발됐다. 특히 2001년 적발된 4명은 제조공장을 갖춘 밀조사범으로 경북 성주군 선남면 낙동강변 일대 가건물에서 10kg(추산량) 이상의 필로폰을 제조했다.

당시, 필로폰 완제품 0.6kg, 분말형태의 반제품 1kg, 액체 형태의 반제품 5kg 및 제조기구, 화공약품 등 17점을 압수했다.

2001년은 한국 마약 역사에 여러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UN이 지정한 세계마약퇴치의 날(6월26일)을 기념해 2001년부터 매년 3개월간 마약류 투약 자수기간을 처음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약 범죄 검거율 등이 공개됐다.

같은 해 8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친구>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실존했던 ‘마약왕’ 이황순의 동업자이자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생을 다뤘다. 실제로 부산 칠성파가 전국구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은 이황순과 함께한 필로폰 사업이다.

영화 속 차상곤(이재용)은 마약 판매 조직의 두목으로 나온다. 훗날 이황순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다. 2018년 개봉한 <마약왕>의 주인공 이두삼(송강호)의 실존인물이 이황순이라는 후문이다.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 인식은 보수적인 국민 정서가 만든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마약은 의외로 역사가 깊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필로폰 273.9kg이 압수돼 전년 대비 40.8%로 압수량이 감소했다. 2003년 들어 필로폰 제조사범은 1건 2명이 있다.

1996년 이후 주요 마약류 압수량은 연평균 82kg을 유지하다가 2001년에 462.3kg으로 2000년의 181.7kg에 대비 154.4%로 급증했다.

마약류 오남용 캠페인 코믹 활극?
한 달 새 마약 소재 드라마만 3편

2003년 주요 마약류 압수 실적은 총 170.9kg으로 전년 대비 37.6kg으로 감소했지만, 신종 마약이 폭증한 해다. 특히 필로폰은 64.7kg으로 전년 대비 75.7%가 증가했다. 대마초는 37.3kg으로 전년도 194.8kg에 비해 80.9%로 대폭 감소한 반면, 신종 마약류인 LSD는 900% 증가했다. 야바는 767%로 각각 급등했다.

신종 마약의 등장은 검거율을 치명적으로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먼저 기존 마약과 달리 탐지견에 적발되는 경우가 희박하다. 신종 마약 냄새에는 적응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항이나 항만서 검거하는 대부분은 사전첩보에 의해서다.

지난해 드라마 <수리남>서도 국정원 팀장 최창호(박해수)가 마약 조직 두목인 전요한(황정민)을 잡기 위해 강인구(하정우)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드라마는 콜롬비아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마약 밀매조직을 만든 한국인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대부분 제작진은 수사기관의 현실적 고증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보다 실제 마약사범을 검거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취재 중 만난 마약계 경찰들은 하나같이 “마약사범은 절대 믿지 말라”며 “수사에서 약에 취한 피의자들은 연기와 거짓말을 정말 많이 하는데, 마약을 끊은 마약사범은 제대로 본 적 없다”고 당부했다. 

서울에 모 경찰서 형사과 강력팀장은 “단순히 ‘어느 공장서 얼만큼의 마약을 제조한다’는 단순 제보만으로 마약 유통책을 향한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도 확인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따지고 피의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도 마약 수사에 대부분 어려움을 느낀다”며 “이미 전력이 있는 마약사범의 협조를 통해 수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마약사범 나이도 점점 어려지는 추세다. 그만큼 마약이 양성화됐다는 징조다. 2021년은 마약사범 검거 통계 공개 이후 처음으로 20대 마약사범이 30%를 넘었다. 해마다 상승세로 이어져 지난해 검거된 20대 마약사범은 31.6%(5804명)로 전년(5077명·31.4%)보다 소폭 상승했다. 

어려운 검거

경찰청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2700명으로, 지난해 1만2387명을 넘어서 역대 최다 규모다. 마약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격상하면서 콘텐츠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마약이 일상화됐다는 의미다. <힘쎈여자 강남순>이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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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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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