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 날뛰는’ 마약 드라마 현실판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0.23 11:59:43
  • 호수 14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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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하는 콘텐츠 안방 점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모순성, 부조리함을 느끼게 하는 역설적인 유머를 블랙코미디라고 한다. 마약 범죄자를 맨주먹으로 해결하려는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은 밝고 쾌활하지만, 동시에 씁쓸하다. 해마다 증가하는 마약 범죄 검거율과 안방을 점령한 마약 관련 드라마는 뼈아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이 지난 7일 첫 방송 이후 시청률 10%에 육박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괴력을 타고난 3대 모녀가 강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신종 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명서 알 수 있듯 2017년 방영된 <힘쎈여자 도봉순>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다. 

단골 소재

배우 이유미는 도봉순(박보영)의 6촌으로 부모를 찾으러 몽골서 날아온 괴력 소녀 강남순역을 맡았다. 국제 미아 강남순은 비행기 착륙 직전 문제가 발생하자 괴력을 이용해 사고를 막는 만화 같은 캐릭터다.

코믹 활극을 넘어 작품이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이목을 끈다. 포스터에 새겨진 문구에는 ‘나약한 놈들’의 ‘약’자에 강조 표시를 넣어 ‘(마)약’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마약류 오남용 캠페인을 벌이며 내세운 ‘나(마)약하지 않아’와 같은 맥락이다. 

초능력을 가진 강남순의 엄마 황금주(김정은)가 “더 이상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 아니야”라는 대사도 작품이 전하는 의도를 알 수 있다. 드라마 속 류시오(변우석)는 온라인 유통업체 대표이자 마약을 제조, 유통하는 악당이다. 이에 맞서는 경찰 강희식(옹성우)과 강남순을 포함한 3대 모녀의 공조 구도가 이야기 핵심이다. 

한국 콘텐츠서 마약은 아직까진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개봉한 지 20년도 넘은 영화 <친구> 속 주인공 준석(유오성)이 사시나무 떨듯 필로폰 중독자 연기를 보였을 땐 “마약 중독자는 진짜 저래?”라며 생소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당시만 해도 ‘마약 사업에 손댄 조직폭력배’가 간혹 등장하는 설화 수준에 어설픈 액션이 첨가된 조폭 영화 전성기였다.

그러다 2000년 초반부터 마약은 핵심 소재가 됐다. 2006년 개봉한 영화 <사생결단>은 마약 범죄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한국영화로 꼽힌다. 작품 속 필로폰 판매상인 이상도(류승범)는 마약계 거물 장철(이도경)을 쫓는 형사 도경장(황정민)과 상부상조하는 이른바 ‘뽕쟁이’의 전형이다.

이후 2010년 <아저씨>, 2012년 <범죄와의 전쟁>, 2018년 <독전> <마약왕>을 비롯해 지난 5월 <범죄도시3>까지 마약 소재 영화는 줄줄이 나와 흥행했다. <힘쎈여자 강남순> 등 안방극장도 마약 소재에 중독됐다.

22년 전 생소했던 유오성
흥행보증 수표 뽕 영화들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시작으로 지난 9월27일 <최악의 악>, 지난 6일 <발레리나>, 7일 <힘쎈 여자 강남순>이 연달아 방영됐다. 한 달 새 선보인 국내 마약 관련 드라마만 3개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해마다 증가하는 마약 범죄 검거율처럼 마약 콘텐츠도 발맞춰 늘어났다.

검찰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국내 필로폰 제조기술자는 외국으로 도주했다. 이에 따라 한동안 국내 필로폰 밀조사례는 거의 적발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검찰이 조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9년에 필로폰 제조사범이 2건 5명, 2000년에 2건 5명, 2001년 1건 4명이 적발됐다. 특히 2001년 적발된 4명은 제조공장을 갖춘 밀조사범으로 경북 성주군 선남면 낙동강변 일대 가건물에서 10kg(추산량) 이상의 필로폰을 제조했다.

당시, 필로폰 완제품 0.6kg, 분말형태의 반제품 1kg, 액체 형태의 반제품 5kg 및 제조기구, 화공약품 등 17점을 압수했다.

2001년은 한국 마약 역사에 여러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UN이 지정한 세계마약퇴치의 날(6월26일)을 기념해 2001년부터 매년 3개월간 마약류 투약 자수기간을 처음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약 범죄 검거율 등이 공개됐다.

같은 해 8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친구>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실존했던 ‘마약왕’ 이황순의 동업자이자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생을 다뤘다. 실제로 부산 칠성파가 전국구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은 이황순과 함께한 필로폰 사업이다.

영화 속 차상곤(이재용)은 마약 판매 조직의 두목으로 나온다. 훗날 이황순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다. 2018년 개봉한 <마약왕>의 주인공 이두삼(송강호)의 실존인물이 이황순이라는 후문이다.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 인식은 보수적인 국민 정서가 만든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마약은 의외로 역사가 깊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필로폰 273.9kg이 압수돼 전년 대비 40.8%로 압수량이 감소했다. 2003년 들어 필로폰 제조사범은 1건 2명이 있다.

1996년 이후 주요 마약류 압수량은 연평균 82kg을 유지하다가 2001년에 462.3kg으로 2000년의 181.7kg에 대비 154.4%로 급증했다.

마약류 오남용 캠페인 코믹 활극?
한 달 새 마약 소재 드라마만 3편

2003년 주요 마약류 압수 실적은 총 170.9kg으로 전년 대비 37.6kg으로 감소했지만, 신종 마약이 폭증한 해다. 특히 필로폰은 64.7kg으로 전년 대비 75.7%가 증가했다. 대마초는 37.3kg으로 전년도 194.8kg에 비해 80.9%로 대폭 감소한 반면, 신종 마약류인 LSD는 900% 증가했다. 야바는 767%로 각각 급등했다.

신종 마약의 등장은 검거율을 치명적으로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먼저 기존 마약과 달리 탐지견에 적발되는 경우가 희박하다. 신종 마약 냄새에는 적응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항이나 항만서 검거하는 대부분은 사전첩보에 의해서다.

지난해 드라마 <수리남>서도 국정원 팀장 최창호(박해수)가 마약 조직 두목인 전요한(황정민)을 잡기 위해 강인구(하정우)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드라마는 콜롬비아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마약 밀매조직을 만든 한국인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대부분 제작진은 수사기관의 현실적 고증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영화나 드라마보다 실제 마약사범을 검거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취재 중 만난 마약계 경찰들은 하나같이 “마약사범은 절대 믿지 말라”며 “수사에서 약에 취한 피의자들은 연기와 거짓말을 정말 많이 하는데, 마약을 끊은 마약사범은 제대로 본 적 없다”고 당부했다. 

서울에 모 경찰서 형사과 강력팀장은 “단순히 ‘어느 공장서 얼만큼의 마약을 제조한다’는 단순 제보만으로 마약 유통책을 향한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도 확인 절차를 통해 사실관계를 따지고 피의자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도 마약 수사에 대부분 어려움을 느낀다”며 “이미 전력이 있는 마약사범의 협조를 통해 수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마약사범 나이도 점점 어려지는 추세다. 그만큼 마약이 양성화됐다는 징조다. 2021년은 마약사범 검거 통계 공개 이후 처음으로 20대 마약사범이 30%를 넘었다. 해마다 상승세로 이어져 지난해 검거된 20대 마약사범은 31.6%(5804명)로 전년(5077명·31.4%)보다 소폭 상승했다. 

어려운 검거

경찰청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2700명으로, 지난해 1만2387명을 넘어서 역대 최다 규모다. 마약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격상하면서 콘텐츠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마약이 일상화됐다는 의미다. <힘쎈여자 강남순>이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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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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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