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걸리는 신종 마약 정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6.18 09:04:47
  • 호수 1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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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는 합성 대마 “검사해도 미검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소변 등 간이 검사로 검출이 되지 않는 신종 마약이 성행하고 있다. 일부의 경우 투약을 하더라도 검출이 되지 않아 단속이 어렵다는 것이다. 신종 마약 검출에 사용되는 ‘대사체 표준품’이 없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담당 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인력 부족으로 대사체 표준품 개발 등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과수가 파악한 신종 합성대마 500여종 중 검출 가능한 규모는 30여종으로 약 5%에 불과하다. 검출을 위해서는 ‘대사체 표준품’이 필요하다. 대사체란 마약이 몸 안에 들어가 분해되면 나오는 부산물로, 대사체 표준품은 이를 정리한 자료를 의미한다. 

국내서 생산되는 대사체 표준품이 없어 전량 미국 등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외국서도 생산되는 종류 자체가 적기 때문에 마약 검출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내서도 대사체 표준품을 자체 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담당 기관인 국과수는 인력 부족으로 대사체 표준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갈수록 진화

지난해 경찰은 연예인 마약 수사에 나섰지만, 검사 단계서부터 난항을 겪은 바 있다. 배우 고 이선균과 가수 권지용의 경우, 소변을 활용한 간이 시약 검사와 모발을 채취해 시행한 1차, 2차 정밀 감정서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마약 감정 결과가 투약 혐의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신종 마약인 합성 대마류는 소변, 모발 등으로도 검출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경우 고해상도질량분석기와 핵자기공명장치라는 고정밀 분석기를 활용하며 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2∼5주의 시간이 걸린다. 최근 국내 마약 동향을 보면, 기존에 마약류로 지정됐으나 국내 남용 사례가 거의 없던 케타민·코카인·엘에스디 등의 남용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 신종 마약인 합성대마류를 비롯해 옥시코돈·펜타닐 등의 남용 증가세도 두드러진다. 지난해에는 합성아편류와 신종 케타민류의 유입 역시 확대됐다. 신종 마약은 기존 검사 기법으로는 검출이 안 돼 투약하더라도 법망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국과수는 지난해 초 펴낸 <2023 마약류 감정백서>에서 “마약류 남용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이제까지와 차원이 다른 마약 문제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3년간 10억원을 투입해 신종마약 탐색 플랫폼을 개발하고 국내 마약류 모니터링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약 감정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과수 등에 따르면 마약 감정은 크게 간이검사와 정밀검사로 나뉜다. 간이검사는 경찰과 국과수서 모두 실시한다. 시료를 검사 키트에 넣어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은 동일하나 국과수에서는 장비를 이용해서 좀 더 정밀하게 측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간이검사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대마, 코카인, 아편류 등을 검출하는 데 효과적이다. 비용이 저렴하고 결과가 빨리 나온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감기약을 복용해도 필로폰이나 아편류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는 등 다소 부정확한 측면이 있다. 일부 마약류는 간이검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정밀검사는 약물 특성에 따라 ‘가스크로마토그래피 질량 분석법’과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 분석법’이 사용된다. 시료서 검사 대상 성분을 추출해 마약류에 해당하는 물질이 있는지 검증하는 작업이다. 약물의 계열을 알아낼 수 있는 간이검사와 달리 정밀검사는 약물명까지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고 장비에 의한 오차는 거의 없다는 게 국과수의 설명이다.

전자담배처럼 피우는 대마?
소변 검출 안 되는 물건 유통

검사 시료로는 기본적으로 채취·분석이 쉬운 소변이 널리 쓰이고 모발, 혈액 등도 사용된다. 소변 검사는 투약 후 3∼10일까지 마약이 검출되므로 비교적 최근에 투약한 것으로 의심될 때 주로 시행한다.


최근에는 마약 간이 검사기가 불법 유통되면서 마약 투약자들이 수사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텔레그램 마약 관련 채팅방서 한 판매자는 “현재 경찰서 사용 중인 간이 검사기를 개당 15만원에 판매한다”며 “간이 검사기 3개를 구입해 받은 직후, 사흘 후, 조사 직전 검사를 해 보라”고 권유했다. 다른 판매자는 “미리 검사해 보고 음성이 나올 때까지 수사기관 출석을 미루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온라인서 마약 간이 검사기가 거래되고 있어 수사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의료기기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된 검사기를 해외서 직접 구매하는 건 불법이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경찰에 납품되는 외국 제조사 A 제품은 국내서 의료기기로 분류돼있지만 개인에게는 판매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해외 직구로 구입하는 건 불법이지만 경찰 조사를 앞둔 이들 중 상당수는 해외 직구로 구입하거나 텔레그램 등을 통해 구한다고 한다.

해당 제품의 경우 소변서 마약을 검출하는 데 5분가량 소요되는데 정확도는 70∼8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양성이 나올 경우 출석을 여러 차례 미루면서 염색, 제모 등의 조치를 취한 후 경찰에 출석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간이 검사기를 통해 수사망을 피해 가는 수법이 퍼지면서 갈수록 수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간이 검사기는 변호인들이 제공하기도 한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간이 검사기로 미리 검사해 본 뒤 결과를 토대로 의뢰인과 수사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법무법인은 “자체 보유 중인 간이 검사기를 사용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홍보도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마약사범들이 마약 간이 검사기를 이용해 수사를 회피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는 “검사기가 수사 기피 용도로 악용되는 걸 막을 수 있도록 판매 및 유통을 규제하며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으로 팔리는 ‘검사 키트’
개당 15만원 거래···악용 우려

정부는 간이 검사기 악용을 막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조 목적에 따라 의료기기 여부를 판단하다 보니 수사용 검사기가 의료기기로 분류되지 않고 거꾸로 수사 기피용으로 사용되는 실정”이라며 “법을 개정해 의료 목적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경우 의료기기로 분류해 유통을 통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 마약 판매상은 ‘소변 검출이 안 되는 마약’을 홍보하고 있다. 최근 메스암페타민, 케타민 등 여러 마약을 합성하는 합성마약류가 늘었고, 신종 마약 출현 기간도 6개월 이내로 짧아졌다.

지난해 11월 소변 등 간이 검사로는 검출이 안 되는 태국산 신종 마약 ‘크라톰’을 상습 투약하고 판매한 외국인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서해양경찰청은 지난해 3월 서남해역 일원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마약을 투약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해경은 8개월 동안 수사에 나서 외국인 14명을 붙잡아 이 가운데 A씨 등 13명을 마약류 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말린 크라톰잎을 향신료와 섞어 국제택배를 이용해 국내에 반입했다.

국과수 등에 따르면 국내서 관리하는 마약은 약 2000종이다. 수사망을 피할 목적으로 기존 마약류서 화학구조를 일부 변형해 유사한 효과를 내는 신종 마약을 임시마약류로 지정하며, 매년 50개가량이 발견된다.

신종 합성 대마의 경우, 단속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마약 확산의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전자담배로 투약할 수 있는 액상 형태로 유통돼 투약 방법이 쉽고 외관상 티가 나지 않아 확산 속도가 빠르다. 또, 합성 대마는 일반 대마보다 환각효과가 5배 이상 강해 더 많은 사람이 합성 대마에 손을 대고 있다.

실제로 2022년 9월 광주본부세관은 전자담배로 둔갑시킨 시가 10억원 상당의 합성대마를 유통시킨 동남아인 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광주세관은 그해 8월에도 3억7000억원 상당의 합성대마를 국내에 유통한 내국인 2명을 검거한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합성 대마는 심장 부정맥을 일으켜 돌연사할 가능성을 높인다.

약 2000종

한편, 국과수가 신종 마약 투약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해당 마약류가 법률에 명시돼있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국과수가 신종 검사기법 연구개발 등에 힘을 쏟는 이유다.

국과수 측은 “마약 문제는 메트암페타민과 대마 남용 시장이 더욱 커지고, 케타민, 코카인, 엘에스디의 확산과 신종 마약류 등장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합성 아편류의 등장으로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마약 문제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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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