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쿠탄 마약왕’ 관리하는 국정원, 왜?

“범죄자는 범죄자가 잘 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가 국가정보원의 관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송씨가 마약 정보원인 이른바 ‘야당’이었다는 게 골자다. 국정원이 해외 첩보망을 구성하려 정보원과 미팅을 잡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많은 양의 마약을 유통하는 만큼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마약 정보원들은 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게 외교·법무부와 경찰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들은 지난해 필리핀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사유는 마약 관련 해외 첩보망 구성. 이들은 현지에 있는 휴민트(인적 정보)와 마약계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대부분 교도소 내부에 있는 범죄자다. 이 중에는 ‘비쿠탄 마약왕’ 송모씨와 보이스피싱 1세대이자 경찰 출신 ‘김미영 팀장’ 박모씨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미영 팀장’
직접 면담 진행

국정원 해외 파트 직원들은 간첩·마약 조사 관련 해외 첩보망 구성을 위해 자주 동남아를 방문한다. 대사관 소속 겸 외교관 신분인 국정원 직원이 조사하는 경우가 있으나 법률적 한계로 인해 국내 직원들이 파견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 마약 조사관들은 지난해 네 번 이상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해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송씨, 박씨의 마약 유통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송씨와 박씨와는 직접 면담을 진행했다.

필리핀 이민국 수용소 비쿠탄을 찾은 마약 조사관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송씨와 박씨에게 “마약 유통 좀 그만해라. 다른 애들과 루트는 어디냐? 누가 제일 많이 관리하느냐”고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쿠탄에 있는 한 재소자는 “지난해 4월과 5월에 왔었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고 갔다”며 “이미 비쿠탄 수용소 내부에 있는 한국인들은 다 아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마약 조사관과 동석했던 한 재소자도 “수사기관 관계자가 항상 동석하지는 않는다. 필리핀 대부분의 감옥이 그런 곳이다. 박씨와 송씨가 해당 조사관들과 지속적으로 감옥 내에서 통화하고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주장했다.

마약 조사관들은 송씨와 박씨 조직이 이감된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과 비콜 교도소까지 찾아갔다. 지난해 말까지 접촉을 이어간 것이다.

이감된 인물은 박씨와 송씨를 포함해 이들이 관리하던 보이스피싱 관리책 2명으로 총 4명이다. 이들은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보이스피싱 및 마약 공급·유통책을 모집했다. 이 조직은 송씨 주도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박씨를 영입한 이유로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마약범죄 조직의 고질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약 조사관들이 이들을 찾아간 이유는 필리핀 민다나오 지방이 ‘제2의 골든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1의 골든트라이앵글은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의 접경지역을 말한다. 특히 미얀마 동부 살윈강 동안의 산주 일대서 연간 약 100만t의 아편이 채취되고 아편서 생산된 헤로인이 한때 미국에 유통되는 헤로인의 60%에 달했을 정도다.

마약 조사관 수차례 필리핀 방문 접촉 확인
불법 아닌데…마약범 활용 정보 수집 적절?


아시아 지역에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생산의 40%를 유통하고 있다. 메스암페타민 계열의 야바나 MDMA 같은 합성마약도 생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인근 접경지대인 태국을 통해 탈북하려는 탈북민들의 탈북 경로로도 종종 이용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일부 탈북민이 마약 노동자로 활동하면서 ‘북한산 마약’을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필리핀 남동부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접경지역인 민다나오가 뜨기 시작했다. 이곳은 각각 흑색·적색경보 지역으로 나뉜다. 흑색·적색경보 지역은 여행금지와 출국 권고 대상 구역으로 흑색경보 지역을 정부의 허가 없이 방문한다면 국내 여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국정원 마약 조사관들은 마닐라를 포함해 민다나오 지역 휴민트와 마약 정보원인 이른바 ‘야당’과 여러 차례 접촉한다. 송씨와 박씨도 정보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야당 출신 인사들의 설명이다.

한 마약 정보원은 “동남아서 한국 유통·공급책은 타국보다 귀하다. 한국 마약값이 동남아보다 10배 이상 비싼 만큼 한국 유통책을 활용하면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당국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만큼 우리도 용돈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료’를 받는다. 많은 양의 마약을 유통하고 있는 한국인이 정보기관과 여러 차례 접촉했다면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유통책과 조직은 돈을 벌고 국정원은 첩보 보고서를 작성하는 형식이다. 그 조직을 잡아내는 건 수사기관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복수의 마약 정보원들은 국정원과 야당 간 공조가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원조 야당은 소매치기 조직의 구역관리와 라이벌 소매치기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지하철 수비대에게 수사 정보를 제공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불법과 합법
애매한 선상

한 마약 조사관 출신 관계자는 “드라마처럼 직접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불법과 합법의 애매한 선에 있고, 총을 들고 다니다가 발각되는 순간 외교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정원은 수사 권한이 없기에 예전부터 개입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마약 조사관들이 송씨와 박씨를 활용하는 이유에 관해 ‘큰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다나오 지역의 한 인사는 “필리핀산 마약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지역은 마닐라 지역과는 다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슬람 과격단체가 테러 자금을 만들기 위해 필로폰 제조 판매까지 했는데 그들의 교관이 북한군이었고, 제조 기술자까지 지원해서 상당 부분의 마약이 퀄리티가 좋았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사실관계 확인 자체를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마약 정보원의 허위 정보에 따른 검찰과 경찰 수사의 문제가 마약사범 봐주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경기도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50대 A씨는 검찰에 의해 억울하게 구속된 바 있다. 지난해 5월, A씨는 자신의 커피숍서 한 택배 상자를 받았다. 발신한 곳은 처음 보는 필리핀 주소지. 택배를 받은 지 30분 뒤, 사복 경찰이 들이닥쳤다.

택배 상자 안에는 필로폰 약 90g이 들어있었다.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지검은 A씨를 필로폰 밀매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필리핀서 보낸 “부탁하신 것 보낸다”는 문자메시지가 정황 증거로 인정된 것이다.

“국익 위한
통상 활동”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 직원 B씨는 친분이 깊던 손모씨에게 실적을 요청했다. 손씨는 국정원서 활동비를 받고 정보원으로 일해온 마약 전과자다. 손씨는 B씨의 요청에 ‘마약사범 근황 파일’을 입수한 후, 여기에서 A씨의 개인 정보를 얻었다.

검찰에 따르면 손씨는 필리핀 마약상에게 A씨의 커피숍 주소지로 필로폰을 보내달라고 연락했다. 필리핀 마약상은 피규어 2개에 필로폰을 나눠 담아 국제우편으로 보낸 뒤, 손씨에게 송장번호를 보냈다. 손씨는 필리핀 마약상이 찍어 보낸 송장 사진을 국정원에 전달했다.


국정원은 해당 첩보를 인천세관에 넘겼고 손씨는 휴대전화 압수수색에 대비해 A씨 앞으로 “부탁하신 것 잘 처리했다”는 문자까지 보내두게 했다.

사건을 들여다본 용산경찰서가 서부지검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서부지검은 마약 배달 전, 피해자 주소를 제3자와 주고받은 거짓 제보 증거를 찾아내 손씨를 무고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세 달 뒤 인천지검은 A씨를 석방했다. 허위 제보자이자 국정원 마약 정보원이던 손씨가 서울서부지검의 수사 과정서 체포된 것이다. 마약 정보원들은 정보료와 ‘공적’이라는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위 피고인의 협조가 다른 마약 수사에 도움이 됐다’는 내용의 수사 공적서를 쌓으면 재판서 감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손씨의 2014년 10월 광주고등법원 2심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국가정보원의 정보원으로서 활동한 전력이 있고 중대한 마약 수사에 협조한 공적이 있는 점(중략) 등의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들에 더 한다”고 판시돼있다.

국정원이 마약 정보원들에게 ‘실적’을 요구하는 상황도 적지 않다. 특히 허위 사실이 포함된 정보일 경우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긴다. 범죄자를 활용한 정보 수집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거센 이유다.

‘야당’ 공조 체계 40년 “더 큰 범죄 소탕 목적”
마약 피해 지속 불구 법무부 여전한 소극 행정

송씨와 박씨에 관한 국내 송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필리핀은 형사사법공조조약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한국으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 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에 한해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2년 전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 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법무부는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에 관해 송환신청서를 보내지 않기도 했다.

범죄인 인도는 국제형사사법 공조 활동 가운데 가장 고전적 수단이다. 이는 관할권으로부터 도주한 범죄인은 범죄인 소재지국보다는 범죄 행위지국서 유효·적절하게 재판 또는 처벌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다만 범죄인 인도는 국제법상 확립된 제도가 아니다.

국제법상 의무가 아니므로 조약상 의무가 없는 한 타국의 인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도 국제법 위반은 아니기에 각국은 인도 여부를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한국 범죄인 인도법은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도 상호주의를 적용해 인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도 대상이 되는 범죄는 원칙적으로 청구국 영역서 발생한 범죄다. 영해나 영공서 저지른 범죄는 물론, 공해상 청구국의 선박이나 항공기서 벌인 범죄도 포함한다.

범죄인은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거나 유죄판결을 받고 피청구국으로 도주한 자를 말한다. 인도 대상 범죄인은 주로 청구국 국민과 제3국인이다. 인도가 허용되는 범죄는 청구국과 피청구국의 법률로 모두 처벌 가능한 범죄여야 한다.

“경찰이
못하니…”

인도 요청을 거절하는 사유는 의무적 거절 사유와 재량적 거절 사유로 나눌 수 있다. 피청구국서 청구 범죄에 대해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도 의무적 거절 사유다. 박씨와 송씨의 경우 현지서 재판을 받고 있어 의무적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보이스피싱 혐의가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