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범죄자 놔두는 한국 법무부 필리핀 전 법무수석의 일침

“마약왕? 보내달라고 해야 보내주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국내 마약은 대부분 동남아로부터 유통된다. 중국과 한국 범죄자들이 감옥서 마약을 유통하고 있을 정도로 관리·감독이 허술하다. 법무부는 필리핀 감옥에 있는 1급 범죄자 송환과 관련해 원론적인 입장만 밝혀왔다. 사실상 그들의 범죄 행위를 방치해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정부(법무부)의 대처가 미온적이었습니다. 한국 범죄자와 관련해 적극적인 송환 요청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바도르 파넬로 전 필리핀 대통령실 법무수석 겸 대변인이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한 말이다. 그는 한국 법무부가 마약 범죄를 해결할 의지가 있냐고 되묻기도 했다. 법무부의 소극 행정이 마약 범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 넘어선
강경 집행

파넬로 전 수석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오른팔’로 알려져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마약 범죄 소탕 작전의 판을 함께 계획했다고 알려졌다.

최근 필리핀 마닐라 모처서 <일요시사>와 만난 파넬로 전 수석은 “각 정부 기관서 비리 의심 대상자 리스트를 만들었었다. 명단에는 일반 공무원을 포함해 시장, 읍장, 법원 직원, 검사까지 포함됐다. 마약 연루 공무원만 1만명에 달해 국가 위기 문제였다. 가만히 놔두면 사회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판단됐다”고 말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필리핀 정부는 같은 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집권 초부터 걸었던 강력한 드라이브는 역풍을 맞았다. 민간인을 포함한 필리핀 인구 수천명이 사망했다. ‘인권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들은 성명을 통해 “필리핀 정부의 행동이 합법적 법 집행이라고 볼 수 없다. 국가 정책에 따라 민간인을 향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공격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필리핀 공식 자료에는 2016년 7월 이후 20만건 이상 마약 단속 작전서 최소 6200여명이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ICC는 사망자 수를 1만2000~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ICC 수사관들의 정보와 증거 수집을 거부했고 입국까지 금지하며 갈등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6년간 이어진 마약과의 전쟁은 국제사회의 지탄으로 이어졌다. 법 절차를 무시한 강경 진압, 체포보다 사살에 방점이 찍힌 검거 작전, 아동 등의 애꿎은 희생과 평생 완치되기 어려운 후유증 등은 인권단체의 표적이 됐다.

수백명의 무고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은 여전히 마약 범죄가 판을 치고 있다. 필리핀 인권단체 관계자는 “두테르테 정권이 실질적이고 영향력 있는 마약 조직을 상대로 법을 집행하지 않은 까닭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마약 범죄와 필리핀 정치권은 끊을 수 없는 돈과 인맥으로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이에 관해 “무고한 죽음이 있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마약 범죄를 청산하고 싶었고 성과가 없었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서 마약을 소지한 사람과 불법총기를 소지한 사람 중에 누가 더 위험하냐고 물었을 때 필리핀 사람 대부분은 마약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필리핀에서는 마약 5g 이상 소지한 경우 20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살인죄와 형량이 같은 수준이다.

‘두테르테 오른팔’ 마약과의 전쟁 기획
한국 상황 심각···강도 높은 대처 필요”


마약 5g 소지인 경우 12년~20년의 징역형과 30만~40만페소의 벌금이 부과된다. 마약 5g 이상 10g 미만 소지인 경우 20년~무기징역과 40만~50만페소의 벌금이 부과되며 보석도 금지된다. 마약 10g 이상 소지하다 적발되면 무기징역 처벌을 받게 된다.

처벌 수위가 세지만 마약과 정치권의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유는 뒷돈과 비자금에 있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필리핀서 굉장히 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마약 유통과 묵인을 위한 뇌물공여가 손꼽힌다. 실제 법무부 장관이 마약 사건에도 연루됐을 만큼 흔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정부가 지난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당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심심찮게 언급되곤 했다. 마약청정국 지위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중앙지검은 특별수사팀까지 꾸렸다. 검찰 안팎에서는 마약 범죄를 청산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도 좋지만 법무부가 유관기관과 협조해 피해자를 위한 정책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국에 마약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마약 수요는 폭증하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마약 밀수 적발량은 신기록이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325건, 329㎏ 상당의 마약류가 국경 반입 단계서 걸렸다. 적발 건수는 하루 평균 2건에 가깝다. 특히 마약 밀수 적발량은 1년 전보다 39% 늘어났다.

골든타임
놓치면 끝

이는 상반기 기준 최대치로 50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건수는 줄고, 중량은 늘어나면서 건당 적발량(1015g)은 1㎏을 넘어섰다. 한국이 ‘유통 경유지’가 아닌 고수익 판매처로 전락했다는 게 사정기관의 판단이다. 해외보다 훨씬 높은 마약 가격, 지속해서 증가하는 마약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로폰 1g당 거래가격(지난해 기준)은 한국이 450달러로 미국(44달러), 태국(13달러)보다 훨씬 비쌌다.

적발된 마약의 산지는 미국·태국이 24%(중량 기준), 라오스가 12%, 베트남이 10%를 차지했다. 특히 동남아 국가(아세안 10개국)서의 밀수 적발량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78㎏서 올해 상반기 169㎏으로 115% 급증했다. 전체 적발량 대비 비중도 51%로 절반을 넘겼다.

이는 태국과의 합동 단속 작전이 이뤄진 데다 동남아서의 필로폰(야바)·케타민·합성대마 등 마약 공급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파넬로 전 수석은 “통계와 언론 보도를 통해서 한국의 상황을 접했지만 위험하다”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걷잡을 수 없이 마약이 판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은 감옥서 자유롭게 핸드폰을 쓰고 있다. 필리핀 문틴루파에 위치한 뉴빌리비드(NBP) 교도소가 대표적이다. 뒷돈과 뇌물이 판치는 구조상 옥중 마약 유통은 일상이 됐다.


파넬로 전 수석은 감옥서 마약을 유통할 수 있는 곳이 NBP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쿠탄과 마닐라시티 감옥뿐 아니라 필리핀의 어느 감옥도 옥중 마약 유통서 자유롭지 않다”며 “마피아와 중국 흑사회의 마약 범죄 행위는 필리핀의 오랜 고질적 문제”라고 말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옥중서 마약을 유통하는 이들을 한국으로 송환해야 제2의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필리핀은 형사사법공조조약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한국으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에 한해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2년 전과 같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 탓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법무부는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에 관해 송환신청서도 보내지 않은 바 있다.

여전히 감옥서 국내 들어오는 마약 컨트롤?
송환 안 하나 못 하나 “한국 정부 소극적”


파넬로 전 수석은 “한국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진즉에 송환됐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과는 대조된다. 해결 의지가 있는 게 맞나. 소극적인 대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범죄인 인도는 국제형사사법 공조 활동 가운데 가장 고전적 수단이다. 이는 관할권으로부터 도주한 범죄인은 범죄인 소재지국보다는 범죄 행위지국서 유효·적절하게 재판 또는 처벌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다만 범죄인 인도는 국제법상 확립된 제도가 아니다.

국제법상 의무가 아니므로 조약상 의무가 없는 한 타국의 인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도 국제법 위반은 아니기에 각국은 인도 여부를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한국 범죄인 인도법은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도 상호주의를 적용해 인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도 대상이 되는 범죄는 원칙적으로 청구국 영역서 발생한 범죄다. 영해나 영공서 저지른 범죄는 물론 공해상 청구국의 선박이나 항공기서 벌인 범죄도 포함한다.

범죄인은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거나 유죄 판결을 받고 피청구국으로 도주한 자를 말한다. 인도 대상 범죄인은 주로 청구국 국민과 제3국인이다. 인도가 허용되는 범죄는 청구국과 피청구국의 법률로 모두 처벌 가능한 범죄여야 한다.

인도 요청을 거절하는 사유는 의무적 거절 사유와 재량적 거절 사유로 나눌 수 있다. 피청구국서 청구 범죄에 대해 이미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도 의무적 거절 사유다.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은 이미 확정 판결을 받았기에 의무적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살인이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국제형사과서 몸담았던 한 변호사는 “이민법 위반(체류기한 위반, 밀입국 등)을 적용해 강제 추방시키는 방안이 있지만 위반 사항이 없다면, 국내서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것만으로 추방 결정은 어렵다. 통상 경찰이 요청하면 강제 추방을 해주는데, 결정은 필리핀 이민국 재량에 달려 있다”며 “박왕열 케이스 같은 경우 경찰이 요청한 이후 수년간 변한 게 없으면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인 인도를 담당했던 한 검사도 “100% 상대국의 판단에 따르기에 한국 정부가 설득을 해야 한다. 고소와 고발 사건 등 자잘한 내용이 아니면 공조 요청을 해서 데려오는 경우도 많다”며 “상대국서 범죄인에게 뒷돈을 받고 풀어준다 해도 강제하거나, 이의제기할 수는 없기에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말로만 송환
립서비스

이어 “범죄인 인도조약은 10년이 걸려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한국 법무부와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압박을 넣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예시로 A씨가 너희 나라에도 피해를 주고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넬로 전 수석은 “재량이라고 하지만 한국인 범죄자들이 필리핀에 피해를 주고 있는 정도가 심각하다면 안 보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마닐라 = 오혁진 기자 <hounder@ilyosisa.co.kr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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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