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범죄자 놔두는 한국 법무부 필리핀 전 법무수석의 일침

“마약왕? 보내달라고 해야 보내주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국내 마약은 대부분 동남아로부터 유통된다. 중국과 한국 범죄자들이 감옥서 마약을 유통하고 있을 정도로 관리·감독이 허술하다. 법무부는 필리핀 감옥에 있는 1급 범죄자 송환과 관련해 원론적인 입장만 밝혀왔다. 사실상 그들의 범죄 행위를 방치해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정부(법무부)의 대처가 미온적이었습니다. 한국 범죄자와 관련해 적극적인 송환 요청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바도르 파넬로 전 필리핀 대통령실 법무수석 겸 대변인이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한 말이다. 그는 한국 법무부가 마약 범죄를 해결할 의지가 있냐고 되묻기도 했다. 법무부의 소극 행정이 마약 범죄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 넘어선
강경 집행

파넬로 전 수석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오른팔’로 알려져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16년 7월부터 마약 범죄 소탕 작전의 판을 함께 계획했다고 알려졌다.

최근 필리핀 마닐라 모처서 <일요시사>와 만난 파넬로 전 수석은 “각 정부 기관서 비리 의심 대상자 리스트를 만들었었다. 명단에는 일반 공무원을 포함해 시장, 읍장, 법원 직원, 검사까지 포함됐다. 마약 연루 공무원만 1만명에 달해 국가 위기 문제였다. 가만히 놔두면 사회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판단됐다”고 말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필리핀 정부는 같은 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집권 초부터 걸었던 강력한 드라이브는 역풍을 맞았다. 민간인을 포함한 필리핀 인구 수천명이 사망했다. ‘인권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 판사들은 성명을 통해 “필리핀 정부의 행동이 합법적 법 집행이라고 볼 수 없다. 국가 정책에 따라 민간인을 향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공격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필리핀 공식 자료에는 2016년 7월 이후 20만건 이상 마약 단속 작전서 최소 6200여명이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ICC는 사망자 수를 1만2000~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ICC 수사관들의 정보와 증거 수집을 거부했고 입국까지 금지하며 갈등을 빚었다”고 주장했다.

6년간 이어진 마약과의 전쟁은 국제사회의 지탄으로 이어졌다. 법 절차를 무시한 강경 진압, 체포보다 사살에 방점이 찍힌 검거 작전, 아동 등의 애꿎은 희생과 평생 완치되기 어려운 후유증 등은 인권단체의 표적이 됐다.

수백명의 무고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은 여전히 마약 범죄가 판을 치고 있다. 필리핀 인권단체 관계자는 “두테르테 정권이 실질적이고 영향력 있는 마약 조직을 상대로 법을 집행하지 않은 까닭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마약 범죄와 필리핀 정치권은 끊을 수 없는 돈과 인맥으로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이에 관해 “무고한 죽음이 있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마약 범죄를 청산하고 싶었고 성과가 없었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서 마약을 소지한 사람과 불법총기를 소지한 사람 중에 누가 더 위험하냐고 물었을 때 필리핀 사람 대부분은 마약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필리핀에서는 마약 5g 이상 소지한 경우 20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살인죄와 형량이 같은 수준이다.

‘두테르테 오른팔’ 마약과의 전쟁 기획
한국 상황 심각···강도 높은 대처 필요”


마약 5g 소지인 경우 12년~20년의 징역형과 30만~40만페소의 벌금이 부과된다. 마약 5g 이상 10g 미만 소지인 경우 20년~무기징역과 40만~50만페소의 벌금이 부과되며 보석도 금지된다. 마약 10g 이상 소지하다 적발되면 무기징역 처벌을 받게 된다.

처벌 수위가 세지만 마약과 정치권의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유는 뒷돈과 비자금에 있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필리핀서 굉장히 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마약 유통과 묵인을 위한 뇌물공여가 손꼽힌다. 실제 법무부 장관이 마약 사건에도 연루됐을 만큼 흔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윤석열정부가 지난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당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심심찮게 언급되곤 했다. 마약청정국 지위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중앙지검은 특별수사팀까지 꾸렸다. 검찰 안팎에서는 마약 범죄를 청산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도 좋지만 법무부가 유관기관과 협조해 피해자를 위한 정책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국에 마약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마약 수요는 폭증하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마약 밀수 적발량은 신기록이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325건, 329㎏ 상당의 마약류가 국경 반입 단계서 걸렸다. 적발 건수는 하루 평균 2건에 가깝다. 특히 마약 밀수 적발량은 1년 전보다 39% 늘어났다.

골든타임
놓치면 끝

이는 상반기 기준 최대치로 505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건수는 줄고, 중량은 늘어나면서 건당 적발량(1015g)은 1㎏을 넘어섰다. 한국이 ‘유통 경유지’가 아닌 고수익 판매처로 전락했다는 게 사정기관의 판단이다. 해외보다 훨씬 높은 마약 가격, 지속해서 증가하는 마약 수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로폰 1g당 거래가격(지난해 기준)은 한국이 450달러로 미국(44달러), 태국(13달러)보다 훨씬 비쌌다.

적발된 마약의 산지는 미국·태국이 24%(중량 기준), 라오스가 12%, 베트남이 10%를 차지했다. 특히 동남아 국가(아세안 10개국)서의 밀수 적발량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78㎏서 올해 상반기 169㎏으로 115% 급증했다. 전체 적발량 대비 비중도 51%로 절반을 넘겼다.

이는 태국과의 합동 단속 작전이 이뤄진 데다 동남아서의 필로폰(야바)·케타민·합성대마 등 마약 공급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파넬로 전 수석은 “통계와 언론 보도를 통해서 한국의 상황을 접했지만 위험하다”며 “골든타임을 놓치면 걷잡을 수 없이 마약이 판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은 감옥서 자유롭게 핸드폰을 쓰고 있다. 필리핀 문틴루파에 위치한 뉴빌리비드(NBP) 교도소가 대표적이다. 뒷돈과 뇌물이 판치는 구조상 옥중 마약 유통은 일상이 됐다.


파넬로 전 수석은 감옥서 마약을 유통할 수 있는 곳이 NBP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쿠탄과 마닐라시티 감옥뿐 아니라 필리핀의 어느 감옥도 옥중 마약 유통서 자유롭지 않다”며 “마피아와 중국 흑사회의 마약 범죄 행위는 필리핀의 오랜 고질적 문제”라고 말했다.

파넬로 전 수석은 “옥중서 마약을 유통하는 이들을 한국으로 송환해야 제2의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필리핀은 형사사법공조조약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한국으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에 한해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2년 전과 같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 탓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법무부는 일부 한국인 범죄자들에 관해 송환신청서도 보내지 않은 바 있다.

여전히 감옥서 국내 들어오는 마약 컨트롤?
송환 안 하나 못 하나 “한국 정부 소극적”


파넬로 전 수석은 “한국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진즉에 송환됐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과는 대조된다. 해결 의지가 있는 게 맞나. 소극적인 대처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범죄인 인도는 국제형사사법 공조 활동 가운데 가장 고전적 수단이다. 이는 관할권으로부터 도주한 범죄인은 범죄인 소재지국보다는 범죄 행위지국서 유효·적절하게 재판 또는 처벌할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다만 범죄인 인도는 국제법상 확립된 제도가 아니다.

국제법상 의무가 아니므로 조약상 의무가 없는 한 타국의 인도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도 국제법 위반은 아니기에 각국은 인도 여부를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한국 범죄인 인도법은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도 상호주의를 적용해 인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도 대상이 되는 범죄는 원칙적으로 청구국 영역서 발생한 범죄다. 영해나 영공서 저지른 범죄는 물론 공해상 청구국의 선박이나 항공기서 벌인 범죄도 포함한다.

범죄인은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거나 유죄 판결을 받고 피청구국으로 도주한 자를 말한다. 인도 대상 범죄인은 주로 청구국 국민과 제3국인이다. 인도가 허용되는 범죄는 청구국과 피청구국의 법률로 모두 처벌 가능한 범죄여야 한다.

인도 요청을 거절하는 사유는 의무적 거절 사유와 재량적 거절 사유로 나눌 수 있다. 피청구국서 청구 범죄에 대해 이미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도 의무적 거절 사유다.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은 이미 확정 판결을 받았기에 의무적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법무부가 살인이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국제형사과서 몸담았던 한 변호사는 “이민법 위반(체류기한 위반, 밀입국 등)을 적용해 강제 추방시키는 방안이 있지만 위반 사항이 없다면, 국내서 범죄 혐의가 있다는 것만으로 추방 결정은 어렵다. 통상 경찰이 요청하면 강제 추방을 해주는데, 결정은 필리핀 이민국 재량에 달려 있다”며 “박왕열 케이스 같은 경우 경찰이 요청한 이후 수년간 변한 게 없으면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인 인도를 담당했던 한 검사도 “100% 상대국의 판단에 따르기에 한국 정부가 설득을 해야 한다. 고소와 고발 사건 등 자잘한 내용이 아니면 공조 요청을 해서 데려오는 경우도 많다”며 “상대국서 범죄인에게 뒷돈을 받고 풀어준다 해도 강제하거나, 이의제기할 수는 없기에 외교적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말로만 송환
립서비스

이어 “범죄인 인도조약은 10년이 걸려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결국 한국 법무부와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압박을 넣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예시로 A씨가 너희 나라에도 피해를 주고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넬로 전 수석은 “재량이라고 하지만 한국인 범죄자들이 필리핀에 피해를 주고 있는 정도가 심각하다면 안 보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마닐라 = 오혁진 기자 <hounder@ilyosisa.co.kr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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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