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현지 취재> 국내 유입 루트 ‘마약 성지’를 가다

코리아타운 슬럼가서 퍼지는 ‘샤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내 마약은 대부분 동남아서 유통된다. 최악의 생산지대를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접경지역에 한정됐던 영역은 캄보디아와 필리핀, 베트남 등지로까지 넓혀졌다. 필리핀 슬럼가와 코리아타운에까지 퍼져 일반인이 순식간에 유통책과 투약자가 될 수 있는 ‘셋업 범죄’도 심각하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말부터 필리핀 현지 마약 사건과 범죄인 인도조약 문제, 유명 한국인 범죄자들의 상황을 들여다봤다.

필리핀 코리아타운은 여러 곳에 있다. 정부 차원서 공식적으로 지정된 곳은 한 곳이지만 수도인 마닐라 안에 마카티, 말라테, 클락 앙헬레스 등 번화가에 코리아타운이 몰려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극빈층 수십만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필로폰의 일종인 ‘샤부(Shabu)’라는 각성제를 판매하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들마저 살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 소비·판매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살기 위한
수단으로

필리핀은 연간 약 500t의 필로폰과 1500t의 헤로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2016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지역 경찰과 마약 조직의 유착으로 제대로 규제되지 않았다. 헤르난디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취임 후 마약 조직과 연루된 혐의로 체포된 경찰 고위직만 수십명에 달한다.

이들 중 일부는 경찰서 내에서 마약을 판매하기도 했다.

실제 필리핀 국가 경찰은 지난해 말 마닐라 톤도서 67억페소(약 1632억원) 상당의 필로폰 990kg을 압수했다. 수사 과정서 사건에 연루된 마약 단속반 소속 정보요원의 개인 소지품, 신분증 등도 발견됐다. 이 사건은 최근 필리핀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 양 중 ‘역대급’으로 꼽힌다.

당시 경찰은 마약 구매자로 위장해 판매자와 거래를 시도하는 수법으로 범인에게 접근해 대량의 마약을 숨겨둔 건물을 습격했다. 경찰은 현장서 50세 남성을 체포하고, 현장에 남겨진 공범의 신분증 등을 발견했다.

아주린 주니어 필리핀 경찰청장은 당시 “더 많은 경찰관이 마약 거래에 연루돼있으며, 이번에 적발된 경찰관은 ‘작은 선수’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부패 행위를 저지른 경찰관은 공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며, 필리핀 경찰은 직급을 막론하고 어떠한 잘못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벤허 아발로스 내무장관은 지난달 이와 관련해 “50명의 용의자 중 48명이 CCTV 영상에 등장했으며, 추가로 2명의 경찰관이 공모 혐의로 기소됐다”고 말했다.

또 “이들을 상대로 국가경찰위원회가 형사소송 외에도 행정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행정소송서 공식적으로 기소될 수 있는 혐의에는 중대한 위법 행위와 중대한 직무태만이 포함되고, 유죄가 입증되면 해임, 수당 몰수, 공직 자격 박탈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필리핀 고위직 경찰 간부가 마약 매매에 연루된 경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2019년에도 필리핀 국가 경찰국장이었던 오스카 알바얄데 장군이 100kg이 넘는 필로폰을 판매한 경찰관들을 보호했다는 혐의로 사임했다.

법무부는 그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건을 취하했다. 필리핀 경찰 관계자는 “필리핀서 1년에 발견되는 필로폰만 1t이 넘는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필로폰은 더 많다. 발견되지 않은 마약 중 일부가 슬럼가나 번화가로 뿌려진다”고 주장했다.

1년에 필로폰·헤로인 500~1000t씩 생산 전 세계로
‘골든 트라이앵글’ 핵심 지대…“골든타임 놓쳤다”

필리핀 경찰이 필로폰을 압수한 지역 톤도는 극빈층이 밀집된 ‘슬럼가’로 알려져 있다. 일부 NGO 단체가 꾸준히 봉사활동을 할 정도다. 슬럼가 아이들은 마닐라서도 손꼽히는 부촌인 보니파시오 글로벌시티와 마카티의 고층 빌딩을 보고 자란다.

한 필리핀 교민 단체 관계자는 “한국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성공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필리핀 슬럼가 아이들은 마약 유통 방법이나 인신·성매매를 배운다”며 “손쉽게 돈 버는 방법으로 인식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톤도를 포함한 슬럼가서 자란 아이들은 각성제(필로폰의 한 종류)인 샤부를 들고 다닌다. <일요시사>와 만난 두 명의 현지 아이도 “샤부! 샤부!”라며 마약을 사달라거나 여러 차례 판매하려 했다.

초등학생으로 추정됐던 소피아라는 이름의 한 아이는 한쪽 팔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이 아이 팔에는 여러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보였다. 소피아는 “샤부 1g을 팔면 일주일을 먹고살 수 있다”며 “2000~3000페소 정도만 벌면 된다. 더 많이 팔면 저 빌딩으로 이사할 수 있다고 어른들이 말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마약 판매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 것이다.

수년간 마약 판매의 삶을 이어온 것은 소피아뿐만이 아니다.

NGO 단체 관계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슬럼가에 거주하는 필리핀 주민 대부분이 일시적 기억상실, 심장 두근거림, 호흡기 질환 등을 달고 산다. 증상이 수은 중독, 미나마타병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역대급
압수물

수은은 신경계를 공격하고 평생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어린이에게 매우 해로운 독성이 강한 금속으로 고용량에서는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실제 필리핀 슬럼가에 흐르는 하천에는 기준치 이상의 필로폰과 코카인이 검출되는 경우가 많다.

금 가공공장서 나온 수은으로 오염된 찌꺼기가 아이들이 목욕하고 일하는 강으로 곧장 흘러 들어오기도 한다.

코리아타운이 위치한 앙헬레스의 상황도 심각하다. 앙헬레스는 과거 미군의 세계 최대 공군 기지가 위치해 한때 중산층이 밀집돼있던 지역이었지만 1991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을 계기로 기지가 폐쇄되면서 명성이 뒤집혔다.

이른바 홍등가로 알려진 워킹 스트리트 ‘필즈 애비뉴’(Fields Avenue)에는 성매매하려는 남성들이 대거 몰린다. 이곳에는 바, KTV(노래방), 비키니바(호스티스바), 마사지바 등이 즐비해 있으며 여기서 성매매도 성행한다.

길거리에 서 있는 여성들이 성매매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들은 때론 마약을 사고팔거나 전달하기도 한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필리핀 여성은 “매일 성매매 일을 할 순 없다. 다른 돈벌이로는 마약을 전달해 받는 수수료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도 “10명 중 절반은 마약 전달 경험을 해봤을 거다. 공급을 하다가 검거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했다.

성매매 종사자 중 일부는 마약 판매 행위로도 삶이 유지되지 않으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셋업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셋업 범죄란 경찰을 포섭한 이후 죄가 없는 사람에게 함정을 마련해 고소하거나 신고해서 뇌물을 요구하는 기획 범죄를 뜻한다.

비극의
대물림

관광객을 협박해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경우가 대다수다. 강제추행 또는 마약 신고 무마의 대가로 수억원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한 외사 경찰관은 “태국, 캄보디아 등지서도 셋업 범죄가 종종 발생하긴 하나 필리핀에 비할 바는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공권력이 범죄의 주체다 보니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리핀서 성매매는 불법이다. 특히 18세 미만 성매매는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선 ‘대사관에 알려져 한국서 미성년자 성매매로 처벌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되느니 돈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외교부 관계자는 “셋업에 가담한 경찰은 범죄가 들통나면 처벌받기 때문에 끝까지 유죄를 주장할 것”이라며 “또 이역만리 타국서 증거를 모아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금전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관광청에 따르면 매년 50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필리핀을 방문하고, 이 중 120만명이 혼자 오는 남성들이다. 이들 대다수의 국적이 한국, 미국, 중국, 호주로 알려져 있다.

앙헬레스 슬럼가는 톤도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아이들이 마약을 팔거나 성매매를 하는 점에서 같지만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져 있다. 흰 피부, 검은 피부뿐 아니라 한국인의 특징을 갖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대부분 ‘섹스 투어리스트’(성매매를 하러 온 관광객)다.

필리핀서 성매매가 불법이지만 강력한 단속이 없이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억원이 넘는 필리핀 인구 중 100만명 가까이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다. 추산치지만 실제로 근접할 것이라고 보는 게 현지 교민들의 이야기다.

환각 관광 아지트서 무슨 일이…
10대 아이들 유통책으로 돈벌이

2012년 미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6위 아동 성매매 관광객 송출 국가다. 엑팟(ECPAT) 등 국제 아동 성매매 관광 근절 단체는 “한국 관광객의 아동 성매매는 소아성애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아동성매매가 용인되는 상황서 이를 저지르는 이른바 상황적(situational) 구매자”라고 분석했다.

필리핀 당국도 인신매매법을 제정하는 등 성매매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는 있지만 유보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섹스 투어는 필리핀 국내 총생산(GDP)의 2~14%를 차지할 만큼 충격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앙헬레스에 종착하는 많은 여성은 주변의 빈곤 농촌 지역인 사마르, 레이테, 비사야 등지서 온다. 이 여성들은 도시서 돈을 벌어 부모와 형제자매를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 하나로 도시로 이동한다. 하지만 도시에도 그들을 위한 일자리는 거의 없다. 어쩔 수 없이 유흥업으로 빠지게 되지만 생활비 마련을 위해 ‘빚쟁이’로 전락한다.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게 마약 유통이라고 한다.

마약 유통 과정서 인신매매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앙헬레스서 인신매매업자는 여성에게 과도한 수수료 등을 부과하고 신분증을 압수해 사기성 계약을 작성한다. 여성이 성매매 굴레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협박의 굴레에 갇히는 건 마찬가지다. 필리핀 마닐라 북부 팡판가주의 한 호텔서 14세 어린 소녀 20명이 구출된 일화도 있다. 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있었으며 이들을 중개하는 업자는 거리서 아이들을 거래해 성매매에 이용했다.

얼마나
한국으로?

부모들도 아이를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한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스테이시 둘리 인베스티게이츠>는 2017년 필리핀서 엄마들이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녀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영상을 찍어 팔거나, 성매매를 주선하는 장면을 보도하기도 했다.

성매매 경험이 있다는 한 10대는 “한 번의 성매매로 돈을 버는 것보다 샤부 1~10g 판매해 돈을 버는 게 더 쉽다”며 “유통책만 잘 알고 있으면 하루에 마약 판매로 1만페소도 벌 수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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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광폭 행보에 나선 김 전 총리를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래 대구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은 만큼 최초의 진보 대구시장이 탄생할지 이목이 쏠린다. 대구는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난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대구에서 23.22%(37만9130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후보는 67.62%(110만3913표)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는 윤석열정부 퇴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조차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이었다. 적절한 타이밍 그런 대구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이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그것이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제19대 총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에서 낙선했으나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김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바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김 후보가 다시 대구 전면에 등장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굳이 이런저런 수치를 열거하지 않겠다. 대구의 정치, 한 당이 독식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일을 안 한다. 일 안 해도 서울에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된다. 대구 시민을 표 찍어주는 기계로 취급한다”며 “요즈음 시장 공천 과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김부겸이다. 나를 잘 써달라. 김부겸과 함께 대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경기도 군포 초선 시절부터 해왔던 대로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 대구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건강한 보수가 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대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 발전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보수 심장’ ‘민주당’ 없는 민주당 동진 전략 지난 3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중앙당의 만장일치로 김 후보를 대구광역시장 후보자에 선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김 후보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여당 프리미엄을 전면에 세우는 대신 “김부겸을 도구로 써달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상징인 박근혜·박정희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있고 대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다면 과오 논쟁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향한 논쟁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포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가능성을 열어둔 데 이어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KBS에서 김 후보의 박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 “대구 현실에 대한 판단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의 명예회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조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마 선언문을 보면 김 후보는 민주당을 강조하는 대신 대구의 발전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김 후보가 민주당 출신인 것을 모르는 대구 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란’ ‘계엄’ 등 예민한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시민들은 김부겸이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김 후보는 국민의힘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대구시장을 해 왔는데 대구가 뭐가 바뀌었냐, 그건 국민의힘이 무능해서’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다. 절대 왼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분위기가 안 좋다. 그때는 TK를 제외하고 몽땅 내줬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명확하게 ‘절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워낙 김 후보가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빼고 ‘경제’ 넣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참전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꾼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한다”며 김 후보를 추켜세웠다. 그는 “부산은 스윙 보터 지역이라 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수부도 이전해 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안정궤도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대구 시민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는 차기 대구시장 적합도 49.5%를 기록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을 큰 격차로 앞섰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추 의원과 맞붙을 경우 52.3% 대 36.6%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김 후보는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컷오프되자 반발 차원에서 대구 시민이 역결집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단순 역결집이 아니라 실제 보수 민심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도 김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김 후보를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재명’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노무현이 종로 꽃길을 마다하고 부산 가시밭길에 도전했듯이 김부겸도 군포 꽃길을 마다하고 대구 가시밭길에 내려왔다”며 “김부겸도 이재명도 대구·경북 사람이고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당정 차원에서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TK 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등 대구 숙원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그 의지는 앞으로 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팍팍 깎이는 현지 민심 TK 통합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통합이 멈춰 섰다”며 “김 전 총리와 힘을 합쳐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대구에 중요한 약속을 했고, 정 대표도 ‘무엇이든지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했다. 이 보증수표를 믿고 대구를 메딕시티, AI·로봇 수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 도시로 만들어 그 약속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을 빼고 대신 ‘대구 발전’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9일 김 후보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취재진들과 만나 1호 공약을 소개하는 등 민생·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대구의 지역 경제 발전을 꼽으며 “지역의 주요 기관과 단체, 어른들께 조속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곳곳을 마주하며 지역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최대 현안인 인구 유출 문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해결과 경제 도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대구의 절실한 요구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핵심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안방마저 내줄 상황에 몰렸다. 김 후보가 우후죽순 치고 나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당내 교통 정리에서조차 애를 먹으면서 표가 갈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만큼 여의도에서는 ‘김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장동혁 대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실망감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은 54%,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집계됐다. 특히 TK에서 여당 44%·야당 34%로 집계되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위기감을 감지한 모양새다. 잘나가는 김 멍 때리는 장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대구 여론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며 “모두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대구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의원은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대구 민심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갈아보자’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반이재명 정서가 강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윤석열보다는 이재명이 잘한다’, 심지어 ‘얄밉게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에 “김부겸이란 대안도 있어 대구 민심이 그 대안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은 ‘무난히 여섯 명(예비 후보) 중 한 명을 뽑으면 된다고 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으로 ‘김부겸을 통해 이익이라도 챙기자’라고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호영, 이진숙을 다독거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6명 중에서 뽑힌 후보가 김부겸을 이기기 힘들 만큼 대구 민심은 훨씬 더 나쁘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 결집으로 이기겠다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무소속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가처분이 기각된 주호영 의원은 “항고심을 지켜본 뒤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주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장동혁 대표 체제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앞서 주 의원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컷오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를 향해 “민심을 붙잡을 대책도, 보수를 다시 세울 노선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모습도 없다”며 “대신 곳곳에서 공천 작당만 벌였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든 선거대책위원회든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하라”라고 장 대표의 후퇴를 촉구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변수는 시민들의 막판 결집력이다.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지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이들조차 투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보수를 찍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삼진 아웃?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습관성 투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보수가 큰일 났다’ ‘대구가 위험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이들이 똘똘 뭉쳐 결집하고 표가 된다”며 “지금은 장 대표가 위기 그 자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부겸 한번 믿어보자’는 기대감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보수 지역 민심도 그에 맞춰가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라면 대구가 민주당에 뺏긴다’라는 위기감보다 ‘그래도 보수를 먼저 살려야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