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족한’ 병무청 신검 마약검사 속사정

돈도 없는데 무슨 검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군대 내 마약과 전쟁이 시작됐다. 입영 판정검사 대상자와 현역 모집병 신체검사 대상자 전원에 대한 마약류 검사가 실시되면서다. 검사 대상자는 연간 26만명에 예산은 31억이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서 심사하는 예산은 예상보다 적고 병무청은 시행 약 두 달 전인데도 물량 확보를 안 하고 있어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일요시사>의 문제 제기에 병무청 관계자는 “법 개정 사항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병무청이 올해 하반기부터 입영 판정검사 대상자와 현역 모집병 신체검사 대상자 전원에 대해 마약류 검사를 실시한다. 하지만 마약류 전수검사를 진행하는 데 무리가 있어 보인다. 병무청은 지난 1월 병역법을 개정해 마약류 투약·흡연·섭취 여부에 관한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입영 판정검사 시 기존에 실시하는 ‘신체검사’와 ‘심리검사’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병역법을 개정한 것이다.

돈 없는데···
병역법 개정

현재는 ‘마약류 복용 경험이 있다고 진술한 사람’ ‘병역 판정 전담 의사 등이 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 선별적으로 5종(필로폰, 코카인, 아편, 대마초, 엑스터시)의 마약류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마약이나 대마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이용한 범죄와 오·남용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총기 운용에 따른 사고 위험이 있어 마약류 중독자 군 유입을 차단하는 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이후 5년간 군사경찰에 입건된 현역 장병 마약사범은 모두 118명에 달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2020년 9명 수준이던 마약사범이 2021년엔 20명, 2022년 32명으로 증가했고 지난해는 8개월 동안 26명이 붙잡혔다.

이에 병무청은 지난 2021년 8월 시행된 입영 판정검사 대상자와 현역병 모집 신체검사 대상자 전원에 대한 마약 검사를 실시하도록 개정했다. 법 시행 이후, 입영 판정검사 대상자 전원에 대해 마약류 검사를 실시한 뒤 최종 양성으로 확인된 사람에 대해서는 경찰청에 해당 명단을 통보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다른 질병과 연관성 확인을 위해 치료기간을 부여해 즉시 입영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마약류 검사 결과를 국방부에 통보해 국방부서도 검사 이력을 관리할 수 있도록 병무청과 국방부 간 공유 체계 구축도 추진했다.

사회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마약류 등을 고려해 검사항목도 현재 5종(필로폰, 코카인, 아편, 대마초, 엑스터시)서 2종(벤조디아제핀, 케타민)을 추가해 총 7종을 검사할 계획이다. 해당 개정안을 통해 입대 전 2차례에 걸쳐 마약류 검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1차로 만 19세가 되면 받는 병역 판정검사서 본인 진술 또는 병역 판정 전담의에 의해 마약류 검사가 이뤄지게 되고, 일부 중독자가 걸러진다.

현역 대상자 전원에 마약류 검사 실시
연간 26만명 예상·31억원 소요 예정

2차로 개정된 병역법에 따라 입영 판정검사 등에서 대상자 전원이 마약류 검사를 받게 되면서 숨어있던 마약 중독자들을 색출하게 된다. 특히 입영 판정검사는 입영 14일 전에서 3일 전까지 받아야 해 마약사범의 입대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병무청 관계자는 “법 개정 후 입영 판정검사 대상자 전원에 대해 마약류 검사를 실시한 뒤 최종 양성으로 확인되면 경찰청에 명단을 통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른 질병과 연관성 확인을 위해 치료기간을 부여해 즉시 입영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며 “마약류 검사 결과를 국방부에 통보해 국방부도 검사이력을 관리하도록 병무청과 국방부 간 공유체계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모든 입대 대상자가 마약검사를 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아직 입영 판정검사가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영 판정검사는 지난 2021년 8월부터 시행됐으며, 입영 후 군부대서 실시하던 입영 신체검사 제도를 대체해 입영 전 병무청서 입영 대상자의 건강 및 질병상태를 검사해 군 복무 적합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다.

아직 입영 판정검사가 전군으로 확대되지 않았다. 병무청은 오는 2025년까지 병역의무자의 입영 판정검사를 전 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사단급 훈련소에 입소하는 입영 대상자 외 육군훈련소와 해·공군, 해병대 등 각 군 훈련소로 직접 입영하는 사람들은 병무청서 입영 판정검사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입영 판정검사 인원은 ▲2021년 1만3000명 ▲2022년 3만7000명 ▲2023년 8만6000명 등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됐다. 올해 하반기에는 약 5만8000명이 검사를 받을 전망이다. 내년에 전면 시행될 경우, 연간 검사자 수는 현재의 2배 이상이 된다.

계산보다
부족하다

병무청 관계자는 “검사 인원은 2025년 기준 연간 26만명, 예산만 31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입영 대상자 전원에 대한 마약검사 시행이 예정돼 지난해 11월 국회 국방위원회(국방위)는 병무청 소관 예산안 심사 결과 입영 판정, 검사 및 모집병 신체검사 대상자 전원에 대한 마약류 투약 여부 확인 검사를 위한 예산 6억9600만원을 증액했다.

기획재정부(기재부) 국방예산과에 따르면, 해당 증액금이 모두 올해 병무청 마약검사 예산으로 등록됐다. 이를 통해 올해 하반기에 진행될 마약 검사는 문제가 없지만 2025년도부터 전면 시행되면 예산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기재부서 심사한 2025년 병무청 마약 검사 관련 1차 정기 심사 예산이 약 24억8000만이기 때문이다. 병무청서 예상한 31억보다 6억가량 부족한 셈이다. 국방위에 보고된 병무청 예산안에 따르면 2024년도 병역판정검사 예산안은 2023년도 대비 3.7%(6억8100만원) 증액된 188억5500만원이다.

주요 증액 사유는 병역면탈 방지 종합대책 추진을 위한 질량분석기 등 도입(2억7900만원), 데이터 통합 병역면탈 조기경보체계 구축(5억8000만원)에 따른 것으로 마약류 검사를 위한 증액으로 볼 수 없어 보인다.

이에 관해 병무청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를 통해 “내년 1월1일부로 입영 판정검사가 전군으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 개정 사항이기에 예산과 인력은 상황에 맞게 따라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물량 확보가 가능한지 ▲제대로 된 마약검사가 가능한지의 여부 등 마약진단키트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병무청서 확보하려는 마약진단키트는 검찰과 경찰 등에서 마약사범 검거 후 사용하는 소변검사키트로, 결과가 뜨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단 5~10분이다. 키트의 줄이 한 줄이면 양성, 두 줄이면 음성이다. 하지만 감정 가능한 기간은 통상적으로 5일서 10일밖에 되지 않아 해당 기간을 벗어나면 음성 반응이 나온다는 문제가 있다.

1개당 3만원
78억원 필요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진단키트는 감정 기간이 짧다는 문제가 있어 최근 경찰에서는 타액검사기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라며 “그러나 소변용보다 타액용이 적게는 2배서 많게는 3배가량 비싸 관련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경찰서도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입대 전에 마약사범을 잡아 군대 내에서 문제 발생을 줄이기 위해 전면적인 마약검사가 도입됐지만 소변용보다 정교한 검사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경찰청서 구입하고 있는 타액용 마약검사기는 1개당 가격이 3만원에 달한다. 이를 병무청서 언급한 2025년 기준 26만명에 대입해 보면 78억원이 필요한 셈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현재 경찰서 사용하는 소변용 마약검사기는 해외 제품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데 한 달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병무청이 2024년도 마약류 검사를 위해 계약한 것은 지난해 11월에 병리검사 시약기와 함께 구매한 것 뿐이다.

심지어 당시 계약한 것도 병리검사시약기가 1만4080개고 마약검사키트는 31박스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2023년 마약류·병리 검사를 위해 계약한 것보다 감소했다. 지난 2022년에 계약할 당시에는 병리검사시약기 1만5993개, 마약류 검사기 34박스를 구입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마약검사 간이시약기는 일선 경찰들이 마약수사 활동을 하는 데 수요가 부족하면 그때마다 구매 계약을 한다”며 “일반적으로 마약검사기는 해외서 들여와 빨라도 한 달가량이 소요돼 부족하기 전에 구매 계약을 진행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진행 문제없다” 하는데···
예산 적고 물량은 미확보

이에 대해 병무청 관계자는 “마약검사가 전면 시행되기까지 아직 두 달가량 남았다”며 “검사기 구매 계약은 차질 없이 이뤄질 것이며 병무청서 시행 예정인 질량분석기도 있어 마약검사는 원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병무청은 올 하반기부터 혈액 내 특정 약물의 농도를 분석할 수 있는 ‘질량분석기’를 들여와 허위 진단에 따른 가짜 질병을 가려낼 예정이다.

병무청은 지난 2월18일 “올 하반기 혈액 약물농도 분석을 위한 질량 분석기 2대를 대구 중앙병역판정검사소에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 장비를 이용해 신경과는 항경련제 치료약물 7종, 정신과는 항우울제 및 신경안정제 등 40여종의 약물을 일괄 검사할 수 있다.

특히 신경과에서는 지난해 뇌전증 허위진단을 통한 병역면탈 시도가 다수 적발된 만큼 병역면탈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그간 마약류를 복용했던 병역 의무자는 정신과 7급 재검사 판정을 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신체검사를 다시 받았다. 이때 질량분석기를 활용해 마약류 중독 치료를 위한 정신과적 약물을 복용했는지, 또는 치료 대신 마약류를 계속 사용했는지를 신속하게 판정할 수 있다.

입대 후에도 마약검사는 진행된다. 지난 1월9일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지난 2월1일 군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차례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서다.

지난해 12월8일 병역법 개정으로 입영 판정검사 대상자에 대한 마약검사가 법제화됐다면 군인사법 개정으로 마약·대마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를 군 간부로 임용할 수 없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로 인해 입영 판정검사를 받지 않는 장교, 준·부사관 지원자들도 지원 전 신체검사 또는 임관 전 신체검사 등에서 마약류 검사를 받게 됐다.

그때그때
메꾼다고?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 따라 현역 장병들의 마약류 검사도 이뤄진다. 입대 후에는 마약류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마약에 손을 대는 장병들을 발본색원하겠다는 것이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입대 전, 중, 후로 마약검사가 이뤄져 총기를 다루는 고위험 직무를 수행하는 군대 안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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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