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두환 비자금 꺼낸 전두환 손자 전우원

“난 수치스러운 사람의 손자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그 죄책감의 농도가 더욱 진했던 것일까? 고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연일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전씨의 폭로를 근거로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전씨 일가 내부 사정과 비자금 조성에 관한 의혹 제기가 빗발치는 중이다. 우원씨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학살자’로, 스스로를 ‘범죄자’라고 칭했다. 그가 자백한 유학 시절 마약 투약·성매매 사실이 사회 상류층 전반의 스캔들로 번질지도 관심거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입니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범죄행각을 밝힙니다. 저도 범죄자이고 처벌받겠습니다.” 전우원씨는 자신의 SNS 대문에 이같이 적었다. 그는 고 전두환씨의 손자이자 전재용씨의 아들이다.

불행한
가정사

그는 본인이 전두환씨의 손자가 맞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여러 사진을 공개했다. 지금껏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이 대다수였다. 그는 자신이 전두환씨와 찍은 사진 등을 공개했고, 자신의 운전면허증과 대학교 졸업 증명서 등도 SNS에 연이어 게시했다.

그는 SNS를 활용해 폭로를 이어갔다. 우원씨는 첫 폭로 게시물에 영상을 함께 올렸다. 영상에서 그는 “저는 현재 뉴욕 한영회계법인 파르테논 전략컨설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가족이 아마 행하고 있을 범죄 사기행각에 대해 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영상을 찍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일 유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켠 가운데 복수의 매체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우원씨는 폭로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전씨 일가가 추징을 피해 숨겨둔 비자금이 있다고 폭로했다. 우원씨는 비자금 추적에 도움이 될 정황을 밝힐 의사도 내비쳤다. 우선 자신부터 타인 계좌를 통해 학비를 지원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할머니(이순자씨)께서 (학비를)지원해주실 때 연희동 자택서 일하고 계신 아주머니들의 계좌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또 이혼한 어머니가 받은 위자료도 은행 인출이 불가능한 탓에 매번 지인으로부터 찾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우원씨의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연희동 사저 안에는 상당한 액수의 비자금이 채권과 현금 형태로 보관돼있다. 

그는 “정말 몇 십억 그렇게 값어치가 나올 수 있는 게 그림인데, 그런 예술 작품들을 저희 가족들은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고도 증언했다. 미술품은 비자금 조성과 돈세탁에 자주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전씨 일가 역시 악용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전씨 일가가 비자금을 바탕으로 호화생활을 즐겨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초호화 호텔을 며칠씩 빌려 가며 풀코스로, 가족들 전원이 음식을 시켜 먹었다”며 “전 재산이 25만원밖에 없는 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SNS 통해 연일 폭로 이어가
전씨 일가 각종 의혹들 파문

익히 알려진 대로, 전두환씨는 생전인 2003년 6월23일 재산 명시 관련 재판에서 자신의 예금은 29만1000원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우원씨의 ‘25만원’ 비판은 본인 조부의 20년 전 발언을 직격한 셈이라 더욱 이목을 끌었다.


우원씨가 SNS에 올린 게시물 중에는 한 여성이 스크린 골프를 치는 뒷모습을 담은 영상도 있다. 그는 이 시설이 “연희동 자택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해당 영상이 공개된 뒤, 여기에 나온 여성이 이순자씨로 추정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는 전두환씨의 셋째 아들이자 자신의 삼촌인 전재만씨도 저격했다. 우원씨는 “전재만은 현재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는 정말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업 분야”라며 “검은돈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재만씨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대규모 와인 양조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전두환씨의 비자금을 숨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 전재용씨를 직접 겨냥해 “한국에서 서류 조작을 해서 자기가 범죄자가 아니라고 해서 미국 시민권을 받으려고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며 “이 자가 미국에 와서 어디에라도 숨겨진 비자금을 사용해 겉으로는 선한 척을 하고 뒤에서 악마의 짓을 하지 못하도록 여러분이 꼭 도와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원씨는 한 언론과의 문답에서 자신이 꺼내든 전씨 일가 비리 의혹을 입증할 방법으로 ‘계좌추적’을 제시했다.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자신의 계좌를 추적해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관련 자료는 악용 위험이 있어 시간을 두고 현명한 방법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우원씨는 전두환씨 재산 상속 관련 서류를 공개하기도 했다. 서류엔 전두환씨 일가 자녀 및 손자·손녀 이름이 적혀 있고, 상속 포기 여부 등이 기재돼있었다. 우원씨가 공개한 서류에 따르면 손자·손녀 가운데 단 한 명만 한정 상속승인을 했다.

양심선언?
헛소리?

우원씨는 한 영상에서 상속포기 관련 서류에 관해 발언했다. 영상에서 그는 서류를 들어 올리며 “상속포기 관련 서류다. 인증받았다”며 “여기서 신기한 게 다 상속포기를 했는데 한 분만 상속 한정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몰라서 이게(상속승인 사실이) 신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저는 상속포기를 했다”며 “혹시라도 가족들이 구성원이 아니라는 프레임을 씌울까 봐 동영상을 찍는다”고 덧붙였다.

우원씨의 증언과 관련해 5‧18 단체 측은 “죗값을 치르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후손들이 치르게 돼있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추징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우원씨는 전두환씨와 얽힌 과거사에 대해서도 직접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전두환씨를 두고 “지옥에서 고통받고 계시다”며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리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 할아버지가 학살자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는 우리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우원씨는 이순자씨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남편 전두환씨의 과거 행적을 미화하다 국민적 공분을 수차례 샀다. 그는 2017년 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사태’로 폄하한 뒤 “우리 부부도 희생자”라는 주장을 폈다.


2019년 전두환씨의 5·18 관련 재판 출석을 앞두고선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며 신군부의 학살 만행을 두둔했다.

2021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을 때는 “5·18 유족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조부는 학살자, 지옥에 있다” 
부친은 “아들은 우울증 죄송” 

이에 반해 우원씨는 자신이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은 사실을 털어놓을 때 5‧18 유족의 고통을 함께 언급했다. 그는 “5·18 때 죽은 자들, 불구가 된 자들, 그분들의 가족분들, 자녀분들이 받았을 정신질환의 크기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우원씨는 자신 역시 범죄자라고 자책하며 “죄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 선택까지 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내 가족들은 제 정신과 치료기록을 이용하면서 ‘미친놈’ 프레임을 씌울 것”이라며 “지난해 1월부터 우울증, ADHD 진단을 받고 치료받았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와 지금 몇 달간 일을 잘했다”고 밝혔다. 


우원씨는 최근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지난 15일 SNS에 글을 올려 “저를 신고하는 자가 많다. 어제는 경찰이 들이닥치고 오늘은 인스타그램 포스트들이 삭제되고 유튜브에서 동영상 삭제 경고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 열심히 신고해달라. 내 죄와 모든 잘못을 폭로해달라. 처벌은 달게 받겠다. 더 이상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겠다. 남은 인생 사회 약자들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는 병들었다. 여러분이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시라”고 말을 맺었다.

우원씨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가정사를 고백하기도 했다. 본인의 아버지인 재용씨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는 영상에서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해외서 일하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박상아씨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했다. 

실명을 담은 ‘불륜설’의 파장은 막대했다. 우원씨의 폭로 이후 재용씨의 과거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다시금 주목받는 상황이다.

대폭로 서막
증거 꺼낼까

재용씨는 전두환씨의 차남으로, 3번의 결혼을 통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첫 번째 부인과는 자녀를 두지 않았고,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두 명을 뒀다. 이 중 우원씨는 차남이다. 재용씨의 세 번째 부인이 박상아씨로 이들 사이엔 딸이 둘 있다.

박상아씨는 1990년대 유명 탤런트였다. 그는 1995년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 1기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초부터 주목받았다. 이후 박씨는 방송과 영화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다 2003년 무렵 재용씨를 만난 뒤 연예계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우원씨는 “아버지는 유흥업소의 이 여자 저 여자들을 만나고 외도를 했다”며 “어머님은 그런 아버지 때문에 병이 들었다. 암 수술을 여러 번 하셨고, 어머님이 아프셔서 제 삶이 없어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제 친어머니는 피해자”라며 “두 사람은 죄를 죄인지 모르고, 전두환씨가 천국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자들이다. 박상아씨는 학자금 대출을 도와달라고 할 때도 ‘더 이상 엮이기 싫다’며 모든 도움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분(박상아)의 따님들, 그들의 행복은 누구보다 보장했다. 한국의 사립학교를 다니게 하고 미국 유학을 보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원씨는 ‘가족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할아버지의 재산을 큰 아빠(전두환씨의 장남 전재국씨)가 다 가져가면서, 현재 아버지와 새엄마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검은돈으로 가족들 생활”
3남 전재만 와이너리 지목

이와 관련해 재용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아들이 우울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지난주까지 매주 안부 묻고 잘 지냈는데, 지난 13일 갑자기 돌변했다”며 “갑자기 나보고 악마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아빠와 둘이 살자’고 했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인스타그램에 쓴 글도 알았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저는 가족이니까 괜찮은데 지인분들이 피해를 보셔서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매체와의 대화에선 비자금 의혹을 부인했다. 재용씨는 “(과거)미 법무부랑 해서 FBI서 미국 쪽이 저희가 돈 빼돌린 게 있는지 다 조사했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며 “만약 있다면 당연히 그것에 대해 처벌을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미국 시민권자인 장남을 통해 가족 초청 이민 비자를 신청해둔 사실은 시인했다. 집안 내부에서 비자금 관련 폭로가 나온 만큼, 전씨 일가의 재산 환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 전두환씨가 부과받은 추징금 총액은 2205억원가량이지만, 이 중 925억원이 미납됐기 때문이다.

전씨 일가는 추징금이 미납된 상황 속에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수차례 포착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때늦은 환수’가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뇌물 추징 금액은 상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추징 당사자인 전두환씨가 사망한 현재 환수 근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우원씨는 자신의 성매매·마약 전력도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친척과 지인의 마약·성범죄·입시비리를 함께 폭로했다. 전씨는 자신의 SNS에 이들의 실명과 사진, 프로필 등을 게시했다. 비자금과 더불어 해당 폭로 역시 수사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원씨의 ‘저격 대상’이 미국 유학생과 사회 상류층에 편중된 만큼,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 폭로가 대형 사회 스캔들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집안 쑥대밭
급수습 시도 

다만 일각에선 우원씨의 폭로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그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만큼,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우원씨는 지난 17일(한국시각) 새벽 5시경 라이브 방송을 켠 채로 마약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잇달아 투약했다. 이후 그는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며 횡설수설했고, 이내 환각증세를 보였다. 바닥을 구르거나 몸을 심하게 떨기도 했다. 결국 자택에 현지 경찰이 들어닥치면서 라이브 방송이 종료됐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와인 대신 ‘검은돈’ 창고? 전씨네 삼남 와이너리 풍문

전우원씨가 ‘검은돈’ 냄새가 난다고 주장한 와이너리의 이름은 다나 에스테이트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미국 내 고급 와인 산지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위치한다.

고 전두환씨의 3남 전재만씨와 그의 장인인 이희상 전 동아원 회장이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해당 양조장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비교적 고가에 판매되는데 비싼 품목은 한 병에 100만원을 호가한다.

이마저도 회원제로 사전 예약을 해야 구입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5월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 만찬 테이블에 오른 와인인 ‘바소’ 역시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주다.

이 양조장의 현재 가치는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원은 이곳에 700억원 이상을 꾸준히 투자했다.

전재만씨가 양조장 대표로 활동한 이후로는 전씨 일가의 비자금이 흘러갔다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난 증거는 없다.

2016년 동아원이 무너지면서, 이곳의 경영권이 사조그룹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이 전 회장 측이 경영권을 되찾은 상태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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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