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두환 비자금 꺼낸 전두환 손자 전우원

“난 수치스러운 사람의 손자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그 죄책감의 농도가 더욱 진했던 것일까? 고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연일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전씨의 폭로를 근거로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전씨 일가 내부 사정과 비자금 조성에 관한 의혹 제기가 빗발치는 중이다. 우원씨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학살자’로, 스스로를 ‘범죄자’라고 칭했다. 그가 자백한 유학 시절 마약 투약·성매매 사실이 사회 상류층 전반의 스캔들로 번질지도 관심거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입니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범죄행각을 밝힙니다. 저도 범죄자이고 처벌받겠습니다.” 전우원씨는 자신의 SNS 대문에 이같이 적었다. 그는 고 전두환씨의 손자이자 전재용씨의 아들이다.

불행한
가정사

그는 본인이 전두환씨의 손자가 맞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여러 사진을 공개했다. 지금껏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이 대다수였다. 그는 자신이 전두환씨와 찍은 사진 등을 공개했고, 자신의 운전면허증과 대학교 졸업 증명서 등도 SNS에 연이어 게시했다.

그는 SNS를 활용해 폭로를 이어갔다. 우원씨는 첫 폭로 게시물에 영상을 함께 올렸다. 영상에서 그는 “저는 현재 뉴욕 한영회계법인 파르테논 전략컨설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가족이 아마 행하고 있을 범죄 사기행각에 대해 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영상을 찍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일 유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켠 가운데 복수의 매체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우원씨는 폭로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아직도 반성을 모르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전씨 일가가 추징을 피해 숨겨둔 비자금이 있다고 폭로했다. 우원씨는 비자금 추적에 도움이 될 정황을 밝힐 의사도 내비쳤다. 우선 자신부터 타인 계좌를 통해 학비를 지원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할머니(이순자씨)께서 (학비를)지원해주실 때 연희동 자택서 일하고 계신 아주머니들의 계좌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또 이혼한 어머니가 받은 위자료도 은행 인출이 불가능한 탓에 매번 지인으로부터 찾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우원씨의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연희동 사저 안에는 상당한 액수의 비자금이 채권과 현금 형태로 보관돼있다. 

그는 “정말 몇 십억 그렇게 값어치가 나올 수 있는 게 그림인데, 그런 예술 작품들을 저희 가족들은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고도 증언했다. 미술품은 비자금 조성과 돈세탁에 자주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전씨 일가 역시 악용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전씨 일가가 비자금을 바탕으로 호화생활을 즐겨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초호화 호텔을 며칠씩 빌려 가며 풀코스로, 가족들 전원이 음식을 시켜 먹었다”며 “전 재산이 25만원밖에 없는 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SNS 통해 연일 폭로 이어가
전씨 일가 각종 의혹들 파문

익히 알려진 대로, 전두환씨는 생전인 2003년 6월23일 재산 명시 관련 재판에서 자신의 예금은 29만1000원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우원씨의 ‘25만원’ 비판은 본인 조부의 20년 전 발언을 직격한 셈이라 더욱 이목을 끌었다.


우원씨가 SNS에 올린 게시물 중에는 한 여성이 스크린 골프를 치는 뒷모습을 담은 영상도 있다. 그는 이 시설이 “연희동 자택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해당 영상이 공개된 뒤, 여기에 나온 여성이 이순자씨로 추정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는 전두환씨의 셋째 아들이자 자신의 삼촌인 전재만씨도 저격했다. 우원씨는 “전재만은 현재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는 정말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업 분야”라며 “검은돈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재만씨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대규모 와인 양조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전두환씨의 비자금을 숨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 전재용씨를 직접 겨냥해 “한국에서 서류 조작을 해서 자기가 범죄자가 아니라고 해서 미국 시민권을 받으려고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며 “이 자가 미국에 와서 어디에라도 숨겨진 비자금을 사용해 겉으로는 선한 척을 하고 뒤에서 악마의 짓을 하지 못하도록 여러분이 꼭 도와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원씨는 한 언론과의 문답에서 자신이 꺼내든 전씨 일가 비리 의혹을 입증할 방법으로 ‘계좌추적’을 제시했다.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자신의 계좌를 추적해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관련 자료는 악용 위험이 있어 시간을 두고 현명한 방법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우원씨는 전두환씨 재산 상속 관련 서류를 공개하기도 했다. 서류엔 전두환씨 일가 자녀 및 손자·손녀 이름이 적혀 있고, 상속 포기 여부 등이 기재돼있었다. 우원씨가 공개한 서류에 따르면 손자·손녀 가운데 단 한 명만 한정 상속승인을 했다.

양심선언?
헛소리?

우원씨는 한 영상에서 상속포기 관련 서류에 관해 발언했다. 영상에서 그는 서류를 들어 올리며 “상속포기 관련 서류다. 인증받았다”며 “여기서 신기한 게 다 상속포기를 했는데 한 분만 상속 한정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몰라서 이게(상속승인 사실이) 신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저는 상속포기를 했다”며 “혹시라도 가족들이 구성원이 아니라는 프레임을 씌울까 봐 동영상을 찍는다”고 덧붙였다.

우원씨의 증언과 관련해 5‧18 단체 측은 “죗값을 치르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후손들이 치르게 돼있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추징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우원씨는 전두환씨와 얽힌 과거사에 대해서도 직접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전두환씨를 두고 “지옥에서 고통받고 계시다”며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리로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 할아버지가 학살자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는 우리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우원씨는 이순자씨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남편 전두환씨의 과거 행적을 미화하다 국민적 공분을 수차례 샀다. 그는 2017년 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사태’로 폄하한 뒤 “우리 부부도 희생자”라는 주장을 폈다.


2019년 전두환씨의 5·18 관련 재판 출석을 앞두고선 “남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며 신군부의 학살 만행을 두둔했다.

2021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을 때는 “5·18 유족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조부는 학살자, 지옥에 있다” 
부친은 “아들은 우울증 죄송” 

이에 반해 우원씨는 자신이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은 사실을 털어놓을 때 5‧18 유족의 고통을 함께 언급했다. 그는 “5·18 때 죽은 자들, 불구가 된 자들, 그분들의 가족분들, 자녀분들이 받았을 정신질환의 크기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우원씨는 자신 역시 범죄자라고 자책하며 “죄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 선택까지 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내 가족들은 제 정신과 치료기록을 이용하면서 ‘미친놈’ 프레임을 씌울 것”이라며 “지난해 1월부터 우울증, ADHD 진단을 받고 치료받았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와 지금 몇 달간 일을 잘했다”고 밝혔다. 


우원씨는 최근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지난 15일 SNS에 글을 올려 “저를 신고하는 자가 많다. 어제는 경찰이 들이닥치고 오늘은 인스타그램 포스트들이 삭제되고 유튜브에서 동영상 삭제 경고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 열심히 신고해달라. 내 죄와 모든 잘못을 폭로해달라. 처벌은 달게 받겠다. 더 이상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겠다. 남은 인생 사회 약자들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는 병들었다. 여러분이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시라”고 말을 맺었다.

우원씨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가정사를 고백하기도 했다. 본인의 아버지인 재용씨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는 영상에서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해외서 일하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박상아씨와 바람을 피웠다”고 주장했다. 

실명을 담은 ‘불륜설’의 파장은 막대했다. 우원씨의 폭로 이후 재용씨의 과거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다시금 주목받는 상황이다.

대폭로 서막
증거 꺼낼까

재용씨는 전두환씨의 차남으로, 3번의 결혼을 통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첫 번째 부인과는 자녀를 두지 않았고,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두 명을 뒀다. 이 중 우원씨는 차남이다. 재용씨의 세 번째 부인이 박상아씨로 이들 사이엔 딸이 둘 있다.

박상아씨는 1990년대 유명 탤런트였다. 그는 1995년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 1기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 초부터 주목받았다. 이후 박씨는 방송과 영화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다 2003년 무렵 재용씨를 만난 뒤 연예계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우원씨는 “아버지는 유흥업소의 이 여자 저 여자들을 만나고 외도를 했다”며 “어머님은 그런 아버지 때문에 병이 들었다. 암 수술을 여러 번 하셨고, 어머님이 아프셔서 제 삶이 없어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제 친어머니는 피해자”라며 “두 사람은 죄를 죄인지 모르고, 전두환씨가 천국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자들이다. 박상아씨는 학자금 대출을 도와달라고 할 때도 ‘더 이상 엮이기 싫다’며 모든 도움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분(박상아)의 따님들, 그들의 행복은 누구보다 보장했다. 한국의 사립학교를 다니게 하고 미국 유학을 보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원씨는 ‘가족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할아버지의 재산을 큰 아빠(전두환씨의 장남 전재국씨)가 다 가져가면서, 현재 아버지와 새엄마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검은돈으로 가족들 생활”
3남 전재만 와이너리 지목

이와 관련해 재용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아들이 우울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지난주까지 매주 안부 묻고 잘 지냈는데, 지난 13일 갑자기 돌변했다”며 “갑자기 나보고 악마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아빠와 둘이 살자’고 했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인스타그램에 쓴 글도 알았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저는 가족이니까 괜찮은데 지인분들이 피해를 보셔서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매체와의 대화에선 비자금 의혹을 부인했다. 재용씨는 “(과거)미 법무부랑 해서 FBI서 미국 쪽이 저희가 돈 빼돌린 게 있는지 다 조사했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며 “만약 있다면 당연히 그것에 대해 처벌을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미국 시민권자인 장남을 통해 가족 초청 이민 비자를 신청해둔 사실은 시인했다. 집안 내부에서 비자금 관련 폭로가 나온 만큼, 전씨 일가의 재산 환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 전두환씨가 부과받은 추징금 총액은 2205억원가량이지만, 이 중 925억원이 미납됐기 때문이다.

전씨 일가는 추징금이 미납된 상황 속에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수차례 포착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때늦은 환수’가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뇌물 추징 금액은 상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추징 당사자인 전두환씨가 사망한 현재 환수 근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우원씨는 자신의 성매매·마약 전력도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친척과 지인의 마약·성범죄·입시비리를 함께 폭로했다. 전씨는 자신의 SNS에 이들의 실명과 사진, 프로필 등을 게시했다. 비자금과 더불어 해당 폭로 역시 수사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원씨의 ‘저격 대상’이 미국 유학생과 사회 상류층에 편중된 만큼,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 폭로가 대형 사회 스캔들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집안 쑥대밭
급수습 시도 

다만 일각에선 우원씨의 폭로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그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만큼,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우원씨는 지난 17일(한국시각) 새벽 5시경 라이브 방송을 켠 채로 마약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잇달아 투약했다. 이후 그는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쓰며 횡설수설했고, 이내 환각증세를 보였다. 바닥을 구르거나 몸을 심하게 떨기도 했다. 결국 자택에 현지 경찰이 들어닥치면서 라이브 방송이 종료됐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와인 대신 ‘검은돈’ 창고? 전씨네 삼남 와이너리 풍문

전우원씨가 ‘검은돈’ 냄새가 난다고 주장한 와이너리의 이름은 다나 에스테이트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미국 내 고급 와인 산지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위치한다.

고 전두환씨의 3남 전재만씨와 그의 장인인 이희상 전 동아원 회장이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해당 양조장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비교적 고가에 판매되는데 비싼 품목은 한 병에 100만원을 호가한다.

이마저도 회원제로 사전 예약을 해야 구입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5월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 만찬 테이블에 오른 와인인 ‘바소’ 역시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주다.

이 양조장의 현재 가치는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원은 이곳에 700억원 이상을 꾸준히 투자했다.

전재만씨가 양조장 대표로 활동한 이후로는 전씨 일가의 비자금이 흘러갔다는 의혹도 제기됐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난 증거는 없다.

2016년 동아원이 무너지면서, 이곳의 경영권이 사조그룹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이 전 회장 측이 경영권을 되찾은 상태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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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