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이 꺼낸 노태우 비자금 수사 키포인트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5.12 14:07:06
  • 호수 1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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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때문에 거덜 나게 생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검찰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서 불거진 ‘노태우 불법 비자금’ 관련 수사를 본격화했다. 이에 정치권서도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기 대선후보들도 불법 비자금 환수 관련 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약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금융계좌 자료를 확보하고 자금 흐름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측이 형태를 바꿔가며 비자금을 관리했을 것으로 보고 역추적해 가면서 자금의 은닉과 승계 과정 등을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좌
추적 시작

이른바, ‘노태우 불법 비자금’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을 통해 드러났다. 노 관장은 2심서 모친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SK에코플랜트 전신) 명의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 사진 일부와 메모를 재판부에 증거로 제시했다.

메모는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에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기재한 것으로, 총 900억원에 달하는 불법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노 관장 측은 ‘1991년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300억원을 건네는 대신 최종현 선대회장이 선경건설 명의로 어음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 돈이 태평양증권 인수나 선경(SK)그룹의 경영 활동에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는 1995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300억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를 요구하면 주겠다는 약속이었을 뿐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이 메모를 증거로 받아들여 ‘SK가 노 전 대통령의 300억원을 종잣돈 삼아 성장한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불법 비자금의 실체로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환수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 재산 5억원” 노태우 일가
이혼소송 불거진 검은돈 수사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유민종 부장검사)는 최근 노 전 대통령 일가 등과 관련된 금융계좌 자료를 확보해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 거래 내역도 조사할 방침이라 자료 분석에도 많은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규모는 1000억원 이상으로 거론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노씨 일가의 비자금 문제를 지적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에 따르면, 은닉 자금은 ▲김 여사의 메모로 알려진 300억원 등 ▲김 여사가 마련한 904억원 ▲2007~2008년 적발했지만 검찰·국세청이 묵인한 214억원+α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동아시아문화센터로 기부된 147억원 ▲지난해 노태우센터로 출연된 5억원 등이다.

검찰 수사를 거쳐 비자금 몰수, 처벌이 이뤄진다면 증거로 제시한 메모는 이혼소송서 자충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자금 의혹의 출발점인 메모의 작성 시기가 1990년대인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수사의 관건은 공소시효가 살아있을지 여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5·18기념재단은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은닉한 비자금이 총 1266억원대로 추정된다며 김 여사와 노 관장, 노재헌 동아시아 문화센터 원장을 범죄수익은닉 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 이희규 대한민국 헌정회 미래전략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같은 취지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메모 300억?
1000억 이상

국회에서는 민주당 김영환 의원이 지난해 10월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추징되지 않은 약 2000억원의 비자금을 국내외에 나눠 은닉한 정황이 있다’고 발언했다. 이어 김 여사가 차명계좌 등을 동원해 유배당 저축성보험(공제) 210억원을 가입했고, 아들 재헌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2016∼2021년 147억원을 출연했다며 비자금을 물려준 것으로 의심하기도 했다.

고발 사건을 맡은 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지난해 11월부터 각각의 고발인을 불러 조사에 나섰다. 5·18기념재단은 이와 관련해 지난달 8일 “불법 자금이 후손에게 증여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며 법률가 등으로 구성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비자금과 부정 축재 재산 환수위원회’를 꾸렸다.

재단은 부정 축재 재산 환수 관련 법률 제·개정, 재산 추적 및 환수 등의 활동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시민단체는 비자금 환수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더불어 은닉 자금이 동아시아문화센터 등 공익법인을 거쳐 노 전 대통령 일가에게 흘러갔다는 점에서 그 규모를 확인해 상속세나 증여세 부과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정치권은 대선 일정을 앞둔 상황 속에서 불법 비자금 환수에 전력을 쏟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여야 모두 불법 비자금을 환수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으나,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선후보
환수 공약?

여야가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헌정질서 파괴범죄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되더라도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까지 불법 비자금 환수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내에서는 대선후보들이 불법 비자금 환수를 공약으로 제시해 준다면 검찰의 수사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6월 진보당 윤종근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을 환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검찰이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불법 비자금이 실체가 밝혀지더라도 공소시효 등의 문제가 남아있기에 빠르게 법안을 통과시켜 이를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노태우 불법 비자금을 확실하게 환수하려면 법안 개정을 통해 환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법안 통과가 될 수 있도록 국회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노씨 일가가 불법 비자금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점에 대한 비판 여론은 거센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은 추징금을 모두 납부했다고 했지만, 이제야 불법 비자금을 통해 수십년 동안 부를 축적한 것이 드러나면서 국민적 박탈감을 안겼다.


‘계산할 시간’ 되자 말 바꿔
공소시효 유무가 수사 관건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공약으로 재임 중에 대통령 재산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취임 이후인 이듬해 4월 자신의 전 재산이 5억2000만원이라며 구체적 내역을 공개했다. 재산 목록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과 주식, 예금, 부동산 등이 있었다.

스스로 공개한 재산이 5억원 정도에 불과한데 집권 4년 차에 전 재산의 1800배 가까운 돈을 합법적으로 취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 입장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부터 시민단체 등 고발인을 불러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8일 법조계에 따르면 환수위는 김 여사가 남긴 메모의 신뢰성을 의심했다. 증거에 대한 진위 여부 감정이 없었고, 2심 판결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허술한 증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노씨 일가는 90년대 비자금 사건 이후 “숨겨둔 비자금은 없고 추징금도 완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 관장은 뒤늦게 ‘김옥숙 메모’를 내밀며 숨겨둔 비자금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수위는 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환수위는 고발장에 “노태우 일가는 ‘검찰 수사 당시 드러난 것 이외에 다른 숨긴 비자금은 없으며 비자금에 대한 추징금도 완납했다’고 재차 강조했다”며 “이 같은 입장 표명은 2심 재판 이후에도 일관됐다. 그렇다면 2심 재판부에 제출한 ‘김옥숙 메모’가 허위 증거라는 것인데 이는 명백한 소송사기”라고 고발장에 적었다.


동정론 유발
국민을 기만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과거에 대한 증명은 시기의 일치성이 중요하다”며 “비자금이 전달됐다면 당시 작성되거나 녹음된 장부나 녹취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노 관장이 ‘가정’ ‘자녀’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해 동정론을 유발해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노 관장의 개인사는 국민이 동참해야 할 사안이 아니며, 노씨 일가의 거짓말을 밝히고 단죄하는 것이 국민적 해결 과제라고 덧붙였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트센터 나비 또 다른 의혹
“횡령·배임도 수사해야”

노소영 관장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환수위는 “최근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노 관장은 아트센터 나비의 공금과 정보보조지원금을 본래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유용한 정황이 있다”며 “환수위가 수집한 자료들을 종합해본 결과 노 관장의 횡령·배임 혐의가 의심돼 이번에 고발조치했다”고 밝혔다.

고발장을 통해 환수위는 “최근 나비에 근무했던 직원이 공금을 횡령한 범죄를 저질러 2심 재판에서도 무거운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사건서 드러난 내용만 봐도 아트센터 나비의 자금 운용 내용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 관장의 비서가 26억원을 횡령한 사실과 함께 드러난 나비의 운영 실태도 지적받고 있다.

문제의 비서는 문자 한 통으로 거액의 상여금을 입금하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렸으나 노 관장을 포함한 나비 관계자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나비는 노 관장이 전적으로 모두 총괄 운영하는 구조다.

수년 동안 현금이 사라지는 과정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대목 역시 노 관장이 모르면 모든 직원이 모를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공익법인인 아트센터 나비의 부실 운영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노 관장의 비서가 착복한 현금 26억원은 노 관장의 개인 돈 19억7500만원과 나비의 공금 5억원 등이다.

아트센터 나비가 공익법인의 윤리와 절차를 무시하고 상여금(보너스)을 지급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2022년 아트센터 나비는 직원 16명에게 인건비 약 10억원을 지급했는데 관장 1인의 보너스만으로 전체 인건비의 절반을 썼다.

아트센터 나비는 2021~2022년 코로나19로 휴관이 잦았고 2022년에는 24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정 상황과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노 관장이 5억원을 성과금으로 받기에는 객관적 실적이 부족했으며 상여금 지급을 논하는 이사회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환수위는 “노 관장 등 일가는 노태우 비자금을 발판으로 현재 천문학적인 재산을 굴리며 사는 사람들이다. 온 가족들이 입을 모아 ‘노태우 비자금은 없다’고 합창해오다가 이제와 숨겨둔 노태우 비자금 1조4000억원을 찾기 위해 ‘김옥숙 메모’를 내민 노 관장을 우리가 동정하며 그의 각종 범죄 혐의에 눈감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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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