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빼는’ 노소영 미술관 부실경영 해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7.30 09:54:53
  • 호수 1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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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 혈세로 돌린 아트센터 나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때아닌 부실 경영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법원이 아트센터 나비에게 서린동 SK사옥 4층에서 퇴거하고,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리면서다. 이후 아트센터 나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창립 이래 노소영 관장이 상근이사직을 맡으며 운영해 온 아트센터 나비는 최근 5년간 혈세로 운영되면서 실제 예술을 위한 전시 사업은 소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트센터 나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약 34억원, 연평균 7억원에 달하는 정부보조금을 받아왔다. 아트센터 나비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고 있다. 미술관을 육성하고, 예술 발전에 기여한다는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버티다
나갔다

지난 15일 법원은 노소영 관장 측에게 ‘아트센터 나비’가 SK 본사 건물에서 퇴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 측은 이날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노 관장 측 대리인인 이상원 변호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SK이노베이션이 제기해 온 미술관 인도 소송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며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민사법상으로는 SK 측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현재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예술의 감성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계속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6단독 이재은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SK이노베이션이 아트센터 나비를 상대로 낸 부동산 인도 등 청구 소송서 “피고(아트센터 나비)는 부동산을 인도(퇴거)하고 손해배상금 10억4560만2810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부동산 인도가 완료될 때까지 매달 2400여만원의 관리유지비 등을 내야 한다고 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4층에 자리한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이다. 노 관장이 이끄는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 12월 이곳에 개관했다. SK서린빌딩은 SK그룹의 실질적 본사 역할을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빌딩 임대차계약이 2019년 9월 종료됐고 리모델링 등을 한다며 지난해 4월,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을 상대로 사실상 공간을 비워달라는 부동산 인도 소송을 냈다. 당시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1심 결과(2022년 12월)가 나온 직후였다.

이에 나비 측은 “이혼소송 1심 판결이 나오자, SK 측이 돌연 소송을 제기했다”며 “이혼이라는 사적 감정으로 소를 제기한 것은 계약위반이자 회사 이익에 반하는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퇴거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결과가 나왔고, 2심 재판부는 SK이노베이션이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노 관장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노 관장 측은 “그 부분(이혼 판결)과 관련해서 저희는 원고 측이 그 취지를 검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기대한다”고도 했지만, 소송은 계속됐고 법원은 “이 소송은 계약에 따른 해지 통보와 부동산 인도 청구이기 때문에, 이를 계약위반이나 배임으로 볼 증거가 없고, 이혼소송의 결과를 기다려야 할 특수성도 없다”며 퇴거 소송서 SK 측의 손을 들어줬다.

퇴거 통보 후 실체 들여다보니···
5년간 전시 일자 230일에 불과


이 변호사는 이를 지적하며 입장문에 “SK서린빌딩에서 나가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 등이 소 취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혼소송과 관련해선 최 회장 측이 상고하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재판은 결국 대법원서 최종 결론이 나게 됐다.

아트센터 나비의 서린사옥 4층 전시관 내 전시 일자는 약 230일에 불과했다. 일주일에 하루도 채 안 되는 꼴이다. 아무리 코로나19의 영향을 고려하더라도 실제 예술 진흥에 관심이 있었는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2020년에는 보조금을 7억8000만원 상당 수령하고, 15일간만 전시관을 열었다. 2022년에는 5억5000만원을 받았음에도 2주간만 전시를 진행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도 전시 일수는 53일에 불과했다.

정부보조금을 전액 전시에만 쓴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트센터 나비가 SK이노베이션과 소송서 ‘퇴거하면 운영이 어렵다’는 취지로 여러 번 말했듯이 전시가 미술관의 사업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전시 하루당 국가세금이 1500여만원이 소요된 셈이다.

전시 내용을 봐도 ‘2022년 나비 보드게임 데모데이’(8월31일), ‘나비 보드게임 플레이데이’(10월26일), 2023년 ‘창의적인 게임 창작을 위한 행위성과 유머 창작 커뮤니티’(10월7일) 등 목적을 뚜렷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전시가 많았다.

거액의 정부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아트센터 나비의 누적적자는 48억원에 달한다. 2019년 200억원에 달했던 자산은 2023년 말 145억원으로 큰 폭으로 줄었다. 최근 미술관의 수익은 정부보조금 외에 거의 없다. 기부금을 모금하거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수익사업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관리비용은 한 해 십수억원이 발생해 적자 폭을 키웠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도 크게 줄지 않았다. 2022년에는 금융평가손실 및 외환차손익으로 약 8억원, 2023년에는 6억원을 손해봤다. 인력을 줄이거나 투자만 잘했어도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펑펑 쓴
보조금

국민 혈세 논란, 비서의 26억원 횡령 사건, 적자 심화에도 이사진은 수년째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다. 아트센터 나비 공익법인 결산보고에 따르면, 현재 나비의 이사는 총 6명이다. 이 중 노소영 관장을 비롯한 3명은 최소 5년 이상 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2021년 선임된 3명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외부 문제에도 이사진이 경영활동 및 감시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실상 노 관장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비서 A씨는 노 관장을 사칭해 ‘상여금’ 5억원을 미술관 공금서 쉽게 이체받아 횡령한 바 있다. 상여금, 보수 등은 이사회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중요 의사결정인데, 이 같은 과정조차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노 관장은 “비서가 지난 5년간 개인계좌와 공금서 약 26억원을 빼돌렸다”고 나비에 근무하는 직원 A씨를 고소했고, A씨는 지난 5월 구속 기소됐다. 당시 직원의 범행 방식에 관심이 집중됐으나 거액의 현금을 확인 없이 이체하며 수개월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나비의 내부 시스템과 불성실 경영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심지어 ‘노 관장이 공익법인인 아트센터 나비를 사유화했다’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노 관장을 사칭한 휴대폰 문자메시지만으로 미술관 재무담당자 B씨가 현금 5억원을 개인통장에 입금한 사실에 대해 업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당시 A씨는 B씨에게 “관장님의 세컨드 폰이라며 번호를 입력해두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며칠 뒤 A씨는 B씨에게 해당 번호로 노 관장을 사칭해 “빈털터리가 돼서 소송자금이 부족하니 상여금으로 5억원을 송금하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B씨는 A씨가 관리하는 통장으로 요청액 전액을 송금했다.

계좌도
털렸다

의혹이 불거진 이유는 비상식적인 B씨의 행동에 있었다. 그는 “관장의 말투를 따라 해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나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공금 5억원을 개인계좌로 입금했다는 점은 ‘평소에도 유사한 지시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산다는 지적이다.

공익법인은 국가보조금, 기부금 등을 통해 운영되는 만큼 자금의 쓰임에 대해 직원의 ‘교통비’까지 공시자료에 기입할 정도로 꼼꼼하게 관리한다. 하물며 공금 5억원을 개인계좌로 입금하라는 ‘횡령’ 지시를 받았다면 거부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B씨는 7개월간 노 관장에게 사실을 확인하기보다는 상여금을 통해 발생하는 세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려는 정황을 보였다.


만약 B씨가 송금한 5억원이 노 관장의 개인계좌가 아니라 ‘차명계좌’로 들어갔다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는 B씨가 평소에도 노 관장의 지시에 따라 공금을 차명계좌를 입금해 비자금을 형성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무담당자 B씨가 A씨를 노소영 관장이라고 믿고 보너스 5억원을 일시 지급한 사실도 상식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비서 A씨는 관계자를 속이기 위해 인건비인 ‘상여금’을 명목 삼아 B씨에게 5억원을 송금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B씨는 절차를 무시한 행동을 보였다. 공익법인은 공익법 제5조에 따라 상근임직원에게 승인된 보수만 지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업계획에 연간 인건비 지급 기준을 포함한다.

이 역시 법인세법에 따라 이사회 결의 등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B씨가 5억원을 ‘상여금’ 명목으로 지급한 5월은 통상 공익법인이 사업계획을 신고하는 1월과 시차가 크다. 특히, 아트센터 나비의 ‘2022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16명의 직원에게 지출한 고정성 인건비는 7억7000만원 수준이었다. 이 중 상여금 5억원은 65%에 달했다. B씨의 행동에서 평소 아트센터 나비의 운영 실태가 보인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공익법인인 아트센터 나비가 어떻게 거액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재무제표에 따르면, 이 미술관은 90억원에 가까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금 마련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년간 축적한 보조금, 기부금 등을 쓰지 않고 쌓아 놓은 탓이다.

연간 적자 23억···26억 빼돌린 비서
관리 부실 및 사유화 “감시 없었다”

다만, 공익법인의 존재 이유인 ‘공익목적사업’에 지출은 한 해 5억원 정도(예술 진흥, 교육 등)에 불과한데, 현금을 100억원 가까이 비축해둔 이유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불과 몇 해 전에는 아트센터 나비가 보유한 현금만 2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부실 운영에 대한 정황이 돋보인다. 나비는 2022년 약 23억원, 지난해 약 17억원 등 최근 2년간 약 4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냈다. 한 해 소액의 목적 사업만 진행하는 이 미술관이 거액의 적자를 낸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투기성 투자’에 집착한 것 아니냐는 구설수가 나오기도 했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예술사업과 무관한 ‘투자’ 부분에서 발생한 막대한 부실이다. 아트센터 나비는 2022년 ‘금융상품 손실’과 환율 변동에 따른 ‘외환차손’으로 약 10억원 상당의 ‘사업비용’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굴리는 자금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아트센터 나비가 평가액 등락이 큰 고위험 투기상품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제기됐다. 공시 내용상 미술관이 보유한 주식이 없고, 일반적인 현금성 자산 상품(예·적금, 채권)으로는 큰 폭의 손실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환 변동에 따른 손해도 수억원에 달해 금융당국의 시선을 피해 해외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A씨의 횡령사건에 대해 노소영 관장이 ‘피해자’라고 단순히 볼 수 없는 이유는 아트센터 나비가 매년 5~10억원가량의 국민 세금을 받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재무제표상 아트센터 나비의 수익 95%가 ‘정부 보조금’이다. 2022년 총 수익이 5.8억원이었는데, 이 중 보조금이 5.5억원이었고, 기타 매출은 3000만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정부 보조금 집행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어디에 지출되고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더 큰 문제다. 아트센터 나비는 정부 보조금을 ‘기타 인력비용’으로 약 3억원, ‘기타(잡비 성격)’로 8000만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구체적인 항목 확인이 어려운 ‘운영 잡비’로 2021부터 22년까지 2년 동안 5.4억원을 지출했다. 직전 2년에는 2100만원 지출에 불과했던 항목이다. ‘꼬리’를 알 수 없는 비용이 25배나 증가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아트센터 나비가 ‘공익법인 사유화’라는 논란을 비켜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한다. 비서 A씨는 ‘관장’의 일정관리 등 보조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A씨가 노 관장의 인감도장과 신분증 등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반인 노소영씨’의 개인 업무도 처리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그래도
당당하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개인간 사기가 아닌 일부 공익법인의 관리 부실과 사유화라는 사회적 측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특히 한 개인이 수십년간 외부의 감시와 견제 없이 공익법인을 장악했을 때 부작용을 파악해 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아트센터 나비는 이번 횡령 금액을 회계에 반영해 결산보고, 감사보고서 등에 반영해야 한다. 지난 4월 마지막 주에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분을 공개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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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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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