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이혼에 꺼낸 노태우 비자금 민낯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7.15 13:42:23
  • 호수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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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넘어간 수상한 검은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재판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론됐다. 최 회장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이 ‘노태우 비자금’이었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이 나오면서다.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제목을 연상케 하는 시점이다. ‘노태우 비자금’이 SK로 흘러갔다는 의혹을 노 관장이 스스로 들춰낸 의도는 다분해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이 SK 측으로 흘러갔다”는 그의 주장은 최 회장 일가서 줄곧 부정해 왔던 사안이다. 노태우 비자금 논란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논리다.

치명적 오류
잘못된 재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재판 2심 결과가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결과와 관련해 법원과 SK그룹 사이의 논쟁이 벌어지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소송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가 남은 관전 포인트다. 

소송의 결과는 두 사람의 개인적인 차원뿐 아니라 SK그룹 임직원이나 상장 계열사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지난 5월30일,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재판부는 “원고(최태원)는 피고(노소영)에게 위자료 20억원과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한민국 가사소송 역사상 최고액의 재산분할이었다. 법조계 어느 누구도 이 정도의 재산분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판결 이후 최 회장 측은 판결문에 나온 SK 주식 가치 산정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같은 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판결을 경정했지만 주문 결과는 수정하지 않았다. 이에 최 회장 측은 ‘착오가 있는 계산을 바탕으로 과실상계했다면 대법원 파기 사유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인정했다. 노 관장 측이 제출한 300억원어치 ‘약속 어음’도 SK의 신사업 진출 자금에 활용됐다고 봤다. 최 회장 측의 “계열사 자금을 활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대비 재산분할액과 위자료가 모두 20배나 오르면서 반발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3층 수펙스홀 기자회견장에 직접 나타났다. 그는 “개인적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사과드린다”면서도 “‘SK 성장이 불법적 비자금을 통해 이뤄졌다’ ‘6공화국의 후광으로 사업을 키워왔다’는 판결 내용으로 저뿐만 아니라 SK그룹 구성원 모두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됐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2심 판결 두고 “이상하다” 목소리
300억 줬다는데 SK에 진짜 쓰였나

최 회장 변호인 측은 이날 판결문이 잘못됐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항소심 판결서 대한텔레콤 주식 가치 산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대한텔레콤 주당 가격을 최 회장 취득 당시인 1994년에는 8원,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에는 100원, 2009년엔 3만5000원 정도로 계산했다. 기업 성장에 대한 기여 부분을 회장으로 취임했던 1998년 직전과 직후로 나눠 선대회장 기여가 12.5배, 최 회장이 355배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최 회장 변호인 측은 1998년 당시 주식 가치는 주당 1000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새로 계산하면 선대회장 기여분은 125배로 늘고, 최 회장 기여분은 35배로 줄어든다. 잘못된 계산으로 사실상 100배 왜곡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 직후,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을 수정하는 ‘경정’ 결정을 했다. 최 회장 측의 주장대로 수치를 수정한 것이다. 판결 경정은 판결에 잘못된 계산이나 기재 등을 법원의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정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그러나 “재산분할 비율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분이 커진다 하더라도, 최 선대회장에게 노 전 대통령이 자금을 지원한 만큼 피고의 기여분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최 회장 측은 지난달 20일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냈다. 나흘 뒤에는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장도 제출했다. 재산분할 대상과 비율을 재상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혼 소송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법조계 의견이 갈렸다. 대법원이 가사소송 사건 대부분을 ‘심리불속행 기각’한다는 점을 들어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것이라는 의견이 한 축을 이룬다. 또 다른 인사들은 1심과 항소심 판결이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대법원이 일단 심리는 해볼 것으로도 관측한다.

과거사
재조명

재판부가 이례적 경정을 했다는 점 역시 대법원이 다시 들여다볼 이유로 꼽힌다.

일각에선 1조3800억원대의 재산분할을 명한 법원의 과도한 잣대가 노 전 대통령의 과오를 미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알다시피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주축을 이뤄 신군부인 하나회를 결성했다. 이어 1979년 12월12일부터 13일까지 신군부 세력은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김진기 육군 헌병감 등을 체포했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켰다. 5·17 쿠데타에 반항한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은 사건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전두환은 그해 8월22일에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고 1980년 9월1일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됐다.

사실상 전두환의 ‘폭군 정치’를 묵인하고, 오히려 두 손 잡고 도모한 인물이 노 관장의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12·12 군사 쿠데타 심판 과정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논리가 민심에 불을 지폈다.

이는 1995년 문민정부 시기 검찰에 고발된 신군부 관련 내란죄 등 기소건에 대해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 장윤석 검사가 이를 불기소처분하며 밝혔다고 알려진 발언이다. 이 발언은 대중적 공분이 불타오르는 계기가 됐고, 여론에 힘입어 신군부 처벌은 역설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12·12 군사 쿠데타 심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으로부터 비롯됐다. 19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되면서 증권가를 중심으로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보유설이 나돌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기막힌
노림수

1994년 당시 무소속 서석재 의원에 의해 4000억 비자금 설이 제기되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반박했다. 1995년 서 의원 등에 의해 그의 비자금 조성 문제가 계속 제기됐다. 같은 해 민주당 박계동 의원에 의해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수설이 제기돼 수사에 들어가면서 비자금 수수가 사실로 드러났다.

1995년 10월19일 박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주)우일양행 명의로 예치된 110억원의 예금계좌 조회표 사본을 제시하며 “노태우 비자금 4000억원”이라는 발언을 강조했다. 노태우의 비자금 4000억원이 시중은행에 흩어진 여러 차명계좌로 분산 예치돼있다는 의혹이었다. 

1995년 10월20일부터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계좌를 수사, 추적한 끝에 그의 경호실장 이현우가 검찰에 자진 출두해 “우일양행 명의 차명계좌에 입금된 돈은 노태우가 재임 중 조성해 사용하다가 남은 돈이며, 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이태진이 관리해 왔다”고 진술해 정치 비자금이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의 수사 결과 비자금 수수가 드러나자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 사실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재임 중 기업체로부터 5000억원가량을 받아 사용하고 1700억원가량이 남았다”고 밝혔다.

그는 1995년, 포괄적 의미의 뇌물죄가 적용되어 이전에 대통령 재직 시 조성한 비자금 수수와 뇌물 조성 혐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 등의 죄목으로 전격 구속됐다. 그해, 법원 재판에 회부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같은 해 11월16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이후 옥중서 항소했고, 항소심서 징역 15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를 계기로 12·12와 5·18에 대한 재수사 여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김영삼은 취임 직후부터 5·18 정신을 계승한 정부임을 천명하고 12·12와 5·18에 대한 재수사를 지시했다. 1995년 10월, 노 전 대통령은 “문화대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보면 광주사태 저것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발언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논리?
회고록에도 특혜·지원 전혀 없어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소송서 재판부가 6공 특혜를 판결의 주요 근거로 삼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주목받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옥중서 육필로 작성했던 대학 노트 30여권의 메모를 바탕으로 2011년 1112쪽에 이르는 회고록을 출간한 바 있다.

회고록서 그는 “분명히 말하지만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청와대나 내가 개입한 일은 절대 없었다”고 주장했다.

2심은 SK(당시 선경)가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서 노 전 대통령의 무형적 기여가 작용했다고 결론내렸다. 노 관장 측은 소송서 SK가 청와대 후광을 이용해 경쟁사를 배제시켰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최태원 회장의 무선통신 청와대 시연으로 이동통신사업 논의가 촉발됐고, 이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4대 그룹의 통신사업 수허가권을 제한한 결과 SK그룹이 이동통신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SK에 대한 특혜나 지원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되레 노 전 대통령은 “나와 선경(SK)의 관계 때문에 정치 문제로 비화해 결국 선경이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다음 정권에 가서 결국 선경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그 당시 정치 논리 때문에 선경이 피해를 봤고, 자신이 아닌 김영삼정부 때 한국이동통신이 인수된 사실을 밝힌 셈이다. 노 관장의 주장과 반대되는 지점이다.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는 두 사람의 이혼소송서 앞으로 나올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노 관장 몫의 재산분할액을 1조3808억원으로 판단한 핵심 논지 중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에 시집간 딸을 통해 건넸다는 비자금 300억원이다.

비자금이 실제 건네졌는지에 대한 주장은 여전히 엇갈리지만 항소심 판단대로 비자금의 실체를 인정하더라도 부친이 불법적으로 조성한 ‘검은돈’을 딸의 결혼생활 기여로 인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각에선 “SK그룹에 노태우 비자금이 흘러 들어갔으니 노 관장에게 재산을 나눠줘야 하는 게 아닌, 불법자금이기 때문에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고 지적도 나온다. 불륜에 대한 공공의 분노, 여성의 결혼생활 기여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물론 중요한 가치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한 비자금은 처벌할 수 없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법원
바뀔까

한편, 노 관장은 이혼소송 항소 결과에 대해 상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리인은 지난달 21일 입장문을 내고 “아쉬운 부분은 없지는 않지만 충실한 사실심리를 바탕으로 법리에 따라 내려진 2심 판단에 대해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대법원 상고심은 1·2심 판단에 헌법·법률 위반 등과 관련된 법리적인 문제가 있는지 살피는 ‘법률심’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보다 법리해석이 제대로 됐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최 회장 측은 추후 상고이유서를 제출해 상세한 이유를 대법원에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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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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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