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이혼에 꺼낸 노태우 비자금 민낯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7.15 13:42:23
  • 호수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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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넘어간 수상한 검은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재판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거론됐다. 최 회장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이 ‘노태우 비자금’이었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이 나오면서다.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제목을 연상케 하는 시점이다. ‘노태우 비자금’이 SK로 흘러갔다는 의혹을 노 관장이 스스로 들춰낸 의도는 다분해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이 SK 측으로 흘러갔다”는 그의 주장은 최 회장 일가서 줄곧 부정해 왔던 사안이다. 노태우 비자금 논란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논리다.

치명적 오류
잘못된 재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재판 2심 결과가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결과와 관련해 법원과 SK그룹 사이의 논쟁이 벌어지면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소송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가 남은 관전 포인트다. 

소송의 결과는 두 사람의 개인적인 차원뿐 아니라 SK그룹 임직원이나 상장 계열사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지난 5월30일,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재판부는 “원고(최태원)는 피고(노소영)에게 위자료 20억원과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한민국 가사소송 역사상 최고액의 재산분할이었다. 법조계 어느 누구도 이 정도의 재산분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판결 이후 최 회장 측은 판결문에 나온 SK 주식 가치 산정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같은 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판결을 경정했지만 주문 결과는 수정하지 않았다. 이에 최 회장 측은 ‘착오가 있는 계산을 바탕으로 과실상계했다면 대법원 파기 사유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인정했다. 노 관장 측이 제출한 300억원어치 ‘약속 어음’도 SK의 신사업 진출 자금에 활용됐다고 봤다. 최 회장 측의 “계열사 자금을 활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대비 재산분할액과 위자료가 모두 20배나 오르면서 반발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3층 수펙스홀 기자회견장에 직접 나타났다. 그는 “개인적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사과드린다”면서도 “‘SK 성장이 불법적 비자금을 통해 이뤄졌다’ ‘6공화국의 후광으로 사업을 키워왔다’는 판결 내용으로 저뿐만 아니라 SK그룹 구성원 모두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됐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2심 판결 두고 “이상하다” 목소리
300억 줬다는데 SK에 진짜 쓰였나

최 회장 변호인 측은 이날 판결문이 잘못됐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항소심 판결서 대한텔레콤 주식 가치 산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대한텔레콤 주당 가격을 최 회장 취득 당시인 1994년에는 8원,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에는 100원, 2009년엔 3만5000원 정도로 계산했다. 기업 성장에 대한 기여 부분을 회장으로 취임했던 1998년 직전과 직후로 나눠 선대회장 기여가 12.5배, 최 회장이 355배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최 회장 변호인 측은 1998년 당시 주식 가치는 주당 1000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새로 계산하면 선대회장 기여분은 125배로 늘고, 최 회장 기여분은 35배로 줄어든다. 잘못된 계산으로 사실상 100배 왜곡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 직후,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을 수정하는 ‘경정’ 결정을 했다. 최 회장 측의 주장대로 수치를 수정한 것이다. 판결 경정은 판결에 잘못된 계산이나 기재 등을 법원의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정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그러나 “재산분할 비율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분이 커진다 하더라도, 최 선대회장에게 노 전 대통령이 자금을 지원한 만큼 피고의 기여분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다.

최 회장 측은 지난달 20일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냈다. 나흘 뒤에는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장도 제출했다. 재산분할 대상과 비율을 재상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혼 소송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법조계 의견이 갈렸다. 대법원이 가사소송 사건 대부분을 ‘심리불속행 기각’한다는 점을 들어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것이라는 의견이 한 축을 이룬다. 또 다른 인사들은 1심과 항소심 판결이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대법원이 일단 심리는 해볼 것으로도 관측한다.

과거사
재조명

재판부가 이례적 경정을 했다는 점 역시 대법원이 다시 들여다볼 이유로 꼽힌다.

일각에선 1조3800억원대의 재산분할을 명한 법원의 과도한 잣대가 노 전 대통령의 과오를 미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알다시피 노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주축을 이뤄 신군부인 하나회를 결성했다. 이어 1979년 12월12일부터 13일까지 신군부 세력은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김진기 육군 헌병감 등을 체포했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켰다. 5·17 쿠데타에 반항한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은 사건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전두환은 그해 8월22일에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고 1980년 9월1일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됐다.

사실상 전두환의 ‘폭군 정치’를 묵인하고, 오히려 두 손 잡고 도모한 인물이 노 관장의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12·12 군사 쿠데타 심판 과정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논리가 민심에 불을 지폈다.


이는 1995년 문민정부 시기 검찰에 고발된 신군부 관련 내란죄 등 기소건에 대해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 장윤석 검사가 이를 불기소처분하며 밝혔다고 알려진 발언이다. 이 발언은 대중적 공분이 불타오르는 계기가 됐고, 여론에 힘입어 신군부 처벌은 역설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12·12 군사 쿠데타 심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으로부터 비롯됐다. 19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전격 실시되면서 증권가를 중심으로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보유설이 나돌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기막힌
노림수

1994년 당시 무소속 서석재 의원에 의해 4000억 비자금 설이 제기되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반박했다. 1995년 서 의원 등에 의해 그의 비자금 조성 문제가 계속 제기됐다. 같은 해 민주당 박계동 의원에 의해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수설이 제기돼 수사에 들어가면서 비자금 수수가 사실로 드러났다.

1995년 10월19일 박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주)우일양행 명의로 예치된 110억원의 예금계좌 조회표 사본을 제시하며 “노태우 비자금 4000억원”이라는 발언을 강조했다. 노태우의 비자금 4000억원이 시중은행에 흩어진 여러 차명계좌로 분산 예치돼있다는 의혹이었다. 

1995년 10월20일부터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계좌를 수사, 추적한 끝에 그의 경호실장 이현우가 검찰에 자진 출두해 “우일양행 명의 차명계좌에 입금된 돈은 노태우가 재임 중 조성해 사용하다가 남은 돈이며, 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이태진이 관리해 왔다”고 진술해 정치 비자금이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의 수사 결과 비자금 수수가 드러나자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 사실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재임 중 기업체로부터 5000억원가량을 받아 사용하고 1700억원가량이 남았다”고 밝혔다.

그는 1995년, 포괄적 의미의 뇌물죄가 적용되어 이전에 대통령 재직 시 조성한 비자금 수수와 뇌물 조성 혐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 등의 죄목으로 전격 구속됐다. 그해, 법원 재판에 회부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같은 해 11월16일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이후 옥중서 항소했고, 항소심서 징역 15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이를 계기로 12·12와 5·18에 대한 재수사 여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김영삼은 취임 직후부터 5·18 정신을 계승한 정부임을 천명하고 12·12와 5·18에 대한 재수사를 지시했다. 1995년 10월, 노 전 대통령은 “문화대혁명 때 수천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보면 광주사태 저것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발언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논리?
회고록에도 특혜·지원 전혀 없어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소송서 재판부가 6공 특혜를 판결의 주요 근거로 삼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주목받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옥중서 육필로 작성했던 대학 노트 30여권의 메모를 바탕으로 2011년 1112쪽에 이르는 회고록을 출간한 바 있다.

회고록서 그는 “분명히 말하지만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청와대나 내가 개입한 일은 절대 없었다”고 주장했다.

2심은 SK(당시 선경)가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서 노 전 대통령의 무형적 기여가 작용했다고 결론내렸다. 노 관장 측은 소송서 SK가 청와대 후광을 이용해 경쟁사를 배제시켰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최태원 회장의 무선통신 청와대 시연으로 이동통신사업 논의가 촉발됐고, 이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4대 그룹의 통신사업 수허가권을 제한한 결과 SK그룹이 이동통신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SK에 대한 특혜나 지원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되레 노 전 대통령은 “나와 선경(SK)의 관계 때문에 정치 문제로 비화해 결국 선경이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다음 정권에 가서 결국 선경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그 당시 정치 논리 때문에 선경이 피해를 봤고, 자신이 아닌 김영삼정부 때 한국이동통신이 인수된 사실을 밝힌 셈이다. 노 관장의 주장과 반대되는 지점이다.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는 두 사람의 이혼소송서 앞으로 나올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노 관장 몫의 재산분할액을 1조3808억원으로 판단한 핵심 논지 중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에 시집간 딸을 통해 건넸다는 비자금 300억원이다.

비자금이 실제 건네졌는지에 대한 주장은 여전히 엇갈리지만 항소심 판단대로 비자금의 실체를 인정하더라도 부친이 불법적으로 조성한 ‘검은돈’을 딸의 결혼생활 기여로 인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각에선 “SK그룹에 노태우 비자금이 흘러 들어갔으니 노 관장에게 재산을 나눠줘야 하는 게 아닌, 불법자금이기 때문에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고 지적도 나온다. 불륜에 대한 공공의 분노, 여성의 결혼생활 기여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물론 중요한 가치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한 비자금은 처벌할 수 없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법원
바뀔까

한편, 노 관장은 이혼소송 항소 결과에 대해 상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리인은 지난달 21일 입장문을 내고 “아쉬운 부분은 없지는 않지만 충실한 사실심리를 바탕으로 법리에 따라 내려진 2심 판단에 대해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대법원 상고심은 1·2심 판단에 헌법·법률 위반 등과 관련된 법리적인 문제가 있는지 살피는 ‘법률심’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보다 법리해석이 제대로 됐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최 회장 측은 추후 상고이유서를 제출해 상세한 이유를 대법원에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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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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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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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