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유입?’ 동아시아문화센터 실체

“6공 검은돈 굴리는 핵심 기지”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위원회는 15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가 운영 중인 동아시아문화센터가 노태우 비자금을 굴리고 있는 핵심 기지”라며 동아시아문화센터를 국세청에 고발했다.

지난 15일,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 추모를 명분으로 설립된 동아시아문화센터가 노태우 일가의 불법 비자금 세탁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최근 1년 사이 새롭게 제기됐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군사정권 비자금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만큼 이번 정부의 새 국세청장이 이 고발건을 적극적으로 조사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불법 자금
세탁 창구“

환수위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수차례 언론 보도로, 특히 재단 공금 10억원 횡령 의혹이 노 원장 스스로 국세청에 제출한 내부 서류에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고발장에는 ‘노태우 일가가 노태우 추모를 명분으로 설립한 공익재단을 비자금 세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동아시아문화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노씨는 모친 김옥숙 여사가 지난 2016년부터 노태우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을 재단에 낼 때마다 부동산 구입, 보수 및 새 건물 증축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이들은 “노씨는 현재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과 종로구 사직동에 2채의 건물을 매입했는데, 이를 통해 노태우 비자금은 철저히 세탁됐다”며 “또 노태우 비자금 중 일부는 단기금융상품 및 주식투자 등 비자금 불리기에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환수위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자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이 센터의 자금을 추적해야 노태우 비자금의 실체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지난 2012년 재단법인 한중문화센터로 출범한 뒤 지난 2019년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로 이름을 바꾼 노태우 추모 공익법인이다. 2012년 출범 때부터 2019년까지는 채현종씨가 대표를 맡았고, 2020년부터 현재까지는 아들 노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김옥숙 여사(147억원)와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5억원)의 출연금으로 설립됐다.

동아시아문화센터가 움직인 수상한 자금 중에는 김 여사가 출연한 2016년 10억원, 2017년 10억원, 2018년 12억원, 2020년 95억원, 2021년 20억원 등 총 147억원이 있다.

노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 운영 중
김옥숙 여사 부동산 구입 등 지원?

환수위는 “김 여사가 평생 직업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인 스스로 이 같은 돈을 모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동아시아문화센터에 들어간 이 돈은 노태우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언론들이 동아시아문화센터 결산 서류 및 부동산 등기부등본 등을 추적한 결과, 이 재단은 현재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65번지 부동산과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1-35번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이 부동산의 장부가는 약 92억여원, 시가는 10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노태우 비자금이 2채의 부동산 매입에 투입돼 불려졌다”고 강조했다.

또 “노씨 일가가 노태우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을 이 재단에 낸 것은 바로 비자금을 부동산으로 바꾸기 위해 자금을 세탁한 것”이라며 “노씨는 김 여사가 2016년 10억원, 2017년 10억원 등 20억원을 기부하자, 2017년 10월11일 재단 명의로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65번지, 지하 1층~지상 3층짜리 건물을 14억6000만원에 매입하고, 같은 해 11월22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환수위는 “노태우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이 투입되자마자 곧바로 이 돈이 부동산 매입에 사용된 것”이라며 “이 부동산은 지난 1989년 5월8일 허가를 받아, 건축공사를 한 뒤 1991년 4월26일 사용 승인을 받은 건물로, 대지면적 190제곱미터며, 처음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건물로, 1층은 근린생활시설, 2·3층은 주택으로 허가됐다”고 부연했다.

환수위에 따르면 그 뒤 노씨가 이 건물을 매입한 뒤 3층 건평을 약 25제곱미터 더 늘리고, 1개 층을 더 올려 지하 1층~지상 4층짜리 건물로 증축하고, 이 증축 사실을 2019년 3월26일 등기했다. 증축 후 지하 1층은 사무실, 지상 1층은 음식점, 2층부터 4층까지 3개 층은 사무실 용도로 허가됐다.

평생 주부가
무슨 돈으로?

특히 김 여사가 2018년에 추가로 기부한 돈 12억원이 바로 이 건물의 증축 비용으로 사용됐다. 재단은 2018년 증축 공사 비용으로 에스앤씨건설이라는 건축 회사에 1억4530만원, 1억2500만원, 1억1000만원, 1억6800만원, 1억520만원 등 5차례에 걸쳐 약 6억6000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재산세로 325만원, 건축 설계비로 2차례 3600만원, 해체 공사비로 1170만원, 증축 설계 인허가 비용으로 450만원 등을 지출했다.

또 2018년에 이 공익법인의 지출액 10억9000만원 중 95%가량이 청운동 부동산 증축 및 수리비로 지출됐고, 장학금 등 공익사업에 투입된 돈은 5315만원에 불과했다.

환수위에 따르면 노씨는 노태우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으로 서울 시내 요지에 2채의 부동산을 매입하고, 1채는 수리 및 증축하고 1채는 아예 부수고 새 건물을 지었다. 2023년 기준 해당 법인의 전체 자산은 224억원이며, 부채 5억원을 빼면 순자산이 217억 6000만원이다.

자산 중 유동자산이 52억원, 비유동자산이 170억원 상당이며 이 중 유동자산 52억원 중 단기투자자산이 32억원, 단기매매증권이 18억원에 달했다. 노씨가 재단 재산 중 50억원 상당을 금융 상품과 주식투자에 활용한 것이다.

또 비유동자산은 부동산이 92억원 상당, 미술품이 5억원 정도였고, 나머지 70억여원은 ‘기타비유동자산’으로 신고됐으나, 과연 이 비유동자산은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게 환수위의 주장이다.

환수위가 밝힌 내용대로라면 김 여사가 출연한 노태우 비자금 147억원은 부동산 2채 95억원 상당으로 돈세탁됐고, 나머지 약 52억원 중, 50억원은 금융 상품, 주식투자 등으로 언제나 사용이 가능한 유동자산 형태로 은닉됐을 가능성이 크다.

유동 자산
은닉 가능성

환수위는 고발장에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24일 국정감사에서 노태우 일가 관련 부동산 업체 네오트라이톤 존재를 밝힌 바 있다”며 “이 법인은 기존 서울 청담동과 동빙고동 부동산 외에 서울 가회동에 위치한 이른바 ‘정명훈 빌딩’을 매입했는데, 이는 사실상 노재헌 측에 넘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오트라이톤의 법인 등기부 등을 살펴보면 노씨가 이 법인의 임원으로 등재돼있으며, 대표이사는 네오트라이톤의 공동소유자였던 채현종씨다. 이는 노씨가 이 법인의 실질적 오너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 법인 종속회사인 티케인베스트 대표이사와 부동산회사 네오트라이톤 이사의 이름이 일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네오트라이톤이 사실상 노씨 소유며 따라서 정명훈 빌딩 역시 사실상 노씨 소유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환수위의 설명이다.

김 의원은 “이 회사의 2016년 감사보고서에 노재헌이 지분의 40%, 채현종이 60%의 지분을 보유했고 2017년 감사보고서에는 노재헌의 지분이 60%, 채현종 및 육상근의 지분이 각각 20%로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즉, 노씨가 이 부동산 업체의 최대주주인 것이다.

환수위는 “노씨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유동자산 52억원 중 상당액을 자신의 회사인 티케인베스트먼트에 맡겼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따라서 노태우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김 여사 출연금 147억원은 서울 청운동 및 사직동의 부동산 2채에 95억원, 그리고 티케인베스트먼트에 52억원을 은닉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한편 환수위는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 출신인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공익재단이 돈세탁 수단으로 전락”
청운동 및 사직동건물 매입 의혹도


임 후보자는 행정고시 38회 출신으로 국세청 조사국, 서울청·중부청 조사국장, 서울청장, 국세청 차장을 역임한 정통 세무관료로,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노 관장에 의해 수면 위로 부상한 노태우 비자금 조사에 대한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해 온 인물이다.

환수위는 “임 후보자는 대기업·정재계 고위층의 탈세 적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조사통’이라는 점에서 노소영·노재헌 등이 숨겨온 노태우 비자금을 반드시 찾아내 국고로 환수할 것으로 믿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임 후보자는 윤석열정부 때 강민수 국세청장을 상대로 “300억원이 노태우 대통령의 차명 재산이거나 받아야 하는 유효한 채권이었다고 하면, 2021년에 사망한 노태우 대통령의 상속재산에 포함됐어야 한다”고 지적해 주목받았던 바 있다.

임 후보자는 “상속세 누락 혐의가 나왔는데 이를 방치해 조세채권이 소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노 관장이 이혼소송 과정에서 제출한 ‘김옥숙 메모’와 300억 약속어음을 근거로 서울청 조사4국의 즉각적인 조사 착수를 강하게 요구한 바 있다.

환수위는 “국세청은 즉각 전방위적 세무조사에 착수해야 하며, 횡령·배임 여부 및 자금 흐름, 증여세·법인세 탈루 여부 등을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며 “해외 페이퍼컴퍼니 설립 경위와 자금 출처를 포함한 자금 세탁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세청
나설까

그러면서 “국세청이 조사에 미온적일 경우, 공개 집회 개최 및 국민·국회 대상 진정을 추진하겠다. 관련 자금 흐름 실질 관리자 등 추가 고발 대상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고발은 단순 고소가 아닌, 국가 차원의 자금 세탁 및 탈세 척결 의지 표명”이라며 “동아시아문화센터 및 노재헌 이사장의 자금 운영 실태에 대한 국세청의 조속한 개입과 철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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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법부가 빌미를 제공했단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허점이 많은 법안을 밀어붙인단 비판도 있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을 엮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패로 쓰려 했던 민주당의 진짜 속내는 뭘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 평가에 변호사협회 평가 반영 ▲하급심 판결문 전면 공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사법개혁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법 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제도는 별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5대 개혁안 확정 발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이후 대법원과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이 특히 반발했던 개혁안은 대법관 증원이었다. 민주당 안에 따르면, 현행 14명인 대법관은 4년 동안 매년 4명씩 늘려 30명까지 채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에 신임 대법관 16명과 임기 만료 후 교체되는 대법관 10명 등 총 26명을 임명한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 “대법관 증원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가 일시에 임명되면,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후임 대법관 임명 때마다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지난달 22일 국회서 진행된 ‘민주당의 입법에 의한 사법 침탈 긴급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은 사법 해체안”이라며 “사법부의 중립성은 온데간데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법부 스스로 민주당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빌미로 작용하는 구체적 사례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등이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 측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핵심 근거는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에 있었던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기술이 발달해 정확한 서류 접수·반환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관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후 “구속 기한이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1일로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 부장판사가 집필에 참여해 지난 2022년 발간된 <주석 형사소송법>도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며 “구속기간은 날짜 단위 계산법을 따른다”고 명시했다. 검찰이 지 부장판사의 구속 취소에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지 부장판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재판을 비공개하거나 “보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5월부터는 “고급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법원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33일 앞둔 지난 5월1일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이 대통령 사건 기록을 받았고,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이로부터 불과 9일 후 상고심 선고가 진행됐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했다. 빌미 제공한 사법부에 몰아치는 민주 왜? 당리당략 위해 여야 번갈아 “대법관 증원” 민주당은 “기록 6만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졸속 재판”이라고 반발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며 “대법원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국민적 비판까지 감수한 무리한 행동을 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이후 범여권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몰아치기 전술로 사법개혁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하고 있다. 보복을 위해 대법원을 무력화하려는 것일 가능성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 사법개혁안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추진 ▲법 왜곡죄 신설 등이다. 대법관 증원론은 1994년부터 제기됐다. 상고허가제는 밀려드는 상고심 접수에 대응하기 위해 1981년부터 운영됐다가 위헌 논란이 제기돼 1990년 폐지됐다. 대법관 증원론은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대안으로 거론됐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상고심 접수는 나날이 늘었다. 지난해에 접수된 상고심 접수 건수는 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송을 제외하면 1만3026건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시도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사건만 전담하고, 상고법원은 그 외 상고심을 맡아 사실상 4심 법원 체제로 운영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를 내세워 ▲불법 로비 ▲재판 거래 ▲판사 사찰 등을 저질렀단 의혹이 불거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상고허가제는 “국민이 상고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상고법원 설치는 금기시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누가 봐도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남은 대안은 대법관 증원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반대해 왔다. 사법부는 1994년에도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의 대법관 수도 15명”이라며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고유 기능 측면에서 볼 때, 대법관 13명도 많은 숫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제기될 때마다 ▲전원합의체 유지 ▲파기환송 증가로 인한 송사 비용 증가 ▲재판 지연 ▲인사청문회·임명 지연 등 논점을 제시하면서 반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국민의힘의 전신 한나라당은 지난 2010년 우리법연구회 좌편향 논란을 제기하면서 대법관 증원을 시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법관 출신 8명을 포함해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명박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반발하는 등 현시점에선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크게 반발했다. 여야는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가 곧 백지화시켰다. 돌고 도는 직권남용 당시 한나라당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겨냥해 대법관을 늘리기로 한 것처럼, 민주당도 대법원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이후 급하게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재판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긴 안목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을 급하게 밀어붙여 부작용을 양산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법 왜곡죄 신설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추진된다. 범여권은 꾸준히 법 왜곡죄 신설을 시도했다. 제20대 국회에선 정의당 심상정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 김남국 당시 의원(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발의했다. 지난해엔 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발의했다. 지난해까진 검사·사법경찰관 등 수사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발의됐으며, 이번 추진엔 법관도 포함된다. 1년여 동안 법관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할 정도로 달라진 변수는 지 부장판사 관련 논란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엔 심각한 오류들이 있다. 민주당은 이미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쪼개는 검찰 해체 법안 통과를 완수했다. 이에 따르면, 중대범죄수사청에 소속될 검사는 수사관 신분으로 전환된다. 공소청에서 근무할 검사는 기소·공소 유지만 맡는다. 부장검사를 지낸 김상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법 왜곡죄에 관한 소고>에서 “기소 이후엔 절차 지휘권이 법원으로 넘어간다”며 “검사는 판사에 의한 법 왜곡죄의 공범으로 가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해체 이후 검사에겐 수사권이 없고, 공소 유지는 법관이 전담하는데, 검사가 어떻게 법 왜곡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느냐”는 취지의 반박이다. 김 부교수는 법관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민주당의 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 왜곡죄 도입이 특정인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법안엔 검사 등 수사기관으로 규율 범위가 한정됐지만, 대법원이 특정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하자, 12일 만에 법관을 적용 대상에 추가해 발의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구하기? 그러면서 “이 의심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 왜곡죄는 독일 형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독일의 법 왜곡죄는 “법관 등이 재판 등을 하면서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의 법관 전용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 왜곡죄에 대해선 “법관에 대해서도 이미 있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굳이 신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울러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정치 보복 목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다수의 고위공직자에게 직권남용죄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검찰도 박근혜정부 인사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지내면서 직권남용죄를 다수 적용했던 사람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검찰의 직권남용죄 총처분 건수는 2011년 4057건서 2020년엔 1만4050건으로 늘어난 통계도 제시됐다.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개념이 모호해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의 직권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남용인지, 직권과 행사에 방해를 받은 권리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면 범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는 법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수사·기소를 하는 수사기관과 판단을 하는 법관의 재량에 판단이 좌우되는 일이 많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에 대한 헌법소원 당시 “조항이 모호해서 정권교체 후 정치 보복을 위한 고위공직자 처벌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위헌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 파기환송에 “판사 법 왜곡 처벌” 수사권 없어지는데 검사도 포함 추진 권 전 재판관은 지난 2022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용을 방지하려면 요건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위헌 의견을 냈다”며 “우려했던 현상들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의견을 밝혔을 때 서둘러 개정했다면,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라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권 전 재판관이 발언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약 5개월이 지난 시기였다. 문정부도 직권남용죄의 함정에 빠져, 문 전 대통령 재임 중인 지난 2019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에 대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에 대해서도 “인사권과 관련된 직권남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연루돼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22년 10월엔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정부 인사들이 불구속 기소됐다. 문정부 검찰총장으로서 다수의 직권남용을 지휘했던 윤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다수의 직권남용 혐의 때문에 구속 기소됐다. 민주당은 한동안 “대통령 재임 중엔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 다수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고,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사건도 있었던 현실을 고려한 법안 추진이었다. 발의 시점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다음 날인 지난 5월2일이었다. 민주당은 ‘국정안정법’이란 별명까지 붙여가면서 이달 안에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반발은 정작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3일 “재판중지법은 불필요하단 게 대통령실의 일관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여당에 사법개혁안 중 대통령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이 이 대통령까지 옭아매 패로 쓰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대통령 재판중지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은 임기 중에만 중지된다. 퇴임 이후엔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으면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각에선 “진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공소 취소”라고 주장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월 “공소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비판받은 사람은 민주당 정청래 대표였다. ▲유엔 총회 ▲아세안 정상회의 ▲APEC 정상회의 등 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이 겹친 시기에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강하게 추진한 사람이 정 대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대통령을 구했다는 프레임을 설정해서 당 대표 재선에 활용하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려는 것”이란 일각의 분석도 나온다. 법률적 이해관계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엔 이 대통령의 법률적 이해관계가 묶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다. 아울러 “특정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위해 현임 대통령까지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률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오류에 대한 지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보복·당리당략·자기 정치를 위해 막 던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데도 특유의 몰아치기가 작동한다. 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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