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대통령 이재명 60년 인생사

안동 산골 소년공 대한민국 지도자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제21대 대통령선거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다.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실시된 조기 선거였으며, 정치권 전반에 걸친 격변 속에서 치러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상대로 본선에 나섰고, 그 결과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964년 12월22일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서 태어났다. 5남2녀 중 다섯째로, 이 대통령의 유년기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시작됐다. 출생신고조차 제때 이뤄지지 않아 음력 기준으로 나이를 따지게 됐으며,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생일을 무속인을 통해 정했다고 알려졌다. 그의 가족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수입이 너무 적어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찢어지게
어려웠다

이 대통령의 가족은 1976년,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한다. 당시 이주한 지역은 공장과 달동네가 공존하던 성남 상대원동이었고, 9명의 대가족은 반지하 단칸방에 거주했다.

이사 직후 어머니는 시장 공중화장실 관리인으로 일했으며, 이 대통령과 여동생은 대변 20원, 소변 10원을 받는 화장실 요금을 걷는 일을 도왔다. 아버지는 청소 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 동시에, 주변에서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기도 했다. 이런 생활환경 속에서 이 대통령은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13세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성남 일대의 여러 공장서 일하며 ‘소년공’으로 불리는 시기를 보냈다. 체인 수공업 공장, 고무공장, 냉장고 부품 조립 공장, 시계공장 등을 전전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은 기본이었고, 철야 작업이나 주야 맞교대 근무도 잦았다.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유해 화학물질 냄새가 가득한 공간서 환기 없이 일했고, 제대로 된 보호장비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10대 초반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가혹한 노동이었다.

이 대통령은 큰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는데, 이는 대양실업이라는 야구 글러브 공장서 발생했다.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이 끼어 심각한 상해를 입었고, 이 사고로 평생 팔이 굽는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이후 병역 판정서 지체 장애 6급으로 면제받았다. 또, 시계공장서 사용된 접착제 등 독성 화학물질의 영향으로 인해 후각 기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공장서 퇴근한 뒤 독서실에 가서 새벽까지 공부했다. 책상에 압정을 뿌려 졸음을 참았는데, 몸에 압정이 박힌 채 잠든 날도 있었다고 전한다. 이후 1년3개월 만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했다. 그의 나이 16세 무렵이었다.

당시 검정고시 합격률은 낮았고, 특히 고교 검정고시를 단기간에 통과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검정고시 합격 이후 그는 곧바로 대학 입시 준비에 들어갔다. 입시 준비 과정서도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했다. 과외는커녕 참고서조차 마음대로 사지 못해, 도서관과 중고 책방을 전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하게 된다.

등록금은 물론 매월 20만원의 생활비까지 지급받는 조건이었다. 당시 중앙대학교 법대는 높은 입시 경쟁률을 자랑했고, 장학 선발 기준도 매우 엄격했다.

중앙대학교는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입학한 ‘정규 교육기관’이었다. 검정고시로 학력을 취득한 이 대통령은 교복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로망이 커서, 실제로 대학 입학식에 중·고등학교 교복을 빌려 입고 갔을 정도였다. 그러나 대학 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극심한 가난 흙수저 출신
주경야독 끝 사법시험 통과

당시 이 대통령이 입학한 1982년은 대한민국 사회가 군사정권 아래 놓여 있던 시기였다. 군부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고, 사회는 억압과 저항으로 뜨거웠다. 전두환정권 집권 초기로, 대학가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활동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 그는 중앙대학교 도서관서 우연히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록 영상과 책자를 접하게 된다. 당시까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광주 사건을 ‘폭동’으로 인식하고 있던 그는, 실제 내용을 접한 뒤 충격을 받았고,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고 훗날 밝혔다.

이후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삶의 가치관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준 사건으로 언급했고, 광주를 ‘사회적 어머니’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사법시험 합격을 목표로 정진했다. 정규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서 대학에 입학한 만큼 기초 법학 이론에 대한 학습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독학과 반복 학습을 통해 실력을 쌓았다.

수업이 끝난 뒤 도서관서 법전을 정독하며 정리한 필기 노트를 수차례 복습했고, 기출문제와 판례를 중심으로 공부했다. 이 과정서 고등학교 교과 과정의 기본 개념을 별도로 익혀야 했다.

법대 재학 중에도 경제적 여건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일부 기간 동안 과외, 논술 지도 등으로 생활비를 보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학금으로는 최소한의 생활비만 충당할 수 있었고, 월세와 식비를 해결하기 위해 가급적 학교 시설을 활용하며 지냈다.

이 대통령은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재학 중 시험에 도전했고, 학부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어 1988년 제18기 사법연수원 과정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입소 당시에도 그는 학부 시절처럼 조용하고 성실한 수강생으로 알려졌으며, 노동법이나 사회복지 관련 과목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사법연수원 과정서 이 대통령은 고 노무현 당시 변호사가 진행한 강연을 들은 경험이 있다. 이 강연은 훗날 이 대통령이 노동·사회적 약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 중 하나로 언급된다. 특히 인권 변호사로서의 진로를 선택하게 되는 계기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13세부터
생업 전선

이 대통령은 대학 시절 학력, 재정 등 여러 제약을 극복하며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본격적인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1988년 사법연수원 과정을 수료한 뒤 판사나 검사직이 아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대다수의 연수원 수료생이 안정적인 법조 직군에 지원하던 분위기 속에서, 이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겠다는 뜻을 굳혔다.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노동자, 서민,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변론을 맡기 시작했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인권 중심의 법률 지원에 주력했다. 1990년대 당시 수도권 외곽 지역이던 성남은 개발 압력과 토지 보상 문제로 각종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는 분당 백궁·정자지구의 용도 변경 비리 의혹이나 성남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 등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해당 사건들은 개발 이익을 둘러싼 특혜와 비리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핵심이었으며, 이 대통령은 관련 주민들과 함께 행정감시 및 법률 대응을 주도했다.

특히 분당 파크뷰 사건은 그가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본격적인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분양 과정서의 특혜, 가격 조작, 공무원 연루 의혹 등이 불거지며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이 대통령은 해당 의혹을 지역 언론과 시의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 활동은 당시 성남지역서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이 대통령을 ‘행동하는 변호사’로 인식하게 되는 배경이 됐다.

그는 지역의료 공백 문제 해결에도 힘을 쏟았다. 2003~2004년 무렵, 성남서 운영되던 종합병원들이 연이어 폐업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지역 주민의 진료 접근권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러자 그는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제안하고 추진했다. 주민 서명을 주도하며 총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시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했지만, 당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의 반대로 조례는 부결됐다.

이 대통령은 동료들과 시의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항의 농성을 벌였고, 이 과정서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수배되기도 했다. 수배 기간 동안 성남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 은신하며 숙식을 해결했다고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 일을 계기로 정치에 나서게 됐다.

그는 이후 공개 연설서 “2004년 3월28일, 성남주민교회 지하서 눈물로 결심했다”며 “시립병원의 꿈을 정치로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은 정당 정치를 진지하게 고려하게 된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했고, 같은 해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첫 출마 이후 지역 사회 내에서 그의 활동은 더 활발해졌고, 시민단체 및 자발적 지지자 모임을 중심으로 조직 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본격적
존재감

결국, 2010년 지방선거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후보로 다시 성남시장에 출마해 당선되며 민선 5기 시장에 취임하게 된다. 이로써 그는 변호사 시절부터 이어온 공공성·복지 중심의 정책 기조를 행정 영역서 실현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커리어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2010년 7월 성남시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취임 초기 성남시는 극심한 재정난에 직면해 있었다. 전임 시장 시절의 무리한 개발과 방만한 예산 집행으로 인해 시의 채무는 7300억원에 달했다.

당시 공무원 월급조차 지급이 어렵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으며, 시 재정은 파산 직전이라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이 대통령은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이른바 ‘모라토리엄(지급 유예) 선언’을 통해 부채 구조 조정에 나섰다. 공무원 해외 연수와 관행적 예산 낭비 항목을 전면 삭감하고, 고위 공무원 인사 기준을 대폭 손질했다. 이 대통령은 직접 차량을 운전하고 비서진 없이 이동하며 시장의 권위적 이미지도 벗기 시작했다.

시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하며 ‘24시간 트위터 시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복지 행정서도 선도적인 정책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상교복’과 ‘청년배당’이었다. 그는 성남시에 거주하는 고등학생들에게 교복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일정 연령의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청년배당 정책을 도입했다.

이 같은 정책은 이후 경기도지사와 대선후보 시절까지 이어지는 ‘보편적 복지’ 철학의 기초가 됐다.

성남서의 성공적인 행정으로 인해 이 대통령에게 더 넓은 정치의 길이 열렸다. 2014년 지방선거서 재선에 성공한 그는, 이후 2016년 촛불 정국을 전후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강한 어조로 탄핵을 요구하며, SNS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빠르게 높였다.

이 대통령의 직설적이고 명확한 화법은 지지층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 당시 문재인·안희정 후보와 함께 주요 주자로 부상했으나, 경선서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약 21.2%의 지지를 얻었다. 경선 과정서 이슈 제기, 특히 기본소득과 지방분권 등은 이후 정치 담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만나 인권 변호사 길로
성남시장으로 정치 인생 시작

대선 경선 이후 이 대통령은 다시 경기도지사에 출마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전국 최대 광역단체의 수장이 된다. 경기도지사로서 그는 행정의 디지털화, 데이터 기반 정책 결정, 사회복지 확대 등에서 성과를 냈다.

대표 정책으로는 ▲경기도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청년기본소득 ▲배달특급 등이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신속한 대응으로 높은 행정 평가를 받았다. 전 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 결정은 전국적 논의로 확산되며 그의 정치적 입지를 다시 한번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경기도지사 시절, 이 대통령은 안 좋은 일들에 자주 휘말리게 됐다. 여러 차례의 사생활 논란과 형사 고발이 이어졌으며,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은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21년 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고, 이듬해 2022년 3월 치러진 대선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이 대통령은 정치 전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어 8월에는 민주당 당 대표로 선출됐다. 대표 시절 그는 야당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며, 윤석열정부의 각종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에 집중했다.

또 당내 개혁을 강조하며 공천 시스템 개선, 당헌·당규 개정 등의 작업을 추진했다.

2023년부터는 이른바 ‘검찰 수사 정국’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성남FC 후원금,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으며, 총 5차례 이상 검찰에 출석했다. 그러나 국회 체포동의안은 부결됐고, 기소 후에도 그는 대표직을 유지하며 당내 결속을 이끌었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며 조기 대선 정국이 열렸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10일 공식 선언을 통해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직이 공석이 됐기 때문에 정해진 조기 선거 일정에 따른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의 당내 경선서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상대로 89.77%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후보로 선출됐다. 경선 과정서의 당내 이견은 크지 않았고, 계엄령 사태 이후 당내 결속은 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공고히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 다시 대선에 출마했고, 제21대 대통령선거서 49.42%의 득표율로 승리를 거머쥐게 됐다.

크고 작은
논란·의혹

이번 대선은 2022년 제20대 대선서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던 이 대통령이 세 번째 도전 만에 거둔 승리였다. 동시에 탄핵과 계엄이라는 초유의 정치 상황 이후 선출된 첫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속 치러진 이번 대선서 이 대통령의 당선으로 3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당선 직후 이 대통령은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리를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의 조속한 회복과 경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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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