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이른바 ‘2000원짜리 라면’ 발언으로 식품·유통업계가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라면 가격 하나를 언급한 게 아닌 국내 식품업계 전반의 물가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비상경제점검 TF 회의서 “최근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더라. 라면 1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고 물었다. 해당 질문에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가공식품 위주로 맥주나 라면 등 저희가 눌러왔던 것들이 많이 오른 부분도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김 차관도 라면 1개 가격이 2000원에 판매되고 있다고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라면 한 개에 2000원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김 차관의 답변은 사실일까? 반은 맞고 바른 틀렸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서 판매 중인 라면 중 2000원을 넘는 제품은 하림의 ‘더 미식 오징어라면’(2200원), 부디버디 ‘하양라면’(2000원) 등 일부 제품에 불과하다. 또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봉지 라면은 1봉에 1000원 내외로 판매되고 있고, 프리미엄 신제품 등 일부 제품들만 2000원 안팎이다.
농심 안성탕면이나 신라면(1봉 1000원), 삼양 등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라면들의 경우는 1000원 내외로 가격이 형성돼있다. 농심 프리미엄 라면인 신라면 블랙은 19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실제로 김 차관의 답변에 라면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봉지 라면 기준으로 할인 행사 등을 감안하면 대부분 라면이 2000원이 되지 않는 건 사실”이라며 “2000원이 넘는 라면은 편의점 용기 라면을 비롯해 프리미엄 라면 등 일부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제조 특성상 봉지 라면이 아닌 컵라면의 경우는 별도 용기 비용과 추가 가공 공정이 들어가는 만큼 일반 봉지 라면에 비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편의점 GS25에서 판매 중인 하림산업 ‘장인라면 매움주의(135g, 2개입)’는 5800원으로 1개당 2900원에 육박한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이날 2000원 라면 가격 발언이 단순한 ‘라면’에만 국한된 게 아닌 ‘가장 서민적인 음식’으로 통하는 라면을 예로 들면서 전반적인 식품 물가를 거론한 게 아니냐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식품 업계 입장에선 이 대통령의 입에서 물가 발언이 나온 만큼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부담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지난 3월 농심은 라면이나 스낵 등 17종에 평균 7.2%, 오뚜기는 라면 16종에 평균 7.5%, 팔도는 비빔면 등을 4~7%가량 출고가를 인상했던 바 있다.
업계에선 외부적인 요인과 함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 등에 대한 부담도 오롯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마냥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이 대통령이 국정과제 중 하나로 민생경제 회복을 천명했던 데다 정부 출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발족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이었던 지난 5일, 첫 국무회의를 열고 비상경제점검 TF를 가동한 후 경제 현안을 보고받았다. 이튿날엔 국립현충원서 열린 현충일 추도식 후 이수역 인근의 전통시장인 사계시장에 들러 민생 물가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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