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퓰리즘 논란? 선거마다 반복되는 ‘세종 이전’ 공약

여야, 후보 간 셈법 제각각
충청권, 부동산 시장 후끈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다가오는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권주자들이 ‘행정수도 세종’ 구상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세종시가 또다시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개혁신당 등 주요 정당 유력 대선주자 대부분이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이재명·김경수·김동연 후보는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면서도, 세종의 행정수도화를 향한 큰 틀에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경선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후보는 지난 19일, 충청권 순회경선 합동연설회서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 건립, 2차 공공기관 이전으로 세종을 ‘행정수도 중심’으로 완성하겠다”며 “헌법 개정 등 난관도 있겠지만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국회의 완전 이전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김경수 후보도 지난 21일 정책자료집서 “새정부 국무회의는 세종청사에서 실시하고, 헌법에 수도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했고, 앞서 김동연 후보 역시 지난 17일 정책공약집을 통해 ‘대통령실과 국회를 세종으로 완전 이전하고, 대법원과 대검찰청은 충청권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다만 이전 방식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이 후보는 용산, 청와대, 세종을 단계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지난 18일 “용산을 우선 쓰면서 청와대를 신속히 보수해 들어가는 게 좋겠다. 세종은 종착지가 되지 않을까”라면서도 “쉽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반면, 김경수·김동연 후보는 용산 대통령실은 단 하루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국민의힘도 낡은 정치의 상징인 여의도 시대를 끝내고, 세종 시대를 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1일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 때 약속대로, 낡은 정치의 상징이 된 여의도 국회 시대를 끝내고 국회 세종 시대의 새로운 문을 열겠다”고 말했다. 국회 세종 이전을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닌, 정치 중심의 지방 이전을 통한 국토 균형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권 비대위원장은 “여의도 국회 부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시민과 청년, 미래 세대가 자유롭게 공유하는 열린 광장으로 바꾸겠다”고도 약속했다.

국민의힘 경선주자들도 대체로 ‘세종 이전’에 찬성 기류지만, 대통령실에 대해선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홍준표 후보는 대통령 집무실의 청와대 복귀를 주장하며, 국회 이전은 개헌을 거쳐 상원은 여의도에, 하원은 세종으로 옮기자는 구상을 밝혔다.


안철수 후보는 용산 대통령실을 임시 사용한 후 청와대 복귀를, 한동훈 후보는 용산 임시 사용 후 검토를, 김문수 ·나경원 후보는 의견 수렴 및 절차 진행 후 결정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대통령이 되면 취임 직후 정부서울청사를 임시 집무실로 삼고, 세종시에 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하겠다”며 충청권 표심 잡기에 나섰다.

이처럼 진영을 막론하고 행정수도 천도를 외치는 배경에는 충청권의 강력한 지지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영남이나 호남과 달리 충청은 각종 여론조사나 선거 구도서 특정 진영으로 쏠리지 않는 등 표심이 상당히 유동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에도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14만표 차이로 졌던 곳이기도 한 만큼, 충청 지역의 민심은 대권의 향방을 가르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과거 200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은 충청권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 결과 대선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조기 대선서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장밋빛 비전이 대선주자들에 의해 재점화되면서 충청권 민심은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이 같은 상황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4월 3주차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충청권의 민주당 지지도는 전주 40.8%에서 51.1%로 10.3%p 상승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 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지난 16~18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 ±2.5%p, 신뢰수준 95%에 응답률은 6.6%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행정수도 완성’ 카드를 먼저 꺼낸 민주당이 충청 민심 일부를 흡수한 결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종 이전에는 ‘헌법 개정’이라는 높은 문턱이 존재한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이 형성됐다”며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을 위헌으로 판결한 바 있다. 국회법·규칙 개정과 함께 헌법에 수도 조항을 신설하는 개헌이 선결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후보에게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진정성이 있다면 개헌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행정수도 공약의 진정성을 증명하려면 수도권 중심 국가 운영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구조적 개헌 방안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실천할 의지를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선 헌법에 ‘수도’ 조항 신설이 불가피하기에 이를 포함한 ‘지방분권형’ 개헌안이 담긴 헌법 개정을 공약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반복될 때마다 세종시와 인근 지역 부동산시장이 크게 요동친 점 역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비슷한 논의가 진행될 때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며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가 줄어들고, 투기적 수요까지 유입돼 시장 불안이 가중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행정수도 이전 기대감이 커지면서 세종시 아파트값이 반등하고 거래량이 급증하는 등 부동산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4월 둘째 주(14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세종시 집값은 전주 -0.07%에서 0.11%p 오른 0.04%로 상승 전환했다. 2023년 10월 첫 주 이후 처음으로 아파트값이 반등한 것이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기준 지난 19일까지 등록된 3월 세종 아파트 거래량도 762건으로 2월 374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4월 거래량도 468건으로 이미 2월 거래량을 넘어섰다. 3월과 4월 거래량은 계약 신고 기간이 남은 만큼 향후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중론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국회와 함께 대통령실이 이전할 경우 수요가 늘어나 주택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진 영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매 선거철마다 반복됐지만, 실현까지 이어진 사례는 전무하다는 점이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지방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꺼내든 이후 매년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신행정수도법의 헌재 위헌 결정으로 원안은 무산됐고, 현재 세종시는 당초 구상보다 축소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남아 있다.

‘세종 시대’ 공약은 충청권 표심을 겨냥한 대표적 지역 맞춤형 카드이자,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적 명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헌법 개정, 국민 합의,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단순한 ‘표퓰리즘 논란’에 머무르지 않겠냐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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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