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국민의힘 갈등은 마치 막장 드라마와 같단 특징이 있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욕하면서 보는 막장식 정치 암투도 중독이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에 “그래도 된다”는 신호를 준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후보 중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인 메시지를 제시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전 총리와 악수하는 사진을 배경으로 “나라를 구한 을지문덕, 나라를 구할 문수덕수”란 표어가 담긴 포스터까지 올렸을 정도였다.
단일화 스토리
김 후보가 지난 3일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되자마자 받았던 질문은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문제였다. 하지만 김 후보는 여기선 “오늘 후보가 됐는데, 바로 단일화를 논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다른 태도를 보였다. 김 후보 캠프에선 “오는 25일까지 단일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자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곧바로 김 후보에게 강한 압박을 시작했다. 김 후보와의 상견례서도 단일화 문제부터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시한으로 정했던 날은 지난 6일이었다. 6일은 홍보물 인쇄 등 선거 실무 준비 시한이었고, 11일은 후보자 등록 마감 시한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11일까진 단일화 관련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지어야 원활한 대선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매개로 국민의힘 사무총장을 이양수 의원에서 장동혁 의원으로 교체하려고 했다. 이어 대선 유세 중 단일화 협의를 위해 지도부가 자신을 찾아온단 이야기가 들리자,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강수를 뒀다. 이후 김 후보 측과 한 전 총리 측은 단일화 합의와 관련해 여러 차례 회동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새벽 김 후보 선출을 취소했다. 한 전 총리는 곧바로 국민의힘에 입당해 홀로 후보로 등록됐다. 국민의힘은 11일 당원투표를 거쳐 전국위원회서 한 전 총리를 공식 대선후보로 선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원들은 이를 부결시켰고, 김 후보는 곧바로 대선후보로 복귀했다. 한 전 총리는 경선 탈락자의 선거 출마 자체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규정 때문에 대선에 출마할 길이 막혀 대권 도전도 그 순간에 끝났다.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된 태도를 바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경선 절차를 치르고 정당하게 선출된 대선후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된다. 마치 배우자를 쫓아내고 불륜 상대를 집에 들여앉히려는 것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식 전개가 이어진 것이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식 정치 암투
“그래도 된다” 신호 준 사람은?
막장 드라마는 극단적인 갈등을 주제로 전개된다. 개연성이 갖춰진다면, 극단적이더라도 ‘막장’이란 비난은 듣지 않는다. 따라서 막장 드라마로 거론되는 극본을 쓴 작가는 ‘막장’이란 평가에 예민하다. 이를 인정하면, 작가로서의 재능 부족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방영된 SBS <아내의 유혹>에선 아내의 친구기도 한 내연녀와 재혼하기 위해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이 나왔다. 가까스로 살아 신분을 세탁한 아내의 외형적 변화는 시청자들의 관점에선 오로지 얼굴에 점 하나를 찍은 것 뿐이었다. 그래서 “아내임을 몰라본다”는 설정에 비난과 조롱이 이어졌다.
지난 2009년 방영된 MBC <밥줘>는 남편이 아예 아내·내연녀와 같이 살면서 명절 차례를 지냈고, 죽은 시어머니의 영혼이 내연녀에게 충격을 줘 내연녀가 사망한다는 묘사도 나왔다. 심지어 아내가 전 남편과 내연남에게 “내게 감동을 준 사람과 재혼할 것”이란 선언을 해 비난을 들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밥줘>의 막장성을 심의한 후 사과 명령을 했고, MBC도 “우리도 이해하기 힘든 드라마라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MBC는 지난 2006년엔 <있을 때 잘해>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있을 때 잘해>에선 남편이 자신의 불륜을 비난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니, 불륜이라고 하지 말라”고 화를 내는 장면이 나와 크게 화제가 됐다.
채널 수 증가 등 방송가의 환경 변화와 맞물려, 방송국들은 드라마 편성을 줄이고 있다. 따라서 ‘막장 드라마’ 제작 열풍도 잦아들었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시사 대담 프로그램이다.
시사 대담은 정치인·변호사 등 패널 몇 명을 초대하고, 적당한 무대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구조로 구성된다. 그래서 제작비가 크게 들지 않는다. 미국식 토크쇼가 변형된 일본식 와이드 쇼 구성을 받아들인 이 형태는 종합편성채널이 시작했다.
극단적인 갈등 주제로 전개
후보 정해지자 곧바로 변심
그러다가 방송 환경 변화와 맞물려 공중파 방송국과 유튜브 채널로 확대됐다. 현실 정치와 막장 드라마의 공통점은 예측하기 어려운 막 나가는 전개에 있다. 한국인도 정치에 관심이 많다. 정확하게는 권력·이권을 둘러싼 정치공학적 암투와 막장성 전개에 관심이 많다.
아울러 막장 드라마를 일컬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공학적 암투는 욕하면서도 관심을 끊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흔히 ‘전략적 투표’로 포장되는 한국인의 투표 관성은 선호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 못지않게 싫어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낙마시키기 위한 배척 성향으로 움직인다.
악역을 비난하기 위해 막장 드라마를 보듯이, 싫어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힘의 내부 갈등은 특정인을 최대한 빨리 쫓아내기 위해 몰아치듯이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성 상납·악성 댓글 등 적정성을 불문한 소재들도 대거 동원된다. 정확한 사실 확인보다 낙인을 찍어 이미지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당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의 집요함도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3년 동안 윤 전 대통령과 친윤이 세를 움직여 쫓아낸 당 대표는 이준석·김기현·한동훈 등 3명에 이른다. 나경원 의원은 당 대표 출마를 준비하다가 큰 비난을 들으면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과 외교부 기후환경 대사직서 해임당했다.
막장 드라마 악역들은 “악행을 집요하게 반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 후보를 둘러싼 대립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집요한 전개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막장성도 욕하면서도 관심을 끊지 못하는 고정층이 있어서 근절이 어려워 보인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이 유권자의 시선과 비난에 전혀 굴하지 않고 같은 행태를 이어가는 원인은 “그렇게 해도 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들이 총체적으로 심판하려고 했다면, 이들은 진작 낙선해 정치무대서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신호를 준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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