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보이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이면

결국 이재명 무죄 만들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죄 개정안의 후폭풍이 심하다. 정치권에서는 각 당의 대선후보까지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으며 법조계서도 절차상 문제가 많다고 우려 중이다. 윤석열정부 내내 지속된 야권의 독단적인 법안 통과에 새로운 정권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권이 발의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재명 살리기’라는 정치권과 법조계 비판에도 강행한 것이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법사위는 지난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현행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의 요건 중 ‘행위’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가결했다. 개정안은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찬성 표결로 통과됐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50조 제1항은 선거 당선을 목적으로 연설·방송·통신 등의 방법으로 출생지·가족관계·직업·경력·재산·행위 등에 관한 허위사실 공표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요건이라 기소 남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해당 개정안을 꺼낸 이유는 대법원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지난 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는 “2심이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차장과 관련한 ‘골프 발언’과 백현동 발언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공직선거법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끼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전원합의체는 이 후보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골프를 쳤다는 의혹에 관해 ‘사진이 조작됐다’는 취지로 발언한 부분은 허위 사실 공표가 맞다고 판단했다. 백현동 용도변경과 관련해서도 “국토부가 성남시에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피고인이 허위 발언을 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은 이 후보에게 공직선거법상 피선거권 박탈형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후보가 관련 의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의로 기억과 다른 발언을 했다며 ‘김 전 처장과 골프를 한 적이 없다’ ‘국토부 압박으로 백현동 부지 용도를 변경했다’는 취지의 이 후보 발언을 모두 허위 발언으로 인정했다.

반면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김 전 처장 관련 발언들이 ‘인식’에 관한 것으로, 허위 사실 공표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백현동 발언에 대해서도 “단순 의견을 표명한 것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며 원심을 깼다.

파기환송 후 법사위까지
이전과 다른 대법원 입장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12명 중 10명의 다수 의견으로 2심 판단을 뒤집고 두 발언 모두 허위 사실 공표로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이흥구·오경미 대법관 두 명만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그간 정치적 표현의 자유 보장을 이유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처벌 범위를 점점 좁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서 선거인의 알권리와 그를 바탕으로 한 선거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더 강조하며 그간의 판례 경향과 다른 판단을 내놨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오자 즉각 개정안을 발의했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대법원은 그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 같은 입장을 드러낸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경기도지사 시절의 이 후보 사건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20년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말한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의 사건을 무죄 취지 파기환송했다.

이 후보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자 TV 토론회서 김영환 당시 바른미래당 후보가 ‘형님을 보건소장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죠’라고 묻자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원심(2심)은 유죄로 판단해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으나, 당시 대법원은 적극적으로 나서 허위 사실을 알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질문에 반론하는 과정서 부정확하게 답변한 것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을 곧바로 허위라고 평가하는 것은, 형벌 법규에 따른 책임의 명확성, 예측 가능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
뭐길래…

그러면서 토론회서의 발언이 다소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치나 선거를 통해 단죄돼야지, 법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면서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후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공직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허용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이 후보의 과거 판결은 최근 무죄가 확정된 이학수 정읍시장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장은 2022년 지방선거서 상대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가 기소돼 1·2심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후보의 2020년 판례를 인용해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며 파기환송했다. 이 시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지난 3월, 이 후보의 ‘김문기·백현동’ 발언 관련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에 다시 인용됐다.

대법원의 이 같은 입장은 정치인이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된 사례가 적다는 것에도 드러난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유죄가 확정된 대표적 사례는 국가혁명당 허경영씨다. 그는 202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TV 방송 연설서 “나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양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선 정책보좌관이었다”고 주장했다가 대법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됐으나,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함으로써 징역살이는 면했다.


허씨는 2007년 대선 때도 “대통령이 되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주장해 그때도 피선거권 10년 박탈에 해당하는 중형이 선고됐다.

이 밖에도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은 사례는 2023년 벌금 80만원이 선고된 조국혁신당 최강욱 전 의원과, 2008년 벌금 300만원이 선고돼 의원직을 잃고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 이무영 전 의원이 있다.

이번 개정안으로 정치권에선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다른 당 대선후보인 김문수·이준석 후보 모두 이 후보를 겨냥해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허경영도
유죄 확정

국민의힘 김 후보는 지난 15일 “세계 역사상 이런 독재자가 있었느냐. 법을 바꿔서 살겠다고 하는, 전 세계 오직 한 사람은 이재명”이라며 “이런 사람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정치가 왜 필요하고 왜 민주주의를 외치나. 이건 국기문란 행위”라고 지적했다.

개혁신당 이 후보 역시 같은 날 “이재명 후보가 만약 대통령이 돼서 행정권을 장악한다면, 이제 사법부만 장악하면 본인이 실질적으로 모든 헌법적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고, 결국 권력장악에 대한 욕심”이라고 일갈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검사 출신의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선거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법안이자, 이재명 후보 한 명을 위해 선거제도를 완전히 망치겠다는 것”이라며 “(구성 요건상)‘행위’를 없애면 자신의 과거 실적을 막 떠들고 다녔어도 없던 일로 해버리면 처벌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혜지 중앙선대위 상근부대변인은 논평서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해당 법 조항을 손봐서 면소로 만들겠다는 의도 아니냐”라며 “차라리 ‘이재명 무죄법’을 만들라”고 꼬집었다.

김 상근부대변인은 “선거서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도 처벌받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고, 결국 선거판 전체를 거짓과 왜곡으로 오염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법이 더 이상 국민을 위한 기준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을 위한 맞춤형 방패가 됐다”고 비판했다.

지난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서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내놨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하는 부분에 국한해서 ‘행위’의 개념을 정립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판사 출신인 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저도 선거법 재판을 많이 해봤지만, 허위사실 공표죄는 정치의 사법화를 이끄는 가장 대표적 독소조항”이라며 “정치적으로 많이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우려
“야권 독단…입법 과속”

법조계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법부가 형해화돼 삼권분립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충분한 논의와 국민 의견수렴 절차 등을 거치지 않은 채 법안이 통과됐다는 점에서 절차상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증 형사법 전문)는 “대법원서 사회의 변화를 고려해 처벌 여부를 결정하면서 판례가 바뀌며 처벌 규정이 없어지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명분이 없는 상황서 이재명 후보를 위해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고도의 법 논리자들만이 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한 셈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뽑을 때 어떤 것을 보고 뽑아야 하는지 기준을 잃게 될 것”이라며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선거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준범 법률사무소 번화 대표 변호사는 “법원은 존재하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기에 입법부에서 공직선거법 처리를 강행하더라도 특별히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개정안 통과 후 가장 우선 적용될 것으로 점쳐지는 인물이 이재명 후보다 보니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입법이 계속 만들어지면, 사회 정의가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다”며 “일각에선 허위사실 공표죄가 정치 사법화를 이끄는 독소 조항이라고 하는데, ‘공직선거 후보자가 거짓말을 해도 되느냐’는 반론에 답하는 게 우선”이라고 부연했다.

한국부패방지법학회 상임이사인 김소연 변호사는 “허위사실 공표죄서 행위를 없애는 것은 법 자체를 없애는 것과 같다.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일반 국민들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소급 적용돼서 오래전부터 피선거권이 박탈돼 선거를 치르지 못한 사람들 입장에선 매우 억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 의견
수렴 패싱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입법 과속’을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패싱’한 채 대권 시계만을 의식해 법 개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 6일 “법이 문제였다면 진즉 (개정안을) 만들었어야지 (이 후보가) 걸리니까 법이 문제라고 한다”며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은 보편적 적용을 위한 것이지 자기들의 특수한 이익에 따라 이리 만들고, 저리 만들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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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