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를 만나다> 무소속 허은아 제3지대 승부수

“윤석열 닮은 이준석은 잡는다”

[일요시사 김명삼 대기자] 계엄·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동안 원내 4당 개혁신당의 내홍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치적 동지로 통했던 개혁신당의 허은아 전 대표와 이준석 의원은 마침내 결별했고, 이제는 각자 대통령선거에 나서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는 운명이 됐다.

허은아 전 개혁신당 대표는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31명의 주요 당직자들과 함께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하면서 무소속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24일에는 “사라지는 나라에서 살아나는 나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회복’ 등을 키워드로 하는 출마에 대한 비전도 밝혔다.

조기 대선이 확정되기 전인 지난달 18일, 이 의원이 당내 찬반투표를 거쳐 개혁신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바 있기에, 당 내홍은 대선 여론의 장으로 무대를 옮겨 ‘시즌2’를 맞게 됐다.

앞서 지난 2월 개혁신당 내홍 와중에 <일요시사>와 만난 허 전 대표는 이 의원 등의 정당보조금 불법 사용 사실을 공개하는 한편, 비하·혐오·갈라치기 방식의 이준석 정치를 강도 높게 비난했던 바 있다. 이번 인터뷰서 그는 이준석 정치를 ‘가짜 개혁’으로 규정하고, 기득권과 부조리를 깨는 ‘진짜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선거에 나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허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허 후보를 두고 많은 이들은 개혁신당 탈당까지는 예상했지만, 대선 출마는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다. 어떤 동기에서 출마하게 됐는가?


▲지난해 1월 여러 달콤한 제안을 뿌리친 채 의원직을 던져 가며 국민의힘을 탈당했던 것은 이 나라를 제대로 개혁해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지난 1년 넘게 이준석 의원을 겪어 보니 개혁에 적합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탈당에 이은 대선 출마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정치를 시작했을 때나, 국민의힘을 탈당했을 때나 내 마음가짐은 변한 게 없다. 하나뿐인 딸은 물론, 딸의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한민국을 만들려 한다.

-구체적으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왜 개혁에 적합하지 않은가?

▲낡은 정치에 맞서 기득권을 깨겠다는 그의 말에 나도 속았고, 동탄 시민들도 속았다 생각한다. 처음엔 그 구호를 대견하게 여기면서 비호감도 82%(1월9일 발표 NBS)에 달하는 그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 알고 봤더니 당내서 기득권을 놓지 않음은 물론, 부조리를 만들어 내는 '젊은 꼰대'였다.

스스로가 '반(反) 개혁'인데 어떻게 대한민국을 개혁하겠나? 이제는 대선후보가 돼 전 국민을 속이려 들고, 당은 그에 대한 양두구육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간 이준석을 지원해 왔던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가짜 개혁과 다른 진짜 개혁이 무엇인지 선보이려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수개월간 이어진 개혁신당 내홍의 본질이자 근본 원인이 이준석 의원인가?

▲그렇다. 이 의원은 최측근인 김철근 사무총장을 통해 당 재정을 비롯해 인사·기획 전략·조직 등을 좌지우지하는 사당(私黨)으로 개혁신당을 전락시켰다. 자칫 당이 몇몇 정치 낭인들과 특정인의 탐욕을 위한 사금고가 될 판이었다. 이에 맞서 사무총장을 교체하려 하자 온갖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퍼뜨려 가면서 끝끝내 나를 끌어내린 것이다.


-당의 운영자금이 특정인 사금고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예를 들면 국민 세금으로 공당에서 정책연구를 위해 쥐여준 돈이 9000만원이 넘는데, 당이 원하는 연구를 내팽개치고 세 명의 의원이 나눠 가졌다. 그중에는 한 정치학 박사가 전공과는 하등 상관없는 ‘지하공간 데이터센터 분석’을 연구한 것도 있다. 알고 보니 그는 친이준석 평론가로 통하는 A씨였다.

연구 결과물조차 당 대표인 내게 보고되지 않았다. 또 다른 친이준석 평론가로 알려진 B씨의 회사는 규정된 공개경쟁 입찰을 생략한 채 5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이준석 특수관계인 C씨의 회사는 당 홈페이지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1100만원을 받아, 지금껏 1억5000만원을 넘겼다.

이 의원의 최측근 김철근 사무총장의 지인 D씨 업체는 판매 품목이 전혀 무관한 온라인 쇼핑몰을 하는데 당의 현수막 제작을 최대 2배 높은 가격으로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는 개혁신당이 이준석 사당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 의원의 근거 없는 흑색선전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내가 지난해 총선에서 비례 순번을 달라고 동탄에 찾아와 세 시간이나 울었다고 하더라. 악의적으로 지어낸 이 거짓말로 인해 당내 여론이 악화해 당 대표직에서 끌어내려진 것이다. 만약 이 의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하면 될 테지만,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실이 전혀 없었으니까.

더 황당한 것은 ‘천아용인’의 천하람 의원과 이기인 최고위원이 이 거짓말을 고스란히 받아 내가 비례 순번을 받지 못한 것이 내홍의 본질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내가 바로 옆에 떡하니 앉아 있는데 천연덕스레 그러더라. 오히려 나는 비례 의원직을 던지고 개혁신당에 합류하지 않았나? 

그런 사정을 잘 아는 그들이 그렇게 말하다니 모욕이었다. 황당하기 그지없어 썩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것마저 공격의 대상이 됐지만…

-이 의원을 다룬 다큐 영화 <준스톤 이어원>이 대선 시즌을 앞두고 얼마 전 개봉했다. 국민의힘 비례 의원직을 던지던 날 당시 천하람·이기인을 앞에 두고, 이 의원까지 염두에 두고 “평생 갈 동지”라며 “가족을 얻은 것”이라고 평가했었는데…

▲그때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같은 장면을 회상하면서 이 최고위원은 자신의 유튜브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크게 비웃는 것을 내보내기도 했다. 정치가 비정하다지만, 당 내홍의 발단인 김철근 사무총장의 해임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주장하고 찬성했던 그가, 이 의원이 저를 몰아내면서까지 그를 복귀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공개 석상에서 “김철근을 다시 앉혀라”라고 180도 말을 바꿔서야 되겠나?

-그래도 당 대표로서 내홍을 추스르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닌가?

▲내가 대표였다지만 자타공인 개혁신당은 이 의원이 압도적 최대주주다. 거의 한 달여 동안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외부에 불만을 내비치지 않고, 비공개 상태로 지속해서 당내에서 다양하게 소통했다. 그런데 그의 의중을 잘 안다는 중재자들이 하나같이 한 말은 “그냥 (그에게) 밟혀라” “김철근을 다시 받으면 없던 일로 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겠다”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의 무도함을 보고 나를 도와주기 시작한 조대원 최고위원은 그쪽에 김 사무총장을 받되 실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김 사무총장이 당을 전횡하게 둔다면 내가 대표로서 진짜 개혁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원래 허 후보는 ‘대통령을 만들 사람’이라는 구호로 당 대표로 당선됐다. 누가 봐도 이준석을 도와 정권을 창출하는 조력자가 되려 했던 것 아닌가?

▲당 밖에서도 문호를 개방하는 완전 국민경선제를 통해 훨씬 더 경쟁력 높은 대선후보를 당당히 내거는 당 대표가 되고 싶었다. 일부 인사들과 접촉해 긍정적인 반응도 끌어냈다. 그분들이 높은 국민적 관심 속에서 이 의원과 경선을 치른다면 정권 창출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이대로였다면 이 의원에게도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이런 구상을 밝혔더니 이 의원이 아주 싫어하는 게 느껴졌다. 이 의원이 나를 내쫓은 뒤 결국은 토론 없는 대선 경선 규정을 만든 채 공산당식 찬반투표한 것을 보고, 그가 말해온 ‘낡은 정치 혁파’라는 구호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그래도 의원직을 내던지며 합류한 당, 창당준비위원장이자 대표까지 지낸 당을 나온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당연히 고통스럽고 아프다. 하지만 이 의원의 위선과 당내 부패한 구조를 뻔히 확인해 놓고 침묵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원래 4·2 재보궐선거서 젊은 정치인들의 사다리이자 희망이 되어주려 후보 배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책위의장을 교체해서라도 재보선을 위한 공천관리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런데 내가 직을 내려놓자, 공관위를 없애고 출마하려던 예비후보를 주저앉혀 결국 어디에도 후보를 내지 않았다. 그러고선 이걸 내홍 탓으로 돌렸는데, 당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탈출이 아니라, 국민과 미래 정치를 위해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대통령을 만들 사람’이었다가 이제는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됐는데 어떤 동기가 있었나?

▲국민은 거대 양당에 진절머리가 나지만 제3지대에 뚜렷한 대안이 없다. 오죽하면 비호감 높고 다수 다자 대결 구도에서 1~2%대 지지에 불과한 이 의원이 3자 대결 구도에서는 일정한 지지를 얻을 정도다. 양당에 실망한 국민께 제3지대 후보마저 가짜 개혁 후보라면 절망뿐일 것이다. 나는 제3지대 대표 주자가 돼 이 의원을 이기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께 이 진심이 잘 전달된다면 그 이상의 성과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제3지대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기득권과 부조리가 누적돼있다. 구태 양당은 기득권 자체이기도 하면서 기득권과 부조리를 제도적으로 인정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 성장이 벽에 가로막힌 지 오래고 미래에 대해 낙관해야 할 미래 세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전 세대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가득하다. 기득권과 부조리를 진짜 개혁으로 깨뜨리고 국민께 희망을 드리는 것이 제3지대의 본질이다.

-이번 대선에서 다루고픈 핵심 의제는 무엇인가?

▲해외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자살하는 국가라고까지 평한다. 인구 소멸로 인한 대한민국 소멸이 실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왔기에 대통령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사라지는 나라’ 대한민국을, ‘살아나는 나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대·성별·정치 성향 등으로 갈가리 찢긴 대한민국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주고, 기대고 붙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되어주며, 나뉜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청과점 ‘대왕상회’ 딸이 감정 노동자와 소상공인을 거쳐 정치인이 됐다. 여성이지만 여성이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스스로 가진 역량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생소한 분야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였지만 데이터 기본법 등을 제정하며 착실하게 정치적 소임을 다했다. 제3지대 정치인으로서 이런 삶과 이런 정치가 가능하다는 꿈을 국민께 드리고 싶다. 이번 대선에서 허은아의 성공은 곧 대한민국의 성공이 될 것이다.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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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