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매머드 특검 3인방’ 조은석·민중기·이명현

현미경 대고 메스 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들을 조사할 어사 3인방이 출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3대 특검에 조은석, 민중기, 이명현을 지명하며 빠르게 어사화를 씌웠다. 각기 다른 배경과 경력을 지닌 이들은 ‘매머드 특검팀’을 이끌며 수사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밤, 내란특검법, 김건희특검법, 채상병특검법에 따른 특별검사를 지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13일 공식 발표를 통해 “전날 오후 11시9분, 대통령실로부터 3대 특검 지명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수사 준비
본격 돌입

이 대통령은 내란 특검에 조은석 전 감사원장 직무대행, 김건희 특검에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채상병 특검에 이명현 전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을 각각 임명했다. 국회가 특검 후보자 추천을 마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 대통령이 특검을 지명해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법조계와 학계의 다양한 추천을 바탕으로, 이들 특검이 수사 능력은 물론 조직 통솔력과 성과 도출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천됐다”고 밝혔다. 내란 특검으로 지명된 조은석 전 직무대행과 김건희 특검으로 지명된 민중기 전 법원장은 민주당 추천, 채상병 특검으로 지명된 이명현 전 부장은 조국혁신당 추천을 받았다.

3대 특검은 모두 윤석열정부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수사하게 된다. 내란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의혹을, 김건희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다룬다. 채상병 특검은 2023년 7월 발생한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의혹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앞서, 3대 특검법은 이 대통령 취임 이틀째인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됐으며, 지난 10일 이 대통령 주재의 국무회의에서 제1호 법안으로 의결됐다. 이후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민주당과 혁신당에 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했으며, 두 당은 전날 오후 각각 후보자를 추천해 대통령실에 제출했다.

이 대통령이 각 당 추천 후보자 중 1명씩을 임명하는 기간은 3일 이내인데 추천 당일 즉시 지명돼, 3대 특검팀의 출범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특검으로 지명한 조 특검은 내란 특검을 맡게 됐다. 조 특검은 검사 출신으로서 수십 년간 쌓아온 풍부한 수사 경험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그는 과거 여러 차례의 중요한 사건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사를 이끌었던 인물로, 내란 사건을 맡게 된 이번 특검에서도 그 역량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 특검은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한 기수 후배다. 그의 수사력은 검찰 업무와 더불어,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수많은 의혹을 파헤치며 대형 사건들을 처리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조 특검이 처음 주목을 받은 사건 중 하나는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의 검경 합동 수사였다.

진용 갖추는 3대 특검
속도 내며 가동 임박

당시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둘러싼 청와대 및 법무부와의 갈등이 심화됐고, 조 특검은 2014년 대검 형사부장직에서 물러나 청주지검장으로 좌천된 적이 있다. 당시 조 특검은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서 세월호 사건을 수사하면서 해경청장의 기소를 진행함으로써 강한 수사 성향을 각인시켰다.

해경123정장이 당시 구조 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국가 책임 문제를 법정에서 다루게 됐다. 당시 박정부와 법무부, 청와대와의 갈등 속에서도 조 특검은 끝까지 수사를 밀고 나갔고, 해경123정장이 기소된 후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그는 강경한 수사로 인해 박정부와의 갈등이 심화 됐고, 그 결과 청주지검장으로 좌천됐다. 이로 인해 재수사 전문 검사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조 특검은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주요 수사에 참여하며 뛰어난 수사 역량을 발휘했다. 1997년 서울지검 특수1부 검사로서 경성 비리 사건을 재수사하며 당시 민주당 정대철 전 의원 등 주요 정치인들을 구속 기소한 바 있다.

또 1999년 옷 로비 사건에서 최순영 신동아그룹 전 회장을 구속 기소하는 등 재벌 및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에서는 주임 검사로서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을 구속 기소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조 특검의 수사는 여야를 불문하고 진행됐다. 2010년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로서 청목회 입법 로비 사건을 수사하며 여야 의원 11명의 지역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현직 의원 6명을 재판에 넘겼다. 여야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조 특검은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사건을 철저히 수사했다.

이는 조 특검이 정치적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오직 법과 사실에 입각해 수사한다는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

윤정부에서도 조 특검은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감사원 감사위원으로서 전 정권의 표적 감사와 현 정부의 봐주기 감사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내부 견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조 특검은 윤 전 대통령과 관련된 대통령 관저 비리 의혹에 대한 재심의 지시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뇌물 혐의 수사 요청 등을 통해 다시 한번 입지를 다졌다.

‘재수사’
전문 검사

이제 조 특검은 내란 특검을 맡아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관련 의혹을 파헤칠 예정이다. 조 특검은 검찰 내부 및 정치권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언제나 법의 정의를 따르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번 수사에서도 그 누구도 예외 없는 철저한 수사를 예고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으로 지명된 민 특검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문재인정부 시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추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민 특검은 대전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및 서울중앙지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다양한 법원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동·행정법 분야의 전문가로서 평가받는다.

민 특검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 서울-양평고속도로, 공천 개입 의혹 등과 관련된 사건들을 중점적으로 파헤치게 된다. 그는 법원 내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위한 판결을 다수 선고하며 노동법 및 행정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경력이 있다.

2017년, 민 특검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 농단 사건 해결을 위한 전국판사회의에 고위 법관으로 참석했으며, 이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건 조사를 주도했다. 이 위원회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박정부와 법원행정처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과 관련해 유착된 정황을 발표한 바 있다.


민 특검의 이 같은 조사 경험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특검은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로 지명됐다. 그는 군법무관 출신으로, 병역비리 사건에서 수사 외압을 폭로한 법조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특검은 해병 순직 사건의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임명됐으며, 군법무관으로서 쌓아온 수사 경험과 군 내부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이 특검은 1962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성남서고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90년 제9회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군법무관으로서 1991년 중위로 임관해 20여년 동안 군 법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육군 제9군단 심판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해 제30기계화보병사단 법무참모, 육군본부 법무감실 군판사, 육군본부 법무감실 송무과장 등을 거쳤다.

군법무관
출신 검사

이후 국방부조달본부 법무실장, 방위사업청 법무지원팀장, 합동참모본부 법무실장 등 다양한 보직을 맡으며 군 법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특검이 주목을 받게 된 큰 사건 중 하나는 바로 1998년 제1차 병역비리합동수사본부에서 국방부 팀장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의 병역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한 인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자신이 맡은 수사에서 직속 상관인 국방부 검찰부장과 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부터 수사 방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 문서는 나중에 ‘이명현 보고서’로 불리며 언론에 공개됐고, 수사 외압 진위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통해 이 특검은 그동안 군 내부에서 비밀스럽게 억압됐던 수사 외압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일로 이 특검은 법조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이 특검은 병역비리 사건 외에도 여러 대규모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발생한 대규모 병역비리 사건인 박노항 원사 사건 수사에 참여했으며, 이후 이 사건과 관련된 여야 장성과 대령 상당수의 연루 여부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그에게는 이른바 ‘VIP 격노설’의 실체를 파헤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 특검은 군법무관 출신으로서 군 조직 내부의 복잡한 구조와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군 조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수사에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특검이 맡은 이번 채상병 사건 특검 역시 군 내부의 비리와 외압을 파헤치고자 하는 그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명한 특검 3인방은 본격적인 수사 준비에 돌입했다. 각 특검은 약 100~200명 규모의 수사팀을 구성해 본격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특검 후보자들은 각기 다른 배경과 경력을 가진 인물들로, 각 사건의 특성에 맞춰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윤 부부 잡는 조·민
채해병 진상 쫓는 이

내란 사건을 맡은 조 특검은 검사 출신으로서 검찰 내부 지원을 요청하며 수사 실무진 확보에 빠르게 나섰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할 민 특검은 판사 출신으로서, 특검보 인선을 우선시하며 신중하게 준비하고 있다. 채상병 사건을 맡은 이 특검은 군법무관 출신으로서, 군 조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건희 여사 사건을 담당하는 민 특검은 가장 먼저 수사에 착수했다. 특검보 4명을 임명하며 수사 지휘부를 꾸린 민 특검은 곧바로 검찰 핵심 간부들과 면담을 진행하며 수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지난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건희 특검은 검찰 출신인 김형근(사법연수원 29기), 박상진(29기), 오정희(30기)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인 문홍주(31기) 변호사를 특검보로 임명했다. 이들은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특검팀은 이날 서울 서초동 임시 사무실에서 첫 회의를 열고, 추가 수사팀 구성과 역할 분담, 수사 일정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대검찰청과 경찰청에 수사 인력 파견을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민 특검은 특검보들과 함께 이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맡고 있는 박세현 서울고검장, ‘정치 브로커 명태균 사건’을 담당하는 박승환 서울중앙지검장 직무대리, ‘건진법사’ 전성배 의혹을 맡고 있는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민 특검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중앙지검에서 이첩된 사건과 파견 인력 문제를 협의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밝혔다. 김건희 특검은 특검법에 따라 최대 40명의 검사를 파견받을 수 있다.

또 민 특검은 이날 금융감독원을 찾아 관련 인력 지원을 요청했다. 검찰은 김 여사 관련 수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서울고검은 미래에셋증권을 압수수색해 김 여사의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을 확보했으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주요 인물인 김 모씨도 최근 재소환해 조사했다.

김 여사는 이전에 관련 의혹을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그와 관련된 거래 상황을 문서로 전달했을 가능성에 대해 진술을 바꿨다. 검찰은 김 여사의 사전 인지 여부를 파악하며,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이모 대표와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전 회장 등 핵심 인물들의 추가 소환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3개 특검은 각각의 사건 성격에 맞춰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공통적으로는 철저한 준비와 신속한 수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검들은 수사팀 구성과 더불어 사건의 쟁점을 분석하고, 수사 전략의 얼개를 짜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특검법상 수사 준비를 위한 기간은 최장 20일이며, 이르면 7월 초, 늦어도 7월 중순부터는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번 3대 특검은 규모와 수사 기간 면에서 역대 최대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원하게
밝혀낼까

3개 특검에 파견될 검사는 총 120명에 달한다. 내란 특검에 60명, 김건희 특검에 40명, 채상병 특검에 20명이 파견된다. 조 특검이 이끄는 내란 특검은 단일 사건 기준으로 최대 인력을 투입하는 ‘매머드급 특검팀’으로 불리며, 최대 170일간 수사가 가능하다. 김건희 특검 역시 최대 170일간 수사를 진행할 수 있고, 채상병 특검은 140일간 활동하게 된다. 채상병 특검은 특검 1명과 특검보 4명, 파견 검사 20명 등 최대 105명 규모로 구성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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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