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바빠진 검찰의 두 얼굴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검찰을 비판하기 바쁘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4년간 수사해 무혐의로 판단했는데 재수사에 들어가자, 주가조작 입증 정황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란 핵심 피의자에 대한 보석을 법원에 요청한 것에 대한 지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두 사건 모두 특검과 연관돼 검찰이 특검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이 정권이 바뀌자 미진했던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3대 특검과 관련된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특검과 주도권 경쟁을 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재수사하자
정황 증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이 김 여사의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롭게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했을 때와 달리 김 여사가 주가조작 가능성을 인식한 정황이 담긴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김 여사는 또 지난해 7월 초 검찰의 조사가 임박했을 당시 김주현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과도 30분 넘게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고검 형사부(부장검사 차순길)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을 압수수색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 거래 경위를 확인하기 위한 압수수색으로, 검찰은 이 과정에서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담당하던 직원과 2009년부터 약 3년 동안 통화한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로 확보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2010년 말경부터 시작된 2차 주가조작 시기와 겹친다. 검찰이 해당 녹음파일들을 분석한 결과 김 여사가 ‘주가조작 일당에게 계좌를 맡기고 수익이 나면 그중 40%를 그 일당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쪽에서 주가를 관리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육성 녹음파일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증권사 직원도 최근 검찰 조사에서 김 여사가 주식 매매 세력에 가담했다고 당시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김 여사가 본인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여사 측은 “원래 일임매매하면 10~30% 수익은 보장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2020년부터 4년 넘게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같은 증권사를 압수수색하면서도 해당 통화 녹음을 확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걸로 파악돼 ‘부실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팀은 김 여사 미래에셋 계좌에서는 2010년 11월 3일~12월 3일 사이 주가조작이 의심되는 거래가 발생했는데, 전화 주문을 한 게 아니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이뤄진 거래여서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통화한 내용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 육성 수백개 녹취파일 이제야?
계좌 로그인 기록엔 블랙펄 IP 주소도

당시 수사팀은 전화 주문 방식으로 거래된 다른 증권사 5곳(신한·DS·DB금융·한화·대신)에서는 김 여사가 통화한 녹음파일을 모두 확보해 분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재수사를 통해 블랙펄인베스트먼트(이하 블랙펄)와 김 여사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파악했다. 김 여사 명의의 주식 계좌에 여러 차례 접속한 IP 주소가 블랙펄 사무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전 수사팀은 김 여사 계좌에서 주식 매매 시점에 HTS에 접속해 있던 IP 주소들만 분석했는데, 재수사팀은 HTS 프로그램에 로그인하는 시점에 사용된 IP 주소들까지 미래에셋증권에 추가 요구한 끝에 해당 흔적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재수사팀은 블랙펄 측이 IP 주소를 숨기기 위해 김 여사 아이디로 HTS를 이용할 때 별도의 무선 인터넷 장비를 이용했지만, HTS 프로그램 로그인 시점에는 실수로 사무실 인터넷망을 몇 차례 이용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김 여사 계좌를 관리하며 주가조작을 주도했던 블랙펄의 IP가 없는 것이 김 여사 불기소 결정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이마저도 뒤집힌 것이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검찰이 혐의 없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재수사에 들어가 파일을 찾아냈다”며 “정말 스스로 자폭한 일이다. 국민들이 보기엔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 전 총장은 “미래에셋도 압수수색했다고는 하지만, 그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 아니냐”며 “검찰이 그걸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지금 와서 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인지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언제 확보했는지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4년 전 압수수색을 하고도 확보하지 못했던 김건희 주가조작 증거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검찰발로 쏟아지고 있다”면서 “주가조작의 ‘스모킹건’인 녹음파일을 검찰이 언제 확보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변인은 “새롭게 공개된 육성 파일에는 김 여사가 맡긴 구체적 액수와 수익 배분 내용이 명확하게 담겨있다”면서 “검찰은 4년 동안 존재를 몰랐다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우연히 파일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 말을 믿으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지난 4년 동안 권력에 기생하며 선택적 수사로 김건희에게 면죄부를 줘왔던 검찰의 족적이 확연히 남아있는데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뒤집히는
불기소 이유


문 대변인은 “김건희만이 아니라 검찰도 특검 대상”이라며 “민중기 특검은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뿐만 아니라 검찰 면죄부 수사의 진실도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18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김건희에게 면죄부를 줬던 검사들을 당장 수사해야 하고, 당장 구속시켜야 한다”며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부실 수사로 김씨를 무혐의 처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 의원은 “같은 검사인데 그때 수사했던 검사는 왜 그걸(통화 녹취 파일) 발견 못했을까? 왜 지금 검사들은 이걸 발견했을까”라며 “국민들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검찰이 봐줬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주가조작보다 더 심각한 범죄는 주가조작을 봐주는 것”이라며 “특검으로 낱낱이 밝혀야 한다. 김건희씨 주가조작을 봐준 사람들 모두 국민을 우롱한 죄까지 모아 최대한의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도 최소한 수사팀에 대한 감찰·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19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와 인터뷰에서 “해당 검사와 수사관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 감찰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통화 녹취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파일 확보를) 안 했다면 왜 안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주가조작) 1~2차에 걸쳐 3개 계좌를 이용한 사람은 김건희씨밖에 없다”며 “‘공범 중에 왕공범’인 김건희씨만 왜 수사 안 했느냐는 의혹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특검이 출범하자 이제야 증거를 찾았다는 점에서 수사의 진정성보다는 수사의 주도권 다툼에 더 가까운 행보로 읽힌다”며 “특검이 제대로 수사하기 전에 검찰이 기소한다면 특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할 수 없고 공소 유지에만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다르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외에도 검찰은 내란 핵심 피의자의 보석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내란 수사는 하지 않고 오히려 핵심 피의자를 풀어주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오는 26일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조건부 보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보석 허가 이유에 대해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른 1심의 구속 기간이 최장 6개월로 그 기간 내 심리를 마치는 게 어렵다”며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피고인 출석을 확보하고 증거인멸을 방지할 보석 조건을 부가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통상의 실무례라는 점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27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 기간은 2개월이 원칙이며, 필요 시 2개월 단위로 2차례 갱신할 수 있다. 이에 법원은 지난 2월25일과 4월22일 김 전 장관의 구속 기간을 갱신했다.

검찰 측은 구속 기간 만료를 열흘가량 앞둔 상황에서 재판부에 보석 조건부 직권보석을 요청했고, 김 전 장관 측은 보석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구속 기간 만료 시에는 단순 석방되는 반면, 보석으로 풀려날 경우 여러 조건이 따라붙는 탓이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으로 ▲법원이 지정하는 일시와 장소에 출석할 것 ▲증거를 인멸하지 않을 것 ▲법원 허가 없이 외국으로 출국하지 않을 것 ▲사건과 관련된 피의자나 피고인, 참고인이나 증인 등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을 것 ▲주거 제한 ▲보증금 1억원 납부 등을 명령했다.

김 전 장관이 이 같은 보석 조건을 어길 시에는 보석이 취소되고 보증금이 몰취되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게 된다.

앞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은 혈액암에 따른 건강악화를 이유로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져 지난 1월 보증금 1억원 납부와 사건 관계인 등과 연락 금지 등을 조건으로 석방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따라 석방됐다.

김 전 장관의 보석으로 인해 노상원 전 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국군수도방위사령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 내란 핵심 피의자들도 보석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군 검찰은 최근 재판에서 이들에게 직권 보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수사·내란 동조 등 비판 나와
“특검 시작하면 검찰은 할 게 없다”

다만 김 전 장관이 보증금 제출과 사건 관계자와 연락할 수 없는 조건이 붙은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했으며 이로 인해 오는 26일 무조건 석방될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다른 내란 핵심 피의자들도 보석 결정에 불복하고 석방을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과 군검찰은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돼 내란 핵심 피의자들이 다시 모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건부 보석을 요청했다는 입장이지만 ‘내란을 비호하는 행위’ ‘특검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검에서 내란종사혐의로 내란 핵심 피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은석 특검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18일 김 전 장관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비상계엄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2일 대통령경호처를 속여 비화폰을 지급받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에게 전달하고, 같은 달 5일엔 수행비서 역할을 한 민간인 양모씨에게 계엄 서류를 없애라고 한 혐의다.

이는 경찰청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로 새롭게 드러난 부분이다.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조 특검이 임명 6일 만에 곧장 수사에 돌입한 것은 김 전 장관의 신병 확보를 유지하기 위한 의지로 풀이된다. 내란 특검이 김 전 장관에게 새 혐의로 추가 기소한 데 이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그의 구속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김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 등 사건 관계자와 연락하거나 당시 상황에 대한 ‘말 맞추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일정 부분 덜 수 있다. 특검 입장에서는 기존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외환 의혹 수사를 위해서도 김 전 장관의 신병 확보를 수사의 ‘첫 단추’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같은 이유로 내란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주요 군 장성들이 내란 특검 초기 수사의 주요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검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특검 입장에서는 (주요 인물을) 그냥 풀려 나가게 둘 수 없다는 기조일 것”이라며 “(다른 사령관에 대해서도) 추가로 기소할 것을 찾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다만 김 전 장관 측은 특검의 기소를 두고 “수사 준비 기간 중에 있어 공소 제기할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권을 남용해 김 전 장관을 불법 기소했다”며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이 수사 시작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검이 수사를 시작하면 검찰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추가 기소
가능성은?

특검을 경험한 한 변호사는 “최근 검찰의 행보는 검찰개혁을 앞두고 특검과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검 임명 후 20일 동안 특검팀을 구성하는 동안 수사 실적으로 올리거나 해서 특검 내에서 검찰의 목소리를 더 키우기 위해 갑자기 새로운 증거를 갖고 오고 구속 만료를 앞둔 피의자들의 보석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조은석 특검처럼 특검이 수사를 빨리 시작해 검찰이 사건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우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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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장동혁 갈지자 행보 속셈

‘오락가락’ 장동혁 갈지자 행보 속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미국 정계가 이재명 대통령을 압박하는 흐름을 타 강경 보수 노선과 장외 집회로 기세를 올리려고 한다. 하지만 8개월여를 앞둔 지방선거에 정치 생명이 달린 정치인의 현실을 고려해 “극우 방식으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빙글빙글 도는 장 대표의 ‘용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훈훈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앞세워 “왜 미국에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는 등 젤렌스키 대통령을 강하게 질타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호평에서 비판으로 일각에선 “이 대통령도 이런 망신을 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왓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 대해서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는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전 “한국의 새 정부가 교회를 잔인하게 급습하고, 우리 군사기지까지 들어갔다”며 “한국에서 숙청·혁명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양에 가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만나시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서 저도 거기서 골프를 칠 수 있게 해달라”는 등 저자세로 나가면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노벨평화상 수상 욕심을 자극했다. 국내에선 평소 강경한 정치 성향을 유지하는 이 대통령의 ‘저자세’를 유연함으로 해석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에 빠지면서 이 대통령에 대한 호평은 금세 비판으로 바뀌었다. 당시 체결됐던 한미 관세 협상의 핵심은 ▲상호 관세율 15%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달러(약 485조원) 등이었다. 문제는 3500억달러가 우리나라 총 외환 보유고의 84%에 달하는 액수란 것이다. 아울러 두 대통령의 공동합의문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미국에 “자동차·반도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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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공정하거나 그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으면, 한국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이츠 부의장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서실장·사무총장을 지낸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전해졌다. 윤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선거가 진행돼 내가 큰 피해를 봤다”는 취지의 부정선거론을 주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플라이츠 부의장은 지난 1월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을 몰아내고 대통령 권력을 약화하려는 극좌 급진주의자들에게 유리한 발언을 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하고, 두 사람의 보수 철학은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강경 보수 진영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탄핵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는 지난 8일 ‘대통령·부산시 교육감 선거서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손 목사와 손잡고 함께 시위를 주도한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지난 13일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코리아로부터 채널 수익 창출 중단 통지를 받았다. 수익 창출이 중단된 이유는 “민감한 콘텐츠 관련 정책을 위반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격분한 전씨는 “언론 탄압이자 보수 우파 죽이기”라며 “구글코리아 내 좌파 직원이 판단한 거냐”고 비판했다. 아울러 지난달 26일 당선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 표심에 지지를 호소해 당선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당선 이후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낸 국민의힘 4선 김도읍 의원을 다시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했다. 트럼프의 양동 작전 김 의장은 평소 중도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고, 장 대표는 김 의장을 삼고초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군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소리 낼 때, 전씨는 당 밖 의병으로서 그 소리를 증폭하고 적을 막는 역할을 했다”며 “당 밖 의병이 전씨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1등 공신임을 자처하던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크게 반발했다. 전씨는 지난달 30일 “제가 장 대표에게 영향력이 있어 힘이 세다고 보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벌써 제게 인사·공천 청탁을 한다”며 “저는 장 대표에게 부담을 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런 역할은 안 한다”고 말하는 등 장 대표에게 견제구를 던졌다.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도 지난 1일 “많은 사람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도읍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영남 지방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4개 자유 우파 정당에 양보하면 된다”며 “이에 응하지 않아서 4개 정당이 영남 전 지역에 후보를 내면 국민의힘은 이길 수 없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장 대표는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밝혔던 “더 강하게, 더 넓게 500만 당원과 함께 싸울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다. 같은 날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국회 본관 앞에 모여 ‘야당 말살 정치 탄압 특검 수사 규탄대회’를 진행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지도부가 가장 강력한 방식의 투쟁을 하기로 했고, 장외투쟁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장외투쟁 명분은 ▲검찰청 폐지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반대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 수사 기간 연장 반대 ▲내란 특검의 국민의힘 의원 압수수색 규탄 등이었다. 장 대표는 지난 8일엔 대통령실에서 이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악수도 사람과 하는 것”이라면서 국민의힘 등 보수 야당과의 대화를 차단했다. 당시 장 대표는 단군 신화를 인용해 “정 대표와 악수하려고 당 대표가 되자마자 마늘·쑥을 먹기 시작했다”며 “미처 100일이 안 됐는데도 이렇게 악수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등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영수회담은 비교적 훈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장 대표도 자신의 의견을 이 대통령에게 모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수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장 대표는 다시 장외투쟁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분은 손 목사 구속이었다. 지난 14일 부산을 방문한 장 대표는 첫 일정으로 세계로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장 대표는 이날 “손 목사 구속은 모든 종교인에 대한 탄압”이라며 “2025년 대한민국에서 종교 탄압을 막는 게 제 소명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돌고 돌아 장외투쟁 이어 지난 17일엔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 구속된 것을 계기로 장외투쟁을 언급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이 장기집권을 위해 차근차근 야당을 말살하고 있다”며 “지금은 그냥 야당인 게 죄인 시대”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2019년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과 관련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징역형이 구형된 것 ▲정부·민주당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압박 ▲민주당의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 등을 장외투쟁 근거로 내세웠다. 국민의힘의 장외 집회는 지난 21일 동대구역 인근에서 진행됐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 중도 공략 필요성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과 장 대표의 현 상황으로부터 비롯된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파면·구속을 거치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7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7%를 기록하는 등 강경 보수 성향 지지층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불과 8개월여를 앞두고 있다. 이기기 위해선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중도를 공략해야 한다. 장 대표는 지방선거로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데, 참패 시엔 대표직을 사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극우 정당이 각국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고,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MAGA 진영이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21세 청년 타일러 로빈슨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극우 논객 찰리 커크 ‘터닝 포인트 USA’ 대표와 모린 배넌 ‘스티브 배넌 워룸’ 대표는 한국 극우를 부추기는 미국 정계 논객들이다. 이들은 지난 5일 한국을 방문해 ‘빌드업 코리아 2025’에 참석했다. 커크 대표는 “최근 한국 정치는 혼란스러웠다. 특검의 교회 압수수색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은 미국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독립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산주의자들이 정치 검사를 앞세워 우파를 탄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한국 정부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중국·북한의 공산주의에 맞서는 여러분의 싸움이 곧 우리의 싸움이고, 필요하다면 내가 한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모린 대표도 “한국은 공산주의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관성은 오직 한동훈 축출 돌연 “극우론 안 돼” 유턴 손 목사는 커크 대표·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성향 일부 개신교 교단과 MAGA 진영이 김민아 대표가 이끄는 빌드업 코리아와 연결돼있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빌드업 코리아의 모태는 커크 대표가 이끄는 터닝 포인트 USA로 전해졌다. 극우 성향 교단과 미국 극우는 강경한 반공 성향을 매개로 연결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교단의 세가 강했던 지역은 평안도였다. 이들은 북한 정부 수립과 6·25 전쟁 이후 모두 월남했고, 강경한 반공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도 소련과의 냉전을 계기로 매카시즘 광풍이 크게 일어나 복음주의 교단을 중심으로 한 반공 세력이 맹위를 떨쳤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도 복음주의 교단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국민의힘 지지 기반과도 연결되는 미국 정치의 흐름을 외면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정치 방향은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에 대한 강경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 대변하는 인물을 대상으로 패널 인증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몫인 각종 방송 출연분 중 80% 이상을 친한계가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친한계엔 방송 출연을 위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가는 원외 인사들이 많다. 장 대표의 방침에 대해선 “친한계의 숨통을 끊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 대해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5일 “민주당은 지난해 8월 이후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근거 있는 확신을 한다고 했다”며 “그 확신의 근거를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내란 특검의 참고인 소환을 2회 거부했고, 내란 특검은 서울중앙지법에 한 전 대표에 대한 공판 전 증인신문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한 전 대표 증인신문은 오는 23일 진행될 예정이다. 한 전 대표는 연이은 당내 선거 패배와 안 좋게 결별한 장 대표의 당선으로 위기에 몰려 자신의 정치적 상징인 ‘비상계엄 반대’조차 자신 있게 내세우기 어려운 처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권성동 의원은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16일 구속됐다. 나경원 의원 등 지난 2019년 4월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연루된 국민의힘 의원들은 징역형을 구형받았다. 안팎으로 이어지는 내우외환에 일각에선 장 대표가 다시 강경 보수를 대상으로 한 장외집회에 전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지난 16일 공개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돌연 “우리가 설득하는 방식이 극우와 같다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며 “국민께서 공감하지 않는 방식으론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지층의 확고한 신뢰 없이 성급하게 중도층 마음을 얻겠다고 나아가면 실패할 거라고 본다”는 의견도 남겼다. 내친 김에… 용꿈의 조건 같은 인터뷰에서도 빙글빙글 돌고 있단 느낌을 줄 소지가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용꿈을 꾼다’고 보는 해석도 나온다. 용꿈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명확히 밝혀 대중의 지지를 얻은 다음 노려볼 수 있다. 장 대표는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다. 굳건한 의견 없이 빙글빙글 돌면 집토끼와 산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 장 대표의 빙글빙글 회전 정치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