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인사청탁 의혹 막전막후

“‘디올백’ 시작으로 명품 선물 쇄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 특검’이 출범했다. 윤석열 일가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가 드러난 만큼 특검의 수사 강도가 셀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건희 특검의 쟁점은 크게 도이치모터스·명태균·건진법사 의혹 등으로 나뉜다. 특검은 이 사건들을 담당하던 수사팀과 면담을 진행했다. 특히 건진법사를 수사하던 남부지검 검사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인사청탁 의혹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건희씨) 대면조사는 물론이고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크다.” 한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김건희 특검’의 수사 강도가 지금까지 진행됐던 검찰 수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검팀의 구성만 봐도 알 수 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수사하던 검사들과 특수통 출신들이 전면에 포진됐다.

곧바로
구속영장?

김건희씨를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를 보좌할 특검보는 총 4명이다. 부장판사 출신인 문홍주(사법연수원 31기) 변호사와 검찰 출신인 김형근(29기)·박상진(29기)·오정희(30기) 변호사 등이다.

민 특검은 지난 18일 새벽 “대통령실로부터 17일자로 특검보 4인의 임명 통지를 받았다”며 명단을 밝혔다. 앞서 민 특검은 지난 15일 이들을 포함한 특검보 후보자 8명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추천한 바 있다.

문 특검보는 광주 인성고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변호사로 일하다 2008년 창원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수원지법, 서울중앙지법, 대전지법, 수원가정법원을 거치며 15년간 법원에 몸담았다.


김 특검보와 박 특검보는 연수원 동기이자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김 특검보는 선덕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검사로 임관해 부산지검·인천지검 특수부장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장,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박 특검보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창원지검 특수부장, 인천지검 강력부장, 대검 검찰연구관, 울산지검 차장검사 등을 거치며 약 20년간 검찰에 몸담았다.

오 특검보는 순천여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광주지검 여성아동부장,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 서울중앙지검 형사13부장, 창원지검 통영지청장 등을 거쳤다.

특검보는 특검의 지휘·감독에 따라 사건 수사와 공소 유지, 특별수사관 및 파견 공무원에 대한 지휘·감독과 언론 공보 등을 담당하며 검사장급 대우를 받는다.

특검 지휘부 구성을 마친 민 특검은 먼저 김씨를 수사해 온 검찰 책임자들과 연달아 면담을 진행했다. 이날 민 특검과 특검보들은 박세현 서울고검장과 서울중앙지검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박승환 1차장검사,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과 미팅을 가졌다.

통일교, 건진 통해 샤넬백 전달 실패?
“김 최측근이 받아갔다” 행방 오리무중

서울고검은 김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재수사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은 명태균씨와 관련한 여론조사 무상 제공·공천 개입 의혹을, 서울남부지검은 전씨와 관련한 고가의 목걸이·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수사했다.


민 특검은 채희만(35기) 대검찰청 반부패2과장, 한문혁 서울동부지검 형사5부장검사, 송봉준(36기) 대검 선거수사지원과장, 인훈(37기) 울산지검 형사5부장검사, 정선제(37기) 부산지검 서부지청 형사3부장검사 등의 파견을 대검에 요청하기도 했다.

한문혁 부장검사는 2021년 서울중앙지검에서 김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출장 형식으로 서울고검의 김씨 주가조작 사건 재수사팀에 합류했다. 한 부장검사는 2018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3년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소속으로 신라젠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거래 의혹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인 부장검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에 합류한 상태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 전원이 내란 특검에 참여하는 것처럼 명태균 수사팀도 모두 김건희 특검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채 과장은 2022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을 지내며 금융범죄를 주로 수사했고, 2023년 9월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에 파견돼 근무했다. 송 과장은 법무부 공안기획과 검사, 금융경제범죄 전담인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장, 공안·반부패 사건을 수사하는 대전지검 형사4부장을 거쳤다.

정 부장검사는 2022년 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한국거래소 파견 경험이 있고 이후 금융조세범죄를 전담하는 서울동부지검 형사5부에서 부부장을 지냈다. 지난해 6월부터 부장을 맡은 부산지검 서부지청 형사3부도 금융경제범죄 전담 부서다.

책임자들
면담 진행

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박건욱 부장검사)는 김건희 특검이 출범하기 직전 전씨를 불러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지난 3일 제21회 대통령선거 이후 전씨를 최소 세 차례 부른 바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2022년 김씨 측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인사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나타낸 정황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앞서 남부지검은 지난 2022년 4~8월쯤 전씨가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 윤영호씨로부터 김씨 선물용으로 샤넬백과 그라프 목걸이 등을 받고, 김씨에게 통일교 현안을 청탁했다고 판단했다.

남부지검은 샤넬 코리아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해 문제의 가방 관련 영수증 등을 확보한 데 이어 영국 명품 브랜드 그라프 매장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전씨는 목걸이와 가방을 받았지만 김씨에게 전달하지 않고 잃어버렸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은 전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며, 가방 등 물품의 구체적인 행방을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 선물용 샤넬백은 그의 수행비서이자 최측근인 유경옥 전 행정관에게 전달됐다.

유 전 행정관은 남부지검 소환 조사에서 “(김 여사 모르게) 내가 알아서 ‘명품백을 교환해달라’는 전씨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와 가까웠던 전씨 지시를 자신이 김씨에게 따로 보고하지 않고 가방을 교환해서 전씨에게 다시 건넸다는 취지였다.

남부지검은 유 전 행정관이 웃돈을 내고 다른 제품으로 교환한 정황을 포착하기도 했다. 첫 번째 샤넬백은 다른 가방 모델과 신발로, 두 번째 것은 또 다른 가방 두 개로 바꾸는 등 모두 네 개의 제품으로 교환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 5차례
선물 준비”

특히 남부지검은 윤 전 본부장이 전씨를 통해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고가의 건강식품인 ‘천수삼 농축차’를 전달한 정황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샤넬백·목걸이 등도 김씨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천수삼 농축차는 통일교 계열 식품업체가 만든 것으로 노화 방지, 항암효과, 면역력 강화를 효능으로 내세우고 있다.

남부지검은 지금까지 수사한 자료를 김건희 특검에 넘길 계획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통일교 측 윤 전 본부장이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수주받게 해달라며 전씨 측에 명품을 건네면서 청탁한 의혹이 수사의 핵심 갈래다.

실제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3월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을 만나 ODA 문제를 논의했다고 그해 5월 통일교 창립 기념행사에서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6월 기획재정부는 제4차 한·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 사업 통합 정책협의에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했다.

한도액이 늘면 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사업 수주가 수월해진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동남아 순방 과정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건희 특검은 대통령실과 외교부·기획재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본부장이 김씨에게 샤넬백 등을 전달하려 한 것 외에 과거 최재영 목사도 김씨에게 디올백을 전달한 바 있다. 최 목사는 지난 2023년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총 5차례 김씨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 번은 디올과 샤넬 명품이었고, 나머지 세 번은 자신이 쓴 책과 5만~6만원 상당의 술, 비싸지 않은 일반 의류였다. 300만원 상당의 디올백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외에도 김씨에게 명품을 전달하려 하거나 실제 전달한 인물이 상당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른바 디올백 사건이 화제가 되자 김씨에게 사실상 ‘인사청탁’을 시도한 인물들이 많았던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한남동 관저 대통령실을 출입했던 한 인사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온갖 군데서 디올 명품과 선물권이 들어온 것이다. 여사 생일(9월) 전후로는 도배할 정도로 들어왔다. 디올 명품 선물을 준 사람 중에서는 실세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의원 부인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명품백 사건 후 윤핵관 부인도 선물 의혹
“김, 선물 마음에 안 들면 직접 바꾸기도”

이 인사는 “(김씨가) 평소에 입는 옷도 디올이다. 관저에서 입는 평상복도 디올이었다. 명품 수수 의혹 보도를 보고 내가 얼굴이 달아올랐다. 받을 수는 있다고 치자. 그걸 더 비싼 걸로 바꾸러 간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남부지검은 전씨의 핸드폰을 포렌식하는 과정에서 전씨가 2022년 3월 이후 김씨 측 연락처로 세 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낸 기록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상대를 김씨의 최측근인 정지원 전 행정관으로 특정했다.

전씨는 정 전 행정관에게 보낸 문자에서 “윤핵관 측에서 제 사람들을 쓰지 말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희생했는데 윤핵관에게 연락하겠다” “나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보고 권력의 무서움을 느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을 출입했던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건진 외에도 김씨에게 자리 보전을 약속받거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사외이사 등으로 가고 싶다며 미팅한 인물도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특검이 출범하면서 2~3년 전 사건까지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김건희가 약속을 지킨 인물은 몇 없다. 건진을 통해 청탁한 사람들도 있고 윤석열정부 초기 윤핵관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도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이지형 차장검사)이 수사 중인 김상민 전 부장검사 사건도 인사 청탁 중 하나라고 짚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지난해 총선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섰다가 공천에서 배제됐다. 이후 국가정보원장 법률특보로 임명됐는데 중앙지검은 이 과정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특수통
전면 배치

앞서 명태균씨 측은 지난해 2월16∼19일 사이 김씨로부터 “김상민이 창원의창구 국회의원이 되게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김 전 의원에게도 “김상민 검사가 당선되도록 지원하면 장관 또는 공기업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얘기했다는 게 명씨 쪽 주장이다. 다만 총선 당시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갈등을 빚으며 김 전 검사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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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