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5일, 국민의힘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제21대 대선 패배 책임론에 대해 “이제 회생하기 어려운 정도로 뼛속 깊이 병들었다”고 진단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서 고배를 마신 후 탈당 및 정계 은퇴까지 선언했던 그가 여전히 ‘SNS 정치’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홍 전 시장은 이날 자신의 SNS에 “이념도 없고,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다. 사익만 추구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다”고 맹공했다. 대선 패배를 두고선 “나를 탓하지 말고, 그나마 남아 있는 보수 회생의 불씨인 이준석도 탓하지 마라. 그것은 모두 니들의 자업자득”이라고 직격했다.
홍 전 시장의 ‘이준석 탓하지 마라’는 발언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던 부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지난 4일 대선 최종 개표 결과, 이재명 대통령은 49.42%를 득표해 41.15%에 그친 김 후보를 8.27%p 차이로 따돌리며 당선을 확정지었다. ‘10% 지지율 달성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이준석 후보는 8.34%에 머물렀다.
정가에선 이 후보가 김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표가 김 후보를 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른바 ‘물리적 화합’은 가능했더라도 ‘화학적 결합’까지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40대 젊은 피’ 대선후보로서 선거운동 기간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한 유세를 다녔던 그였던 데다, 2030의 젊은 세대 지지율이 유난히 높았던 만큼 이들 유권자들도 단일화를 선언했더라도 김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홍 전 시장은 “이번에도 정치 검사 출신 네 놈의 합작으로 또 한 번의 사기 경선이 이뤄졌고 믿었던 국회의원들, 당협위원장들도 모두 사기 경선의 공범으로 가고 나홀로 경선하게 됐을 때 이미 그때부터 이젠 당을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며 “진심이 통하지 않는 그 당에 남아 내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봤다”고 회상했다.
그가 언급한 4인의 정치 검사 출신은 윤석열 전 대통령,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한동훈 전 대표를 말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탄핵 때 당 지지율이 4%로 폭락하고 보수 언론서도 당 해체하라고 난리칠 때 인명진 비대위원장께서 창원으로 내려와 당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종용해 경남지사 그만두고 대선 출마했다”는 그는 “이미 패배가 불보듯 명확한 탄핵 대선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살린 당에서 그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공천도 못 받고 서울 무소속보다 더 어려운 대구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나 1년 이상 복당도 시켜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홍 전 시장은 지난 4월29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서 고배를 마신 후 탈당과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날 그는 서울 여의도 대선캠프 해단식 자리서 “오늘 조기 졸업했다. 이번 대선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말했다.
당시 정가에선 은퇴 및 역할 발언이 대선 본선서 더 이상 당을 돕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페이스북에도 “3년 전 대선후보 경선 때 정치 신인인 윤 후보(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민심(여론조사)서 10.27% 이기고도 당심(당원투표)서 참패했을 때, 그때 탈당하고 싶었다”며 당원들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더 이상 당에서 내 역할이 없고, 더 이상 정계에 머물 명분도 없어졌다”며 “갈등과 반목이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한다. 내일 정들었던 우리 당을 떠나려 한다”고 탈당을 시사하기도 했다.
전날엔 페이스북에 “탄핵당한 정권의 총리, 장관,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는 게 상식에 맞습니까?”라며 “나는 대선에만 집중하지, 당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미 당 대표를 두 번이나 한 사람이 다른 후보들처럼 당권이나 잡으려고 나왔겠습니까?”라며 “패배하면 그 책임을 지고 바로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던 바 있다.
이후 지난달 4일, 홍 전 시장은 배우자와 함께 미국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상범·김대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8일,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시키기 위해 방문했으나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같은 홍 전 시장의 행보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나 나경원·안철수·양향자 전 개혁신당 의원(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등 대선 경선 탈락자들이 선대위에 합류해 김 후보의 선거 유세를 지원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일각에선 탈당 선언 및 정계 은퇴까지 선언했던 그가 굳이 대선에까지 참여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 국민의힘 소속인 한 전 대표, 나·안, 양 전 의원과는 역할 자체가 동급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대선이 끝난 후 귀국하겠다고 밝혔던 홍 전 시장은 아직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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