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죽고 나 죽자’ 이준석 이판사판 복수전

화해는 없다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정권교체를 위해 애써 참아왔지만 이젠 완전한 적이다. 서로 참지도 않는다. 긴 싸움은 조만간 결론 지어질 예정이다. 양측 다 물러나면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과 이준석 전 대표가 결국 전면전을 벌이게 됐다. 

윤리위 심사 결과 징계를 받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광주 무등산 등반을 시작으로 원외에서 열심히 세를 다지고 있었다. 언론과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고, 본인을 지지해준 당원들을 만났다. 이전까지 벌이던 여론전에서 한발 물러난 것. 당장 여론전을 펼친다면 이 전 대표본인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계산이 깔렸기 때문이다.

입당부터
갈등 시작

이 전 대표의 침묵은 국민의힘 혼란의 책임에서 약간은 벗어난 모양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에게 책임이 넘어가서다. 공식적으로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이 전 대표는 62분간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윤핵관, 윤 대통령을 저격하며 날을 세우는 등 할 말은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용한 발언 수위는 예상했던 지점보다 높았다. 그는 “이 XX 저 XX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윤핵관이라고 언급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을 향해서도 “호가호위하는 사람”이라고 강하게 타격했다. 윤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의 지도력이 위기”라며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정권교체라는 공동의 목표를 바라봤던 당 대표와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동맹이 파국을 맞이한 순간이다.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이 전 대표는 각종 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해 여론전을 펼치며 물러날 뜻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국민의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국 상임위를 개최하고, 비대위를 본격 출범시킨 데 이어, 비대위원 등을 신속하게 임명했다. 윤핵관 중 한 명인 권 원내대표는 재신임을 받으며 주호영 비대위호에 승선했다.

사실 이 전 대표와 윤 대통령, 윤핵관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였던 지난해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할 때부터 갈등의 불씨가 아른거렸다. 당시 이 대표가 지방으로 간 사이 윤 대통령이 입당 선언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악연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다만 당시는 이 전 대표에게도 윤 대통령에게도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터라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를 본격적으로 신뢰하지 않게 된 계기는 통화내용 유출 논란이 발생했을 때다. 

두 인물의 통화내용이 녹취록 수준으로 정리가 돼 언론에 떠돌게 된 점이 갈등의 촉매제가 된 셈이다. 이런 탓에 대선 기간 내내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는 많은 갈등을 겪었다. 윤핵관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시점도 이와 비슷한 시기다. 윤핵관은 대선 기간 이 전 대표를 밀어내기 위해 애썼다. 

첫 만남부터 대립각 세워
감정싸움서 패권 싸움으로


울산 회동에서 극적으로 화해한 뒤 함께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대선 이후에도 이 전 대표와 윤핵관 세력은 서로를 견제해왔다. 감정싸움에서 패권 싸움까지 이어진 단계다. 패권 싸움의 원인은 대선이 끝난 직후 이 전 대표가 띄운 혁신위가 발단이다.

혁신위는 지방선거 승리 직후 당 쇄신을 목표로 이 전 대표가 출범시킨 구상한 조직이다. 22대 총선 공천 과정 등을 전반적으로 손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데 출범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이 전 대표의 사적 조직이라는 등 논란이 터져나와서다.

결국 혁신위는 당권 싸움에 휘말렸고, 이 전 대표가 윤리위 징계를 받자 최근에는 다소 힘을 잃은 모양새다. 여기에 더해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자, 이 전 대표는 자연스럽게 대표직을 박탈당했다. 

이 전 대표는 배수진을 치며 필사적으로 반격 중이다. 윤핵관으로 분류되는 여러 의원들은 이 전 대표를 타격하고, 원외에 있던 세력들까지도 연일 맹폭을 퍼붓하고 있다. 징계 직후에는 이 전 대표에게 모든 시선이 쏠리면서 강한 책임론에 휩싸였다. 그러나 권 원내대표와 윤 대통령이 나눈 문자메시지가 보도되면서 여론이 뒤집혔다. 

국민의힘 혼란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윤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는 여론이 형성돼서다. 현재는 이 전 대표가 조금 더 유리한 형국이다. 지난 17일 취임 100일을 맞은 윤 대통령 대신 주인공 자리도 이 전 대표가 꿰찼다. 

그는 비대위 출범이 부적절하다면서 서울남부지법에 국민의힘과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런 탓에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다소 묻힌 감이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 대표 측에서 주장하는 가처분 신청의 골자는 국민의힘이 비대위로 전환하는 과정에 절차적·내용적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이 전 대표의 주장을 반박하며 비대위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대통령 향해
무자비 폭격

이 전 대표는 직접 법원 심문에 출석해 윤 대통령 발언을 인용하며 잽을 날렸다. 앞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민생 안정과 국민 안전에 매진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의 발언을 제대로 챙길 기회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는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윤 대통령이 어떤 말을 했는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비꼬았다. 윤 대통령이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 앞뒤만 바꾼 셈이다. 

가처분 신청의 기각과 인용을 두고 법원 역시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가처분 신청 기각과 인용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배현진·조수진·윤영석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내려놓은 시점이다. 지난달 29일 배 의원은 “‘오늘 최고위원직을 사퇴한다”고 밝혔고 이틀 뒤에 조·윤 의원 모두 사퇴를 선언했다. 


3명 모두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퇴서를 제출한 시점에는 차이가 있다. 배 의원이 지난 9일, 조 의원은 일주일 빠른 지난 1일, 윤 의원은 지난 2일이었다. 

윤 의원이 사퇴하기 약 1시간 전 비공개 최고위원회가 열렸고, 권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윤 의원, 배 의원 등이 해당 회의에서 비대위 전환을 위한 소집 요구안을 의결한 바 있다. 이 전 대표가 요구안 의결이 적절치 못했다고 꼽는 부분이 바로 배 의원의 “오늘 사퇴하겠다”는 부분이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정치적으로 사퇴 선언을 했지만, 국민의힘에 공식 사퇴 의사 표시한 게 아니라며 여전히 최고위원의 지위를 유지했다는 논리를 펼친다. 

장기전으로
이슈 끌기

또 배 의원과 윤 의원이 이미 사퇴했더라도, 최고위원회 의결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당시 최고위원회는 이 전 대표, 조 의원, 김재원 전 최고위원이 부재한 상태에서 열렸다. 

이 전 대표와 국민의힘이 충돌하는 또 다른 지점은 과연 비상 상황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다. 국민의힘 당헌 96조1항에 따르면 ▲당 대표가 궐위된 경우 ▲최고위원회 기능이 상실된 경우 ▲그 밖에 준하는 사유로 당에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대위 설치가 가능하다. 


이 전 대표 측은 자신의 당원권 정지를 두고 권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와 최고위에서 궐위(더 이상 직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 사고(일시적인 경우)라고 의견을 모았고, 사고라고 결론지은 것을 궐위로 뒤집어 주장하는 게 모순이고, 위배라는 입장이다. 

특히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것처럼 최고위원이 사퇴하지 않았다면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 사퇴했다면 의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이 전 대표가 6개월이라는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직무를 수행할 수 없고, 대표가 궐위된 경우로 해당한다며 비상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최고위 구성원 9명 중 이미 김 전 최고위원이 사퇴했고, 배 의원, 조 의원, 윤 의원, 정미경 의원이 각 사퇴 선언을 해 4인 이하가 된 상황도 비대위 출범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본다. 지도부 상실이라는 상황으로 여긴 셈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 상임 전국위에서 4분의 1 이상의 별도 소집 요구로 상임 전국위가 적법하게 소집된 부분을 들어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해석했다. 

법원 기각·인용 고민
비대위도 여전히 혼란?

세 번째 쟁점은 전국위원 700여명이 ARS(자동응답방식)로 비대위 출범을 의결했다는 점이다. 이 전 대표는 ARS는 의사정족수를 특정할 수 없는 방식이고, 줌이나 비대면 회의 방식은 접속자 수를 확인할 수 있지만 유튜브의 경우 링크로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국민의힘 전국위원이 아니라도 충분히 참여 가능해 이 같은 방식은 큰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대의기관의 구성원이 서면이 아닌 ARS와 같은 비대면 투표를 하더라도 본인이 투표하는 부분을 분명히 하고, 확인 가능한 방법을 강구할 경우 전당대회, 전국위원회 등 회의 및 의결을 비대면 또는 전자회의 혹은 ARS로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이 전 대표 역시 전당대회에서 해당 방식으로 선출됐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 의결을 한 전국위원회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뽑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일각에서는 법원이 기각 판단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직까지는 안갯속이다. 만일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다면 이 전 대표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향후 행보는 물론, 정치적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 이미 윤 대통령을 향해 강하게 타격했던 만큼 당원을 중심으로 한 당내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런 탓에 이 전 대표는 본안 소송까지 제기하며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기각을 대비해서 원외에서 세력을 다지는 일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곧 출간을 앞두고 있고, 플랫폼을 만들어 당원을 지속적으로 만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가처분이 인용된다면 이 전 대표가 판을 단번에 뒤집는 게 가능하다. 윤리위 징계를 받아 당으로 복귀하는 것은 당장 불가하지만 당 대표직은 유지할 수 있다. 비대위 역시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윤핵관 세력 역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윤핵관을 필두로 한 창당설까지 흘러나온다. 

다만 현재 여론 상황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지 않은 탓에 윤핵관 측이 불리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윤핵관의 손을 놔야 할 때라는 주장도 나온다. 여론이 좋지 않은 윤핵관과의 동행을 선택할 경우 더욱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는 탓이다.

급히 출범한 비대위 역시 정상궤도를 달리고 있다고 보기는 이르다.

개혁보다는 관리형에 더 방점을 찍었지만, 당내 일부에서는 완전한 혁신형 비대위로 전환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서다. 비대위마저 내분이 가속화된다면 국민의힘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수도 있다. 

물러서면 
회복 불가

주 위원장 역시 미리 대비책을 세우는 모습이다. 그는 윤핵관에 포함되는 인물은 아니지만 이 전 대표를 밀어내려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가처분이 인용되더라도 절차를 다시 갖추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발언은 법원이 지적한 문제만 수정해 비대위를 이어가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이 전 대표가 원외 세력 모으기와 장기투쟁을 통해 여론을 주도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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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