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는 꼰대 시대? 중징계 먹은 이준석 후폭풍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이 과거 꼰대 당으로 불리던 시절이 그리운 모양새다. 선거에서 이긴 당답지 않게 주도권 싸움에만 몰두한다. 대표를 몰아낸 꼰대들이 세력 싸움에서 우위를 가지기 편해졌지만 여론은 다소 싸늘하다.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국민의힘이 폭삭 망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의혹은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 측에서 제기했다. 가세연은 이 대표가 성 상납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김철근 정무실장을 통해 7억원의 투자 각서를 써줬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이 폭로 제보자를 만나 성 상납이 없었다는 사실 확인서를 받았다는 것. 이 같은 가세연 폭로에 대해 이 대표와 김 실장은 줄곧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당원권 정지
초유의 사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4월21일 이 대표를 성 상납이 아닌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된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징계 대상에 올렸다. 지난달 22일에는 김 실장의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해 징계 절차도 개시했다. 

이 대표에 대해선 한 차례 논의가 연기됐다. 즉시 당내에서는 이 대표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은 이 대표를 향해 사퇴하라고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이 대표의 운명을 결정하는 날이 다가왔다.


저녁 7시경 윤리위를 개최하고, 김 실장과 이 대표가 차례로 출석했다. 이날 이 대표는 윤리위가 개최된 이후 2시간이 지나 나타났다. 윤리위 회부 후 석 달 만의 소명 기회 자리였다. 소명에 앞서 이 대표는 심경을 밝히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몇 차례나 말이 끊기며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였고, 목소리도 떨렸다. 

3시간가량 윤리위 소명을 마치고 나타난 이 대표는 “충분히 소명했다”며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후 윤리위는 늦은 새벽까지 징계 여부를 논하기 위해 마라톤 회의에 돌입했다. 내부 논의를 거친 끝에 징계 결과가 나온 시점은 새벽 3시경이었으며 이 대표에게는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윤리위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의 4단계가 있다. 이 중 두 번째 수위인 당원권 정지를 받았다. 징계 사유는 이 대표가 윤리 부칙 4조1항에 따라 당원으로서 당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윤리위가 ▲사실 확인서의 가치 ▲이 대표 사건 및 당 전체에 미칠 영향 ▲사실 확인서와 약속 증서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작성된 점 등을 인정한 셈이다. 

이 대표는 윤리위가 내린 징계로 사실상 직무 수행이 어려워졌다. 대표직 유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초 윤리위 징계서 경고만 받아도 이 대표의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게 되는데, 당원권 정지로 의결되면서 정치생명마저도 위태로워졌다. 사실상 당 대표에서 사퇴하라는 압박이다.

버티고 식물 대표라도? 
세 잡아도 청년층 반감

윤리위의 중징계 결정이 나오자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대선과 지선 승리로 이끈 당 대표를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징계한 건 부당하고 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 역시 징계에 불복하는 입장과 함께 이의 제기를 시사했다. 가처분 혹은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당 대표를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항전을 선언한 셈이다.

그전까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국민의힘 내홍은 한층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김순래 최고위원이 당원권 정지를 받고 다시 복귀한 사례를 볼 때 이 대표가 물러나지 않고, 6개월 후 대표직에 복귀해 잔여 임기를 수행할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대표를 향한 당내 공격에 대해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았다. 그도 윤핵관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핵관 세력과 이 대표는 대선 전부터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싸움을 벌여왔다. 당시 주도권을 잡았던 인물은 이 대표 쪽이다.

한발 물러나 있던 윤핵관 세력은 이 대표를 내쫓기 위해 기회를 노렸다. 이 대표는 대표직을 수행해오면서 당내 적이 많았다. 이 대표 편을 들어주던 당내 인사들도 많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나서 중재를 하던 인물도 딱히 없었다. 

이 대표가 스스로 물러날 경우 대표 권한대행은 권 원내대표가 맡게 된다. 권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는 동안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질 가능성도 있다. 

연말까지 권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 체제를 유지한 뒤, 내년 상반기 이후 새 대표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를 여는 방식도 고려된다. 이 대표의 중징계로 당장은 권 원내대표를 비롯한 장제원·안철수 의원이 주도권을 일시적으로 잡을 수도 있다.

끝까지
버틸까

정가에선 벌써 차기 당 대표로 안 의원, 사무총장은 장 의원이 맡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내에서 여러 계파들이 생기면서 선거에서 승리한 당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김기현 전 원내대표, 안 의원, 권 원내대표 등 차기 당권주자들의 주도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겉으론 모두 친윤(친 윤석열)을 표방하지만 뒤에서는 윤핵관, 비윤핵관 사이의 물밑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 대표는 총선 공천권을 갖는 만큼 그 권한이 막강하다.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가 조기 전당대회에 대해 선을 그은 이유도 조기 전당대회 시 당 대표 출마가 어렵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권 원내대표는 윤핵관이면서 차기 당 대표로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다만 윤핵관 세력이 당장 전면에 나서기는 부담스럽다. 윤핵관 중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 의원을 향한 여론이 싸늘한 편인데 윤리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 대표를 적극적으로 몰아내려는 세력 중 하나로 지목돼서다. 윤핵관이 이 대표의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분위기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물리적 결과에 따른 당 및 본인들에게 닥칠 역풍을 우려해서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 징계 결정으로 국민의힘에 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여러 시나리오들이 회자된다. 대선 기간 국민의힘의 강력했던 무기 중 하나는 꼰대 정당의 탈피였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한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젊은 나이에 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변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기대감을 줬으나 이제 그 기대감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의 징계로 국민의힘이 과거와 같은 꼰대 정당으로 회귀한다면 정당 지지율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극심한 내홍을 겪는 사이 더불어민주당에 지지율을 역전당했고, 정당 지지율마저 최근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지방선거 직후 50%에 육박했던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대까지 떨어졌다.

시동 거는 
윤핵관 세력

국민의힘은 이 대표 체제하에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했다. 이 대표가 이끄는 동안 꼰대 정당의 당원 수는 80만명까지 폭증했다. 꼰대 이미지였던 국민의힘을 젊고 신선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년층에선 이 대표의 징계에 대해 토사구팽(토끼가 죽으면 사냥하던 개를 삶아 먹음)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부동층이 많은 청년층 특성상 국민의힘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대표 외에 국민의힘 내에서 청년층을 포섭할 인물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청년층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알고 있다. 대선 때도 청년층의 니즈를 파악해 유튜브와 쇼츠로 신선함을 불어넣었던 바 있다.

지방선거 때는 최초로 PPAT(공직 후보자 기초자격평가)를 도입해 이목을 끌면서 자체적인 검증 단계를 거쳤다. 결과는 압도적 승리라는 결과로 돌아왔는데 민주당 심판은 청년층 대부분이 동의한 사안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보수정당이 포기했던 호남 지역도 달려가는 등 공을 들였다. 이 같은 노력은 호남 일부 지역에서 청년층 지지 30%라는 성적표를 받아냈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쉬지 않고 즉시 ‘혁신호’를 띄웠다.

혁신위원회를 띄워 꼰대 정당 이미지의 탈피 및 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자 곧바로 당내 여러 곳에서 공격이 시작됐다. 이 대표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당원 가입을 연일 독려하고 있다. 청년층이 자신의 독자적인 세를 다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까지 악영향?
국민의힘 붕괴 신호탄?

만일 이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청년 당원들의 반발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 ‘선배’들은 이 대표가 불편하다. 이를 두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의 혁신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대표가 이대로 쫓겨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동력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대선서 윤 대통령은 간신히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 민심도 흉흉한 편이다.

그의 지지층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안을 찾던 이들과 청년층 일부가 보수 유권자와 합쳐져 만들어졌다. 문정부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 공정과 상식을 강조했던 윤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줬다.

앞서 정가에선 일찌감치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손절했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오히려 역풍은 윤 대통령을 향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윤 대통령은 연일 청년층의 반감을 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일 인사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불거졌기 때문이다. 우호적이던 당 대표 대변인마저 우려를 표했다. 지지율 역시 긍정적인 여론보다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는 데드크로스를 맞이했다. 

이대로라면 2년 뒤 총선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당장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민의힘은 여당으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보다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국정 동력을 잃을 수 있다.  

물만난
친윤계

이번 윤리위 중징계 의결을 두고 당 대표실 관계자는 “이 대표가 물러난다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결론도 안 날 싸움을 이어가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지지부진한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여권이 어려운 상황인데 징계로 내보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과거 2015년에도 보수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으며 붕괴된 바 있다”고 꼬집었다. 장 소장은 “국민의힘의 지지층이 분열될 것”이라고도 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준석 또 다른 뇌관 박근혜 시계 진실공방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성 접대 공방 의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시계 논란까지 전선이 확대됐다.

창조경제 1호 벤처로 불린 아이카이스트 간부였던 A씨는 지난 6일 JTBC 취재진을 만나 박근혜 전 대통령 이름이 적힌 남녀 시계 세트를 공개했다. 

A씨는 “박근혜 이름이 적힌 시계 세트는 2013년 8월경 김성진 대표가 받아서 선물로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에게 성 상납을 한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인 김 대표는 옥중에서 “2013년 이 대표에게 성 상납을 하고 보답으로 시계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시계를 받은 날은 2013년 8월15일이라고도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말이 서서히 안 맞기 시작한다”며 “8월15일 독립유공자들에게 배부한 시계를 제가 같은 날 김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은 시점 자체가 틀리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해당 시계가 성 접대 의혹 사건의 실마리를 풀 단서로 보고 시계를 확보해 조사 예정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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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