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는 꼰대 시대? 중징계 먹은 이준석 후폭풍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이 과거 꼰대 당으로 불리던 시절이 그리운 모양새다. 선거에서 이긴 당답지 않게 주도권 싸움에만 몰두한다. 대표를 몰아낸 꼰대들이 세력 싸움에서 우위를 가지기 편해졌지만 여론은 다소 싸늘하다.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국민의힘이 폭삭 망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의혹은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 측에서 제기했다. 가세연은 이 대표가 성 상납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김철근 정무실장을 통해 7억원의 투자 각서를 써줬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이 폭로 제보자를 만나 성 상납이 없었다는 사실 확인서를 받았다는 것. 이 같은 가세연 폭로에 대해 이 대표와 김 실장은 줄곧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당원권 정지
초유의 사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지난 4월21일 이 대표를 성 상납이 아닌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된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징계 대상에 올렸다. 지난달 22일에는 김 실장의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관련해 징계 절차도 개시했다. 

이 대표에 대해선 한 차례 논의가 연기됐다. 즉시 당내에서는 이 대표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은 이 대표를 향해 사퇴하라고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이 대표의 운명을 결정하는 날이 다가왔다.


저녁 7시경 윤리위를 개최하고, 김 실장과 이 대표가 차례로 출석했다. 이날 이 대표는 윤리위가 개최된 이후 2시간이 지나 나타났다. 윤리위 회부 후 석 달 만의 소명 기회 자리였다. 소명에 앞서 이 대표는 심경을 밝히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몇 차례나 말이 끊기며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였고, 목소리도 떨렸다. 

3시간가량 윤리위 소명을 마치고 나타난 이 대표는 “충분히 소명했다”며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후 윤리위는 늦은 새벽까지 징계 여부를 논하기 위해 마라톤 회의에 돌입했다. 내부 논의를 거친 끝에 징계 결과가 나온 시점은 새벽 3시경이었으며 이 대표에게는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윤리위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의 4단계가 있다. 이 중 두 번째 수위인 당원권 정지를 받았다. 징계 사유는 이 대표가 윤리 부칙 4조1항에 따라 당원으로서 당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언행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윤리위가 ▲사실 확인서의 가치 ▲이 대표 사건 및 당 전체에 미칠 영향 ▲사실 확인서와 약속 증서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작성된 점 등을 인정한 셈이다. 

이 대표는 윤리위가 내린 징계로 사실상 직무 수행이 어려워졌다. 대표직 유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초 윤리위 징계서 경고만 받아도 이 대표의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게 되는데, 당원권 정지로 의결되면서 정치생명마저도 위태로워졌다. 사실상 당 대표에서 사퇴하라는 압박이다.

버티고 식물 대표라도? 
세 잡아도 청년층 반감

윤리위의 중징계 결정이 나오자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대선과 지선 승리로 이끈 당 대표를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징계한 건 부당하고 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 대표 역시 징계에 불복하는 입장과 함께 이의 제기를 시사했다. 가처분 혹은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당 대표를 물러날 생각이 없다”며 항전을 선언한 셈이다.

그전까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국민의힘 내홍은 한층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김순래 최고위원이 당원권 정지를 받고 다시 복귀한 사례를 볼 때 이 대표가 물러나지 않고, 6개월 후 대표직에 복귀해 잔여 임기를 수행할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대표를 향한 당내 공격에 대해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았다. 그도 윤핵관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핵관 세력과 이 대표는 대선 전부터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싸움을 벌여왔다. 당시 주도권을 잡았던 인물은 이 대표 쪽이다.

한발 물러나 있던 윤핵관 세력은 이 대표를 내쫓기 위해 기회를 노렸다. 이 대표는 대표직을 수행해오면서 당내 적이 많았다. 이 대표 편을 들어주던 당내 인사들도 많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나서 중재를 하던 인물도 딱히 없었다. 

이 대표가 스스로 물러날 경우 대표 권한대행은 권 원내대표가 맡게 된다. 권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는 동안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질 가능성도 있다. 

연말까지 권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 체제를 유지한 뒤, 내년 상반기 이후 새 대표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를 여는 방식도 고려된다. 이 대표의 중징계로 당장은 권 원내대표를 비롯한 장제원·안철수 의원이 주도권을 일시적으로 잡을 수도 있다.

끝까지
버틸까

정가에선 벌써 차기 당 대표로 안 의원, 사무총장은 장 의원이 맡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내에서 여러 계파들이 생기면서 선거에서 승리한 당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김기현 전 원내대표, 안 의원, 권 원내대표 등 차기 당권주자들의 주도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겉으론 모두 친윤(친 윤석열)을 표방하지만 뒤에서는 윤핵관, 비윤핵관 사이의 물밑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 대표는 총선 공천권을 갖는 만큼 그 권한이 막강하다.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가 조기 전당대회에 대해 선을 그은 이유도 조기 전당대회 시 당 대표 출마가 어렵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권 원내대표는 윤핵관이면서 차기 당 대표로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다만 윤핵관 세력이 당장 전면에 나서기는 부담스럽다. 윤핵관 중 윤핵관으로 불리는 장 의원을 향한 여론이 싸늘한 편인데 윤리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 대표를 적극적으로 몰아내려는 세력 중 하나로 지목돼서다. 윤핵관이 이 대표의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분위기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물리적 결과에 따른 당 및 본인들에게 닥칠 역풍을 우려해서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 징계 결정으로 국민의힘에 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여러 시나리오들이 회자된다. 대선 기간 국민의힘의 강력했던 무기 중 하나는 꼰대 정당의 탈피였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한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젊은 나이에 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됐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변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기대감을 줬으나 이제 그 기대감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의 징계로 국민의힘이 과거와 같은 꼰대 정당으로 회귀한다면 정당 지지율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극심한 내홍을 겪는 사이 더불어민주당에 지지율을 역전당했고, 정당 지지율마저 최근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지방선거 직후 50%에 육박했던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대까지 떨어졌다.

시동 거는 
윤핵관 세력

국민의힘은 이 대표 체제하에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했다. 이 대표가 이끄는 동안 꼰대 정당의 당원 수는 80만명까지 폭증했다. 꼰대 이미지였던 국민의힘을 젊고 신선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년층에선 이 대표의 징계에 대해 토사구팽(토끼가 죽으면 사냥하던 개를 삶아 먹음)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부동층이 많은 청년층 특성상 국민의힘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대표 외에 국민의힘 내에서 청년층을 포섭할 인물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청년층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알고 있다. 대선 때도 청년층의 니즈를 파악해 유튜브와 쇼츠로 신선함을 불어넣었던 바 있다.

지방선거 때는 최초로 PPAT(공직 후보자 기초자격평가)를 도입해 이목을 끌면서 자체적인 검증 단계를 거쳤다. 결과는 압도적 승리라는 결과로 돌아왔는데 민주당 심판은 청년층 대부분이 동의한 사안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보수정당이 포기했던 호남 지역도 달려가는 등 공을 들였다. 이 같은 노력은 호남 일부 지역에서 청년층 지지 30%라는 성적표를 받아냈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쉬지 않고 즉시 ‘혁신호’를 띄웠다.

혁신위원회를 띄워 꼰대 정당 이미지의 탈피 및 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자 곧바로 당내 여러 곳에서 공격이 시작됐다. 이 대표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당원 가입을 연일 독려하고 있다. 청년층이 자신의 독자적인 세를 다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까지 악영향?
국민의힘 붕괴 신호탄?

만일 이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청년 당원들의 반발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 ‘선배’들은 이 대표가 불편하다. 이를 두고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의 혁신으로 자신의 밥그릇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대표가 이대로 쫓겨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동력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대선서 윤 대통령은 간신히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최근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 민심도 흉흉한 편이다.

그의 지지층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안을 찾던 이들과 청년층 일부가 보수 유권자와 합쳐져 만들어졌다. 문정부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 공정과 상식을 강조했던 윤 대통령을 지지하며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줬다.

앞서 정가에선 일찌감치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손절했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오히려 역풍은 윤 대통령을 향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윤 대통령은 연일 청년층의 반감을 사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일 인사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불거졌기 때문이다. 우호적이던 당 대표 대변인마저 우려를 표했다. 지지율 역시 긍정적인 여론보다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는 데드크로스를 맞이했다. 

이대로라면 2년 뒤 총선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당장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민의힘은 여당으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보다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국정 동력을 잃을 수 있다.  

물만난
친윤계

이번 윤리위 중징계 의결을 두고 당 대표실 관계자는 “이 대표가 물러난다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결론도 안 날 싸움을 이어가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지지부진한 싸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여권이 어려운 상황인데 징계로 내보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과거 2015년에도 보수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으며 붕괴된 바 있다”고 꼬집었다. 장 소장은 “국민의힘의 지지층이 분열될 것”이라고도 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준석 또 다른 뇌관 박근혜 시계 진실공방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성 접대 공방 의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시계 논란까지 전선이 확대됐다.

창조경제 1호 벤처로 불린 아이카이스트 간부였던 A씨는 지난 6일 JTBC 취재진을 만나 박근혜 전 대통령 이름이 적힌 남녀 시계 세트를 공개했다. 

A씨는 “박근혜 이름이 적힌 시계 세트는 2013년 8월경 김성진 대표가 받아서 선물로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에게 성 상납을 한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중인 김 대표는 옥중에서 “2013년 이 대표에게 성 상납을 하고 보답으로 시계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시계를 받은 날은 2013년 8월15일이라고도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말이 서서히 안 맞기 시작한다”며 “8월15일 독립유공자들에게 배부한 시계를 제가 같은 날 김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주장은 시점 자체가 틀리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해당 시계가 성 접대 의혹 사건의 실마리를 풀 단서로 보고 시계를 확보해 조사 예정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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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