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쳤나 놔줬나' 공수처 미스터리

먹여줘도…이쪽저쪽 간 보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출범 9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을 1호 공약으로 내걸고 검찰개혁을 천명했다. 공수처 설립과 공수처장 후보 추천 문제를 두고 여야 간 입법 줄다리기가 1년여 동안 이어진 끝에 올해 1월 기대와 우려 속에 새 기구가 첫발을 뗐다. 

출범 9개월
초라한 성적

올 1월21일 공수처가 출범한 이후 9개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공수처의 성적표는 초라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기대는 사그라졌고 우려는 증폭됐다. 인력 구성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여러 차례에 걸쳐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여기에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 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문제는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최근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체포영장과 사전 구속영장이 연달아 기각됐다. 공수처 입장에서는 출범 이후 1호 체포영장, 1호 구속영장이었기 때문에 더 뼈아픈 대목이다.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에 대한 출석 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심문 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법원은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도 기각한 바 있다. 체포영장이 기각되고 사흘 만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또 다시 기각되면서 공수처는 말 그대로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특히 구속영장 청구에 앞서 손 검사에 대한 조사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점을 두고 법조계에서도 무리수였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손 검사는 지난 4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일하던 중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관련 자료 수집을 성명불상의 직원에게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1호 체포·구속영장 기각
무리한 청구 지적 망신살

또 ‘검언 유착’ 보도의 제보자로 알려진 지모씨 실명 판결문 유출, 이를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전달해 4·15 총선에 개입하려 한 혐의도 있다. 

공수처는 손 검사를 고발장의 전달자로 특정했다. 제보자 조성은씨가 제출한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조씨와 김 의원이 나눈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화면에 ‘손준성 보냄’ 문구가 남아있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공수처는 지난달 10일 손 검사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와 수사관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후 공수처와 손 검사는 소환 일정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먼저 공수처는 지난 4일 손 검사에게 “10월14일 또는 15일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손 검사는 “변호인 선임이 지연되고 있다”며 출석일자를 미루다 지난달 11일 “10월22일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공수처에 전달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그보다 사흘 앞선 20일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를 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손 검사는 21일 변호인을 선임했고 사건 파악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11월2일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또 다시 기각하면서 공수처의 수사 역량과 함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손 검사가 성명불상의 상급 검찰 간부들이 성명불상의 검찰공무원에게 고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고발장을 작성하도록 했다”고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정작 ‘성명불상자’가 누구인지는 명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후보
노렸지만?

또 영장청구서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름이 여러 차례 나오지만 정작 범죄 혐의와 관련해서는 윤 전 총장의 이름을 적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부실한 영장청구서가 법원의 기각을 불렀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공수처의 수사엔 제동이 걸렸다. 공수처의 당초 목표는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한 뒤 수사를 확대해 윗선의 개입 여부 등을 확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단추가 어긋나면서 공수처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공수처 역시 당분간 손 검사와 김웅 의원에 대한 혐의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통보한 시점에 대해서도 공방이 오가는 등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달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실제 손 검사에게 통보한 시기는 영장실질심사 전날인 같은 달 25일이었다. 손 검사가 ‘늑장 통보’라고 비판하는 부분이다. 

공수처는 논란이 계속되자 같은 달 27일 “영장 청구 시 통보는 피의자 조사가 이뤄지는 등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손 검사의 계속되는 출석 불응에 대응하고 출석을 담보해 조사를 진행하려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공수처에서 손 검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선후보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해 조속한 출석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정당한 이유 없이 예정된 출석에 불응하면 강제수사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손 검사 측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명백히 야당 경선에 개입하는 수사를 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라고 공수처를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 배경엔 더불어민주당의 압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민주당에서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빠른 수사를 촉구하자 공수처가 이에 발맞추느라 무리한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황제 조사
또 언급돼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은 공수처의 손 검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야당 후보의 경선 일정을 고려해 수사를 서두른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명백한 선거개입이자 선거공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수처를 비롯한 수사기관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5일 공수처 출범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공수처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 검찰로부터 독립과 중립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공수처가 철저한 정치적 중립 속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야를 넘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청문회에서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고위공직자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고 발언했다. 공수처 설립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공수처장 후보자는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해당 발언들은 ‘공염불’에 가까워졌다. 

지난 3월 이 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도 재차 거론되고 있다. 당시 김 처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수사’를 무마한 혐의를 받던 이 고검장을 휴일에 관용차량을 이용해 청사에 들인 뒤 면담을 진행해 황제 조사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한 언론을 통해 이 고검장이 김 처장의 제네시스 관용차에 옮겨 타는 장면이 정부과천청사 인근 도로변 CCTV 영상을 통해 공개되면서 김 처장은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사건 조사와 관련해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지 않도록 더욱 유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 경선 일정 언급 
“선거 개입” 반발 불러

김 처장의 이 같은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 고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은 두고두고 공수처의 발목을 잡았다. 

또 공수처가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연달아 청구하는 등 적극성을 보인 반면 윤중천 면담보고서 왜곡‧유출 의혹을 재조사하는 사건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5~6월 사이 이 검사를 3차례 소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는 듯했으나 이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현재 공수처에는 수많은 사건이 쌓여있지만 마무리까지 이뤄진 사건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 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이 유일하다. 나머지 10여건은 아직 결론까지 요원한 상태다. 그나마 조 교육감 사건의 경우에도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질 수 없는 고위공직자여서 검찰에 공소제기 요구까지만 했다.

사실상 기소 사건은 전무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고발한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공수처가 사흘 만에 수사에 착수하면서 윤 전 총장을 표적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공수처의 가용 수사 인력의 절반 가까이 해당 사건에 투입되면서 기존에 진행되던 사건은 뒷전으로 밀렸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 사건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홍성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등 6명이 입건된 상태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과 ‘스폰서 검사’로 알려진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도 입건 이후 지지부진하다. 

기대 못 미쳐
없어질 수도?

공수처가 처음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일각에서는 존폐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던 기소권을 분산시키고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이 범한 직권남용, 수뢰, 허위공문서 작성 및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의 특정범죄를 척결하고, 공직사회의 특혜와 비리를 근절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임으로써, 국민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도입 취지는 이미 무색해졌다는 평가를 피해갈 수 없을 듯하다.
 



배너

관련기사

2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