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권력’ 공수처 인력난, 왜?

슬슬 김빠지는 ‘무능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출범 2년차지만 실적은 고사하고 수사 인력 공백조차 메우기 힘겹다. 현직 검사와 검찰 출신 변호사 대부분이 공수처 지원을 꺼린다는 점이 이 같은 우려에 무게를 더한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공수처는 ‘맹탕 수사’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인력난과 부실 실적의 악순환에 빠진 공수처. 새 정권의 ‘칼질’을 가만히 기다려야 할 운명에 놓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14일, 검사 추가 공모에 나섰다. 부장검사 2명 이내와 평검사 1명 등 검사 3명을 모집한다. 인원이 보강되면 공수처는 출범 후 1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검사 정원 25명을 모두 채울 수 있게 된다.

미미한 성과

공수처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인력난을 호소해왔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달 16일 기자간담회에서 공수처가 겪고 있는 인력난을 공개적으로 토로한 바 있다.

당시 김 처장은 “공수처는 사건의 접수와 처리는 물론이고 예산·회계, 국회·언론, 인사나 법제, 행정심판, 감찰 등 독립된 행정기관으로서의 모든 업무를 공수처법상 정원 제한 때문에 극히 적은 인원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정원이 너무 적게 법에 명시된 관계로 인력 부족 문제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얼마 전 수사3부 소속의 한 검사가 사의를 밝히면서 공수처 안팎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았다. 인원 보강이 절실한 이유다. 특히 그간 제기돼온 수사력 비판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수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검사 인력 수혈은 필수다.


김 처장은 지난 14일 “공수처가 국민의 기대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의미 있는 역사를 써나갈 수 있도록 전문적 수사 역량을 갖춘 우수 인재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우수한 지원자가 충분히 모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들에게 등용문을 활짝 열기에는 너무 많은 걸림돌이 산적해 있는 탓이다.

우선 출범 이후 꾸준히 지적됐던 열악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았다. 공수처법상 공수처 검사의 임기는 3년으로 3회 연임이 가능하다. 최대 근무연수가 12년에 불과한 셈이다. 정년은 63세까지로 검사와 같다. 하지만 임기는 상대적으로 짧은 만큼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정원이 적어 격무에 시달리는 구성원이 많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공수처의 ‘영입 유인’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게 법조계의 냉정한 평가다. 공수처 역시 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임기와 정원을 늘리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관련 논의는 국회에서 본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공수처는 현 시점에서 법조인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다. 현 정부·여당과 각을 세우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인력난에 수사력 논란까지 ‘이중고’
악순환 반복되지만…해결책은 딱히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에 대한 공수처의 ‘우월적·독점적 지위’를 규정한 공수처법 24조를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해왔다.


공수처법 24조는 공수처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을 가져올 수 있고, 타 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공수처에 즉시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해 검찰,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보다 우선권을 준 것이다. 

결국 공수처는 지난 3월 사건사무규칙을 개정해 선별 입건제도를 스스로 내려놨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공수처 설치 자체를 반대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공수처가 흔들릴 때마다 꾸준히 ‘공수처 폐지론’이 흘러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문재인정권 때 검찰수사권 제한의 일환으로 무리하게 만든 기관인 공수처는 이제 폐지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무능한 공수처가 아직도 잔존하면서 국민 세금이나 축내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적었다.

이어 “공수처장이나 근무 검사들은 이제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라며 “출범한지 꽤 됐는데 왜 검사와 수사관 충원이 안 되는지 생각이나 해봤느냐”고 꼬집었다.

실제로 권력기관 견제를 외친 공수처의 성적표는 낙제에 가깝다. 지난달 고발 사주 의혹과 옵티머스 부실수사 의혹 등 윤 대통령을 입건한 사건을 대부분 무혐의 처분하면서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김 처장은 지난달 16일 “공수처는 권력형 비리를 포함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공직사회의 부패 척결이라는 오래된 과제, 권력기관 견제라는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공수처의 명분을 재차 강조했다.

논란에 대한 사과도 있었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미숙한 모습들 보여드린 점 먼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비록 공수처가 극심한 논란 끝에 탄생했고 국민의 기대에 맞지 않는 모습들도 보였지만, 고위공직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권력기관 견제라는 공수처 설립의 대의명분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고 힘줘 말했다.

고발 사주 이어 제보 사주도 맹탕
‘손질’ 벼르는 정부…언제 칼 뽑나 

하지만 공수처의 수사력 논란은 잊을만하면 재점화되곤 했다. 공수처는 사과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비판을 자초했다.

이번에는 ‘제보 사주’다. 공수처는 지난 13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무혐의 처분했다. 박 전 원장과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씨가 제보 시기 등을 협의했다는 제보 사주 의혹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수처가 박 전 원장을 허위사실 유포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 요구하기는 했지만, 이는 모두 제보 사주 의혹과는 무관하다.


고발 사주에 이어 제보 사주 의혹까지 일단락됐지만, 공수처 수사력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두 ‘사주’ 의혹이 대선 정국에 미쳤던 여파가 상당했음에도, 아무런 수사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은 ‘맹탕’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논란을 거듭하면서 공수처는 윤석열정부의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폐지되지는 않아도 수사 방향과 수사 가능한 인물 등에 대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까지 성과를 내왔다면 폐지론에 반발할 수 있는 명분이나 힘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4월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윤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공수처법은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 해당 문서는 총 1170페이지가량의 대외비 문서다. 이행계획서의 내용이 지난달 3일 발표된 110대 국정과제로 대부분 반영된 것을 보면, 일부 수정을 거쳐 최종 채택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행계획서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검찰·경찰·공수처 관련 발언과 공약들이 실천 과제와 함께 담겼다. 대표적 실천 과제로는 ‘공수처법의 독소조항을 폐지, 검찰과 경찰도 고위공직자 부패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수처를 정상화하겠다’는 내용이 제시됐다.

애매한 입지


이행계획서는 ‘공수처법 제24조 폐지 등 관련 법령 제·개정을 통해 검찰·경찰·공수처가 함께 부패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사기관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 공정한 경쟁과 협력을 통해 부패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불어 검찰, 경찰, 공수처 3자 협의를 통해 수사중복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와 수사 지연 등을 방지토록 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2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