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잡을’ 삼각편대 작계

개혁위 던지면 법무부 띄우고 민주당 내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삼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어느 쪽으로도 답이 없는 상태다. 신임 검사들 앞에서 강한 어조로 소신껏 발언했지만 ‘식물총장’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법무부가 단행한 검찰인사로 또 한 방 세게 맞은 모양새다.
 

▲ 윤석열 검찰총장 ⓒ문병희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달 만에 침묵을 깨고 작심발언을 터트렸다. 신임 검사들을 만난 자리서 한 말이지만, 발언이 향하는 방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정치권은 윤 총장 발언의 배경과 속내를 두고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달 만에…
저마다 목소리

지난 3일 윤 총장은 대검찰청서 열린 신임 검사 신고식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한다”며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의롭게 법 집행을 해야 한다”며 “특히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국민 모두가 잠재적 이해 당사자와 피해자라는 점을 명심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 집행 권한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신임 검사들에게 당부했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이후 침묵을 지켜온 윤 총장의 첫 대외 발언이다. 윤 총장은 그동안 검찰 관련 현안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윤 총장은 신임검사 신고식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언급과 함께 ‘독재’라는 수위 높은 표현을 사용했다. 윤 총장이 검찰을 둘러싼 법무부와 민주당의 행태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권력형 비리에 대한 지속적인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다.

윤 총장의 이 같은 발언에 민주당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은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문제 삼은 부분은 ‘독재 배격’. 일부 의원들은 윤 총장의 발언이 정치적이라고 비판했고, 당 외부에선 검찰총장 탄핵까지 언급됐다. 

민주당의 비례대표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건국대 최배근 교수는 “미래통합당의 검찰, 정치 검찰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라며 “정치를 하려면 검찰 옷을 벗어야 하기에 민주당은 윤 총장을 탄핵하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그를 징계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검 개혁 구체적 방안 제시
조국 전 장관 때 2기 출범

지난 5일에는 민주당 지도부서 윤 총장의 공개 사퇴 요구가 나왔다.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윤 총장이 지난 3일 신임 검사 신고식서 독재와 진짜 민주주의 발언을 한 것은 문재인정부가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 전체주의란 주장으로 해석된다”며 “문재인정부라는 주어만 뺀 교묘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제 윤 총장은 물러나야 한다”며 “문재인정부를 독재와 전체주의라면서 검찰총장직을 유지한다면 이는 독재와 전체주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물러나서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한을 환영한다”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냈다.

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정권의 충견이 아닌 국민의 검찰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한다”며 “윤 총장의 의지가 진심이 되려면 조국, 송철호, 윤미향,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 등 살아있는 권력에 숨죽였던 수사를 되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윤 총장의 발언에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지만 지속성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 이후 법무부의 ‘검찰 힘 빼기’는 가속화됐고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통해 윤 총장의 수족을 모두 잘라냈다. 민주당은 입법으로 검찰 개혁을 거드는 중이다. 윤 총장의 이번 발언이 식물총장의 마지막 외침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 윤 총장은 현재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이하 검찰개혁위), 법무부, 민주당이라는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있다. 검찰개혁위가 권고안을 통해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면 법무부가 이를 수용하고 민주당서 법을 개정하는 방식이다. 특히 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장악했고, 의석도 과반인만큼 입법 부문은 일사천리다. 

여 “사퇴”
야 “환영”

‘검찰총장 권한을 축소하라’는 검찰개혁위의 권고안을 법무부가 하루 만에 수용 의사를 밝힌 뒤, 민주당서 검찰청법 개정안을 준비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27일 검찰개혁위는 검찰총장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없애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놨다. 또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는 검찰총장이 아닌 고검장에게 하도록 법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8조를 개정하라는 것이다. 검찰인사 과정서도 검찰총장이 아닌 검찰인사위원회의 의견을 들으라고 했다. 현행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이 인사를 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법무부는 검찰개혁위의 권고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형사사법의 주체는 검찰총장이 아닌 검사다. 검찰총장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도록 개혁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 지휘체계 다원화 등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논의인 만큼 개혁위 권고안 등을 참고해 심층적인 검토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수용 의사를 보였다. 

그 다음날에는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현재 장관급으로 대우받고 있는 검찰총장을 차관급으로 명문화하고 총장의 인사개입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현재 검찰총장은 법률적 근거 없이 장관급으로 대우받고 있다”며 “중앙행정기관의 조직·직무범위 등을 규정한 검찰청법에는 총장을 장관급으로 대우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인사 과정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 보직을 제청하도록 하는 현행 인사규정에 대해서도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없는 내용을 법률로 만들면서 소모적인 논란과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부분을 삭제했다.
 

▲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김 의원은 조 전 장관 시절 검찰개혁위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검찰 개혁은 문정부의 최대 화두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을 언급했다. 대선 후보 당시 1호 공약이기도 했다. 문정부는 검찰 개혁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17년 8월9일 검찰개혁위를 만들었다.

1기 검찰개혁위(한인섭 위원장)는 ▲법무부 탈검찰화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안 ▲검사장 관련 제도 및 운용의 시정 ▲검사의 타 기관 파견 최소화 ▲공안 기능의 재조정 ▲검찰 내 성폭력 ▲젠더 폭력 관련법 재정비 등의 권고안을 내놨다. 

말만 하면
이뤄진다?

1기 검찰개혁위 권고안 중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사안은 입법을 통해 근거가 만들어졌다. 인사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칙 제정안 등 이른바 공수처 후속 3법도 법사위를 거쳐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 전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2호 지시로 2기 검찰개혁위(김남준 위원장)를 발족시켰다. 2기 검찰개혁위는 검찰 현안에 적극적으로 권고안을 내고 인사개혁안을 제시하는 등 검찰 개혁에 힘을 실었다. 

2기 검찰개혁위는 지난해 10월1일 ‘검찰 직접수사 축소’ ‘형사·공판부로의 중심 이동’을 골자로 하는 첫 번째 권고안을 시작으로 지난 5일까지 모두 21차례 권고안을 냈다. 첫 번째 권고안은 3개월 뒤인 올해 1월 검찰 직제개편을 통해 현실화됐다.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직후였다. 


그 결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기존 4곳서 2곳으로 축소됐고, 전문 사건에 대한 주요 전담수서부서들도 몸집이 줄어들었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와 과학기술범죄수사부는 형사부로 전환됐고 비직제 수사단으로 ‘저승사자’로 불리며 각종 금융·증권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사라졌다. 

공공수사부는 기존 11개청 13개부서 7개청 8개부로 축소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와 서울남부·의정부·울산·창원 등 4개청 5개 공공수사부는 형사부로 전환했다. 서울중앙지검 총무부는 공판부로, 외사부는 형사부로 바뀌었다. 인천·부산지검 등 공항·항만 소재지로 외사 사건이 많은 곳만 부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 ⓒ문병희 기자

검찰 내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개혁위는 긴급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지난달 2일 검찰개혁위는 검언유착 의혹 수사의 적정성을 논의하는 전문수사자문단(이하 전문자문단) 소집을 앞두고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냈다. 

검찰개혁위는 “전문자문단은 규정상 대검과 일선 검찰청 간에 중요사건 처리 등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전문적인 자문을 바탕으로 협의가 필요할 때 소집할 수 있다”며 “이번 대검의 전문자문단 소집은 검찰 지휘부의 ‘제 식구 감싸기’ ‘사건 관계자들의 수사 흔들기’ ‘검찰 내부 알력 다툼’의 도구로 변질됐다는 점에서 비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장관은 검찰개혁위의 권고를 사실상 받아들여 이날 윤 총장의 검언유착 의혹 수사 배제를 골자로 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 이어 15년 만이자 헌정 사상 두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이다. 대검과 법무부의 갈등은 극한까지 치닫다가 윤 총장이 수사지휘권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간신히 봉합됐다. 

인사·검찰총장 권한 축소
통합당 “답정너 위원회”

추 장관의 두 번째 검찰 정기인사 역시 검찰개혁위 권고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앞서 검찰개혁위는 지난 5월18일 18차 권고안서 형사·공판부 검사를 중심으로 임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사 인사제도 개혁안’을 내놨다. 

권고안에는 검찰의 중심을 형사·공판부로 이동하기 위해선 기관장인 검사장과 지청장을 형사·공판부 경력검사로 다수 채워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체 검찰 내 분야별 검사 비중을 반영해 기관장의 60% 이상을 형사·공판부 경력검사를 임용하라고 권고했다.

법무부는 지난 6일 인사서 윤 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부장급 간부 5명을 7개월 만에 교체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검사장으로 승진, 대검 공공수사부장에 임명됐다. 삼성그룹 승계 의혹 등의 수사 지휘를 맡아온 신성식 서울중앙지검 3차장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했다.

관심을 모았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됐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형사·공판부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온 검사들을 적극 우대하는 한편 민생과 직결된 형사 분야의 공인 전문검사를 발탁했다”며 “여성 검사의 검사장 발탁과 주요 보임을 통해 차별 없는 균형 인사를 도모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특수부 힘 빼기’는 문 정부 내내 이어진 검찰 개혁 주요 과제였다. 지난해 10월 조 전 장관은 윤 총장이 제안한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특수부 폐지안을 담은 관련 개혁안을 제시했다. 서울중앙지검, 대구지검, 광주지검 3개청에만 특수부를 남기고, 해당 부서 명칭은 반부패수사부로 변경하는 안이 핵심이었다.

다 날아간
총장 측근

일각에선 검찰개혁위가 법무부나 민주당에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찰개혁위를 통해 검찰 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 다음 법무부나 민주당서 이를 현실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당은 검찰총장 권한 축소를 권고한 검찰개혁위를 비판하는 과정서 “결국 법무·검찰개혁위원회란 애초부터 검찰장악이라는 목적을 정해둔 ‘답정너 위원회’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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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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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