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나선 문정부의 두 얼굴

청와대 건든 검사들이 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토사구팽은 토끼 사냥을 마치고 더 이상 쓸모 없어진 개가 또 다른 사냥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현재 검찰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사자성어다. 문재인정부 초기 검찰은 적폐 청산을 내세운 정부의 사냥개였다. 하지만 지금은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사냥을 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 문재인 대통령

지난달 16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8·29전당대회 최고위원에 출마한 이원욱 의원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서 열린 온라인 합동연설회서 “임명받은 권력이 선출 권력을 이기려고 한다.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며 “권력을 탐하는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검찰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끼 잡고
먹힌 개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 의원의 발언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원욱 의원의 ‘검찰총장이 주인 무는 개’라는 발언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막말이자 망언”이라며 “문재인정부가 임명한 검찰총장이 개라면, 대통령이 개인 줄 알고도 임명한 것인가. 설마 대통령도 개라는 건 아니겠지요?”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이 의원의 발언이 집권여당인 민주당서 검찰을 대하는 시각을 보여준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실제 문재인정부 들어 검찰에 대한 평가는 널을 뛰고 있다. 검찰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부터 적폐 청산의 칼이면서 조직 자체가 청산의 대상인 적폐로 지목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 중심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다. 문 대통령은 고검장급인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환원 조치하면서까지 윤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승진, 임명했다.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최대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사건 공소유지를 원활하게 수행할 적임자를 승진 인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25일 윤 총장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박근혜정부서 한직으로 좌천됐던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의 수장으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 임명식서 그를 ‘우리 윤 총장’이라고 부르며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또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격한 수사를 당부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 권력에 대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공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희망을 받았는데 그런 자세를 끝까지 지켜달라”고 말했다. 

장관이 휘두른 인사권에
청와대 수사팀 우수수∼

이어 “그런 자세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청와대든 정부든 또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국민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형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윤 총장 취임 직후 단행된 첫 검찰인사서 이른바 ‘윤석열 사단’과 특수통 검사들이 약진하는 등 시작은 훈훈했다. 윤 총장과 함께 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 박찬호 제주지검장(당시 대검 공공수사부장으로 승진) 등이다. 

검찰과 청와대·정부·민주당의 허니문은 길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 8월27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가족 비리 의혹 등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현직 법무부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사상 초유의 일도 일어났다. 검찰이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에 뛰어들면서 검찰과 당·정·청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조 전 장관은 임명 35일 만인 지난해 10월14일에 전격 사퇴했다. 이후 지난 1월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했다. 추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인사권과 직제개편 등을 무기로 검찰을 흔들었다. 이 과정서 윤 총장은 지금껏 관행처럼 내려왔던 부분서조차 배제되는 ‘윤석열 패싱’을 당했다.


검찰청법 34조 1항은 검사 인사와 관련해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추 장관은 1월 단행된 첫 검찰인사부터 윤 총장과 인사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인사 대상자들의 복무평가와 인사에 대한 개략적인 구도를 남긴 인사자료인 ‘블루북(bluebook)’도 오가지 않았다고 한다. 

조국 수사에
허니문 끝나

윤석열 패싱 논란은 1월과 8월 검찰인사서도 이어졌다. 검찰총장이 배제된 두 번의 검찰인사는 ‘윤석열 고립’ ‘친정부 검사 약진’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윤 총장의 측근들은 좌천성 인사를 당했고, 문 정부 들어 승승장구 하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필두로 그의 측근들이 전진 배치됐다. 

여기에 청와대 및 청와대 관계자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사건 수사팀의 해체가 이어졌다. 검찰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조 전 장관의 가족 비리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환매중단 사태, 추 장관 아들 군대 휴가 미복귀 의혹 등에 대해 수사 중이었다. 

이 수사팀 관계자들이 검찰인사 과정서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살아있는 권력’이 연루된 사건인 만큼 수사와 공소유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수사의 연속성을 위해 수사팀에 대한 인사를 뒤로 미뤄야 한다는 의견이 검찰 내부는 물론 법조계 등에서도 제기됐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월에 단행된 검찰인사가 문 정부 핵심 인사들을 수사한 검사들에 대한 문책 내지 보복이 아니냐는 시선에 대해 법무부는 “검찰개혁법령의 제·개정에 따라 직접수사 부서 축소·조정과 공판중심주의 강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해 형사부와 공판부의 확대를 추진한 것”이라며 “현안 사건 수사팀 존속 여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추 장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인 6월 당시 인사가 ‘문책성 인사’였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추 장관은 지난 6월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서 7월로 예정됐던 검찰인사 방향에 대한 질문에 “2월 문책성 인사에 이어 7월 인사는 형사부나 공판부서 묵묵히 일하는 인재를 발탁, 전문검사 제도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답했다. 

추 장관이 언급한 2월 인사는 1월23일에 단행된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 257명과 평검사 502명 등 759명에 대한 것이다. 당시 인사로 청와대 관련 수사를 실무 지휘했던 차장검사 3명은 모두 지방으로 발령났다. 윤 총장 취임 이후 첫 검찰인사가 이뤄진 지 불과 6개월 만이었다. 조 전 장관 시절 만들었던 ‘필수 보직기간 1년’ 원칙도 지키지 않은 셈이다. 

손발 잘라
총장 고립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 중이던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평택지청 지청장으로, 조 전 장관 가족 비리 의혹 수사를 맡았던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여주지청 지청장으로 전보됐다. 이들과 함께 손발을 맞췄던 부장검사들도 대거 보직이 변경됐다. 반부패수사 1∼4부장도 모조리 교체됐다. 

1월23일 인사를 통해 좌천성 인사 발령을 받은 김성주 전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장검사는 검복을 벗었다. 그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중이었다. 법무부는 김 전 부장검사를 울산지검 형사5부장으로 전보 조치했다. 초임 부장으로 근무했던 자리에 다시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좌천성 인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1월 검찰인사가 윤 총장의 수족을 잘라내는 것이었다면 8월에는 그 자리를 친정부 인사로 채우는 작업이 이뤄졌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김태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 2부장은 지난 8월27일 중간간부 인사서 대구지검 형사 1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삼성전자·제일모직 합병 의혹 사건을 수사한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은 대전지검 형사3부장으로 이동했다. 

반면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서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과 폭행 논란을 빚은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광주지검 차장으로 영전했다.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4차장과 구자현 법무부 대변인 등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추 장관의 측근은 각각 서울중앙지검 1차장과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영전했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에는 윤 총장 장모의 사문서 위조 혐의를 수사 지휘했던 최성필 의정부 지검장이 올랐다. 반부패수사부 등 직접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4차장은 형진휘 서울고검 검사로 정해졌다. 차장급 보직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1∼4차장이 이 지검장과 추 장관의 측근으로 채워진 셈이다. 

좌천되거나 전보되거나
빈자리 친정부 검사로

추 장관은 8월7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 당시 “특정 학맥이나 줄을 잘 잡아야 출세한다는 것도 사라져야 한다”며 “이제 검찰서 ‘누구누구의 사단’이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애초 특정라인·특정사단 같은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적은 바 있다. 

하지만 7일 검찰인사 직후 사의를 표명한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은 “친정권 인사들이니 추미애 검사들이니 하는 편향된 평가를 받는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행태가 우려스럽고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사장 인사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발령나자 사의를 표하면서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렸다. 


그는 “전국시대 조나라가 인재가 없어서 장평 전투서 대패하고 40만 대군이 산채로 구덩이에 묻혔느냐”며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가 무능한 장수를 등용한 그릇된 용인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을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 검찰인사서 요직을 차지한 검사장들을 무능한 장수로 빗대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 윤석열 검찰총장

직제개편을 통해 정권 관련 수사는 와해되다시피 했다. 추미애 법무부의 검찰인사 기조는 특수부 축소, 형사·공판부 우대다. 검찰의 직접수사 부서가 추 장관 취임 이후 초토화됐고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형사·공판부 검사들이 요직을 꿰찼다. 

앞서 1월에는 라임사태를 수사하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이 해체됐다. 2013년 출범한 합수단은 6년 반 동안 1000명 가까운 자본시장법 위반 사범을 다루며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려 왔지만 법무부의 검찰 직제개편 과정서 분해됐다. 이 과정서 라임사태의 수사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또 8월27일 검찰인사 직전에도 직제개편 과정서 대검의 차장급 보직 4개(수사정보정책관·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공공수사정책관·과학수사기획관)가 사라졌다. 모두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자리다. 대검은 “범죄 대응 역량 축소가 우려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반대 입장을 냈지만 사실상 법무부 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8월 인사로
마침표 찍어

8월 인사로 추 장관의 ‘검찰 장악이 완결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체적인 수사 지휘를 맡아야 할 검찰총장은 수족이 다 잘려 ‘식물총장’으로 전락했고, 주요 수사팀은 인사이동 과정서 와해돼 동력을 잃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권이 검찰을 ‘믿는 구석’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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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