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윤석열 총장 ‘논개 작전’ 막전막후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검사 신분으로서는 마지막 국감장에서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동안 두문불출하며 논란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최고 수위의 거취 압박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윤 총장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 윤석열 검찰총장

지난 22일 대검찰청 국감은 시작 전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라임자산운용(라임)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1·2차 옥중서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등 굵직한 이슈가 쌓인 터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입에 높은 관심이 쏠렸다. 

오늘만
기다렸다?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장은 윤 총장의 발언으로 초반부터 달아올랐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중범죄를 저질러 중형 선고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예외적으로 외청이라고도 하지만 과거에는 외청이라고도 얘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 검사들과 법조인들은 검찰청법에 어긋나는 위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검사들이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일선은 다 위법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이를 법적으로 다투게 된다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고, 특정 사건에 대해 장관과 쟁탈전을 벌여 경쟁하고 싶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윤 총장은 검찰인사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던 검사들이 지방으로 좌천되거나 사의를 표한 상황에 대해 “힘 있는 사람에 대한 수사는 굉장히 힘들고 어려워 많은 걸 걸고 불이익도 각오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불이익이) 너무 제도화 되면 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수사에 누구도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난 1월 추 장관의 이른바 검찰 ‘대학살’ 인사에 대해서는 “전례가 없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윤 총장은 “검사장 인사안이 이미 다 짜여있는 상황에서 추 장관이 법무부로 들어오라 했다”며 “그런 법은 없다. (인사안을) 보여주는 게 협의가 아니다. 법에서 말하는 협의는 실질적으로 논의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월 추 장관의 취임과 동시에 윤 총장의 시련이 시작됐다. 검찰인사,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등과 관련해 윤 총장과 추 장관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그 결과 윤 총장의 수족은 전부 잘려나갔고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리더십에도 상처를 입었다.

마지막 국감 되치기 성공?
참고 참았던 발언 쏟아내

더구나 최근 추 장관의 두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윤 총장은 사실상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추 장관은 지난 19일 헌정 사상 세 번째, 취임 후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라임 사태와 윤 총장의 아내 김건희씨, 장모 최모씨 사건에 대해서다. 첫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이 윤 총장의 측근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윤 총장을 직접 겨냥했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윤 총장의 부인 김씨는 주식회사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하며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선상에 오른 회사들로부터 전시회 관련 협찬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김씨가 도이치모터스의 주가조작과 도이치파이낸셜의 주식매매 특혜 사건에 연루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 발언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장모 최씨는 과거 한 요양병원에 투자해 공동 경영진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병원 인사들이 불법 의료기관 개설 의혹으로 수사를 받을 당시 최씨도 불법 의료기관 개설, 요양급여비 편취 의혹이 불거졌지만 입건되지 않아 수사를 무마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밖에 윤대진 법무연수원 부원장의 친형인 윤모 전 용산세무서장이 육류 수입업자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지만 불기소 처분됐다는 의혹이 있다. 윤 부원장은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지난해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해당 의혹에 대한 질의가 있었지만 윤 총장은 본인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본인 및 가족과 측근이 연루된 사건들은 검사윤리강령 및 검찰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라 회피해야 할 사건”이라며 “수사팀에 철저하고 독립적인 수사의 진행을 일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수사지휘권 발동의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윤 총장의 가족과 측근에 대한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을 강화하는 한편, 대검찰청 등 상급자의 지휘와 감독을 받지 않고 수사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위법·부당
작심 비판

이와 함께 추 장관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라임 사건과 관련해 주장한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김 전 회장은 라임 사건 수사팀이 자신을 회유해 여권 인사에 관한 진술을 끌어내려 했고, 검사장 출신 야권 정치인에 대한 비리를 얘기했지만 수사팀과 검찰총장이 이를 알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이 과정에서 현직 검사 등에 대한 향응 제공 의혹도 불거졌다. 

법무부는 “진상을 규명하는 데 있어 검찰총장 본인 또한 관련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의혹이 제기된 검사와 수사관을 관련 수사·공판팀에서 배제한 뒤 새로운 수사팀을 꾸리게 했다. 해당 수사팀은 대검의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결과만 윤 총장에게 보고한다. 

법무부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즉시 효력이 발생된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앞서 추 장관의 첫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 때에도 ‘형성적 처분’을 언급하면서 윤 총장의 권한이 박탈됐다고 해석한 바 있다. 형성적 처분은 처분하는 것만으로 다른 부수적인 절차 없이 효력이 발생하는 법률 행위를 뜻한다. 
 

▲ 김봉현 대표

윤 총장은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지 30여분 만에 입장문을 내고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다. 대검은 지난 19일 출입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에서 “금일 법무부 조치에 의해 총장은 더 이상 라임 사건의 수사를 지휘할 수 없게 됐다”며 “수사팀은 검찰의 책무를 엄중히 인식하고, 대규모 펀드 사기를 저지른 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 모두를 철저히 단죄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윤 총장의 가족 수사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수사에 개입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라임 사건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을 두고 “검사들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치우침 없이 신속하게 수사하길 바라는 당부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대응 없다
국감서 펑

청와대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관련해 ‘불가피했다’는 견해를 내놨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에 관해 청와대는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하거나 행사 여부를 보고받지 않았다”면서도 “수사지휘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청와대가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취하자 윤 총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거의 즉각적으로 수용할 의사를 밝히면서 대검과 법무부의 갈등이 표면화되진 않았지만 정치권을 비롯한 검찰 내부에서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추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이후에도 연일 SNS를 통해 검찰과 윤 총장을 비판했다. 지난 20일에는 “윤 총장이 태세를 전환해 법무부 장관 지휘에 따른 것은 당연한 조치이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SNS에 적었다. 그러면서 “이제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남부지검은 관련 수사팀의 확대·개편을 강화해야 한다”며 “법무부와 대검 등 상부기관으로부터도 독립해 특별검사에 준하는 자세로 오로지 법과 양심,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해 국민 기대에 부응하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21일에는 윤 총장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졌다. 추 장관은 “야당과 언론은 ‘사기꾼의 편지 한 통으로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발동했다’고 맹목적 비난을 하기 전에 국민을 기망한 대검을 먼저 저격해야 한다”며 “검찰총장은 ‘중상모략’이라고 화부터 내기 전에 알았든 몰랐든 지휘관으로서 성찰과 사과를 먼저 말했어야 한다. 유감이다”라고 적었다. 

앞서 대검은 법무부의 김 전 회장의 1차 서신, 이른바 김봉현 문서 사건 관련 감찰 결과 발표에 대해 윤 총장에 대한 중상모략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라임 사건 수사 전반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고, 야권 관련 정치인 의혹은 그 내용을 보고 받은 뒤 역시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추 장관은 당시 대검 입장에 대해 SNS를 통해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산 권력 수사 당부
“아직도 유효할 것이라 생각”

여기에 김 전 회장의 2차 폭로가 맞물렸다. 김 전 회장은 2차 옥중서신에서 “술접대를 한 검사 3명은 대우조선해양수사팀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이라고 주장했다. 또 도주 당시 검찰관계자의 조력을 받았다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 

이어 “윤석열 검찰총장의 말 한 마디에 수사 방향이 전환됐다”는 주장도 담겼다. 김 전 회장은 “5년 전 여당 국회의원 관련 금액이 몇백만원 수준이라고 금액이 너무 적다고 하면서 사건 진행을 하지 않겠다고 하던 검사가 총장님께서 전체주의를 발표한 직후 저를 다시 불러 ‘그냥 다시 진행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 청와대 전경

그러면서 “이번 총장님 발표 때문에 그러시냐고 했더니 맞으니 잘 도와주시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이 언급한 윤 총장의 전체주의란 지난 8월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라고 한 발언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에서는 추 장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대검 감찰2과장을 지낸 정희도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21일 검찰 내부망에 올린 ‘총장님을 응원합니다’라는 글에서 “진정한 검찰개혁을 위해 현역 정치인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흘 만에 소위 ‘검찰총장이 사건을 뭉갰다’는 의혹을 확인하는 ‘궁예의 관심법’ 수준의 감찰 능력에 놀랐고, 이후 전 서울남부지검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2차 수사지휘권이 행사되는 것을 보고 또 놀랐다”고 비판했다. 이어 “장관님의 의도는 모르겠으나 수사지휘권 행사는 결국 총장님을 공격해 또 다시 총장직 사퇴라는 결과를 의도하는 정치적인 행위로 의심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추 장관의 SNS 비판과 검찰 내부의 목소리에도 침묵을 지키던 윤 총장은 국감장에서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끝까지”
사퇴 없다

그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사실상의 사퇴 압박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거취 문제는 “임명권자(문재인 대통령)께서도 별 말씀이 없고, 임기라는 것은 취임하면서 국민들과 한 약속”이라 “압력이 있더라도 제가 할 소임은 다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검찰총장 임명식 때 문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당부한 데 대해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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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