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리스크’ 이낙연의 딜레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9.14 10:23:57
  • 호수 12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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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도 저럴 수도 ‘사면추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사면‘추’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논란에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연일 하락세임에도, 이낙연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빗대 표현한 말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 ▲ 최근 아들 병역 문제로 연일 야권으로부터 맹폭을 받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포연이 자욱하다. 여야가 극렬하게 대치 중이다. 국민의힘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쟁터는 추 장관 아들의 ‘황제 병가’ 논란이다.

잇따른 의혹
수세 몰렸다

“소설을 쓰시네”라는 추 장관의 발언 이후 2개월여 만에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됐다. 지난 7월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서 추 장관 아들의 군복무 시절 휴가 미복귀 의혹으로 여야가 맞붙었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이하 통합당) 윤한홍 의원은 회의에 참석한 고기영 법무부 차관에게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을 맡은 서울동부지검서 해당 사건을 뭉개고 그 대가로 법무부 차관 자리를 받은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의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추 장관은 “소설을 쓰시네”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여야 의원이 충돌했고, 법사위는 파행됐다. 다시 속개된 회의서 추 장관은 “(아들이)특권을 누린 적은 없으며, 1시간도 탈영한 적이 없고, 특혜 병가도 받은 적 없다”며 “다리 치료가 덜 끝나 의사 소견과 적법 절차에 따라 군생활을 다 마쳤다”고 해명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 뇌관이 또 다시 터졌다. 지난달 25일 국회 법사위에 참석한 추 장관은 야당의 의혹 제기에 발끈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통합당은 추 장관 아들인 서씨에 대한 병가 기록이 전혀 없다고 추 장관을 몰아세웠다. 

질의를 한 통합당 전주혜 의원은 “병무청으로부터 2016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카투사 4000명에 대한 기록을 받았는데, (추 장관 아들 성씨인)서씨 중에 진료 목적으로 휴가를 간 사람 4명의 기록은 모두 2017년 6월25일 이후여서 추 장관 아들과 무관하다”며 “군대 미복귀 시점인 2017년 6월25일 이전인데, 병가 기록이 전혀 없다. 장관이 위증을 한 건가, 아니면 병무청과 국방부가 자료를 은폐한 것인가”라고 질의했다.

추 장관은 현장서 “수사를 하면 밝혀질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황제 병가’ 논란에 ‘보좌관 전화’ 논란이 더해졌다. 통합당 신원식 의원은 추 장관의 보좌관이라고 밝힌 인물이 서씨의 휴가를 전화로 요청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연이어 터지는 아들 논란…
선배 대표에게 고언 힘들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추 장관에게 질의가 이어졌고, 추 장관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건을 수사하는 동부지검 역시 해명자료를 내 “현재까지 수사 결과 당시 추 의원 보좌관이 병가 연장을 요청했다는 사실에 대한 부대 관계자의 진술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해명은 하루 만에 위기를 맞았다. 신 의원은 “보좌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부대 관계자의 녹취를 공개했다. 서씨의 병가가 연장되는지 문의하는 전화였다는 것.


신 의원은 “‘보좌관이 전화를 한 사실이 없다’고 한 추 장관과 동부지검의 해명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대국민 거짓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또 신 의원 측은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서씨를 통역병으로 선발하라는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은 <중앙일보>를 통해 “해당 청탁은 민주당 당 대표실로부터 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당시 추 장관은 민주당 당 대표였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아들 병역 논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통합당은 추 장관 아들 서씨와 추 장관의 보좌관, 군 관계자 등 5명을 군형법상 군무이탈과 군무 기피 목적 위계죄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추 장관 측은 반격에 나섰다. 서씨의 법률대리인 측에서 무릎 수술 관련 의무기록을 공개했다. 변호인단이 내놓은 자료는 ▲ 2015년 4월7일 왼쪽 무릎 수술 기록지 ▲(군 복무 중인) 2017년 4월5일 ‘오른쪽 무릎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서 ▲2017년 6월21일 ‘수술 후 회복 중으로 약 3개월간 가료(휴식)가 필요하다’는 진단서 등 3종이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서씨는 병원 소견서를 부대 지원반장에게 보여주며 군 병원의 진단을 신청했고, 2017년 4월12일 국군양주병원에서 진단받은 결과를 근거로 같은 해 6월5일부터 14일까지 병가를 냈다. 이어 23일까지 병가를 연장하고, 여기에 더해 나흘간 개인 휴가를 쓴 뒤 27일 부대에 복귀했다.

서씨는 2차 병가가 끝나는 날인 23일 휴가 연장 승인을 받지 못했는데도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고, 외압 등으로 이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퇴 촉구
특임검사도?

대립이 첨예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해당 의혹이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며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추 장관 아들 의혹에 추 장관의 사퇴를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추 장관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아들 의혹을 수사하는 동부지검 수사팀의 수사 관련 보고를 앞으로도 받지 않을 것이며, 검찰개혁도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치권은 추 장관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을 낮게 본다. 

국민의힘은 특임검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추 장관 본인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특임검사나 특별검사 수사를 자청해야 한다는 논리다. 동부지검의 수사에 공정성이 담보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8개월 동안 수사에 진척이 없었음은 물론, 수사팀이 추 장관 보좌관의 전화 관련 진술을 조서에서 삭제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진 결과다.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당은 추 장관 엄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2의 조국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야권은 전임자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례처럼 추 장관도 가족 비리가 드러난 이상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은 ‘조국 아빠 찬스’의 데자뷔로 느낀다”며 추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서 “지금 추 장관과 관련한 무차별적 폭로와 검증되지 않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의혹들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원내 현안을 책임지는 원내대표가 당 공식회의에서 장관의 자녀 관련 의혹을 언급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민주당서 이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민주당 내부에선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여론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4명을 상대로 조사하고 10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4.1%포인트 떨어진 33.7%를 기록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1.8%포인트 상승한 32.8%로 나타났다. 

엄호 총력
말실수는…

오차 범위 내에서 초접전이다. 특히 남성과 20대, 50대 등에서 지지층 이탈이 두드러졌다. 추 장관 아들 의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나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정치권은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 예견한다. 주변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국방부 문건 ▲민주당 의원들의 무리한 엄호 ▲고발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지난 10일 추 장관 부부가 서씨의 휴가에 관해 ‘민원’을 넣었다는 내용의 국방부 자체 문건이 확인됐다. 최근 국방부 인사복지실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문건을 보면, 서씨의 부모(추 장관 부부)가 병가 연장 방법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국방부에 민원을 넣었다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야권은 이를 외압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무리한 엄호로부터 비롯된 실언이 쏟아졌다. 우상호 의원은 지난 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서 “카투사는 육군처럼 훈련하지 않는다. 카투사 자체가 편한 군대라 논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카투사서 휴가를 갔느냐 안 갔느냐, 보직을 이동하느냐 안 하느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카투사서 복무했다. 


카투사 현역 및 예비역 장병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카투사 예비역 모임은 성명을 통해 “우 의원이 국방 의무를 수행 중인 수많은 장병과 수십만 예비역 카투사들의 명예와 위신을 깎아내렸다”며 “카투사 내에서도 업무 강도는 제각각이고, 육군 일부 부대보다 힘들게 군 생활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카투사 비하’ 논란에 결국 우 의원은 고개를 숙였다.

김남국 의원은 일련의 야당 공세의 이유로 국민의힘에 군대를 안 다녀온 의원이 많아서라고 말해 파장을 낳았다. 그러나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 중 군 미필자는 민주당 34명, 국민의힘 12명으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3배가량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나 체면을 구겼다.

민주당 지지율 추락
탈출구 보이지 않아

설훈 의원은 ‘국방부 문건’과 관련해 “오죽하면 민원을 했겠나”라고 발언, 정청래 의원은 보좌관의 전화 논란에 “우리가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 시킨 것 빨리 좀 주세요, 그럼 이게 청탁이냐, 민원이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두둔해 질타를 받았다.

서씨 변호인단은 지난 9일 서씨의 부대 배치와 관련한 청탁 의혹을 제기한 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과 해당 내용의 녹취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앞서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는 추 장관이 부정한 청탁을 했다며 추 장관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호기롭게 출범했던 이낙연 대표 체제는 난감할 따름이다. 코로나19 국난 극복과 민생 입법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국회 상임위 회의와 대정부 질문, 기자회견 등에서 추 장관 아들 논란이 거듭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 악수 나누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야권의 공세에 이 대표는 특별한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그 이유로 ‘직분에 맞는 언행’이라는 이 대표의 지론을 든다. 당 대표로서 장관의 일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 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선수를 절대적으로 고려하는 국회의 불문율 때문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추 장관은 여성 최초 5선 국회의원이자 민주당 대표까지 지냈다. 그런 추 장관에게 4선인 이 대표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공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출범은 지난 7월15일 법정 시한을 넘겼다. 여야의 지난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자칫 추 장관이 낙마한다면 야권과의 파워 대결서 밀릴 수 있다. 추 장관을 대체할 인물이 없다는 점도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이다. 민주당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추 장관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야권을 의심하는 이유다. 

공수처 출범
저지하려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당 차원서 진상조사를 하자는 주장도 일부 제기되나, 검찰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점이 부담이다. 당 진상조사가 이뤄진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점도 문제다. 출범 초부터 ‘추미애 리스크’라는 악재를 떠안은 이 대표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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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