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식 ‘단두대 인사’ 막전막후

수족 잘리고 목만 남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 중간간부 및 평검사 인사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법무부 장관 입성 직후부터 일관적으로 ‘윤석열 힘 빼기’에 몰두해 온 ‘추미애 법무부’의 인사 방식은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윤 총장은 임기를 11개월 앞두고 완벽한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
 

▲ 윤석열 검찰총장

검찰 개혁은 문재인정부를 상징하는 핵심 정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문정부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내세운 방안들은 ‘검찰권력 약화’에 집중됐다. 인지수사 부서인 특수부를 줄이고 검찰총장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실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 직후 직제개편과 검찰인사를 단행했다.

추, 칼질
문, 지원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대선후보 시절 내세웠던 공약을 공수표로 만들면서까지 추 장관을 지원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첫 대선 출마 당시 “검찰총장 임명권은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 MB정권 5년 동안 대통령 및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 고치겠다”고 직접 말했다.

2017년 두 번째 대선 출마 때 내놓은 대선 공약집에도 ‘검찰 인사 중립성, 독립성 확보’ 부분이 있다. 독립된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검찰총장 임명에 있어 권력 개입을 차단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검찰총장추천위원회와 검찰인사위원회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월초 검찰 인사 과정서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후 1월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선 문 대통령이 직접 “수사권은 검찰에 있다. 그러나 인사권은 (법무부)장관과 대통령에게 있다. 검찰의 수사권이 존중돼야 하듯이 장관과 대통령 인사권도 존중돼야 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지난 27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까지 1월과 8월 2번에 걸친 ‘추미애발 인사’의 핵심은 ‘윤석열 힘 빼기’로 귀결된다. 특히 검찰인사에 검찰총장의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은 추 장관 취임 이후 사라지다시피 했다. 검찰청법 34조 1항은 검사 인사와 관련해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1월 인사에선 ‘윤석열 패싱’ 논란이 크게 불거졌지만 8월 인사는 별다른 언급 없이 진행됐다. 윤 총장을 배제한 검찰인사가 거듭될수록 그의 입지는 좁아졌다. 실제 ‘검찰 대학살’로 불리는 1월 인사 당시 윤 총장의 측근은 모두 잘려나갔다. 그와 비교해 친정부 검사들은 문정부 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7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서 이른바 ‘추미애 라인’으로 꼽히는 간부들이 대거 주요 요직에 발탁되거나 유임됐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이하 검언유착 의혹 사건)서 제기된 논란으로 책임론이 불거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됐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팀은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 폭행, 카카오톡 감청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윤석열 겨냥 인사 ‘완성’
수족 다 잘린 ‘식물총장’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실무 지휘를 담당했던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와 신성식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각각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했다. 또 추 장관을 보좌하던 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은 대검 차장검사로 임명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 법무부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부단장을 지낸 이종근 서울남부지검 1차장검사는 대검 형사부장으로 승진했다. 

고위간부 인사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발령받은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은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인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은 통상 초임 검사장이 가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좌천성 보직을 받은 문 전 지검장은 즉각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친정권 인사들’이니 ‘추미애 검사들’이니 편향된 평가를 받는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런 행태가 우려스럽고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국시대 조나라가 인재가 없어서 장평전투서 대패하고 40만 대군이 산채로 구덩이에 묻힌 것인가”라며 “옹졸하고 무능한 군주가 무능한 장수를 등용한 그릇된 용인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 대검찰청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사법참사’라고 칭하면서 “장관께서는 5선 의원과 여당 대표까지 역임하신 비중 있는 정치인이시다. 이 참사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라며 추 장관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문 전 지검장은 앞서 2월 대검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 때도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를 기소하라는 윤 총장의 지시를 거부한 이 지검장을 면전서 비판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의 인사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번 중간간부 인사로 ‘윤석열 힘 빼기’가 완성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검찰’이 불과 1년 만에 ‘추미애 검찰’로 변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총장 라인
좌천 되고

관심을 모았던 서울중앙지검 1∼4차장 자리는 모두 바뀌었다. 1차장에는 이성윤 지검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4차장이, 2차장에는 최성필 의정부지검 차장이 임명됐다.

추 장관의 ‘입’ 역할을 했던 구자현 법무부 대변인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발령받았다. 검찰 직제개편으로 공공수사부가 2차장 산하서 3차장 산하로 옮겨지면서 구 대변인은 청와대 하명수사 및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를 담당하게 됐다. 

4차장에는 서울고검 소속으로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에 파견됐던 형진휘 검사가 낙점됐다. 서울중앙지검의 반부패1·2부, 경제범죄형사부 등 직접수사 기능은 4차장 산하로 집중될 예정이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 과정서 한동훈 검사장과 폭행 논란을 빚었던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반면 정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 조사를 진행하던 서울고검 감찰부 검사들은 6명 중 5명이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박영진 대검 형사1과장은 유임 신청에도 직책을 맡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울산지검 형사2부장으로 좌천됐다. 정진기 서울고검 감찰부장은 대구고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 합병 의혹’ 수사팀장인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은 대전지검 형사3부장으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맡았던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은 대구지검 형사1부장으로 이동한다. 사실상 좌천성 인사로 평가된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 박원순 팔짱’ 논란의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으로 발령받았다. 서울동부지검은 추 장관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진 검사는 지난달 15일 자신의 SNS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팔짱 낀 사진을 공개하면서 “권력형 성범죄 자수한다”고 언급해 피해자 2차 가해 논란이 일었다. 

한 달 뒤에는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수해복구 봉사 사진을 올리며 “여사님은 서울의 좋은 집에서 자라시고 음악을 전공하신 후 서울시향 합창단서 단원으로 선발되셨다”며 “진정성과 순수함을 느끼게 된다”고 언급해 검사의 정치적 중립과 관련해 비판을 받았다. 진 검사는 인사 발표 직후 “자신이 (서울에)지망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SNS에 썼다.


장관 라인
전진 배치

진 검사의 인사이동과 관련해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조수진 의원은 “징계 대신 추미애 아들 수사청으로 배려성 전보된 친문 여검사”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검찰의 중심을 형사·공판부로 이동하기 위해 일선 형사·공판부서 묵묵히 기본 업무를 충실히 수행한 우수 형사부장, 우수 인권감독관, 우수 고검검사 등을 적극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중간간부 인사는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검찰 직제개편안에 따라 이뤄졌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과 ‘검사정원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대검찰청은 “국가적 범죄 대응 역량 약화가 우려된다”며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검찰 직제개편안은 수사정보기획관, 반부패·강력부선임연구관, 공공수사정책관, 과학수사기획관 등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차장검사급 4자리를 없애는 내용이 골자다. 또 서울중앙지검의 형사부는 1∼3차장 산하로 확대·분산 배치되고 반부패부와 경제범죄형사부, 공정거래조사부 등 4차장 산하로 이동하는 등 검찰의 직접수사 부서를 축소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검찰인사위원회(이하 검찰인사위)는 “검사장 승진에 따른 공석 충원 및 개정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시행에 앞서 새로운 형사사법제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검찰 직제개편이 불가피해 실시되는 인사”라며 “직제개편으로 전담업무가 조정될 경우 그에 맞는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부서장과 이를 지휘할 차장급 검사 전보가 필요하다”고 인사 배경을 밝힌 바 있다. 

검복 벗는 수뇌 늘어나
조직에 대한 불만 표출?

문제는 검찰 내부의 변화다. 지난 7일 고위간부 인사 이후 문 전 지검장에 이어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을 지휘했던 김남우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전성원 인천지검 부천지청장도 사의를 표했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사를 했던 이건령 대검 공안수사지원과장도 검찰을 떠나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 과장은 지난 25일 오전 이프로스에 “바뀌어진 사법환경서도 훌륭한 동료 선후배들이 세계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하는 지난한 업무를 새로운 시각서 훌륭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어렵고 힘든 시기이지만, 바뀌어진 사법환경서도 종래 해왔듯이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의 맡은 바 업무를 묵묵히 해나가신다면 장차 국민이, 국가가 검찰을 믿어주시리라 굳게 믿는다”며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에 죄송스럽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직 인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중간간부 인사 단행 이후 줄사표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가 미래통합당 전주혜 의원실에 제출한 검사 퇴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문정부 들어 올해 7월까지 검찰을 떠난 검사는 280명이다. 임기를 모두 채운 문무일 전 검찰총장 및 정년퇴직 5명, 형사사건에 연루돼 옷을 벗은 4명을 제외하면 총 270명이 스스로 검찰을 떠난 셈이다. 

사직 시기는 인사 전후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정기인사가 단행된 1∼2월, 7∼8월 사이에 집중됐다. 문 전 총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던 2017년 7월부터 고위·중간간부 인사가 단행된 8월까지 퇴직한 인원은 45명이다. 이후 반년 동안 퇴직자는 1명에 불과했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이 된 지난해 여름 인사 이후에는 무려 74명의 검사가 옷을 벗었다. 올해 추 장관 첫 검찰인사가 진행된 1∼2월에는 28명이 검찰을 떠났다. 

인사 시즌
줄사표 내

최근 들어서는 인사 시즌이 지나고도 검복을 벗는 검사들이 매달 나오고 있다. 올해에만도 3월에 1명, 4월에 3명, 5월에 4명, 6월에 1명, 7월에 2명이 퇴직했다. 이를 두고 조직에 불만이 쌓이고 실망한 검사들이 늘어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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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