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검찰 파워게임 2라운드’ 한동훈 VS 이성윤 대리전 막전막후

지금까진 서막…대반전은 지금부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대립은 이제 최측근들의 대리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기자와 검사 사이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검사장 ⓒ문병희 기자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검찰과 법무부가 요동치고 있다. MBC의 첫 보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을 둘러싼 갈등이 곳곳서 터져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법무부와 검찰,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이 한 사건을 두고 강하게 부딪쳤다. 

MBC 보도
4개월 공방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발단은 4개월 전 MBC의 보도였다. 지난 3월31일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당시 채널A 기자가 고위급 검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불법 투자 혐의로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측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제공하라고 강요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등장인물은 현재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 제보자 X로 불렸던 지모씨다. 지씨는 검언유착 의혹을 처음 MBC에 알린 제보자로, 이 전 기자가 만난 이 전 대표 측 대리인이다. 

앞서 이 전 기자는 이 전 대표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검찰이 이철 대표의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로 등재됐던 배우자와 가족, 친지까지 조사할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유시민 이사장 등 여권 인사들이 관련됐다는 정보를 내놓아라. 그러면 검찰도 좋아할 것이다. 여권 인사의 비위를 제공하지 않을 시 더욱 가혹한 검찰수사를 받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이 전 대표의 대리인으로 이 전 기자를 만난 제보자 X 지씨는 대화 내용을 전부 녹음해 MBC에 제보했다. 지씨는 이 전 기자가 검찰 고위층, 즉 한 검사장과 친분을 과시하면서 이 전 대표와 협상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기자가 지씨를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서 한 검사장의 목소리를 들려줬다는 것. 

하지만 이 전 기자가 한 검사장의 목소리라며 들려준 부분은 지씨가 이어폰을 통해 들었기 때문에 녹음이 이뤄지지 않았다. 채널A 압수수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검찰서 확보하지 못했다. 또 이 전 기자는 수사가 시작되자 휴대폰과 노트북을 초기화했다. 한 검사장이라고 했던 목소리도 ‘대역을 시켜서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오보 내고 사과 방송
녹취록·녹음파일 공개돼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지난 2월 이 전 기자가 한 검사장을 만났을 때 후배 기자가 녹음한 내용이 중요하면서도 거의 유일한 물리적 증거로 떠올랐다. 

윤 총장은 지난 2월13일 총장으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지방검찰청 격려 방문에 나섰다. 이때 그가 처음으로 찾았던 곳이 부산고검과 지검이었다. 당시 한 검사장은 추 장관 취임 이후 대대적으로 이뤄진 문책성 인사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이동했다. 그 이후 윤 총장과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이 전 기자와 후배 기자도 이날 부산을 찾았고, 한 검사장과 대화를 나눴다. 이때의 대화가 녹음된 것이다.

검언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팀은 물론 언론 등에서도 당시의 대화 녹음파일을 ‘스모킹 건’으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녹음파일의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MBC 보도 이후 4개월이 흐르는 동안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성했다.
 

▲ 지난 2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씨와 장모 최씨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녹취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KBS였다. KBS는 지난 18일 <9시뉴스>를 통해 이 전 기자가 부산서 한 검사장을 만나 유시민 이사장의 신라젠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자고 공모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 전 기자가 총선 관련 유 이사장에 대한 취재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한 검사장이 동조하고 독려했다는 것이다. 

또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서 ‘유 이사장은 정계 은퇴를 했다. 그러니 수사하더라도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다’ 이런 취지의 말과 또 이 보도 내용을 ‘총선을 앞두고 어떤 시점에 과연 이걸 보도해야 하느냐’ 이런 이야기도 오갔다고 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의 공모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될 터였다. 

전문 공개
진실 공방

하지만 KBS 보도 이후 이 전 기자의 변호인 측에서 보도 내용이 실제 녹취록의 내용과 다르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 검사장 측도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대화가 있었던 것처럼 꾸며낸 완전한 허구며 창작에 불과하고 보도 시점과 내용도 너무나 악의적”이라며 KBS 보도 관계자 등을 지난 19일 서울남부지검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KBS는 결국 다음날 사과 방송을 내고 오보임을 인정했다. 여기에 KBS가 제3의 인물로부터 청부, 하명을 받아 보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언유착 오보방송 진상규명을 위한 연대 서명’에 참여한 직원 105명은 “진상조사를 실시해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오보를 낸 KBS 법조팀은 “누군가의 하명 또는 청부로 이뤄진 보도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KBS의 오보 이틀 뒤인 21일 MBC가 녹취록에 대해 보도했다.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와 그 가족을 압박해 유 이사장 등의 범죄 정보를 구하고 있다고 편지를 썼고, 갖고 다닌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한 검사장이 ‘그런 것은 해볼 만하다, 그런 거 하다가 한두 개 걸리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것.

여기에 대해 ‘덕담 차원서 한 말’이라는 한 검사장 측의 해명을 붙였다. 
 

KBS와 MBC서 보도가 연달아 나오자 이 전 기자 측에서는 21일 녹취록 전문을, 22일에는 녹음파일 자체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특정 사안에 대해 공모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공방이 이어졌다. 

이 과정서 한 검사장이 추 장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정치권에서는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한 검사장이 사용한 ‘일개 장관’이라는 표현에 추 장관이 ‘자괴감을 느낀다’고 언급한 것.

윤 VS 추
한 VS 이


정치권서도 해당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그러자 일각에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검언유착 의혹이 흐지부지되니 한 검사장의 발언 일부를 꼬투리 잡아 시선을 돌리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검언유착 의혹 사건은 이제 해석의 영역으로 진입한 모양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팀과 이 전 기자, 한 검사장 측 간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녹취록 공개 후 “해당 일자 녹취록 전문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안과 관련성 있는 내용 중 일부 대화가 축약되거나 (한 검사장이)기자들의 취재 계획에 동조한 취지의 언급이 일부 누락되는 등 표현과 맥락이 정확하게 녹취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기자의 변호인은 “의도적으로 누락·축약된 부분은 전혀 없다”고 재반박했다. 

녹취록 공개를 기점으로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진행 방향이 바뀌고 있다. 이전까지는 수사 주체나 방식을 두고 윤 총장과 추 장관의 갈등이 주였다. 실제 전문수사자문단(이하 전문자문단) 소집을 두고 법무부와 검찰,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추 장관이 2005년 이후 15년 만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윤 총장이 이를 사실상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갈등은 간신히 봉합됐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사팀과 피의자들 간의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 검사장 간의 대리전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 지검장은 추 장관의 첫 검찰 인사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보됐고, 한 검사장은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이 지검장은 문재인정부 들어 승승장구했다.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올랐다. 검찰 요직 빅4 중 세 자리나 거친 것이다. 그는 문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이고, 노무현 정부 당시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을 지낸 인연도 있다. 일각에선 가장 강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이성윤, 문정부서 승승장구
윤석열 최측근 잡아넣을까

한 검사장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검사다. 현대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의 길을 걸었다. 한 검사장의 이력을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윤 총장과의 관계다. 윤 총장과 한 검사장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를 맡았던 박영수 특검팀에 함께 파견나간 경험이 있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된 이후 지난해 7월 인사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았다.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았을 때도 한 검사장은 3차장검사로 임명됐다. 3차장검사는 옛 특수부인 반부패수사부를 지휘하기 때문에 검찰의 핵심 보직으로 꼽힌다. 윤 총장 밑에서 요직에 배치됐던 그는 추 장관 취임 후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전보된 데 이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 윤석열 검찰총장

이 지검장은 검언유착 의혹을 두고 전문자문단을 소집한 윤 총장과 대립한 바 있다. 지난달 말 검언유착 의혹 수사팀은 대검에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절차를 중단하고 특임검사급 독립성을 부여해 달라”고 건의했다. 건의 형식을 띠었지만 윤 총장의 지시에 이 지검장이 정면으로 공개 항명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대검은 “그간 자문단은 대검 의견에 손을 들기도 하고 일선(검찰청) 의견에 손을 들기도 했다”며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피의자의 법리상 범죄 성립과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면 자문단에 참여해 합리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순리”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지검장의 카운터 파트너는 이제 한 검사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들은 24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를 시작으로 건건이 마주칠 전망이다. 이날 수사심의위에는 이 전 대표, 이 전 기자, 한 검사장 등이 참석했다.

수사심의위는 외부전문가들이 사건에 대한 수사·기소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구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로 2018년 도입됐다. 

사사건건 대립
누가 이길까?

앞서 지난달 26일 열린 수사심의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 중단·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수사팀의 권고를 토대로 기소 여부와 기소 대상자, 적용 혐의 등을 최종 검토 중이다. 수사심의위는 지난 24일 한 검사장에 대해 수사 중단을 권고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