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떠밀려 뒷북 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2.19 11:26:19
  • 호수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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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는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 16일,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해임됐다. 전력강화위원회서도 클린스만은 핑곗거리를 찾느라 바빴고,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참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계속 외면할 순 없다. 클린스만을 데려온 것은 정 회장이기에, 그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클린스만은 이강인·손흥민 때문에 경기력이 안 좋았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한 전력강화위원의 말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에 머물면서 1시간가량 회의에 참석했다.

해당 전력강화위원은 “뮐러 위원장은 클리스만 감독을 두둔했다. 전력강화위원회를 위해 준비한 자료는 선수단 스케줄, 훈련 내용 등 이미 다 아는 내용으로, 유의미한 것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력강화위원은 “클린스만 감독이 ‘실패는 아니다, 성공도 있었다’고 말했다. 아시안컵 리뷰에 특별히 새로운 건 없었다”고 전했다.

누구의 
책임인가

결국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선택이 한국 축구를 구렁텅이로 몰아세웠다. 클린스만 감독이 축구협회와 맺은 계약기간은 북중미 월드컵 본선이 끝나는 오는 2026년 7월까지다. 클린스만 감독의 자진사퇴가 아닌 만큼 축구협회서 그를 경질할 땐 남은 계약기간의 연봉까지 모두 지급해야 한다.

클린스만 감독의 연봉은 22만달러(약 29억원)로 알려져 있다.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움직이는 대표팀 외국인 코치들의 연봉까지 더하면 축구협회가 물어야 할 위약금은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올해 축구협회 전체 예산인 1876억원의 5%가 넘는 돈이다. 하지만 이런 비용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2023 AFC(아시아축구연맹) 카타르 아시안컵서 한국 대표팀은 ‘이런 팀이 아시안컵 4강까지 간 것도 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외 언론에도 크게 보도돼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최악의 경기력 끝에 아시안컵 4강서 탈락한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국내뿐 아니라 외신서도 이렇다 할 전술이 없었던 감독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글로벌 매체 <디애슬레틱>은 지난 12일 ‘클린스만과 한국의 끔찍했던 아시안컵 : 전술, 여정 그리고 너무 많았던 미소’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해당 매체는 한국이 아시안컵 4강 요르단전서 유효 슈팅 1개도 기록하지 못하는 부진한 경기력 끝에 0-2로 완패,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이 끝났다고 소개했다. 또 “한국은 대회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지만 준결승 탈락과 함께 재앙으로 끝이 났다. 그 여파는 대회 후 한국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이후 5경기 무승과 함께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와 같은 재능 있는 선수를 보유하고도 전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울러 계속되는 외유 논란과 재택근무, 지난해 웨일스와의 평가전 이후 상대 주장 애런 렘지에게 아들 유니폼을 얻는 행동 등으로 인해 팬들의 분노가 치솟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 바이에른 뮌헨(독일)과 미국 대표팀을 이끌 당시에도 전술이 없고 체력 훈련만 했는데, 그것이 한국 대표팀서도 반복됐다.

전술 없이 스타 선수에게만 의존
싸움 논란 제보자가 감독과 회장?


<디애슬레틱>은 “선수들은 이런 전략으로 이미 지쳐있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전술 없이 유럽서 뛰는 스타들에만 의존했다. ‘손흥민, 날 위해 해줘’ ‘황희찬, 이것 좀 해줘’란 비판도 있다”고 꼬집었다.

클린스만 감독 체제 이후 1년 동안 한국 축구가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 7승2무1패(13득점 3실점)를 기록하고 ▲11년 동안 이어진 이란전과의 징크스를 깼으며 ▲선수들은 벤투 감독의 훈련 방식에 만족했다.

이번 아시안컵 결과로 “파울루 벤투가 남긴 유산이 사라졌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클린스만 감독을 뽑은 것이 정 회장이라는 점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3월1일 클리스만 감독을 선임한 이유를 밝혔다.

당시 정 회장은 “클린스만은 경험이 풍부하다. (클린스만이)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본선에 가는 것이 아니라 본선서 16강 이상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부분을 설명하는 데 상당히 신뢰가 있어 보였다. 최신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며 “나이별 대표팀 간의 연계도 얘기했다. 우리는 일본과 달리 (선수를) 유럽에 많이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군 문제가 있다. K리그 경쟁력을 많이 얘기했고,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세 대표팀의 선수들도 과감히 기용하겠다는 말씀도 했다. 그런 측면이 우리에게 상당히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했다”며 “클린스만 감독도 자신의 명예를 걸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유럽 등에서도 관심을 받았다. 본인도 이름을 걸고 하니까 잘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정 회장의 기대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아시안컵 준결승전서 탈락한 것을 두고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선수 관리도 제대로 못 했다는 질책까지 받고 있다.

아시안컵 준결승전이 끝난 뒤, 손흥민과 이강인의 갈등이 해외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서다. 영국 대중지 <더 선>은 지난 14일 한국 대표팀 내 심각한 불협화음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더 선>과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건은 요르단전 바로 전날인 지난 5일 저녁 식사 시간에 일어났다. 대표팀서 경기 전날 모두가 함께하는 만찬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결전을 앞두고 화합하며 ‘원팀’임을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날 이강인과 설영우(울산),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 대표팀서 어린 축에 속하는 선수들 몇몇이 저녁 식사를 별도로 일찍 마친 후 탁구를 치러 갔다.

이강인?
손흥민?

손흥민 등 늦은 저녁을 먹기 시작한 선수들이 밥을 먹다가 이강인 등이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주장 손흥민이 이를 제지하려 했지만, 이들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격분한 손흥민이 이강인의 멱살을 잡았다. 이강인은 주먹질로 맞대응했는데 손흥민이 피했다. 다른 선수들이 둘을 떼놓는 과정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 이후 고참급 선수들은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요르단전에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을 제외하지 않았다. 이강인은 부임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던 클린스만호가 지난해 하반기 5연승 반전을 이루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황태자였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강인과 손흥민 등 선임 선수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던 터였다. 이런 가운데 ‘탁구 사건’이 두 선수의 감정을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전은 이런 심각한 갈등 속에 킥오프됐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앞선 조별리그 3경기, 토너먼트 2경기서와 마찬가지로 요르단전서도 90분 내내 각자 따로 놀았다.

경기 뒤 믹스트존서 손흥민은 “내가 앞으로 대표팀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감독님께서 저를 이제는 생각 안 하실 수도 있고 앞으로의 미래는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탁구 사건’과 이강인을 계속 신임한 클린스만 감독의 선택을 놓고 보면, 손흥민이 어떤 맥락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대표팀 내 갈등이 이강인과 손흥민 사이에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회 내내 선수들은 나이별로 따로 노는 모습이었다.

이강인·설영우·정우영·오현규(셀틱)·김지수(브렌트퍼드) 등 어린 선수들, 손흥민·김진수(전북)·김영권(울산)·이재성(마인츠) 등 고참급 선수들, 그리고 황희찬(울버햄프턴)·황인범(즈베즈다)·김민재(뮌헨) 등 1996년생들이 주축이 된 그룹이 각자 자기들끼리만 공을 주고받았다.


탁구가 
뭐길래

조별리그 1차전을 대비한 훈련 때부터 마지막 요르단전 훈련 때까지, 각 그룹의 면면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나이로만 분열된 게 아니다. 해외파, 국내파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토너먼트 경기를 앞둔 훈련서 한 해외파 공격수가 자신에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오는 국내파 수비수에게 불만을 품고 공을 강하게 차며 화풀이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중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산 원정경기를 마친 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유럽파 선수들이 한국에 일찍 돌아가기 위해 사비로 전세기를 임대해 귀국하기도 했다.

원정 일정이 끝나지 않았는데 개인행동을 한 셈이다. 대표팀, 대한축구협회가 허락한 일이었다지만, 국내파 선수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과거 대표팀을 이끌었던 한 지도자는 “국내파 선수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런 건 해외파 선수들이 알아서 자제해야 했다. 이런 부분은 지도자들이 정리를 좀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걸 다 마음대로 하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축구협회는 “대회 기간 중 일부 선수들 사이서 다툼이 있었다. 물리적인 수준의 충돌까진 아니었고, 손흥민이 선수를 뿌리치는 과정서 손가락 상처를 입은 것”이라며 두 사람의 충돌 상황으로 손흥민이 다친 게 맞다고 인정했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이강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제가 앞장서서 형들의 말을 잘 따랐어야 했는데, 축구팬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축구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축구팬들은 “제대로 사과하라” “사과문을 쓰긴 썼지만 성의가 안 느껴진다” “손흥민한테 먼저 연락해서 사과하라”며 이강인이 올린 사과문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국제적 망신 “관리 못한 축협 책임”
강요,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고발

지난 14일 일본 매체 <히가시스포>는 “2명의 신구 에이스가 대립하는 전대미문의 내분이 큰 소동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해당 논란 제보자에 대해 “한국 대표팀을 이끄는 클린스만 감독과 정 회장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자신들의 입장을 지키기 위해 내분 정보를 누설했다는 것”이라고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박찬우 축구해설가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모든 게 사실이어도 선수단 관리의 가장 큰 책임자는 감독이며 무능한 감독을 임명한 대한축구협회의 잘못도 사라지지 않는다. 협회의 최고관리자로서 정몽규 회장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과 향후 대책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은 지난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서 “(협회가)클린스만 감독 경질 여론과 협회 책임론 확산을 피하려고 선수들 간 불화설을 부각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문제가 터졌을 때 일반적으로 시간을 벌면서 차분해야 하는데 시간당 새로운 기사를 노출시켜 준다. 문제가 터졌는데 누군가가 이 문제를 굉장히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위원은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이렇게 팀워크를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지적하고, 선수들이 징계까지도 받아야 할 일이다. 협회도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문제 제기를 안 할 수가 없는 일”이라며 “일단 지금 (경질)수순을 밟고 있는 건 맞고, 그림 자체는 협회장의 고독한 결단으로 가고 있다. 다시 클린스만 감독 체제로 가겠다고 발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대표팀 운영 및 최근 불거진 선수단 불화 등 여러 사태가 맞물리면서 책임론에 직면해있다. 

지난 15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홍준표 대구시장은 전날 자신의 SNS에 “패인을 감독 무능이 아니라 선수들 내분이라고 선전하는 축구협회 관계자들도 각성하라. 너희들이 선수 관리를 잘못한 책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몽규도 장기집권했으니 사퇴하는 게 맞다. 대통령도 단임인데 3선이나 했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해임을 거듭 촉구했던 홍 시장은 “클린스만 감독을 해임하지 않으면 앞으로 국가대표 경기 안 본다. 일개 무능한 감독 하나가 이 나라를 깔보고 나라의 국격을 무너트리는 터무니없는 행태는 이제는 볼 수가 없다”고 경고했다.

이번 경기를 유튜브로 중계하던 개그맨 출신 방송인 이경규도 “축구협회장이 누구냐고, 물러나! 솔직히 책임지고 물러나야지”라고 소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축구팬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번엔
바뀌나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는 지난 13일 서울경찰청에 정 회장을 강요, 업무방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을 물어 클리스만 감독을 해임할 때, 위약금을 비롯해 해임하지 않을 시 2년 반 동안 지불해야 할 금액, 처음 계약 후 지급한 금액도 공금임에도 피고발인의 일방적 연봉 결정서 비롯된 것이라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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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