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미끼로' 악덕 에이전트 사기 추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5.02 14:57:57
  • 호수 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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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팀 보내줄게 6000만원 가져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선수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에이전트는 사기꾼’이라는 말이 축구 맘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일부 악덕 에이전트들이 국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들에게 접근해 유럽팀으로 이적시켜 줄 테니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축구 꿈나무들은 제2의 손흥민을 꿈꾼다. 하지만 한국에서 엘리트 축구선수로 성장해 K리그 1부 선수가 될 확률은 0.8%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들의 꿈을 이용해 돈만 받고 모르쇠로 돌변하는 에이전트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

말라죽는 
축구 꿈나무

A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A씨 어머니는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찾아와 축구선수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감독은 ‘아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봤다’는 말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A씨는 초·중학교에서 줄곧 주전선수로 뛰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입지가 흔들렸다. 감독이 자주 교체되면서 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2020년 A씨는 광주에 위치한 모 대학교에 입학해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대학교 축구부였던 A씨는 다른 지도자 소개로 B씨를 알게 되면서 대학교 축구부에서 나왔다. 


A씨 어머니는 B씨가 실력도 보지 않은 채 “제대로 키워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A씨 가족은 축구 인맥 추천으로 알게 된 것이니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해야 했다. 

A씨는 “나를 잘 아는 감독님의 후배로 알고 있었다. 테스트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을 수 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와 부모는 B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해외 진출 견적서 확인 결과 숙식 1800만원, 보험 100만원, 비자 2회 300만원, 담당 매니저 2명 2600만원, 소속사 1200만원 등을 합쳐 총 6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같은 해 10월, A씨 어머니는 B씨 개인계좌로 해당 비용을 송금했는데 그는 A씨와 A씨 어머니에게 유럽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며 C씨를 소개해 줬다. 

이듬해 1월, A씨와 A씨 어머니는 C씨를 만나 면담을 가졌다. A씨에 따르면 “C씨는 외국에서 1~2년간 생활하라”는 얘기만 했으며 크로아티아팀에 대한 얘기보다는 ‘두세 군데 팀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중순 A씨는 본인 또래의 다른 축구선수와 함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는 C씨와 함께 일한다는 외국인 D씨가 마중을 나왔다. A씨는 D씨 안내에 따라 크로아티아에서 지내게 될 숙소로 향했다. 

이적 조건 숙식·보험 명목으로 수천만원 송금
말만 번지르르 현지서 방치…돈만 받고 모르쇠


A씨는 “내가 지낸 곳은 사람이 없는 빌라였다. 시차 적응을 이유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일주일 후 나랑 같이 온 선수는 크로아티아 2부 리그 프로팀인 NK 라드닉 세스베테팀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2부 리그 NK 두브라바(이하 두브라바) 자그레브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축구선수는 새 둥지를 틀 때 계약서 작성과 함께 팀 유니폼을 제공받는다. A씨도 이를 기대했지만 유니폼은커녕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그는 두브라바 팀원들과 같이 훈련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A씨는 “계약서나 유니폼 같은 경우는 C씨에게 확인하니 운동 먼저 하고 있으란 얘기를 했다”며 “C씨의 ‘지금 크로아티아에 없으니 입국하면 계약서, 유니폼을 해결해주겠다’는 말만 믿었다”고 설명했다. 

풀백 포지션이었던 A씨는 묵묵히 훈련에 참여했다. 팀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한국선수가 있어 A씨는 함께 어울려 지내기도 했다. A씨는 2주간의 적응 기간을 마친 후 컨디션을 회복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면도 없었고 주전으로서 경쟁력이 출중했지만 그의 경기 출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달 후인 4월 C씨는 A씨가 있는 크로아티아로 돌아왔다. 결국 A씨가 C씨에게 요청했던 계약서 작성과 유니폼 지급 관련된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씨는 시간만 질질 끌었으며 훈련복이 따로 없어 공용 훈련복을 사용해야 했다. 시간만 끌던 C씨는 다시 A씨 곁을 떠났다.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하던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 18세 이하 팀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는 20세지만 외국 나이로는 18세이기 때문에 내려갈 수 있었다. 

“키워주겠다”
솔깃한 제안

A씨는 “같은 팀원이었던 한국인에게 C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4년 전 C씨에게 사기당해서 들어왔다. C씨는 회사를 바꾸고 계속 사기를 치고 있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두브라바는 A씨 출전 당시 18개팀 리그 중 8~10위권에 사이에 있는 중위권 팀이었다. A씨는 C씨로부터 크로아티아 프로팀으로의 이적 시 조건이 ▲선수 출퇴근 ▲레스토랑 이용 등이었지만 A씨의 식사 환경은 열악했다. 빌라 내에서 밥을 해먹거나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5월 말 크로아티아 리그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게 말한 뒤 한국으로 복귀했다. A씨는 부모와 함께 크로아티아서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갈지, 한국서 다시 도전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 무렵 A씨 어머니는 B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A씨는 B씨가 운영하는 4부리그 격인 구단서 훈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B씨는 C씨에게 비용을 전달했으나, 제대로 된 곳에 쓰지 않았다고 A씨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A씨는 “해당 팀 소속은 아닌 채 또 다른 숙소에서 10명 정도 모여 같이 훈련했다. B씨는 새로운 감독과 코치를 섭외해 숙소비만 받고 훈련을 진행했다. 운동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선수들을 불러 면담을 진행했다. 또 중국팀으로 가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중국 2부리그서 한국선수를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조건은 유럽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며 이적료 없이 연봉은 20만달러(당시 한화 2억3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줄 수 있다고 하고 사이드(측면 윙어나 측면 수비)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리그 재정도 탄탄해서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조건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월에 들어가서 4주간 격리하고 11월부터 훈련하게 되면 내년부터 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소속사 애들을 입단시키려는데 조건에 맞는 선수가 너(A씨)밖에 없다”며 “상황이 딱 맞는다. 지금 중국은 마스크 쓰지도 않는 상황이다. 아직 팀은 정하지 않았고 서너 군데 팀을 만날 생각이다. 부모 의견보다 네 생각이 중요하니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또 “10월에 입국해 한 달간 격리 후 11월에 용병 전지훈련을 갈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가 동의하면 프로필이 들어가는 중국 쪽에 들어간다. 비자랑 해서 호텔 격리 비용에 3000만원이 들어간다. 비자가 나오면 프로필을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봉은 2억원부터 시작이며 9억원 미만으로 책정돼 1월부터 들어오며 1년씩 계약이 된다. 몸값이 떨어지는 건 없다. 한국에선 연봉이 2400이지만 중국에서 더 받을 수 있다”며 “경험을 쌓으면 군대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무조건 용병을 구하기 때문에 이적료 없을 때 이적하는 것이다. 돈은 둘째치고 축구다운 축구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확실성이 떨어지는 한국보다 중국을 추천한다”고 제안했다. 

군대도 해결
달콤한 유혹

A씨가 답변을 머뭇거리자 B씨는 “크로아티아 가서 얻은 거라곤 이력뿐이었다. (현지)텃세도 있었지만 이력을 얻어왔으니 활용해야 한다. 이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봉 받으면서 뛸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네 맘도 어떤지 잘 안다”며 한 번 해보는 게 낫지 않나. 크로아티아랑은 상황이 다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유럽파 한국인이기 때문에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이적할 수 있을 때 해야지. 그 타이밍을 놓치면 애매해진다”며 “중국에서 올림픽을 하게 돼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주기 때문에(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조언했다. 

B씨는 크로아티아서 몸과 마음고생을 했던 A씨 사정을 언급하면서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는 “크로아티아는 이력을 쌓기 위해 간 것이고 지금은 (중국서)오퍼를 던진 상황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은 낙후된 곳도 아니다. 리그 체계는 크로아티아보다 낫다”며 “다른 선수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거기 가면 한국인 교수가 있다. 같이 케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 선수로 둔갑해서 프로구단으로 입단시키겠다. 슈퍼리그는 좀 어렵고 갑급리그가 맞다. 최고 연봉은 500 위안(한화 약 8억원)으로, 우리나라 선수는 김신욱이 9억원”이라며 “리그 규모도 엄청 크고 타이밍도 괜찮다. 지금 4명을 (중국으로)입단시키려는 데 1억2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비자 비용 3000만원을 내고 본인 추후에 연봉을 가져가라는 의미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선수가 많다. 한국서 도전하면 K3나 K4나 가야 하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재정도)탄탄한 중국리그가 괜찮다”고 권유했다. 

그는 “유럽 경험이 없는 애들은 지원도 못한다. 갑급리그가 2부라 해도 관중이 많다. 서정원 감독도 2부리그인 청두 룽청 구단을 맡고 있고 옌볜 푸더(당시 연변FC)를 이끌고 2부에서 1부리그로 승격시킨 적이 있다”며 “유럽을얼마나 잘 다녀왔냐. K리그 기다리다가 안 되면 어떡할 거냐. 외국 다녀온 거 써먹을 타이밍이다. 국내는 어려우니 생각을 잘해보라”고 다독였다. 

“연봉 9억까지 받을 수 있다”
중국 프로팀 입단 제의도

A씨 어머니는 B씨 팀에서 A씨를 데리고 나왔다. A씨가 운동할 데가 없어 방황하다가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이 닿았다. B씨와 따로 일한다고 밝힌 C씨는 A씨 어머니에게 해외팀 이적을 명분으로 또 금전을 요구했다. A씨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2200만원을 송금했다. 

C씨는 A씨와 지인 2명을 대동해 총 4명이 함께 공항으로 갔다. 지난번과는 달리 같이 갔기에 A씨의 불안함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A씨는 “지난번과 다르게 완전 시골이었다. 통역사 1명만 남기고 나머지 2명은 또 다른 곳으로 갔다. 일주일 정도 훈련하니까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휴식을 취했다”며 “몸이 괜찮아져서 운동하려고 했는데 의욕이 사라졌다. 성인팀이 아니라 청소년 같았다. 수준이 너무 맞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을 시도해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C씨는 시간만 질질 끌면서 되돌려주지 않았다. A씨 어머니 입장에선 2번이나 당한 셈이었다. A씨 어머니는 C씨에게 카카오톡과 전화를 시도했지만 C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B씨로부터는 3000만원을 되돌려받았다. 

A씨 학부모는 “아들(A씨) 말고도 또 다른 피해자가 몇몇 있다. 어머니들끼리 송금한 돈 액수를 합치면 2억원이 넘는다. 제대로 잘된 선수도 없고 대부분이 축구를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C씨에게 송금한 금액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C씨는 시간을 지체하며 “송금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B씨는 “과거 프리랜서인 C씨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안 하고 있다. 유럽 진출과 관련해서는 C씨가 담당해 견적을 냈고 제게 제안했다”며 “C씨가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유럽으로 데려갔고 계약도 그가 한 것이다. 금전적인 부분은 그가 집행했고 그에게 돈을 더 빌려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로부터 회사가 돈을 받았고 금전 부분 지출은 C씨가 맡았다. 회사가 받은 돈은 다 C씨에게 다 줬다. 부모님도 돈을 내고 회사에도 돈을 내니 금전적인 손해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며 “유럽에 있던 C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건도 좋고 한국선수를 받아준다고 하니 견적을 받아주겠다고 해서 한국 와서 학부모를 설득해서 데려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나중에 금전적인 손해가 너무 커 C씨와 일을 그만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C씨에게 속은 셈”이라며 억울해했다. <일요시사>는 C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A씨 같은 피해 사례가 몇 명 더 있는 것으로 들었다. A씨가 피해를 보면 또 다른 선수를 섭외해 그 돈으로 메꾸는 ‘돌려막기 형식’으로 알고 있다”며 “프로팀 연습생 1~2년만 뛰면 구단 계약서를 써주겠다고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계속 기간만 연장하면서 돈만 받아낸다. 선수 생활비, 이동 비용 등을 명목으로 계속 돈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연습생
돌려막기

이어 “B씨도 소문이 좋지 않다. 대학교에 입학시켜주겠다고 미끼를 던진 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미끼를 문 축구선수 대부분이 축구화를 벗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 해외팀으로 입단해 성공하는 케이스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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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