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미끼로' 악덕 에이전트 사기 추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5.02 14:57:57
  • 호수 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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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팀 보내줄게 6000만원 가져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선수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에이전트는 사기꾼’이라는 말이 축구 맘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일부 악덕 에이전트들이 국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들에게 접근해 유럽팀으로 이적시켜 줄 테니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축구 꿈나무들은 제2의 손흥민을 꿈꾼다. 하지만 한국에서 엘리트 축구선수로 성장해 K리그 1부 선수가 될 확률은 0.8%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들의 꿈을 이용해 돈만 받고 모르쇠로 돌변하는 에이전트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

말라죽는 
축구 꿈나무

A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A씨 어머니는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찾아와 축구선수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감독은 ‘아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봤다’는 말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A씨는 초·중학교에서 줄곧 주전선수로 뛰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입지가 흔들렸다. 감독이 자주 교체되면서 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2020년 A씨는 광주에 위치한 모 대학교에 입학해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대학교 축구부였던 A씨는 다른 지도자 소개로 B씨를 알게 되면서 대학교 축구부에서 나왔다. 


A씨 어머니는 B씨가 실력도 보지 않은 채 “제대로 키워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A씨 가족은 축구 인맥 추천으로 알게 된 것이니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해야 했다. 

A씨는 “나를 잘 아는 감독님의 후배로 알고 있었다. 테스트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을 수 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와 부모는 B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해외 진출 견적서 확인 결과 숙식 1800만원, 보험 100만원, 비자 2회 300만원, 담당 매니저 2명 2600만원, 소속사 1200만원 등을 합쳐 총 6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같은 해 10월, A씨 어머니는 B씨 개인계좌로 해당 비용을 송금했는데 그는 A씨와 A씨 어머니에게 유럽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며 C씨를 소개해 줬다. 

이듬해 1월, A씨와 A씨 어머니는 C씨를 만나 면담을 가졌다. A씨에 따르면 “C씨는 외국에서 1~2년간 생활하라”는 얘기만 했으며 크로아티아팀에 대한 얘기보다는 ‘두세 군데 팀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중순 A씨는 본인 또래의 다른 축구선수와 함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는 C씨와 함께 일한다는 외국인 D씨가 마중을 나왔다. A씨는 D씨 안내에 따라 크로아티아에서 지내게 될 숙소로 향했다. 

이적 조건 숙식·보험 명목으로 수천만원 송금
말만 번지르르 현지서 방치…돈만 받고 모르쇠


A씨는 “내가 지낸 곳은 사람이 없는 빌라였다. 시차 적응을 이유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일주일 후 나랑 같이 온 선수는 크로아티아 2부 리그 프로팀인 NK 라드닉 세스베테팀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2부 리그 NK 두브라바(이하 두브라바) 자그레브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축구선수는 새 둥지를 틀 때 계약서 작성과 함께 팀 유니폼을 제공받는다. A씨도 이를 기대했지만 유니폼은커녕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그는 두브라바 팀원들과 같이 훈련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A씨는 “계약서나 유니폼 같은 경우는 C씨에게 확인하니 운동 먼저 하고 있으란 얘기를 했다”며 “C씨의 ‘지금 크로아티아에 없으니 입국하면 계약서, 유니폼을 해결해주겠다’는 말만 믿었다”고 설명했다. 

풀백 포지션이었던 A씨는 묵묵히 훈련에 참여했다. 팀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한국선수가 있어 A씨는 함께 어울려 지내기도 했다. A씨는 2주간의 적응 기간을 마친 후 컨디션을 회복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면도 없었고 주전으로서 경쟁력이 출중했지만 그의 경기 출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달 후인 4월 C씨는 A씨가 있는 크로아티아로 돌아왔다. 결국 A씨가 C씨에게 요청했던 계약서 작성과 유니폼 지급 관련된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씨는 시간만 질질 끌었으며 훈련복이 따로 없어 공용 훈련복을 사용해야 했다. 시간만 끌던 C씨는 다시 A씨 곁을 떠났다.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하던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 18세 이하 팀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는 20세지만 외국 나이로는 18세이기 때문에 내려갈 수 있었다. 

“키워주겠다”
솔깃한 제안

A씨는 “같은 팀원이었던 한국인에게 C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4년 전 C씨에게 사기당해서 들어왔다. C씨는 회사를 바꾸고 계속 사기를 치고 있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두브라바는 A씨 출전 당시 18개팀 리그 중 8~10위권에 사이에 있는 중위권 팀이었다. A씨는 C씨로부터 크로아티아 프로팀으로의 이적 시 조건이 ▲선수 출퇴근 ▲레스토랑 이용 등이었지만 A씨의 식사 환경은 열악했다. 빌라 내에서 밥을 해먹거나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5월 말 크로아티아 리그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게 말한 뒤 한국으로 복귀했다. A씨는 부모와 함께 크로아티아서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갈지, 한국서 다시 도전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 무렵 A씨 어머니는 B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A씨는 B씨가 운영하는 4부리그 격인 구단서 훈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B씨는 C씨에게 비용을 전달했으나, 제대로 된 곳에 쓰지 않았다고 A씨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A씨는 “해당 팀 소속은 아닌 채 또 다른 숙소에서 10명 정도 모여 같이 훈련했다. B씨는 새로운 감독과 코치를 섭외해 숙소비만 받고 훈련을 진행했다. 운동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선수들을 불러 면담을 진행했다. 또 중국팀으로 가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중국 2부리그서 한국선수를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조건은 유럽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며 이적료 없이 연봉은 20만달러(당시 한화 2억3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줄 수 있다고 하고 사이드(측면 윙어나 측면 수비)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리그 재정도 탄탄해서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조건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월에 들어가서 4주간 격리하고 11월부터 훈련하게 되면 내년부터 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소속사 애들을 입단시키려는데 조건에 맞는 선수가 너(A씨)밖에 없다”며 “상황이 딱 맞는다. 지금 중국은 마스크 쓰지도 않는 상황이다. 아직 팀은 정하지 않았고 서너 군데 팀을 만날 생각이다. 부모 의견보다 네 생각이 중요하니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또 “10월에 입국해 한 달간 격리 후 11월에 용병 전지훈련을 갈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가 동의하면 프로필이 들어가는 중국 쪽에 들어간다. 비자랑 해서 호텔 격리 비용에 3000만원이 들어간다. 비자가 나오면 프로필을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봉은 2억원부터 시작이며 9억원 미만으로 책정돼 1월부터 들어오며 1년씩 계약이 된다. 몸값이 떨어지는 건 없다. 한국에선 연봉이 2400이지만 중국에서 더 받을 수 있다”며 “경험을 쌓으면 군대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무조건 용병을 구하기 때문에 이적료 없을 때 이적하는 것이다. 돈은 둘째치고 축구다운 축구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확실성이 떨어지는 한국보다 중국을 추천한다”고 제안했다. 

군대도 해결
달콤한 유혹

A씨가 답변을 머뭇거리자 B씨는 “크로아티아 가서 얻은 거라곤 이력뿐이었다. (현지)텃세도 있었지만 이력을 얻어왔으니 활용해야 한다. 이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봉 받으면서 뛸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네 맘도 어떤지 잘 안다”며 한 번 해보는 게 낫지 않나. 크로아티아랑은 상황이 다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유럽파 한국인이기 때문에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이적할 수 있을 때 해야지. 그 타이밍을 놓치면 애매해진다”며 “중국에서 올림픽을 하게 돼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주기 때문에(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조언했다. 

B씨는 크로아티아서 몸과 마음고생을 했던 A씨 사정을 언급하면서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는 “크로아티아는 이력을 쌓기 위해 간 것이고 지금은 (중국서)오퍼를 던진 상황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은 낙후된 곳도 아니다. 리그 체계는 크로아티아보다 낫다”며 “다른 선수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거기 가면 한국인 교수가 있다. 같이 케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 선수로 둔갑해서 프로구단으로 입단시키겠다. 슈퍼리그는 좀 어렵고 갑급리그가 맞다. 최고 연봉은 500 위안(한화 약 8억원)으로, 우리나라 선수는 김신욱이 9억원”이라며 “리그 규모도 엄청 크고 타이밍도 괜찮다. 지금 4명을 (중국으로)입단시키려는 데 1억2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비자 비용 3000만원을 내고 본인 추후에 연봉을 가져가라는 의미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선수가 많다. 한국서 도전하면 K3나 K4나 가야 하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재정도)탄탄한 중국리그가 괜찮다”고 권유했다. 

그는 “유럽 경험이 없는 애들은 지원도 못한다. 갑급리그가 2부라 해도 관중이 많다. 서정원 감독도 2부리그인 청두 룽청 구단을 맡고 있고 옌볜 푸더(당시 연변FC)를 이끌고 2부에서 1부리그로 승격시킨 적이 있다”며 “유럽을얼마나 잘 다녀왔냐. K리그 기다리다가 안 되면 어떡할 거냐. 외국 다녀온 거 써먹을 타이밍이다. 국내는 어려우니 생각을 잘해보라”고 다독였다. 

“연봉 9억까지 받을 수 있다”
중국 프로팀 입단 제의도

A씨 어머니는 B씨 팀에서 A씨를 데리고 나왔다. A씨가 운동할 데가 없어 방황하다가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이 닿았다. B씨와 따로 일한다고 밝힌 C씨는 A씨 어머니에게 해외팀 이적을 명분으로 또 금전을 요구했다. A씨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2200만원을 송금했다. 

C씨는 A씨와 지인 2명을 대동해 총 4명이 함께 공항으로 갔다. 지난번과는 달리 같이 갔기에 A씨의 불안함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A씨는 “지난번과 다르게 완전 시골이었다. 통역사 1명만 남기고 나머지 2명은 또 다른 곳으로 갔다. 일주일 정도 훈련하니까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휴식을 취했다”며 “몸이 괜찮아져서 운동하려고 했는데 의욕이 사라졌다. 성인팀이 아니라 청소년 같았다. 수준이 너무 맞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을 시도해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C씨는 시간만 질질 끌면서 되돌려주지 않았다. A씨 어머니 입장에선 2번이나 당한 셈이었다. A씨 어머니는 C씨에게 카카오톡과 전화를 시도했지만 C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B씨로부터는 3000만원을 되돌려받았다. 

A씨 학부모는 “아들(A씨) 말고도 또 다른 피해자가 몇몇 있다. 어머니들끼리 송금한 돈 액수를 합치면 2억원이 넘는다. 제대로 잘된 선수도 없고 대부분이 축구를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C씨에게 송금한 금액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C씨는 시간을 지체하며 “송금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B씨는 “과거 프리랜서인 C씨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안 하고 있다. 유럽 진출과 관련해서는 C씨가 담당해 견적을 냈고 제게 제안했다”며 “C씨가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유럽으로 데려갔고 계약도 그가 한 것이다. 금전적인 부분은 그가 집행했고 그에게 돈을 더 빌려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로부터 회사가 돈을 받았고 금전 부분 지출은 C씨가 맡았다. 회사가 받은 돈은 다 C씨에게 다 줬다. 부모님도 돈을 내고 회사에도 돈을 내니 금전적인 손해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며 “유럽에 있던 C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건도 좋고 한국선수를 받아준다고 하니 견적을 받아주겠다고 해서 한국 와서 학부모를 설득해서 데려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나중에 금전적인 손해가 너무 커 C씨와 일을 그만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C씨에게 속은 셈”이라며 억울해했다. <일요시사>는 C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A씨 같은 피해 사례가 몇 명 더 있는 것으로 들었다. A씨가 피해를 보면 또 다른 선수를 섭외해 그 돈으로 메꾸는 ‘돌려막기 형식’으로 알고 있다”며 “프로팀 연습생 1~2년만 뛰면 구단 계약서를 써주겠다고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계속 기간만 연장하면서 돈만 받아낸다. 선수 생활비, 이동 비용 등을 명목으로 계속 돈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연습생
돌려막기

이어 “B씨도 소문이 좋지 않다. 대학교에 입학시켜주겠다고 미끼를 던진 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미끼를 문 축구선수 대부분이 축구화를 벗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 해외팀으로 입단해 성공하는 케이스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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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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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