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미끼로' 악덕 에이전트 사기 추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5.02 14:57:57
  • 호수 1373호
  • 댓글 0개

“유럽팀 보내줄게 6000만원 가져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선수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에이전트는 사기꾼’이라는 말이 축구 맘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일부 악덕 에이전트들이 국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들에게 접근해 유럽팀으로 이적시켜 줄 테니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축구 꿈나무들은 제2의 손흥민을 꿈꾼다. 하지만 한국에서 엘리트 축구선수로 성장해 K리그 1부 선수가 될 확률은 0.8%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들의 꿈을 이용해 돈만 받고 모르쇠로 돌변하는 에이전트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

말라죽는 
축구 꿈나무

A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A씨 어머니는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찾아와 축구선수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감독은 ‘아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봤다’는 말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A씨는 초·중학교에서 줄곧 주전선수로 뛰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입지가 흔들렸다. 감독이 자주 교체되면서 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2020년 A씨는 광주에 위치한 모 대학교에 입학해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대학교 축구부였던 A씨는 다른 지도자 소개로 B씨를 알게 되면서 대학교 축구부에서 나왔다. 


A씨 어머니는 B씨가 실력도 보지 않은 채 “제대로 키워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A씨 가족은 축구 인맥 추천으로 알게 된 것이니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해야 했다. 

A씨는 “나를 잘 아는 감독님의 후배로 알고 있었다. 테스트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을 수 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와 부모는 B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해외 진출 견적서 확인 결과 숙식 1800만원, 보험 100만원, 비자 2회 300만원, 담당 매니저 2명 2600만원, 소속사 1200만원 등을 합쳐 총 6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같은 해 10월, A씨 어머니는 B씨 개인계좌로 해당 비용을 송금했는데 그는 A씨와 A씨 어머니에게 유럽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며 C씨를 소개해 줬다. 

이듬해 1월, A씨와 A씨 어머니는 C씨를 만나 면담을 가졌다. A씨에 따르면 “C씨는 외국에서 1~2년간 생활하라”는 얘기만 했으며 크로아티아팀에 대한 얘기보다는 ‘두세 군데 팀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중순 A씨는 본인 또래의 다른 축구선수와 함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는 C씨와 함께 일한다는 외국인 D씨가 마중을 나왔다. A씨는 D씨 안내에 따라 크로아티아에서 지내게 될 숙소로 향했다. 

이적 조건 숙식·보험 명목으로 수천만원 송금
말만 번지르르 현지서 방치…돈만 받고 모르쇠


A씨는 “내가 지낸 곳은 사람이 없는 빌라였다. 시차 적응을 이유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일주일 후 나랑 같이 온 선수는 크로아티아 2부 리그 프로팀인 NK 라드닉 세스베테팀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2부 리그 NK 두브라바(이하 두브라바) 자그레브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축구선수는 새 둥지를 틀 때 계약서 작성과 함께 팀 유니폼을 제공받는다. A씨도 이를 기대했지만 유니폼은커녕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그는 두브라바 팀원들과 같이 훈련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A씨는 “계약서나 유니폼 같은 경우는 C씨에게 확인하니 운동 먼저 하고 있으란 얘기를 했다”며 “C씨의 ‘지금 크로아티아에 없으니 입국하면 계약서, 유니폼을 해결해주겠다’는 말만 믿었다”고 설명했다. 

풀백 포지션이었던 A씨는 묵묵히 훈련에 참여했다. 팀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한국선수가 있어 A씨는 함께 어울려 지내기도 했다. A씨는 2주간의 적응 기간을 마친 후 컨디션을 회복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면도 없었고 주전으로서 경쟁력이 출중했지만 그의 경기 출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달 후인 4월 C씨는 A씨가 있는 크로아티아로 돌아왔다. 결국 A씨가 C씨에게 요청했던 계약서 작성과 유니폼 지급 관련된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씨는 시간만 질질 끌었으며 훈련복이 따로 없어 공용 훈련복을 사용해야 했다. 시간만 끌던 C씨는 다시 A씨 곁을 떠났다.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하던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 18세 이하 팀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는 20세지만 외국 나이로는 18세이기 때문에 내려갈 수 있었다. 

“키워주겠다”
솔깃한 제안

A씨는 “같은 팀원이었던 한국인에게 C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4년 전 C씨에게 사기당해서 들어왔다. C씨는 회사를 바꾸고 계속 사기를 치고 있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두브라바는 A씨 출전 당시 18개팀 리그 중 8~10위권에 사이에 있는 중위권 팀이었다. A씨는 C씨로부터 크로아티아 프로팀으로의 이적 시 조건이 ▲선수 출퇴근 ▲레스토랑 이용 등이었지만 A씨의 식사 환경은 열악했다. 빌라 내에서 밥을 해먹거나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5월 말 크로아티아 리그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게 말한 뒤 한국으로 복귀했다. A씨는 부모와 함께 크로아티아서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갈지, 한국서 다시 도전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 무렵 A씨 어머니는 B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A씨는 B씨가 운영하는 4부리그 격인 구단서 훈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B씨는 C씨에게 비용을 전달했으나, 제대로 된 곳에 쓰지 않았다고 A씨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A씨는 “해당 팀 소속은 아닌 채 또 다른 숙소에서 10명 정도 모여 같이 훈련했다. B씨는 새로운 감독과 코치를 섭외해 숙소비만 받고 훈련을 진행했다. 운동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선수들을 불러 면담을 진행했다. 또 중국팀으로 가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중국 2부리그서 한국선수를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조건은 유럽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며 이적료 없이 연봉은 20만달러(당시 한화 2억3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줄 수 있다고 하고 사이드(측면 윙어나 측면 수비)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리그 재정도 탄탄해서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조건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월에 들어가서 4주간 격리하고 11월부터 훈련하게 되면 내년부터 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소속사 애들을 입단시키려는데 조건에 맞는 선수가 너(A씨)밖에 없다”며 “상황이 딱 맞는다. 지금 중국은 마스크 쓰지도 않는 상황이다. 아직 팀은 정하지 않았고 서너 군데 팀을 만날 생각이다. 부모 의견보다 네 생각이 중요하니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또 “10월에 입국해 한 달간 격리 후 11월에 용병 전지훈련을 갈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가 동의하면 프로필이 들어가는 중국 쪽에 들어간다. 비자랑 해서 호텔 격리 비용에 3000만원이 들어간다. 비자가 나오면 프로필을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봉은 2억원부터 시작이며 9억원 미만으로 책정돼 1월부터 들어오며 1년씩 계약이 된다. 몸값이 떨어지는 건 없다. 한국에선 연봉이 2400이지만 중국에서 더 받을 수 있다”며 “경험을 쌓으면 군대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무조건 용병을 구하기 때문에 이적료 없을 때 이적하는 것이다. 돈은 둘째치고 축구다운 축구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확실성이 떨어지는 한국보다 중국을 추천한다”고 제안했다. 

군대도 해결
달콤한 유혹

A씨가 답변을 머뭇거리자 B씨는 “크로아티아 가서 얻은 거라곤 이력뿐이었다. (현지)텃세도 있었지만 이력을 얻어왔으니 활용해야 한다. 이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봉 받으면서 뛸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네 맘도 어떤지 잘 안다”며 한 번 해보는 게 낫지 않나. 크로아티아랑은 상황이 다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유럽파 한국인이기 때문에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이적할 수 있을 때 해야지. 그 타이밍을 놓치면 애매해진다”며 “중국에서 올림픽을 하게 돼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주기 때문에(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조언했다. 

B씨는 크로아티아서 몸과 마음고생을 했던 A씨 사정을 언급하면서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는 “크로아티아는 이력을 쌓기 위해 간 것이고 지금은 (중국서)오퍼를 던진 상황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은 낙후된 곳도 아니다. 리그 체계는 크로아티아보다 낫다”며 “다른 선수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거기 가면 한국인 교수가 있다. 같이 케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 선수로 둔갑해서 프로구단으로 입단시키겠다. 슈퍼리그는 좀 어렵고 갑급리그가 맞다. 최고 연봉은 500 위안(한화 약 8억원)으로, 우리나라 선수는 김신욱이 9억원”이라며 “리그 규모도 엄청 크고 타이밍도 괜찮다. 지금 4명을 (중국으로)입단시키려는 데 1억2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비자 비용 3000만원을 내고 본인 추후에 연봉을 가져가라는 의미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선수가 많다. 한국서 도전하면 K3나 K4나 가야 하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재정도)탄탄한 중국리그가 괜찮다”고 권유했다. 

그는 “유럽 경험이 없는 애들은 지원도 못한다. 갑급리그가 2부라 해도 관중이 많다. 서정원 감독도 2부리그인 청두 룽청 구단을 맡고 있고 옌볜 푸더(당시 연변FC)를 이끌고 2부에서 1부리그로 승격시킨 적이 있다”며 “유럽을얼마나 잘 다녀왔냐. K리그 기다리다가 안 되면 어떡할 거냐. 외국 다녀온 거 써먹을 타이밍이다. 국내는 어려우니 생각을 잘해보라”고 다독였다. 

“연봉 9억까지 받을 수 있다”
중국 프로팀 입단 제의도

A씨 어머니는 B씨 팀에서 A씨를 데리고 나왔다. A씨가 운동할 데가 없어 방황하다가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이 닿았다. B씨와 따로 일한다고 밝힌 C씨는 A씨 어머니에게 해외팀 이적을 명분으로 또 금전을 요구했다. A씨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2200만원을 송금했다. 

C씨는 A씨와 지인 2명을 대동해 총 4명이 함께 공항으로 갔다. 지난번과는 달리 같이 갔기에 A씨의 불안함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A씨는 “지난번과 다르게 완전 시골이었다. 통역사 1명만 남기고 나머지 2명은 또 다른 곳으로 갔다. 일주일 정도 훈련하니까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휴식을 취했다”며 “몸이 괜찮아져서 운동하려고 했는데 의욕이 사라졌다. 성인팀이 아니라 청소년 같았다. 수준이 너무 맞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을 시도해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C씨는 시간만 질질 끌면서 되돌려주지 않았다. A씨 어머니 입장에선 2번이나 당한 셈이었다. A씨 어머니는 C씨에게 카카오톡과 전화를 시도했지만 C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B씨로부터는 3000만원을 되돌려받았다. 

A씨 학부모는 “아들(A씨) 말고도 또 다른 피해자가 몇몇 있다. 어머니들끼리 송금한 돈 액수를 합치면 2억원이 넘는다. 제대로 잘된 선수도 없고 대부분이 축구를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C씨에게 송금한 금액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C씨는 시간을 지체하며 “송금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B씨는 “과거 프리랜서인 C씨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안 하고 있다. 유럽 진출과 관련해서는 C씨가 담당해 견적을 냈고 제게 제안했다”며 “C씨가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유럽으로 데려갔고 계약도 그가 한 것이다. 금전적인 부분은 그가 집행했고 그에게 돈을 더 빌려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로부터 회사가 돈을 받았고 금전 부분 지출은 C씨가 맡았다. 회사가 받은 돈은 다 C씨에게 다 줬다. 부모님도 돈을 내고 회사에도 돈을 내니 금전적인 손해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며 “유럽에 있던 C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건도 좋고 한국선수를 받아준다고 하니 견적을 받아주겠다고 해서 한국 와서 학부모를 설득해서 데려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나중에 금전적인 손해가 너무 커 C씨와 일을 그만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C씨에게 속은 셈”이라며 억울해했다. <일요시사>는 C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A씨 같은 피해 사례가 몇 명 더 있는 것으로 들었다. A씨가 피해를 보면 또 다른 선수를 섭외해 그 돈으로 메꾸는 ‘돌려막기 형식’으로 알고 있다”며 “프로팀 연습생 1~2년만 뛰면 구단 계약서를 써주겠다고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계속 기간만 연장하면서 돈만 받아낸다. 선수 생활비, 이동 비용 등을 명목으로 계속 돈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연습생
돌려막기

이어 “B씨도 소문이 좋지 않다. 대학교에 입학시켜주겠다고 미끼를 던진 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미끼를 문 축구선수 대부분이 축구화를 벗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 해외팀으로 입단해 성공하는 케이스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9do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벌써 두 달’ 쿠팡발 관세 음모론

‘벌써 두 달’ 쿠팡발 관세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쿠팡 사태의 ‘나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뜻처럼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외교전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더불어 쿠팡의 ‘믿는 구석’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을 넘어 미국 정가마저 반응하고 있는 쿠팡 사태를 <일요시사>가 조명했다. 지난해 11월 말 온라인 이커머스 업체 쿠팡에서 고객의 개인정보가 3000만건 이상 유출됐다.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규모를 웃도는 수치였다. 지난달 28일로 쿠팡 사태는 두 달째를 맞았다. 그동안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까지 쿠팡 사태를 언급했다. 미국 기업 방패 삼아 하지만 쿠팡의 태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뻔뻔함’을 앞세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쿠팡 사태는 지난해 11월29일 쿠팡 고객에게 발송된 문자로 시작됐다. 문자에는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배송 주소록, 주문 정보 등 개인정보가 ‘노출’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쿠팡 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괜찮다고 했다. 주말 사이에 문자를 받은 고객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앞서 상반기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 직원의 소행이라는 의혹이 번지면서 충격을 더했다. 사태가 쿠팡 시스템 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정부는 쿠팡 사태 발생 직후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경찰은 쿠팡 본사 현장을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청문회를 진행했다. 정부는 쿠팡 유출 대응 범부처 TF를 구성해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세청도 가세해 전방위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쿠팡 때문에 우리 국민이 걱정이 많다”며 “사고 원인을 조속하게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 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현실화하는 등의 대책에 나서달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역대 정부 최초로 생중계된 기관별 업무보고에서도 쿠팡에 대한 질책을 이어갔다. 당시 이 대통령은 “‘무슨 팡’인가 하는 곳에서 규정을 어기지 않았나. 그 사람들은 처벌이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에 대한 처벌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전방위서 압박했는데도… 그러면서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 이야기가 사실 쿠팡 때문 아니냐. 너무 가혹하고 심야 노동 때문에 많이 죽는 것 아니냐. 금지시키자는 주장도 있다”며 “새로운 노동 형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규제 기법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뿐만 아니라 쿠팡 자체를 정조준한 것이다. 문제는 이 정도의 전방위적 공격에도 쿠팡의 태도는 그대로였다는 점이다. 정부와 논의되지 않은 자체 조사 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도 모자라 실제 개인정보 유출 규모는 3000여건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쿠팡의 ‘셀프 조사’ 결과에 경찰 등이 반박했지만 쿠팡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쿠팡의 주장대로면 피해 규모는 1만분의 1로 줄어든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의 대국민 사과도 사태 발생 한 달 만에야 나왔다. 김 의장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자체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하지만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진행한 청문회에는 출석하지 않아 사과의 진정성이 바랬다. 실제 김 의장뿐만 아니라 김유석 쿠팡 부사장 등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쿠팡에서 제시한 보상안은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쿠팡은 1인당 5만원 상당의 쿠폰을 지급하는 등 총 3370만명의 고객에게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현금 배상이 아니라 쿠팡, 쿠팡이츠(배달), 쿠팡트래블(여행), 쿠팡알럭스(명품)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으로 쪼개놓은 것도 모자라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의 지급이라 비판이 빗발쳤다. 대통령도 나섰는데 심지어 사용 조건도 까다롭게 설정해 놨다. 쿠폰 사용 기간을 지급일로부터 3개월로 제한하고 도서, 주류, 상품권 등은 구매할 수 없으며, 쿠팡이츠에서 사용할 때는 최소 주문 금액 이상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보상안에 대해서는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비판했지만 쿠팡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되다 보니 쿠팡의 ‘뻣뻣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쿠팡의 ‘믿는 구석’이 뭐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쿠팡이 그동안 정치권 인사를 영입한 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언급됐다. 쿠팡은 정부 부처 출신을 많이 데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치권 인사와 쿠팡 관계자가 식사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탈당한 김병기 전 원내대표는 쿠팡 대표와 고가의 식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쿠팡으로 이직한 전직 보좌관 관련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자신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전직 보좌관에 대해 인사 불이익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쿠팡이 독점적 지위를 무기로 뻔뻔하게 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쿠팡은 온라인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도 전국에 지어놓은 물류센터가 배송 거점 역할을 하는 중이고 ‘로켓배송’이라 이름 붙인 새벽배송은 배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월 구독료 7890원의 ‘로켓와우’ 서비스는 2024년 말 기준으로 1500만명 이상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켓와우에 가입하면 무료 배송, 무료 반품은 물론 쿠팡에서 론칭한 OTT ‘쿠팡플레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회원 탈퇴 등으로 이용자가 감소 중이지만, 여전히 후발 주자와는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격 없이 흘러가나 실제 사건 발생 직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쿠팡에 미칠 손실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언급했다. 쿠팡이 우리나라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에 개인정보가 유출됐어도 이용자는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최근 또 하나의 의견이 더해졌다. 쿠팡이 미국을 믿고 우리나라 상황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매출 대부분을 올리고 있지만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미국 기업이다. 쿠팡의 대처가 주가에 미칠 영향만을 고려한 행보였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사태 규모를 축소한 자체 조사 결과가 주가 방어용이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의견은 최근 미국의 행보로 힘을 받는 모양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회가 미국과의 관세 협정에 대해 승인을 하지 않고 있는 점을 배경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무역 협정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신속하게 관세를 낮췄고 당연히 우리의 무역 파트너들도 같은 조치를 취하길 기대한다”며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30일 양국 모두에 훌륭한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10월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왜 한국 국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나”라고 적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외신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에 불이익 조치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오간 대화라는 점에서 쿠팡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뻔뻔한 태도 일관하더니 ‘믿는 구석’ 있었나 의심 <WSJ>는 관계자 발언 등을 인용해 “밴스 부통령이 지난주 워싱턴 D.C.에서 김 총리와 만나 쿠팡을 포함한 미국 기술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 대화는 양국 간 무역 긴장이 정점에 이르기 불과 며칠 전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이 일반적인 규제 집행 수준을 넘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대응이 주가 하락 등 손실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 정보 근절법)과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정부와 의회 일부에서는 검열이자 미국 기업 차별이라는 비판을 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체결한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MOU)에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내용,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차별 금지 약속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발표는 이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관계자를 급파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법 등과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메시지가 나온 뒤 저희가 미국 국무부와 접촉한 바로는 쿠팡이나 온라인 플랫폼법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그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안갯속 조 장관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정되는 어떤 특별한 이유를 특정키가 어렵다”며 “그런 이유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추가 메시지를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 발표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협상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한국 국회가 무역 합의를 통과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승인하기 전까지는 한국과의 무역 합의는 없는 것”이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또 한 번 우리나라가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늪에 빠진 셈이다. 동시에 쿠팡 사태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