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월클 손흥민 키워낸 손웅정

유력한 차기 국대 감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말씀 중에 죄송하다. 흥민이 절대 월드클래스 아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해당 영상은 영상은 조회 수가 300만회를 넘었고, 이를 코믹하게 패러디한 영상들도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심지어 손 감독이 현역 시절 프로축구 선수로 활약한 옛 모습이 담긴 영상도 조회 수가 200만회를 넘었다. 아들이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평가받고 있음에도 손 감독의 겸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 매체와 유명 축구 감독들의 극찬도 끊이지 않을 정도다.

손웅정 감독은 오래전부터 방송과 강연, 언론사 등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아왔으나 대부분 거절해왔다. 본인이 운영하는 축구 아카데미에서 열린 행사나 운영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기본서 시작

손 감독의 주변인들은 손 감독이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철학이 몸에 밴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내지 않으면 외부 일정조차 함부로 잡지 않는 인생을 수십년간 지켜왔다는 설명이다.

손 감독의 인생관은 그의 자전 에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 출간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지난 5월부터 다시 판매량이 3~5배씩 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각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역주행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손 감독의 사인회가 열렸는데 팬층은 어린이부터 중년·노년층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했다. 1시간 정도로 예정된 사인회는 1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다. 그의 에세이를 본 팬들은 “철학과 내공이 대단하다” “한 명의 수도승을 만난 느낌”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지난 12일에는 신경호 강원교육감이 “춘천에 손흥민 거리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제안하자 손 감독은 “몇 년 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단호히 선을 그으며 “은퇴하면 누가 이름이나 불러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 몸을 사릴까. 손 감독의 지인들은 “원래 지나칠 정도로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에다 아들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며 “‘손흥민 아빠라며 나댄다’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꺼린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덧 60대지만 어딜 가든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도 축구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손 감독의 끝없는 겸손과 저자세는 단순한 겉치레나 리스크 회피가 아닌 삶을 지탱하는 철학이다. 그가 말하는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인파출명저파비’다.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들은 “월드 스타가 된 손흥민이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다 이런 아버지의 철학 덕분”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한 문화평론가는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그 유명세로 돈이나 인기를 얻으려는 풍토가 강하지 않으냐”며 “손 감독과 손흥민의 겸손한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인데다 그런 태도가 한결같이 이어지다 보니 더 큰 호응을 얻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아직 아니다” 겸손이 만든 레전드
“인성이 기본…흥민이 더 노력해야”

손 감독은 1962년 충청남도 서산군 안지면 산동리 도비산 자락에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을을 “하루에 버스가 단 한 번 오는 궁벽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손 감독이 강조하는 지독한 성실과 노력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축구를 시작한 만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학창 시절 별명이 ‘숙소 귀신’ ‘연습벌레’였을 정도로 다른 친구들이 방과 후 친구도 만나고 여가를 누릴 시간에 본인은 오로지 훈련과 숙소에서의 휴식에만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상무 축구단, 현대 호랑이(현 울산 현대), 일화 천마(현 성남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프로 통산 37경기 7골. 자신의 현역 시절에 대해 손 감독은 “삼류 선수” “천둥에 놀라 뛰는 개처럼 두서없이 뛰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축구계 평가는 다르다. 제38회 청룡기쟁탈 전국 중·고교 축구선수권대회에 춘천고 선수로 출전한 손 감독은 영광고와의 시합에서 생애 첫 공식 해트트릭이자 대회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1m72㎝에 63㎏. 축구선수로는 비교적 단신이지만 문전에서의 순발력과 슈팅 처리, 드리블이 고교 정상급인 반면, 100m를 12초로 뛰는 스피드를 순간적으로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의 자전 에세이와 축구계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손 감독의 말은 과한 겸손이라고 한다.

손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 교회 대항 축구대회에 출전하면서 처음 그라운드를 밟았는데, 당시 맹활약해 단박에 학교 축구부 감독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 탓에 학교 진학과 소속팀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럴 때마다 손 감독의 재능과 성실함을 높게 사는 지도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1990년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으로 결국 28세 젊은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후로 다시 지독한 가난을 겪어야 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체육시설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 그걸로도 벌이가 충분치 않아 주말에는 공사판에 나갔다. 방과 후 체육교실 강사, 학교시설 관리 등 네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손 감독은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축구 이상에 미치지 못한 현역 시절을 합리화하는 대신 처절한 성찰을 통해 아들에게는 철저히 기본기를 중시하는 축구 교육을 시켰고, 그 결과 손흥민은 세계 최고 반열의 선수로 성장했다.

지독한 가난
혹독한 훈련

손흥민은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손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지고 메고 공사판 비계를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 봐 내심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선수로 뛰던 손웅정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면서도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날 때부터 프로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다니 우스웠다. 일이 창피한 게 아니라 그걸 창피해했다는 것이 창피한 거였다. 살아가는 길이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왜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나. 내가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고 술회했다.


손 감독의 일정은 손흥민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운동, 축구, 청소, 책읽기가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철학 중 또 다른 핵심은 ‘무욕’과 ‘행복’ ‘자기 주도적 삶’이다.

손 감독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 길에 돈이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안 따라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문제로 호되게 고생도 해본 나”라며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미리 걱정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주도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세우고, 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시간도 벌면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운동선수에게 승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승패에 연연하는 마음을 초월할 수 있다”며 “오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해도 오늘 축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선수, 오늘 경기가 잘 풀렸다면 그 행복감을 만끽하는 선수, 돈과 명예를 떠나 공을 찰 수 있음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선수, 멀리 봤을 때 나는 이것이 답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일에 실패란 없다. 오직 경험만이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손흥민의 수입에 대해서도 굉장히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손 감독은 “흥민이가 번 돈에 대해서도 철저히 선을 긋는다. 내가 자식이 번 돈을 가져다 쓰면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겠느냐”며 “내가 왜 자식 눈치를 보며 살겠는가. 흥민이가 어렵게 번 돈은 통장에 잘 넣어놓고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노력한 것들이 흔적이 되고 자국으로 남을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한다. 그래야 동기 부여가 된다”고 밝혔다.

손 감독과 손흥민 모두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손 감독은 “캄캄한 방 안에서도 밥숟가락이 저절로 입에 들어가는 경지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손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드리블, 리프팅 등 철저하게 공을 다루는 기술 위주로 훈련을 시켰다. 오른발잡이였던 아들이 왼발도 잘 쓸 수 있도록 양말을 신거나 바지를 입을 때, 축구화 끈을 묶을 때도 왼쪽부터 하도록 유도했다.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 시절, 아버지의 지도로 현재의 슈팅 기술을 완성했다. 2011년 여름엔 매일 1000개씩 슛 연습을 했다. 위치를 옮겨가면서 오른발로 500번, 왼발로 500번씩 때렸던 덕분에 이젠 왼발 슈팅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돈 벌라고
가르친 거 아냐”

손 감독은 “불 꺼진 방 안에서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경지.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축구선수는 공을 좀 다룬다 말할 수 있다. 흥민이는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 7년의 세월이 걸렸다. 365일 쉬지 않았다. 방학 때 친척집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가치가 ‘겸손’과 ‘성실’”이라고 했다.

이 같은 ‘기본기 강조’ 때문이었을까. 손흥민은 2021~20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르면서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럴 만한 것이 EPL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로 꼽힌다. 720명의 선수는 각국의 대표선수급으로 이들 중에서 득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손 감독은 손흥민이 축구선수로서 기본기를 다지는 것 외에 흔들림 없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손흥민이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했을 때 일이다. 혼자 독일로 간 손흥민이 한동안 향수병에 시달려 힘들어하자 손 감독은 아들을 위해 독일로 날아갔다. 그는 손흥민의 팀 훈련 전, 매일 새벽에 웨이트트레이닝을 시키면서 함께 훈련했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지금도 손 감독은 여전히 아들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점점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질 때도 엄격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손흥민은)절대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 그래서 흥민이한테 많이 강조하는 게 겸손이었다”고 언급했다.

또 손흥민이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전에서 최연소 골을 터뜨리자 “아들이 하루만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첫 골로 감정에 휘둘릴까 봐 주변 평가를 보지 못하게 노트북도 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손 감독의 엄격함은 아들에게 절제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한결같이 자기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팬들은 손 감독의 매력으로 ‘솔선수범 리더십’을 꼽는다. 손 감독은 어린 손흥민을 가르칠 때도 항상 시범을 먼저 보이고 훈련을 똑같이 했다. 그가 손축구아카데미 선수들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면서 자신도 똑같이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에는 “살면서 저런 스승은 본 적이 없다” “정말 존경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다.

손 감독은 책에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나의 훈련 철칙이다. 아이들에게만 시키고 팔짱 끼고 서 있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손흥민도 어린 시절 혹독한 훈련에 대해 “아버지가 옆에서 똑같이 훈련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킬레스건 부상…28세 현역 은퇴
아내·자녀 먹여 살리려 노동 감행

손 감독은 “흥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면서 축구선수로 성공하거나 프로선수가 돼서 어느 정도 돈을 벌 것이라는 생각은 결단코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을 엄하게 가르친 이유가 결코 자신의 욕심이나 부모로서의 욕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축구선수로 경기장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게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하게 가르쳐 제대로 된 선수가 돼야 축구선수로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훈련 때는 엄한 아버지였지만 부자 사이가 돈독한 이유에 대해 손 감독은 “혼을 내고 반드시 사후 수습을 했기 때문”이라며 “감정에 휘둘려 혼내거나 인격을 훼손하지 않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했다.

손 감독의 매서운 인상 탓에 일부에선 손웅정·손흥민 부자를 권위적인 관계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훈련할 때 한정이다. “축구를 벗어나면 두 사람은 서슴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절친한 친구 같은 모습”이라는 게 두 사람을 지켜본 주변인들의 얘기다.

축구계에서는 “두 부자의 성격적 케미가 좋다”는 평가가 있다. 손 감독이 매사 진지하고 엄격한 반면, 손흥민은 낙천적이고 붙임성이 좋아 서로 성장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손 감독을 두고 팬들은 “무서워 보이지만 아들밖에 모르는 ‘츤데레’ 같다”고 입을 모은다. 손 감독은 늘 경기에 나서는 아들을 안아주며 “오늘도 마음 비우고 욕심 버리고 승패를 떠나서 행복한 경기를 하고 오라”고 말한다.

한국 축구는 과거 우수한 자질의 유소년을 어린 시절 때부터 망가뜨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뼈와 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서 당장 이기기 위한 소모품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가령 주력이 빠른 선수는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리고, 키가 크면 헤딩으로 골문을 노리도록 분업화하는 경우다.

손 감독이 손흥민을 학교 운동부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친 것은 본인이 부상으로 일찍 프로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아픔에서 나왔던 것으로 해석된다. 트래핑·패스·킥·드리블을 나중에 훈련시키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서는 체격이 큰 선수들과 대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웨이트 훈련을 한 것도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과거보다는 축구 훈련 방식이나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 대한축구협회는 초등학교 경기 방식을 8대8로 바꿨다. 개인 능력과 기본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나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말 리그와 전국대회 등 경기에 초점을 두게 되면 아무래도 기본기 훈련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해외 축구 유학을 돕기 위해 과거 대한축구협회 설명회에서 “현지 적응을 위해 어학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학부형들한테 아이디어를 준 사례가 있다. 당시 조언에 따라 어려운 형편에도 독일어 강사를 수소문해 아들에 붙여준 학부모는 손 감독이 유일했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항상 꼼꼼하게 준비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손흥민을 훈련시키는 과정은 스파르타식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손 감독처럼 특별한 아버지 아래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선수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요즘에는 아이들을 강하게 훈련시키기도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의 신뢰와 존경의 관계는 특수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손 감독은 “아이들을 정말 혹독하게 키운 데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공 차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내 깜냥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큰 울림을 남겼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최종 38라운드 노리치시티전에서 터트린 감아차기 골은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손흥민이 그 지역에 들어가면 공을 잡은 순간부터 슈팅까지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며, 그 바탕 위에서 창조적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기본에 충실할 때 잠재력이 폭발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축구 세계가 열린다는 설명이다.

한국 축구
새로운 기준?

김대길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축구 문화에서 기본기에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말 뿐이 아니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축구협회부터 지도자, 학부모까지 절실한 과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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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이 끝났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갈렸다. 각 정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선거를 치른 정치권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방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대선 정국이 마무리됐다. 2022년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던 진보 진영은 3년 만에 다시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보수 진영은 비상계엄과 탄핵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이 대통령 궐위로 치러진 보궐선거인 만큼 당선인은 인수·인계 기간 없이 바로 임기에 돌입했다. 또 한 번 정권교체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6개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한 지 60일 만에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난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9.4%,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 무소속 송진호 후보는 0.1%였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였지만 당락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한국리서치·입소스·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서 본투표 당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25개 투표소의 투표자 8만14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0.8%포인트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 대통령 51.7%, 김 후보 39.3%, 이 후보 7.7%였다. 출구조사와 비교해 이 대통령은 낮았고 김 후보와 이 후보는 더 득표했다. 이 대통령은 1728만7513표를 얻어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지만 과반 득표율에는 실패했다. 역대 대선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선관위가 지난 4일 오전 6시21분 이 후보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확정하면서 이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됐다. 임기 개시와 동시에 국군 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모든 고유 권한이 이 대통령에게 자동 이양됐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30년 6월3일까지다. 비상계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까지 숨 가쁜 6개월을 보낸 정치권은 대선 후폭풍에 직면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민주당은 3년 만에 여당으로 복귀했다. 민주당 단독으로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범진보 진영(192석)으로 보면 20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권’의 등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 이어 대선서도 패배하면서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당장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고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범진보 진영과 비교해 107석이라는 ‘초라한’ 국회 의석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차지한 이재명정부를 견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3년 만에 정권 탈환 국민의힘, 총선 이어 또 졌다 대선 후폭풍이 걷히면 정치권은 또다시 ‘선거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가 예정돼있다. 채 1년이 남지 않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윤석열정부 임기 중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윤정부서만 두 번의 지방선거가 열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대선 전초전 격이었을 선거가 이재명정부의 첫 대형 선거가 된 것이다. 이미 여당이 행정과 입법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서 지방 권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재명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른바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가능성은 작지 않다. 대선 이후 몇 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서 여당이 진 적은 거의 없다. 바로 직전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게 대표적이다. 2022년 6월, 윤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서울·인천 등 12곳에서 이겼다. 민주당은 경기·광주·전남·전북·제주 등 5곳에서만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도 국민의힘이 완승했다. 전국 226곳 중 145곳에서 이겼다.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7곳에서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서초구를 제외한 24곳에서 민주당이 이겼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린 재보궐선거서도 7곳 중 5곳을 차지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출마한 인천 계양을과 제주을을 제외한 대구 수성을·경남 창원의창·경기 성남시 분당구갑·강원 원주갑·충남 보령·서천 등에 국민의힘 깃발이 꽂혔다. 지난 지방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정도로 네거티브가 난무했던 20대 대선 직후에 열리면서 당시 투표율은 50%를 간신히 넘는 낮은 수준이었다. 역대 지방선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새 정부 탄생과 거의 동시에 치러진 만큼 ‘허니문’ 성격이 강했던 점도 국민의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심이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계엄·탄핵 보수 폭망 불과 3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대선 승리를 등에 업고 지방 권력까지 차지했던 국민의힘은 순식간에 야당으로 전락했고 민주당은 기세를 탄 상황이다. 이재명정부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 호흡으로 같이 나가려면 기울어진 지방 권력 구도를 돌려놔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6월3일 열릴 지방선거는 대선 이후 1년 뒤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이전 허니문 선거와 비교해 기간이 긴 게 변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 초인 만큼 여당에 유리한 이슈가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두고 진행 중인 재판이 1년 내내 사회를 달굴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4일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불소추특권도 사라졌기에 혐의가 더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심리 때부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재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1심 선고까지는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취임사에서도 내란 종식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서 진행한 취임 선서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내수 시장은 ‘폭망’ 상태에 접어들었고 외부에선 관세 등으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경제 이슈는 선거판을 늘 좌지우지했다. 텃밭 빼고 다 뒤집혀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먹사니즘’이라는 표현으로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가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취임 선서에서도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 극복과 경제 회복을 전면에 내세워 민심을 다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견제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과 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정부를 지방 권력으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2028년, 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 이후에나 치러진다. ‘거대 야권’ 국면이 이 대통령의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사이 판을 흔들만한 대형 선거가 없기에 보수 진영으로선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총선이 지방의회 상황에 영향을 받는 만큼 국회 의석 상황을 바꾸려면 지방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문제는 내부 상황이 지나치게 어지럽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서 배출한 대통령이 벌써 두 번째 파면됐고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보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총선 때부터 나왔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선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 윤 전 대통령 측 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서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둘러싼 혈전이 예상된다. 새 정부 1년 만에 맞대결 3년 전에는 여당이 압승 대선을 완주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의원은 비록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선 기간 내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처리하고 난 뒤에야 보수 진영은 지방선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선 과정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하거나 지지층만 믿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이면 총선, 대선서 이어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대선과 8대 지방선거, 이번 대선서 각 정당 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가 드러난다. 국민의힘 후보로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이 대통령이 나선 20대 대선 당시 승부를 가른 건 ‘서울’이었다.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면서 서울서 진 적이 많지 않았는데 2022년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로 민심을 까먹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50.6%, 이 대통령은 45.7%를 받았다. 표수로는 31만표 차이였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전체 표 차인 24만7000표(0.73%p 차이)보다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을 필두로 강원·대전·충청·TK(대구·경북)·PK(부산·경남)·울산서 승리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방선거 때에는 대선서 패했던 인천과 세종에서도 국민의힘이 이겼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이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무려 20%p 차이로 이겼다. 대선서 45.6%(윤 전 대통령) 대 50.9%(이 대통령)로 5.3%p 차이가 났던 경기도조차 48.9%(국민의힘 김은혜 후보) 대 49.1%(민주당 김동연 후보)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 대선서 국민의힘은 강원·TK·PK·울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서 졌다. 지역별로 보면 6곳에서만 김 후보가 이 대통령에 앞섰다. 국민의힘 텃밭이라고 불릴만한 지역과 보수세가 강한 지역서 선전했을 뿐 수도권과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충청권서 모조리 패배했다. 여러 차례 대통령을 배출한 전국 정당이 ‘영남당’으로 쪼그라든 순간이다. 안정론? 견제론? 발 빠른 인사들은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대선 패배 연설서 “저희가 잘했던 것과 못했던 것을 잘 분석해 정확히 1년 뒤 다가올 지방선거서 개혁신당이 한 단계 약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느 정도 승부가 예측됐던 이번 대선과 달리 내년 지방선거가 진짜 대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 국민투표 가능성 ‘동시에 진행될까?’ 이재명정부는 개헌을 할 수 있을까? 대선일로부터 꼭 1년 뒤인 내년 6월3일 열리는 9대 지방선거서 개헌 이슈가 다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 첫 대형 선거인 만큼 이날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은 대선 기간 내내 나왔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지난 4월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로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며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정 회장은 “느닷없는 계엄령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며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결정적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87체제’ 종말 초읽기? 그러면서 “개헌 시점은 늦더라도 2026년 6월이어야 한다”며 “이번 대선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협력 아래 정부가 지원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선후보 당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