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무너진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24 12:44:11
  • 호수 13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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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아이파크 또 무너졌다

[일요시사 취재 1팀] 김민주 기자 = 지난 11일 오후 3시46분경, 신축공사 중이던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공사 인력 1명이 사망했고, 5명이 실종됐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실종자 구조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꼬리자르기식 사과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사 중이던 아파트가 무너졌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 공사 현장 2단지 201동의 23~38층의 건물 외벽을 제외한 대부분이 내려앉은 것이다. 사고 당일에는 잔해들로 전신주 고압선이 부딪쳐 광주 신세계백화점, 유스퀘어 등 인근 건물이 정전됐다. 

일주일 후 
현장 방문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생긴 파편은 공사 현장 근처에 주차된 차량 20여대를 매몰시켰고, 인근 주민들은 대피했다.

작업 계획서에는 28~29층에 3명, 31~34층에 3명 등 공사 인력 6명이 있었다. 이 중 1명은 사망했고, 5명은 구조를 위해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2차 건물 붕괴의 위험이 있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광주 화정 아이파크의 시공사는 HDC현대산업개발로 회장은 정몽규다. 그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자동차를 이끌었지만, 현대자동차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가면서 1999년부터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정몽규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에 자리 잡은 지 23년의 세월이 흘렀고, 23년의 역사는 아파트 붕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정 회장은 참사 발생 후인 지난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와 회장 사퇴 의사를 밝히고 광주로 향했다.

정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현대산업개발은 광주시를 비롯한 관련 정부기관들과 힘을 합쳐 사고 현장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실종자 구조작업을 진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자 가족분들께 피해를 보상함을 물론 입주 예정자분들과 이해관계자분들께도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골조 등 구조적 안전 결함에 대한 법적 보증기간은 10년이지만 새로 입주하는 주택은 물론 현대산업개발이 지은 모든 건축물의 보증기간을 30년까지 늘리겠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저는 이 시간 이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의 회장직 사퇴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가족들과 여론은 호의적이지 못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정 회장이 광주 아파트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광주에 방문한 것에 대해 지적했다.

서울 본사 기자회견 후 정 회장은 광주로 내려가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사과를 했지만 이미 시간은 많이 지났다. 추운 한겨울,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1분1초가 아까운 시간이다. 내 가족이 매몰돼있는 건물의 수색은 진행되지 않았고, 총책임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 회장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광주에 방문한 것은 17일로 사고 발생일로부터 일주일이나 걸렸다. 12일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광주를 방문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사과를 전했다. 


현대산업개발 측에서는 사고 발생 당일 정 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광주에 내려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가 난 이후 정 회장은 광주에서 머물렀고 지난 토요일에 오전 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이동한 뒤, 17일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 사퇴를 밝히고 광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광주 화정 아파트 참사 
책임지고 회장직 사퇴

반면 18일 이용섭 광주시장은 정 회장에게 후속 조치를 촉구하며, 정 회장이 사고 발생한 지 일주일간 광주에 방문하지 않고 서울 본사에서 사퇴 발표를 한 것에 대해 실종자 가족과 국민들 모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후속 조치에 대한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답변했지만, 사측의 의견은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 회장은 일주일간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HDC그룹의 지주사인 HDC는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HDC현대산업개발 보통주 100만3407주를 장내매수했다고 공시했다. 날짜로는 13일에 57만3720주, 14일에 29만9639주, 17일에 13만48주를 매수했다. 

또 정 회장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회사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같은 기간 HDC 보통주 32만9008주를 장내매수했다.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당일인 지난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9.03% 떨어진 2만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정 회장이 회장직 사퇴를 발표한 지난 17일은 전 거래일보다 0.79% 하락한 1만8750원에 장을 마쳤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이번 매수에 대해서 광주 아파트 참사로 인한 주주가치 보호와 책임 경영을 통해 회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고, 앞으로도 필요 시에는 주식을 추가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투자자 신뢰회복을 위한 움직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국민은 주식 매입으로 회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 수습과 구체적인 사후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이 같은 행보가 정 회장의 사과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이 밖에도 피해자 가족들은 정 회장에게 원론적인 사과문이 아닌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종자 두고
주주들부터?

피해자 가족 협의회는 소방대원과 인명구조견, 중장비 운용 기술자와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화 마련과 휴식 보장, 피해자 가족들과 사고 현장 주변 상인들, 입주자들의 생계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실종자 수색이 빨리 이뤄지는 것과 위험한 환경에서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사고수습통합대책본부는 실종자 5명을 수색하기 위해 구조 인력 204명, 인명구조견 8마리, 내시경 카메라와 영상 탐지기, 드론, 집게차, 굴삭기 등 장비 51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구조대원과 구조견은 지하층 잔재물에 대한 정밀 재수색과 사고 건물 22층 이상에서도 수색 작업을 진행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본격적인 정밀 수색은 기울어진 타워크레인 해체 등 안전보강이 완료된 이후 시작될 수 있다. 대책본부는 20일 오후까지 보강 작업을 마치고 해체용 대형 크레인 두 대를 이용해 기울어진 타워크레인 해체를 시작하고, 이달 마지막주 초부터는 정밀 수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광주 아파트 참사를 지켜본 사람들은 과거의 한 참사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특별점검대책반장으로 활동했던 이종관 삼풍백화점 붕괴 기록전시관 관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광주 아파트 참사는 불법·탈법·편법에 의한 참사로 데자뷰로 전했다. 

이번 광주 아파트 참사를 보고 그가 느낀 감정이 그만큼 ‘참혹하다’는 것이고, 삼풍백화점과 흡사한 방식으로 아파트가 무너진 것이다.


백화점과 아파트의 설계와 공법은 다르다. 그러나 광주 아파트의 외벽이 뜯겨나간 형태, 힘없이 뽑힌 철근은 삼풍백화점과 매우 흡사하다.

이 관장은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공정 전반에 걸친 편법과 탈법”이라며 “27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장에서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사항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삼풍백화점은 하중을 분산하는 슬래브가 설계보다 얇게 시공되거나 아예 설치되지 않았었다. 광주 아파트도 사정이 마찬가지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관장은 하중을 받쳐줘야 할 동바리(바계 기둥)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것, 콘크리트는 영상 5도 이상에서 9일 이상 버텨야 안전한데 최근 날씨가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덧붙였다.

총체적
부실공사

처음부터 불량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는 정보도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광주 아파트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레미콘 업체 상당수가 콘크리트 재료 관리 미흡으로 국토교통부에 적발된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지난 19일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와 올해 레미콘 업체 품질관리 실태 점검 결과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업체 10곳 중 8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점검 결과에 따르면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자갈, 모래 등 골재를 잘못 관리했거나 배합 비율을 맞추지 않은 업체가 3곳이었고,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혼화재를 부적절하게 보관한 업체가 3곳, 시멘트 관리가 부실한 업체도 3곳이었다.

국토부 점검에 따르면 부적합 공장에서 생산된 콘크리트가 사고 현장에 쓰였을 확률이 높다.

정 회장의 위기는 처음이 아니다. 첫 번째 위기는 1999년이었다. 이전까지 정 회장은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다. 그러나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요구로 그해 3월 현대차를 넘기고 대신 HDC현대산업개발을 넘겨받았다. 

HDC현대산업개발로 옮겨온 뒤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정 회장은 조직문화 변화를 이끌었다. 경영진을 현대차 출신으로 교체, 투명한 회사 업무를 강조했다.

HDC현대산업개발로 온 지 한 달쯤 뒤 아파트 분양가를 자동 계산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아파트’라는 브랜드 사용을 놓고 현대그룹과 갈등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 아파트 브랜드의 강자는 현대아파트였다. 현대아파트의 가치가 3조~4조원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 회장은 당연히 현대아파트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당시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의 법적 소유주도 HDC현대산업개발이었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HDC현대산업개발에 ‘현대’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그 결과 2000년 HDC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를 만들었다.

외벽 뜯긴 형태 삼풍백화점과 흡사 
실종자 뒷전 투자자 신뢰회복 우선?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 브랜드를 개발한 뒤 꾸준히 성장했다. 1999년까지 5위권 밖이었던 HDC현대산업개발은 2000년 5위, 2004년에는 4위까지 올랐다.

이런 승승장구에도 2008년 금융위기를 비켜갈 수는 없었다. 당시 HDC현대산업개발은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내수시장 위주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발목을 잡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해외실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시장 침체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떨어져 2014년에는 13위가 됐으며 적자는 1400억원대를 기록했다.

정 회장은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는 등 비상체제 운영에 나섰다. 그 결과 2014년에는 해외공사 수주를 성공했다. 1년 만에 흑자 전환 성공이었다. 2015년에 다시 10위로 올라섰고, 현재까지 10위권 이내에 꾸준히 머물고 있다.

정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건설업 이외 업종 진출을 통한 노력을 지속해서 해왔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와 한솔개발 인수, 한화에너지와 통영천연가스발전사업 공동추진, 면세점사업 진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계열사만 30곳에 달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이런 행태가 HDC현대산업계발의 부실 공사 사고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건물 붕괴 논란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9일 오후 4시 23분쯤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중이던 광주 동구 학산빌딩이 무너졌다. 이 순간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가 매몰되는 등 큰 피해가 있었다. 피해자는 총 11명으로 사망 3명, 부상 8명이었다.

이때도 정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사죄하고 조속한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붕괴의 원인 규명보다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피해 보전을 하는 쪽으로 의견을 결정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철거비용과 피해 보상금 등을 포함하면 HDC현대산업개발의 최대 4000억원의 손실을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화정 아이파크는 단지 공정률이 약 60%다. 총 도급액이 2557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투입된 공사비는 1500억원에 달한다. 전면 철거를 할 경우 비용은 약 148억원으로 예상된다. 

곳곳 잡음
건설 접나

입주 예정자에 대한 입주지연 보상금도 마련해야 하고,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한다면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된다. 입주지연 보상금도 약 1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그룹 해체 수순을 밟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동아건설산업 시공),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삼풍건설산업 시공) 수준과 비견되는 처벌 수위가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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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