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하늘에서 그리는 정몽규 회장의 야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1.19 10:52:20
  • 호수 1245호
  • 댓글 0개

포니 신화 이어 색동날개 펼치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정몽규 현대산업개발(HDC) 회장의 집념이 빛을 봤다. 정 회장이 통큰 배팅으로 아시아나항공을 거머쥐었다. 안정적인 재무구조와 풍부한 자금력을 확보한 현대산업개발과 M&A 귀재 미래에셋대우가 의기투합한 HDC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선친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꿈 실현을 위해 한 걸음 다가갔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동생으로 현대자동차와 포니 신화를 일으킨 주인공이다.

“반드시 
 필요했다”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지난 12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업계에선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정 회장의 집념을 꼽는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은 HDC그룹의 재도약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회사”라며 입찰 금액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인수가격으로 약 2조5000억원을 제시, 1조7000억원을 써낸 애경-스톤브릿지캐피탈 컨소시엄을 압도했다. 이는 재계가 예측했던 입찰가인 1조5000억∼2조원을 크게 뛰어넘는 것으로, 정 회장의 인수 의지를 보여주는 금액이었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HDC그룹을 ‘모빌리티 그룹’으로 재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우선협상자 선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서 정 회장은 “항공산업이 현대산업개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부합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HDC그룹은 항공산업뿐 아니라 나아가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브랜드 제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3년 이상 지켜온 아시아나항공의 ‘날개’ 마크도 교체될 예정이다. 2006년 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창립 60년을 맞아 ‘윙(날개)’을 형상화한 그룹 통합 CI를 도입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브랜드 로고도 통합 CI로 바뀌었다.

아시아나항공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통 큰 베팅’ 경쟁사보다 1조 더 써 

아시아나항공은 2007년부터 통합 CI 소유권을 가진 금호산업과 상표권 계약을 맺고 매년 계약을 갱신해왔다. 상표권 사용료는 월별 연결매출액의 0.2%로, 월 단위로 사용료를 지급했다. 아시아나는 올해 4월에도 금호산업과 상표사용 계약을 체결해 사용기한은 내년 4월30일까지며, 올해 상표사용액은 총 143억6700만원이다.

HDC그룹은 곧바로 새 브랜드 제작에 착수할 계획이다. 현재 HDC그룹은 별도의 이미지 로고 없이 붉은 색의 ‘HDC’ 글자를 그룹 CI로 사용하고 있다. 항공기를 비롯한 모든 물품서 로고 교체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실제 적용은 내년 초는 돼야 가능할 전망이다.

브랜드 이미지는 바뀌지만 ‘아시아나항공’ 사명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이 그간 좋은 브랜드 가치를 쌓아왔기 때문에 현재까지 아시아나항공의 이름을 바꿀 생각은 없다“며 ”HDC와 양쪽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이렇게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규모 자금을 동원한 것은, 건설업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호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원래 현대자동차에서 핵심 경력을 쌓았다. 1991년 현대자동차 상무에 올랐고 199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만 34세였던 1996년엔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맡았다. 아버지 고 정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차의 운전대를 잡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분리되는 과정서 현대차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갔다.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을 받게 됐다. 2005년 선친이 타계한 이듬해 선친의 별칭을 딴 ‘포니정 재단’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정 회장은 대우자동차 인수 후보에 오르내리거나 인터넷 자동차 판매업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다. 자동차 산업 진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빌리티 그룹
드디어 구축

이후 정 회장은 건설업에 매진해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10대 건설사로 성장시키며 기반을 닦았다. 단순 도급사업뿐 아니라 자체개발사업 비중도 늘려 외형보다는 수익성에 주목했다. 동시에 사업 다각화에도 힘썼다. 

HDC아이파크몰을 운영하며 유통업계에 진출했고, 호텔신라와 손잡고 면세업에도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한솔그룹의 오크밸리(현 HDC리조트)를 인수하면서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여기서 쌓은 넉넉한 자산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손에 넣게 됐다. HDC는 2018년 말 현재 현금성 자산을 1조3500억원 보유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1.4%로, 대형 건설사 중 최고 수준이다.

정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비건설업종에서 틀이 갖춰진 회사를 사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기회였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이은 항공업 2위로, 지난해 7조1800억원의 매출을 거둬 28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항공산업에 진출할 경우 대한항공이 항공기 부품 제조업과 해운, 물류업체까지 거느리는 것처럼 연관 산업의 진출이 용이해진다. 현대산업개발이 건설업을 기반으로 유통이나 레저 업종에 진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업종에 진출할 수 있고, 그만큼 성과를 낼 확률도 높아진다.

범 현대가 
지원 사격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서 재계 순위도 껑충 뛰었다. 2018년 현재 33위서 18위 정도로 올라가게 된다. 2018년 현재 계열사 총자산(10조600억원)에다가 아시아나항공의 자산 8조1900억원을 더하면 18조8000억원가량이 되는데, 이는 17위 LS(22조600억원)와 18위 대림(18조원) 사이가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하는 대기업집단 순위는 계열사 자산을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합산한 것이기 때문에 재무제표 상의 아시아나항공 자산 규모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계열사 별도 합산의 경우 자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자잘한 계열사 자산을 합쳐도 LS를 자산순위서 제칠 가능성은 낮다.

일각에선 현대산업개발이 대규모 투자로 인한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현재 현대산업개발 회사채 신용등급은 A+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BBB-에 그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가 열악하고, 자산과 부채 덩치가 크기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회장은 그러나 ‘승자의 저주’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입찰 과정서 5조원 이상의 자금 증빙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금융(인수합병용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기존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충분히 댈 수 있다고 과시한 것이라는 풀이다.

범 현대가의 지원사격도 예정돼있다.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회장은 인수전 초기부터 오너 일가 모임 때 조언을 구하고, 인수전 막판에는 범 현대가 여러 그룹서 아시아나항공의 여객 및 물류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향서(LOI)를 받아 매각 측에 제출했다.

재계순위 33위→18위 도약 기회
‘포니정’ DNA로…선친 숙원 풀어

정 회장은 1962년 1월14일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박영자씨의 1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사촌이다. 이외 정몽진 KCC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과 사촌관계다.

부인 김나영씨와 슬하에 준선씨와 원선씨, 운선씨 등 3남을 뒀다. 부인은 김성두 전 대한화재보험 사장의 딸로 연세대 수학과를 나왔다. 정 회장의 장남인 준선씨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서 박사과정을 마친 인공지능 (AI) 분야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정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현대자동차에 대리로 입사해 현대자동차 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경영권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버지 정세영 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떠나 현대산업개발로 옮겼고 회장을 맡았다. 

자동차를 만들던 사람이 건설을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를 씻어내고 현대산업개발을 시공능력 평가서 최고 4위까지 오르는 종합건설사로 키웠다. 건설업계 최초로 건축물의 디자인을 중시하는 디자인경영을 도입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파크 하얏트 서울’과 용산에 있는 패션전문 백화점 ‘현대 아이파크몰’이 그의 작품이다.

이번에도 
승자의 저주?

정 회장은 축구광이기도 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유학시절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울산 현대 사택에 살았던 시절 이웃이었던 차범근 전 울산현대 축구단 감독과 인연을 시작으로 축구계에 발을 들였다. K리그 한국프로축구연맹 전 총재, 현 대한축구협회 회장,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원, 동아시아 축구 연맹 회장, 아시아 축구 연맹(AFC) 부회장 겸 심판위원장, 부산 아이파크구단주다. 프로축구단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호랑이의 구단주이기도 했다. 덕분에 K리그서 3개팀의 구단주를 역임한 유일한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배너

관련기사

20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